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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의 향기♣ No2536
10월2일 [수호천사 기념일/연중 제2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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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여,
인자하신 주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하느님께서 저를 당신의 보호에 맡기신
하느님의 거룩한 천사시여,
저의 육신과 영혼에 나타내 보인
당신의 모든 선행에 대해 감사드리나이다.
당신이 저를 이렇게 충실히 도와주시고,
모든 원수에 맞서 지켜 주시니
당신을 찬미하며 기리나이다.
그리고 당신이 저의 피난처, 보호자, 후원자가 된
그 시간을 축복 하나이다.
당신은 언제나 저를 돌보고 염려하며
사랑을 베풀어 주면서
끊임없이 저의 구원을 도와주시나이다.
청하오니,
제가 자주 당신의 영감을 거역하고
사랑하는 친구인 당신을 슬프게 했음을
용서하소서.
앞으로는 당신께 순종하고
저의 하느님을 더욱 충실히 섬길 것을
굳게 결심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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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오늘 미사**
https://m.youtube.com/watch?v=YiZmliV9R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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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수호천사는 나를 갖은 위험에서 지켜주고 있으며, 그의 시선을 늘 나를 향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라는 말에 절대 공감합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나마 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하는, 좀 더 살맛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 어떤 흐름, 다시 말해서 영적인 존재가 반드시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랑과 자비로 가득하신 하느님께서 따뜻한 시선으로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언제나 청춘이신 성령께서 우리 삶 한 가운데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며, 세상과 인간을 새롭게 하시고,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위로자이신 성모님께서 상처 투성이인 우리네 인생 여정에 자상한 어머니로서 늘 동반하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존재, 수호천사들이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앉을 때나 일어설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누워있을 때나,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특급 도우미로서, 수호천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수호천사의 존재를 생각하니 참으로 마음이 든든해지고 편안해 집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들로 인해, 시절이 하수상하니,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집나서기도 걱정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호천사란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의미요 위로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오늘 수호천사 기념일을 맞아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분들의 존재를 굳게 믿으며, 그분들의 존재에 대한 깊은 감사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해 얼마나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으며, 일상 생활 안에서 얼마나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을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좀 더 의식하고 산다면, 우리 삶은 좀 더 진실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좀 더 거룩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늘 우리와 가장 가까이 몸붙여 살아가는 사람들, 가족, 친지, 형제, 동료들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신 수호 천사들입니다.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를 성장시키고, 서로 힘이 되어 주라고 엮어주신 수호천사 말입니다.
우리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수호천사는 마치 내가 직접 고용한 사설 경호원처럼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를 밀착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를 갖은 위험에서 지켜주고 있으며, 그의 시선을 늘 나를 향해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육적인 삶에 너무 푹 빠져 살아가다 보니, 영적인 삶, 영적인 존재, 우리의 수호천사들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영적인 삶, 영적인 존재, 영적인 세계는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너무 커져버린 나머지, 너무 높이 올라간 나머지, 너무 인간적·지상적 삶의 방식에만 몰두한 나머지, 또 다른 방식의 세계와 존재, 삶에 대한 감을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영적인 삶의 방식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그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오 복음 18장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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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창조론과 진화론: 천사의 학설, 악마의 학설>
(묵상 동영상)
https://youtu.be/9Qc7lFDW2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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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수호천사가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음을 잊고 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호천사의 역할은 자기가 수호하는 사람의 존엄성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면 당신의 천사들을 한 명씩 우리 각자를 보호하도록 파견하셨겠습니까? 우리에게 수호천사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존엄성을 높여주는 수호천사와 같은 이들도 있고 그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존엄성을 간직하려면 우리는 악마의 목소리보다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수호천사의 목소리와 악마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천사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머리에는 창조론이 들어있습니다. 악마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 머리에는 진화론이 들어있습니다. 나치가 유태인들을 학살하기 위해서는 악마의 목소리 쪽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처럼 존엄한 존재를 그렇게 학살하다가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미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진화론은 그들에게 좋은 믿음을 줍니다. 유전자에는 우성과 열성이 존재하는데, 자신들은 우성인자를 가졌고 유태인들은 열성인자를 가졌다고 믿으면 됩니다. 우성인자가 살아남고 열성인자가 사멸하는 것처럼, 독일인은 살아남고 유태인은 죽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전자의 진화를 위해서라면 5백만이든, 6백만이든 죽여도 자연세계 내에서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화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화론을 따르면 집단적으로 악마에게 이끌릴 수 있습니다.
이런 악마의 이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책이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이 책은 인간은 진화되었기 때문에 박테리아나, 쥐나, 인간이나 다 같이 유전자를 보호하고 운반하는 도구의 입장에서 그 존엄성의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윈의 추종자인 도킨스는 인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말합니다. 벼락에 맞은 어떤 아미노산과 같은 화학물질이 생명체의 시초가 되는 유기화합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포막을 가지게 되고 우연히 자기복제를 할 수 있는 세포가 됩니다.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다 우연입니다. 어쨌거나 그 자기복제를 할 수 있게 된 유전자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생존을 위해 자신들을 운반해 줄 도구들을 만듭니다. 그래서 물고기가 되거나 쥐가 되거나 사람이 됩니다. 유전자가 곧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입니다. 사람은 그저 그 유전자들이 자신들의 유전형질을 후대에 물려주게 만드는 기계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남을 위해 희생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까지 그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말합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유전형질을 지닌 자녀들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의 눈에는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을 포기하면서도 남을 위해 사는 사제나 스님도 새로운 유전자인 그런 문화와 믿음(밈)을 전해주는 도구의 삶에 불과한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세계의 베스트셀러라는 작품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론은 자신의 우성인자를 위해 다른 열성인자를 살해하거나 학살해도 된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줍니다.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그런 사람은 천사가 아니라 악마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그저 유전자를 나르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다고 격하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창조론에 더 근접한 책이 있는데, ‘부르스 립튼’의 『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 믿음의 생물학』이라는 책입니다. 이분도 스탠퍼드 의대에서 교수를 지내신 분입니다. 세포 전문가이신데, 이전까지는 유전형질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분은 DNA가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의식이나 믿음이 DNA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DNA는 그저 자기복제를 하여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기적 유전자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약물 실험을 하는 것 중에 플라시보, 노시보 효과가 있습니다. 약물은 분명히 유전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인간의 의식에 따라 좋은 영향도 나쁜 영향도 미치거나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유전자가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나 믿음이 유전자에 영향을 줍니다. 이에 인간의 주인은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의식, 특별히 인간이 믿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병자가 기적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근거를 과학적으로 제시했고, 인간이 단순히 세포들의 결합체라는 진화론과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각자가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합니다. 진화론도 어떻게 무생물에서 생명체가 생겨나는지 알지 못하고, 창조론도 하느님이 계심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이 싸움은 영원히 지속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믿어야 합니다. 마치 사막의 모래들이 모여 저절로 시계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을 믿어 인간은 그저 모래에 불과하다고 여기던가, 아니면 위대한 기술을 지니신 분이 만들어 낸 시계는 모래와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가치 있다고 믿기 위해 창조론을 믿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걸 믿건, 저걸 믿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진화론을 믿으면 인간은 그저 벽돌과 같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여겨 법적제재가 없다면 이웃에게 막 대해도 되지만, 진화론을 믿으면 가장 작은 이들이라도 하느님의 천사들이 함께하시니 양심상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수호천사는 자신의 존재로 우리의 존엄성을 높여주는 분입니다. 창조론을 주장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리켜 누군가의 수호천사로 살 것인지, 진화론을 주장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며 남을 쉽게 죄짓게 만들 수 있는 악마처럼 살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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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18,1-5.10: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라
오늘 교회는 수호천사 기념일을 지내고 있다. 수호천사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파견되어 그를 악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선을 행하도록 이끌어주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천사이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아무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10절).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1절)라고 묻는다. 이 ‘하늘나라’가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어린이들처럼 처신할 때 장차 들어갈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인지는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둘 다 해당되는 것이다. 이때에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제자들처럼 자신을 높이지 말고 어린이들처럼 자신을 낮추어야만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다. 오직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겸손을 촉구하신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4절).
그러면서 또한 예수께서는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을 예수님의 처신과 명령,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5절) 불쌍한 어린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아 같은 어린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선행이 바로 당신 자신에게 베푼 선행으로 간주하신 ‘최후의 심판 설교’(마태 25,31-46)를 연상케 한다. 물론 이 구절이 앞의 내용, 즉 겸손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도 마태오는 여기에 수록을 하고 있다. 아마 그것은 이러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그만큼 낮추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 수록하고 있을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10절)은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태오 교회의 미천한 교우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그리스도 신앙을 무너뜨려서도 안 되고 그들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염려하는 천사들이(토비 5,6-7.22; 사도 12,15)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기”(10절) 때문이다. 이 천사들은 하느님 가까이서 시중드는 매우 높은 천사들이다.
이 천사들은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그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하느님께 고발하기도 하는 자들이다. 우리 자신을 우리 스스로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우리가 우리 형제를 업신여김으로써 또한 그들을 창조하신 하느님까지 멸시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은 바로 보이는 하느님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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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오늘의 묵상
[제주교구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본문에 나오는 ‘어린이’의 그리스말은 ‘파이디온’인데, 본디 이 단어는 열 살 아래의 아이나 유아를 가리킵니다. 이 말에서 ‘파이다고고스’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직역을 하자면 ‘어린이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우리말로는 ‘보호자’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린이’란 어른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이를 뜻합니다. 따라서 신앙 안에서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인식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당 신부였을 때 날마다 미사에 참례하는 서너 살짜리 꼬마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제가 사탕을 줄 때 말고는 자기 아빠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껌딱지’처럼 아빠에게 붙어 있는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저는 저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하느님께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가?’, ‘과연 나는 저 아이처럼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로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어른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나약하고 부족하며 철없는 아이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우리의 형제로 내어 주셨고, 우리 각자에게 알맞은 ‘파이다고고스’, 곧 ‘수호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몫은 오직 그분께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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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수호천사>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이 말씀은,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느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적절한 때가 되면 잘못된 일들을 모두 바로잡으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특별히 사회적인 약자에게 가해지는 횡포와 억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라는 말씀은,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경고 말씀입니다. ‘그들의 천사들’은 수호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늘 뵙고 있다는 말씀은, ‘작은 이들’이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면 그들의 수호천사들이 곧바로 하느님께 그 일을 말씀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시고, 작은 이들을 특별히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힘없는 사람들을 편애하신다는 뜻도 아니고, 사람을 차별하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작은 이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직접 나서시는 것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힐 때, 힘없는 사람들의 수호천사들이 곧바로 하느님께 그 일을 말씀드린다면, 그러면 그때 ‘힘 있는 자들의 수호천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힘 있는 자들의 곁에서 약한 이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고 타이를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하느님께 가서 힘 있는 자들의 죄를 고발할 것입니다. 수호천사라고 해서 무조건 편을 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도록 인도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막는 것도 수호천사들이 하는 일입니다.>
어떻든 이 말씀은, 사회적으로 힘 있는 자들에게는 경고 말씀이 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됩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 행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곧바로 천벌이 내리지는 않겠지만, 즉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겠지만(2베드 3,9),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작은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하느님의 보호와 도움이 더디게 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시기와 방법을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앙갚음 하지 말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로마 12,19)
수호천사가 하는 일이 가장 잘 드러난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광야를 행진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탈출 13,21-22) (‘주님께서는’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말을 ‘주님께서 보내신 수호천사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수호천사의 보호와 도움은 곧 주님의 보호와 도움입니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보호와 도움은 아닙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탈출 23,20-21) 수호천사가 도와주기를 바란다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수호천사의 보호와 도움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요셉에게 헤로데의 음모를 미리 알려 주고, 성가정을 이집트로 피신시킨 천사가 대표적인 수호천사입니다.(마태 2,13-14) 실제로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동방 박사들이 헤로데의 계획을 눈치 채고 요셉에게 그것을 알려 주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왕궁의 누군가가 요셉에게 알려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동방 박사들이, 또는 그 누군가가 수호천사의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남을 도와주는 수호천사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수호천사의 일을 하면 수호천사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는 요셉에게만 알려 주고 베들레헴의 다른 집들에게는 안 알려 주었을까? 또는, 요셉은 혼자서만 알고 사람들 몰래 베들레헴을 빠져나갔을까? 아마도 천사는 아기가 있는 베들레헴의 모든 집에 다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천사니까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또는, 요셉은 그냥 떠나버리지 않고, 다른 집들에게도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안 믿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믿었더라도 어떤 사정으로 피신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른들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베들레헴의 아기들은 억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수호천사는 왜 그 아기들을 지켜 주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의문은 오늘날에도 이런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호천사가 있다면, 왜 아직도 이 세상에는 억울한 일들이 많이 생기는가? 힘없는 사람들은 왜 아직도 고통과 고난을 겪고 있는가? 내가 지금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탄의 세력이 전멸할 때까지는, 이 세상에 ‘악’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모두 회개하거나 심판 받을 때까지는 이 세상에 ‘죄’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악과 죄를 물리치기 위한 우리의 사랑과 선행 실천도 역시 숙제로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수호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의식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겠지만, 지금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나를 도와주는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수호천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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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신학생 때입니다. 여름에는 늘 바빴습니다. 본당의 여름 행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등부, 중고등부의 여름 성경학교, 여름 신앙학교가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과 함께 준비하기도 했고,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고, 야영장이나 수련원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여름이 분주했다면 겨울에는 좀 여유가 있었습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구유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여름의 행사에 비하면 한결 여유가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주로 새벽미사를 다녀오고 본당 사무실의 업무를 도와주곤 했습니다. 3학년 때입니다. 선배 신학생에게 ‘나환자 마을’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겨울방학에 나환자 마을에 가서 봉사한다고 합니다. 주로 아이들 교리를 가르쳐주고, 어르신들 농장 일을 도와준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나환자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1984년 처음으로 선배 신학생과 함께 나환자 마을엘 다녀왔습니다.
선배 신학생은 주로 어른들과 함께 지냈고, 저는 아이들과 지냈습니다. 교리를 가르쳐 주고, 시간나면 같이 놀았습니다. 눈 오는 날 눈싸움도 하고, 산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꽁꽁 얼었던 낙동강을 건너 시내에서 자장면을 먹고 오기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방에 옹기종기 모여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님은 어려운 시절을 살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밝고 깨끗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여학생은 새벽에 연탄을 간다고 오기도 했고, 중학교 다니는 학생은 계란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성당 마당에는 종탑이 있었고 종을 치면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아이들이 예쁜 손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아이들이 보내준 편지를 읽으면 즐거웠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이었는데 이제 그 나이의 아이들을 가진 부모가 되었습니다. 수도자의 길을 걷는 친구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주변을 보면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동안 ‘카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목적지가 같은 분들을 연락해서 승용차를 함께 이용하는 나눔입니다.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나눔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돼지 저금통을 가져오기도 하고, 군인들도, 기업체를 운영하는 분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나눔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를 해도 함께 나누고, 잔치가 있으면 이웃을 초대하였습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위해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예전에 농경시대에 있었던 방식의 나눔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고 분주한 현대사회에 살면서도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수호천사입니다.
오늘 내가 전하는 따뜻한 말과 친절은 고통 중에 있는 이웃에게, 절망 중에 있는 친구에게 위로와 힘을 줄 것입니다. 수호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기도 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수호천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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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당신과 나>
마태오 18,1-5.10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작은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당신과 나>
당신은
늘 그렇게
내 곁에 내 안에
계시건만
내가 커질수록
당신은 희미해지고
나만 있으면
당신은 사라지고
내가 작아질수록
당신은 또렷해지고
내가 없으면
당신이 전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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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네딕도수도회 이성근 사바 신부님]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특사를 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호하며 이끌도록 하셨습니다.
수호천사는 하느님 곁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면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주고,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악과 불행에서 지켜 주면서 우리가 악과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나라가 세워진 뒤 자신들이 누릴 지위와 서열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대답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위대한 인물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은 회개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죄를 아파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한 방향으로 가던 사람이 자기 인생의 모든 진로를 완전히 바꾸는 것, 온전히 하느님께 향하는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 조건은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신중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성숙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무능력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며 어른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유치함이나 미성숙함이 아니라 의존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그렇게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하느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세 번째 조건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존중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얼굴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자세입니다. 모든 이가 수호천사를 모시고 있음을 기억하는 동시에 내 수호천사의 인도를 바라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먼저 향합니다.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에서 이방인들이라고 제외될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전해져야 합니다. 거부당하고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복음 전파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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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수녀회 마자레로 센터 강석연 수산나 수녀님]
<수호천사가 되신 아버지>
제목도 지은이도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어른으로 태어나 아이가 되어 죽는다는 내용의 동화가 생각난다.
우리 아버지는 올 7월 5일에 아이처럼 맑은 모습으로 크신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셨다. 아기와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의 차이는 단순히 ‘체격이 크다, 작다와 말을 할 수 있다, 없다’ 였을 뿐 아버지는 착한 아이 그 자체였다
물건을 받으면 깍듯이 아버지는 늘 웃음을 지으며 꼬박꼬박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음식을 드실 수 없어 오직 미음만을 드셨는데 그것이 아버지를 정화시킨 것인지 아버지의 몸에서는 늘 아기 내음이 묻어났다.
“아버지, 몸을 옆으로 누우면 숨쉬기가 좋대요” 하면 “그래”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마지막 병원에서 집에 가시기를 원한 것 외에는 요구도 없이 늘 ‘그래’ 하면서 응해주셨다.
아버지가 위독해지면서 아버지 옆에 있는 시간을 수도회에서 많이 허락해 주셨는데 아버지는 곁에 있는 동안 어려운 시절 맏이로 태어나 집안 살림 보태느라고 공부 많이 못 시킨 큰오빠가 마음에 걸려 “느이 큰오빠한테 미안하다. 고생만 시키고`…. 내가 잘못했다”를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그러나 그 후회조차 마지막이 가까워지면서는 크신 아버지께 다 맡기시고 정말 평온하게, 마치 주무시듯이 큰오빠 품에 안겨 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하면서 우리 가족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맑은 아버지, 그 아버지가 우리의 수호천사가 되셨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처럼 맑은 수호천사이신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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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박상대 마르코 신부님]
<나의 수호천사>
1983년 3월 오스트리아 잘쯔부르그 신학대학의 페르티난트 홀뵉 교수는 ≪천사론≫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여기서 교수는 오늘날 가톨릭신자들의 일상에서 천사들에 대한 인식이나 의식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그렇다.
과거보다 현대에 들어 천사들에 대한 공경은커녕 언급조차 회피하고 존재마저 의심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이런 현상은 성전건축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중세기부터 근대 이전에 봉헌된 유럽의 성전들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천사들의 성상이나 성화들이 요즘 현대식 성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만 의존하려는 유행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서에도 벌써 스며든 것인가?
홀뵉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부제로 ‘천사들과 성인들의 통공’을 언급하고 있는데, 천사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시다.” 하고 외치면서(묵시 4,8)
성인들과 함께 천상예배를 드리며, 지상에서도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 하여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며, 그들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려 바치고 때로는 영혼들의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까지 한다는 확고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또한 수많은 성인들이 천사, 특히 자신들의 수호천사와 함께 생활하였으며 그들에 대한 공경과 사랑이 두드러졌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과 친교를 나누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성인들은 천사의 현존에 대한 계시된 진리를 직접 생활로 보여 준 사람들이다. 이미 1215년 제4차 라테란공의회와 1870년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천사의 현존을 교의상의 진리로 밝힌바 있듯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도 천사에 관한 진리는 교의상 최우선적인 진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내려온 고귀한 신앙유산(Depositum fidei)임을 천명하였다.
이 신앙의 유산은 교회 스스로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성서에 계시된 확고한 진리라는 것이다. 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에 언급하였듯이, 천사의 존재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이며, 결국은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다.(마태 18,10; 히브 1,14)
신구약성서를 통틀어 볼 때 천사들은 하느님을 보필하는 천상에서의 역할 외에도 세상에 파견되어 인간을 도와주고 이끌고 지켜주는 등 하느님의 인간 세상에 대한 계획을 다양한 차원에서 수행한다.
특히 수호천사에 대한 공경과 신앙은 중세기 이후 급속히 성장하여 전례 속에 자리를 잡았고, 클레멘스 10세 교황(1670-1676)은 10월 2일을 수호천사 축일로 정하여 온 교회가 기념토록 하였다.
천사의 본성에 대한 신학적 견해는 천사가 하느님으로부터 이성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아 하느님을 보좌하고 인간을 위해 수고와 도움을 주도록 창조된 순수 영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천사들의 숫자는 대략 세상에 사는 인간의 수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다니 7,10; 묵시 5,11) 수많은 천사들이 다 같지 않고 서로 다르며, 그 가운데 등급이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토마스 아퀴나스) 실제로 천사들 사이에 계급이 있다는 것은 성서에 언급된 상이한 명칭들에서 드러난다.
케룹(Kerub, Kerubim; 창세 3,24; 탈출 25, 18-19 등 71번), 사랍(Seraf, Serafim; 이사 6,2.6), 천사(창세 19,1; 묵시 5,2 등 321번), 대천사(1테살 4,16; 유다 1,9), 권세의 천신과 능력의 천신(로마 8,38),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천신(콜로 1,16),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천신(에페 1,21), 커룹 천신(히브 9,5) 외에도 이름으로 명명된 미카엘(다니 10,13; 10,21; 12,1; 유다 1,9; 묵시 12,7), 가브리엘(다니 8,16; 루카 1,11.19.26), 라파엘(토비 5,4; 6,5; 6,7) 등이 그것이다.
이를 근거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스(200-265년경)는 구품(九品)의 천사들을 3등급으로 나눈 천사계급을 상상하였다
소개하자면
1등급에 세라핌, 케루빔, 좌품천사가 속하고
2등급에 권품천사, 능품천사, 역품천사가
3등급에 주품천사, 대천사, 천사들이 속한다는 것이다.
천사들이 부여받은 이성은 인간의 것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고도의 인지능력을 구사하며 사물의 본성을 직관하여 통찰한다. 그들의 자유의지 또한 인간의 것보다 틀림없이 뛰어난 것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에서와 마찬가지로, 또는 인간에서보다 오용될 가능성이 높다. 성서에 등장하는 악마와 나쁜 영신들은 첫 인간(아담)의 경우와 같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오용하여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의 죄를 저지름으로써 타락한 천사들이다.(이사 14,12; 2베드 2,4; 제4차 라테란공의회)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예수회 신학자 프란츠 수아레즈(1548-1617)는 하느님께서 천사들로 하여금 사람이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과 똑같은 흠숭으로 섬기라고 했을 때 자신들의 교만함으로 이를 거부한 천사들의 무리가 사탄과 악령들이 되었다고 추론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해주신 것도 모자라 모든 인간에게 각자의 수호천사를 붙여주셨다.
수호천사들은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다.(히브 1,14) 천사들은 하느님의 파견명령을 절대적인 겸손과 순명으로 보필하면서, 그들이 섬겨야할 인간을 보호하고 지켜준다.
수호천사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인간들을
① 위험과 화로부터 보호하며,
② 악마의 해로부터 지켜주며,
③ 선한 생각과 관심을 불어넣어 주며,
④ 사람을 위해 스스로 기도하고,
➄ 사람의 기도를 하느님 대전에 올려준다.
따라서 이런 수호천사와 함께 사는 어떤 사람도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 18,10)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수호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모든 신자들은 이런 점들을 다시 한 번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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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혼자서 울고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되자 소리를 내서 웁니다. 이 모습을 본 후배가 말합니다.
“언니, 그거 되게 이기적인 거예요. 언니가 도와달라고 해야, 나도 도와달라고 할 때 마음이 편하죠.”
이 상황은 어느 책에서 읽은 부분인데, 큰 공감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사람, 무조건 주기만 하는 사람은 당연히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남들에게 도움받는 것을 힘들어하고 어색해했습니다. 그에 반해서 베푸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이 이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아주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만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서 상대방을 만나야 했습니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우리를 선으로 이끌며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천사인 수호천사를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날인 것입니다. 이 수호천사가 무조건 다 해주면 과연 행복할까요? 주고받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천사는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일 뿐입니다. 그래야 그분께서 주시는 선물들을 기쁘게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이 모습이 오늘 복음에 나오듯, 어린이처럼 사는 삶입니다. 순수한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님께서는 강조하십니다.
어린이는 자신이 부족한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도와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줍니까? 재롱도 부리고 예쁘고 애교 넘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큰 기쁨을 줍니다. 이렇게 순수한 어린이가 되어야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런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순수함을 나약함의 모습으로 생각하면서, 대신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높은 곳에 오를 생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보기에 좋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어떠실까요? 수호천사의 도움을 청해보십시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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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의 말. 그러나 둘 다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오히려 걱정거리가 많아져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차라리 아무것도 몰라야 마음이 편하고 좋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속담이 맞는 것 같지만, ‘아는 게 힘이다.’라는 정반대의 속담도 있습니다. 과연 어떤 속담이 맞는 것일까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도 기억납니다. 그만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반대의 속담인 ‘쇠뿔도 단김에 빼라’도 있습니다. 정반대의 뜻으로 대치되는 속담입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하는 답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면 어떨까요? 남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답만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여러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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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하느님 사랑과 지혜의 신비>
-기도와 회개, 경청과 환대-
“대천사 축일에 천사들을 통해 하느님이 살려 주셨구나!”
“형제들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이 살려 주셨구나!”
어제 전화 통화로 사고 당시 택시 운전사로부터 상세히 사고 경위를 설명 듣고 저절로 흘러나온 고백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의 이런 사고라면 십중팔구 중상重傷아니면 즉사卽死라는 것입니다. 택시 운전사도 ‘기적’이라 누차 강조했습니다. 하느님은 사고후 즉시 ‘내일 강론 걱정’을 한 저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당시 저는 이런 급박한 상황중에도 차내에서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마음도 몸도 참 평온, 편안했고 머리 상처도 뒤 늦게 발견했기에 전혀 깨닫지 못했다가 어제 통화후 비로소 처음 크게 놀라 몸과 마음이 떨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수도형제는 “천사가 품에 꼭 안아 주신 것입니다.” 라 말했는데 그때의 심경에 꼭 맞는 말입니다. 걱정하는 분께 보낸 가톡 메시지입니다.
“하느님 기적 은총으로 살아났고 기적처럼 상처도 경미하고 기적처럼 후유증도 없으니 감사할뿐입니다.”
하여 처음에는 머리 상처부분의 커다란 흰 반창고가 ‘깨어있음의, 회개의 표지’처럼 생각됐는데 어제부터는 하느님 살려 주신 ‘감사의 표지’처럼 너무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대해 새삼 깊이 공부하고 배우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여 오늘 욥기 말씀도 화답송 시편 말씀도 참으로 실감있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삶은 기적奇蹟이요 모두가 은총恩寵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신비神祕입니다. 정말 신비를 깨달아 알수록 침묵할 수뿐이, 겸손할 수뿐이, 기도할 수뿐이 없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신비로운 일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아무리 안다해도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은 끝이 없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은 극히 미미한 수준일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 가득찬 모르는 세상일 뿐입니다. 하여 주님의 반격과 추궁에 욥의 침묵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손을 제 입에 갖다 댈 뿐입니다. 한 번 말씀드렸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 말씀드렸으니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욥에게는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던 환경과 참으로 많은 것들이 세상에 널려 있음을 압니다. 이렇게 발명의 세기, 첨단 문명의 시대에 발견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대부분 신비로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지혜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또 진행되는 많은 일들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평화를 주는 우리의 유일한 응답은 하느님 신뢰의 끈을 꼭 잡는 것입니다. 진리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연민의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을 말입니다. 비록 무질서와 혼돈, 폭력의 세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상은 ‘진리Truth’와 ‘사랑Love’과 ‘아름다움Beauty’으로 관통되어 있습니다. 홉킨스 시인의 고백도 위로가 됩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위대함으로 가득하다. 세상 저변의 것들에는 늘 가장 깊은 새로움이 살아있다.”
욥은 이런 깊은 깨달음을 통해 신비가가 되어 갑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의 시인 역시 신비가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지혜로운 신비를 깨달아 알아 갈수록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화답송 시편 139장은 매 4주간 수요일 저녁기도시 노래할 때 마다 늘 공감하며 감동하는 시편이기도 합니다.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을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시편139,1-4)
시편 일부만 소개했지만 139장 1-24절 까지 전장이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혜로 가득한 내용들입니다. 시간되면 꼭 찾아 읽어 보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교통사고후 위 화답송 시편은 더욱 깊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신비가로 말하면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 마음에 정통한 대 신비가입니다. 신비가 예수님의 오늘 복음에서의 구체적 처방은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기도와 회개뿐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했을 것이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결국 삶의 기적은 회개의 표징이자 동시에 감사의 표징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고을을 향한 예언자적 탄식이 가슴을 칩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탄식이며 마지막 호소입니다. 그대로 오늘 현대인들에게 주는 회개의 호소일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가 우리 영성생활에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삶에 하느님 섭리가 개입되지 않은 우연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허락없이 이뤄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 후반부도 의미심장합니다. 당대의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의 주님을 믿는 자들 하나하나가 예수님은 물론 하느님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잘 경청하고 환대해야 할 이웃 형제들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형제들에 대한 경청과 환대는 바로 주님께 대한 경청과 환대에 직결됨을 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혜에 대한 우리의 당연한 응답은 기도와 회개, 경청과 환대임을 깨닫습니다.
삶은 기적이자 은총이자 신비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기도와 회개, 경청과 환대가 일상화日常化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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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알타반의 말씀 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천사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쭙니다. 질문에는 묻는 이의 관심사가 들어 있기 마련이지요. "큰 사람". 제자들의 로망이고 욕망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제 곧 제자들은 예수님의 답을 통해 지상의 나라에서의 "큰 사람" 개념과 하늘 나라의 "큰 사람" 개념이 다르다는 걸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과 대조되는 "작은 이"를 보여 주십니다. 게다가 어린이처럼 작아지지 않고서는, 하늘 나라의 큰 사람을 꿈꾸기는커녕 그곳에 들어가지도 못하리라고 단호히 언급하시지요.
어린이처럼 작아지는 길은 "회개"입니다. 높고 강하고 큰 것을 추구하던 방향성을 되돌려, 낮고 약하고 작은 것에 눈길을 주고 다가가 하나가 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엽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사람은 누군가를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뿐 아니라 어떤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초라하고 나약하고 비천해 보여도 하느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생각과 마음을 담고 있고, 하느님 계획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람들이 작은 것 안에서 거대한 우주를 볼 수 있기를, 작은 이들 안에서 하느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럴 수 있다면 모든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존중은 절로 일어나지요. 제자들이 하늘 나라의 큰 사람 되기를 꿈꾸기 전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작음을 향해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들이 더, 더, 더 작은 것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하고 속삭이시는 듯합니다.
제1독서의 대목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시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탈출 23,21)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 현존, 하느님 권능, 하느님 영광의 다른 표현입니다. 주님께서 천사에게 당신 이름을 맡기신 것은, 그 천사의 명예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함이지요.
주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의 천사를 존중하고, 거역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천사는 보내신 분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고 실행하는 존재니까요. 천사를 신격화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에 하느님 뜻이, 그의 행동에 하느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천사들이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께 우리의 사정을 아룁니다.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 못해도 우리 주변에서 우리와 동행하며 보호하지요. 구약의 인물들이나 마리아처럼 직접 천사를 대면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을 통해 천사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천사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으려면 시선은 작고 낮은 곳으로, 마음은 약하고 고통 받는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회개"인 것이지요. 이 시선과 이 마음을 지닌 이에게 천사는 도처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줄 것입니다. 천사의 몸짓은 아주 고요하고 섬세해서 크고 강하고 높은 것을 좇는 시력에는 포착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우리를 떠받치고 보호해왔는지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지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서 홀로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천사가 있습니다. 한 사건이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원인과 결과들의 고리를 거쳐 우리 앞에서 폭발하기까지, 우리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천사들의 피땀과 눈물이 격한 충격을 흡수하고 방향을 틀어 우리를 보호해 왔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지요.
우리도 누군가의 천사일 수 있습니다. 바람결에 실어 보낸 따뜻한 안부와 기도가 이 세상 누군가에게 밥이 되고 위로가 되고 살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실천하는 모든 사랑의 몸짓이 곧 천사의 몸짓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천사가 되고 싶습니까? 살아서도 천사가 되는 길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이에게 또 모르는 이에게 기도 천사, 격려 천사, 위로 천사, 나눔 천사, 기쁨 천사, 감사 천사, 미소 천사, 안부 천사... 여러분 자신이 이미 누군가에게 작은 천사였다는 사실이 보이시지요? 여러분은 세상 눈에는 가려져 있지만, 작은 것을 보시는 주님 눈에는 선명히 감지되는 숨은 천사입니다. 이 세상 어둠과 고통 속에서 이렇듯 천사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천사 되시길 축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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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홍언 요한보스코 신부님]
♡김홍언 신부님의 영성의 샘물♡
♥지금 자신이 발붙인 곳에서 행복하기 위한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두 번째는, 모든 일에는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벌을 키우다 보면 벌에 쏘이는 날도 있는 법이지요. 우리 인생의 목표가 오직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우리는 심리적 빈곤을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걱정과 불안을 없애달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어떤 일을 통해 내게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에 마음을 기울이는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역시 허공을 걷는 느낌으로 비몽사몽 상태로, 몽유병 환자처럼 살았고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한심하고 별 볼 일 없는 자신이 싫으니, 행복하기는커녕 늘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주님께서 부르셔서 깎고 또 깎으셔서 사람 만들고자 하셔서, 한참이 지나서야 그런 은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마음의 문을 열고 과감히 사람들을 향해 걸어 나가십시오. 그러면 먼 곳이 아닌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참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나는 생가보다 괜찮은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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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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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양주분회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하느님께서는 ‘작은이들’ 하나라도 그지없이 존귀하게 여기신지라 그들의 수호천사들을 두어 당신과 함께 있도록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곧 천사들이 존귀한 존재인 것이라기보다 천사들을 붙여 보호해야 할 만큼 인간이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의 신자들이 서로 송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1코린 6,2-3)
이토록 인간은 존귀합니다. 그렇습니다. 천사들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천사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이는 <시편> 8편을 떠올려줍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주십니까? 신
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 8.5-6)
그렇습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이 천사에게 씌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에게 씌워진 것입니다. 하느님 되는 영광과 존귀의 관이 말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지없이 존엄합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이 존귀함을 잘 보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귀함도 잘 보호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존귀함은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에서 오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일입니다.
이토록, 인간의 존귀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간의 존엄을 평가하거나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인간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존귀한 존재로 존중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를 지켜나가야 할 사명도 부여받고 있음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혹 우리의 관심이 ‘큰 사람’에게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볼 줄 아는 눈입니다. 곧 우리가 큰 사람이냐 작은 사람이냐가 아니라, 하느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내 형제가 나에게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또 내가 내 형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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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
주님!
작은이들을 업신여기다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그들 안에서 살아계시는 당신을 무시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 안에서 사랑을 요청하는 당신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 안에서 빛나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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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하여라."(마태18,10)
'나의 수호천사께 감사드리고, 너의 수호천사가 됩시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에서 보호하는 천사'입니다. 그리고 교회 전승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천사를 정해 주시어 그를 지키고 도와주게 하십니다.(매일미사 참조)
지금까지 저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고, 경운기 사고 등등 죽을 고비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또 기쁘게 사제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겠다."(탈출기23,20)
탈출기의 이 말씀처럼 주님께서 정해주신 저의 수호천사께서 저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수호천사님! 감사드립니다."
이젠 나도 너의 수호천사 되어야 합니다. 너를 선으로 이끌고, 너를 악에서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의 현실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5,8)
그러니 우리는 서로서로를 기억하면서 서로서로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나의 수호천사께 감사를 드리고, 나도 너의 수호천사 되어 줄 것을 다짐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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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소보둥지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ib4N0qH2hTU&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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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 10)
허락한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수호천사가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기쁜 사람이
되게 한다.
올바른
선택으로
빛나는 모든
순간순간이
되게 한다.
우리의 입과
귀를 열어 주며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을
따르게 한다.
우리와
함께하는
일상의
수호천사이다.
저마다의
수호천사는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이다.
다양한 날씨처럼
삶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며
우리와 함께한다.
안쓰러워 하시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다.
힘겨운 일상을
함께 견디는
수호천사이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의
일상 안에
하느님의
수호천사가
있다.
삶의 고귀함과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수호천사는
오늘도 우리의
왼편 오른편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
수호천사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느님의
가장 구체적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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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이름,본명,지역(본당),축일,연령,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010-3284-9295 | 카톡ID jijiv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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