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목요일 2009. 3. 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온 모세이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 5,31-47)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증언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이러한 증언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요한 세례자가 이미 증언하였고,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미 증언해 주셨지만,
유다인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하지만,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주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지 못하는 것
역시 믿음이 없는 결과라고 한탄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강론과 강의 그리고 성경 공부와 피정 등을 통하여
주님에 관하여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있어도,
주님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님은 우리의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한
주님에 관한 정보일 수 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만나 보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주인
-허찬란 신부-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모세와 성경에 기록된 당신에 관한 증언을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메시아를 안다고 하느냐며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제대로 믿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더 나아가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대해서 묵상해보았습니다. 초등학교 교리 시간에 배웠던
성경 공부, 고등학교 때 나눴던 성경 모임, 신학교에 갓 입학하여 배웠던
구약입문 시간은 성경 그 자체를 읽고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도록 했고, 나와 더불어 다른 이들의 말을 통해
그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느끼며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성경 주석을 하면서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려는 숱한 위기를 맛보았습니다.
강론대에서도 복음과 예수님을 선포하는 대신 성경의 정황을 조금 안다는
미명 아래 세상 이야기로 도배를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머리로
알아듣는 지식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과 믿음으로 읽고 쓰고 묵상하고,
느낀 바를 나누며,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려는 소망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