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외 1편
김미량
콜롬비아 어느 시골 마을에서
호기심 많은 바나나
떼를 지어 바다로 들어갔다는
거품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동시에 정말? 이라는 말로
꼬리를 잡았다 놓아버린
처음 물 만났을 때 신이 났겠지
아가미가 생기기 전의 일이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흘러나온 이야기인지
나나도 모르고
나도 알다가도 모르는 일
바나나 공화국은 그 이후에 멸망했을까
나는 남미로 떠난 적 없고
남미는 나를 부른 적 없다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
심장에 박히면
그제야,
나는요 진짜 바나나 파도 파도 바나나
그 바다에서 혼잣말은 얼마나 깊어졌을까
살점 다 뜯겨나간
창백한 바나나 떼
바닷속으로 전부 가라앉았다는 슬픈 결말
어떡해
일찍 깨진 우리처럼 가엽고 아까워라
바나나 껍질 수북하게 뒹구는
미끄러운 바닷가
당신 등 뒤에서 물러터진 과일처럼 보였나 봐
오후에 발견한 사람이 먼저 찌른다
나는요 진짜 사람 꼬집어도 울지 않는 사람
바나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는 서늘한 나의 여름 이야기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몸살처럼
물속에는 물살이 다정하게 붙어있다
몸살은 뜨겁고
바나나우유는 차갑다는 문장을 바꿔볼까 해
해가 저물기 전에 냉장고에서 꺼낸
멈추지 않는 물속의 혼잣말
꿈이 흐려서
램프를 켜 놓고 잠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램프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는 서로 깜짝 놀란다
불을 켜고 마주 앉아 먼저 말을 꺼낸다
꿈속은 여름이었고
꿈같은 여름이었고
예쁜 버섯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축축해서
장화를 버렸는데
두고 온 것은 장화뿐인데
눈이 퉁퉁 부었다 나는 어디를 다녀왔을까
버릴 게 많은데
미처 버리지 못한 것들은
귀가 되고
귀고리가 되어 걸리고
머리핀이 되고
커다란 모자가 되어 나를 장식한다
당신은 겨울에 떠난 사람
당신의 무덤은 당신 것
내게 떠민 미처 지우지 못한 기억까지도
살아서 지켜야 하는 나도
엎드려 울고 있는 무덤이다
곁에 당신이 있다고 치자
손이 나타나 가만히 덮어주는 이불
그래, 가만히 덮고 늙어가는 마음
꾸짖는 당신을 놓친
꿈이 흐려서 비가 내린다
김미량
1970년 대전 출생. 2009년 시인시각 등단.
시집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