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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의 화해 책략
삼하 14:1-11
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2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3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4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5 왕이 그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라 대답하되 나는 진정으로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6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죽인지라
7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8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9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
10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
11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삼하 14:1-11 /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는 요압] 압살롬이 그술 왕 달매에게로 도주하여 3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자 다윗은 그 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요압 장군은 왕의 마음이 이렇게 변하자 그것을 눈치 채고 좋은 묘책을 꾸며 냈다. 다윗은 죽은 사람에 대하여 어쨌든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단념이 빨랐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9킬로미터쯤 떨어진 언덕 위의 마을에는 슬기로운 여인이 한사람 살았는데, 요압은 그녀를 데려다가 이렇게 시켰다. `그대는 가족이 죽어서 슬퍼하는 여인처럼 몸에 상복을 입고, 얼굴에 화장도 하지 말고, 머리에 기름도 바르지 말고, 이미 오랫동안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수척해진 여인처럼 꾸미시오. 3) 그런 다음에 임금님을 찾아가서 내가 이제 시키는 대로 그대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시오.' 그리고 그는 그 여인이 왕을 찾아가서 해야할 일과 말을 가르쳐 주었다. 4) 드고아 여인이 왕을 찾아가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을 한 다음 이렇게 호소하였다. `임금님, 이 불쌍한 여인의 한을 풀어 주세요' 5) 왕이 `무슨 일로 그렇게 괴로워 하시오.?' 라고 묻자 그 여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불쌍한 과부 신세입니다. 남편은 이미 소시적에 죽었습니다. 6) 그래도 자식이 둘이 있어서 그 애들을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그 애들이 자라서는 어느 날 들녘에 나갔다가 서로 몹시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들녘에는 그들의 싸움을 말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한 자식이 다른 자식을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7) 그런데 이제는 친척들이 모두 일어나 형제를 죽인 놈을 내놓으라고 이 계집종을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 자기 형을 쳐죽였기 때문에 친척들은 이제 그 원수를 갚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제 신세는 생각해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게는 아들도 없고, 상속자도 없어집니다. 그들은 오직 이 과부 신세의 계집종에게서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꽃마저 꺼 버릴 작정들입니다. 그러면 제 남편의 이름을 계승할 자식도 없어지고, 제 남편 집안의 대를 이을 남자도 남지 않는 불쌍한 과부의 신세가 되지 않겠습니까?' 8) 왕의 마음은 벌써 감동되어 통쾌한 대답을 하였다. `내가 그대를 도와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9) 그러나 드고아 여인이 좀더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하였다. `임금님께서 그렇게 도와주셔도 이 계집종에게 죄를 씌우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 허물을 저와 제 아들에게 돌리고, `왕과 왕위는 이 문제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10) 왕이 또 잘라서 대답하였다. `그런 식으로 그대를 계속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내게로 데려오시오. 그러면 그가 다시는 그대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것이오' 11) 그러나 여인은 또 이렇게 간청하였다. `지금 약속해 주신 것은 살인자의 피를 다시 흘리지 못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니,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제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다윗이 맹세하였다. `살아 계시는 여호와 앞에 내가 맹세하지만 그대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게 할 사람이 없을 것이오'
요압은 압살롬을 다시 왕궁으로 불러들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1) 암논이 죽은지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진노가 진정되고 압살롬을 그리워합니다(삼하 13:39). 이 사실을 안 요압은 두 사람의 관계를 화해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다윗이 범죄하고 도피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하나님의 공의를 앞서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실수는 회개한 증거가 확실치 않은 자식을 자연적 애정에 끌려 친근히 대하고 죄의 문제를 묵인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자식을 용납하면 할수록 그만큼 자식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고 범죄할 기회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어떤 때에는 온화하지만 엄격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히 12:6).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2-3) 요압은 자신이 직접 이 일을 해결하지 않고 자신을 대신할 지혜로운 여인을 드고아에서 데려옵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유대 산지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요압은 이 여인의 명성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을 설득하기 위한 연극은 목숨을 걸고 할 만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압의 설득으로 계획대로 진행됩니다.
왕이여 도우소서(4-11) 다윗을 만난 여인은 다윗을 감동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몇 가지 점을 강조합니다. 첫째, 자신을 진정한 과부라고 소개하면서 지금 자신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다윗의 긍휼의 마음을 자극합니다(5). 둘째, 만일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죽게 된다면 자신은 후손도 끊어지고 재산도 잃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내세웁니다. 셋째, 실제로 이 살인 사건에는 증인이 없기에(6) 자신의 아들이 반드시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넷째, 여인은 자기가 모든 판결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니 왕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남은 아들이 살 수 있게 판결해 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이 연극을 통해서 여인은 법의 정의 실현이 아니라 그녀의 절박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이 여인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여인을 돕겠다는 약속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다윗을 설득해 나가는 모습은 드고아의 여인이 왜 지혜로운 여인인지 알게 해 줍니다. 결국 다윗은 여인의 의도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판단은 너무 성급한 것이었고, 불쌍한 여자를 동정하면서 진리와 공의를 자세히 분별하지 못한 실패한 판결이 되었습니다.
적 용 : 감정에 치우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 경우는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감정을 자극하는 일에 휩쓸리지 않고 거짓에 속아 넘어지지 않기 위해 말씀으로 무장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다른 이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였다고 지식이 있고 지혜롭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그것들로 지혜롭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잘 분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취해야 하는 행동이나 올바른 모습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이 보시기에 인정받을 만한 도리와 이치를 지키고 있나요?
호크마 주석
=====14:1
요압이...향하는 줄 알고 - 여기에서 '향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전치사는 '알'(* )이다. 그런데 이것이 본절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에 대하여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둘로 나뉘어 있다. (1) 혹자는 이 전치사 '알'(* )을 '대적하여'(against)란 뜻으로 이해 항다. 그리하여 요압은 이 상황에서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적개심(敵愾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하였다(Keil,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 해석은 지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법상으로는 '알'(* )의 '대적하여' 또는 '싫어하여'란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이러한 해석은 본 문맥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해석은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분노가 이미 누그러져 있었다고 언급한 13:39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2) 전치사 '알'(* )을 '...에게로 향하는'으로 이해하여, 이는 다윗 왕의 자연스러운 부성애를 요압이 발견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Lange). 이 해석은 전후 문맥과 잘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알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 )는 새로운 사실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기 때문에, 이 동사 또한 새로운 상황의 변화를 제시하는 본 해석을 지지해 준다. 따라서 본절은, 이제 암논 살해 사건 후 3년이 지나자(13:23-39) 다윗이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압살롬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는 것을 요압이 눈치챘다는 의미라 하겠다(Matthew Henry).
=====14:2
드고아 - 드고아(Tekoah)는 예루살렘 남쪽 16km, 베들레헴 남족 8km 지점에 있는 고지대이다. 이곳은 선지자 아모스의 고향이자(암 1:1), 르호보암의 산성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대하 11:6).
슬기 있는 여인 - 이는 생활의 지혜가 있고 민첩하며 재치잇는 여인을 의미한다. 한편, 이 여인의 거주지인 드고아는 요압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부터 약 2시간 거리였으므로, 아마도 요압은 일찍부터 이 여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Pulipt Commentary, Wycliffe Bible Commentary).
상복을 입고 - 여인의 아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기 위한 분장(扮裝)이다(6절).
=====14:3
할 말을 그입에 넣어주니라 - 요압이 이처럼 압살롬의 사면(赦免)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압살롬이 차기의 왕이 되리라고 믿고 이 시점에서 그의 환심을 얻어 자기의 권력을 확고히 해두기 위함이었다(Leon Wood, Hertzberg). 이런 점에서도 요압은 자기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였음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3:27 ; 11:16). 만일 요압이 다윗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이 있었다면 드고아 여인을 쓰는 대신 나단 선지자에게 이번 일을 부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그리하지 아니하고 그릇된 욕심과 스스로해 낸 인간적 계책으로 이번 일을 도모하였으니, 그 결과 도리어 압살롬의 반란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15장).
=====14:4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 이는 곧 완전한 겸손과 헌신을 나타내는 히브리인들의 인사법이다(창 50:18 ; 왕하 4:37 ; 대하 20:18). 특히 여기서 드고아 여인이 다윗에게 이처럼 인사한 것은 왕께 대한 존경과 충성, 완전한 복종을 표시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1:2 ; 9:6).
=====14:5
나는 참 과부니이다 - 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인의 거짓말이다. 즉 히브리 사회에서 과부는 고아와 더불어 특별한 동정과 보호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 여인은 다윗의 동정심을 유발시키기 위해 과부로 가장한 것이다(신 14:29 ; 시 10:14 ; 68:5 ; 146:9 ; 사 1:17 ; 10:2 ; 욥 31:16, 18).
=====14:6
저가 이를 쳐죽인지라 - 여기에서 여인이 설명한 자기 아들의 죽음과 암논의 죽음(13:29)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전자의 죽음은 쌍방간의 싸움에서 일어난 과실 치사(過失致死)이나 후자의 죽음은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몰래 계획한 모살(謀殺)이었던 것이다(13:23-29). 그러나 이 여인은 이러한 질적인 차이는 덮어두고 사건의 결과만을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이는 분명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죄악성을 교묘히 경감시키려는 의도임에 틀림없다. 즉 드고아 여인은 다윗의 동정심을 유발시키기 위해 살해자에게 이롭도록 상황 설명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14:7
그 동생 죽인 죄를 갚아 저를 죽여 - 형제끼리 서로 싸우다가 형이 동생을 쳐죽인 것은 물론 처음부터 계획된 살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동기에 잇어서 이는 이미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수반된 분명한 살인이다. 따라서 동생을 살해한 형을 죽이겠다는 군중들의 주장은 율법의 규례에 따른 합당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민 35:16-19).
사자 - 이에 해당하는 '야라쉬'(* )는 '상속하다', '차지하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씨'(seed)와 같은 뜻이다. 따라서 다른 말로는 '후사'(後嗣)로도 번역할 수 있다.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 여기서 숯불이란 가문(家門)을 이을 남은 아들을 비유한 말이다. 히브리 사회에서 대가 끊어진다는 것은, 그 가문에 속한 기업(基業)을 상실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무서운 불행으로 간주되었다(마 21:38). 따라서 이러한 불행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나약한 감정을 움직이고도 남을만 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드고아 여인이 다윗의 나약한 감정에 호소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의와 진리의 율법을 주목하지 못하도록 본(本) 비유를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비유의 사용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재발견하도록 비유를 사용했던 나단 선지자의 경우와는 아주 대조적이다(12:1-4).
=====14:8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 이는 다윗 왕이 드고아 여인의 호소를 다 받아들여 그 남은 아들이 죽지 않도록 선처하겠다는 대답이다. 아마도 다윗은 드고아 여인의 큰 아들이 동생을 죽인 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살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상(情狀)을 참작, 동정을 베풀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6절 ; 민 35:22-28).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사견(私見)이 압살롬에 대하여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압살롬은 암논을 고의적으로 살해했기 때문이다(13:22-29).
=====14:9
그 죄는 나와 내 아비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 여기서 '그죄'란 형제를 살해한 아들(6절)을 벌하지 아니한 죄, 곧 율법의 규정(민 35:16-19)대로 심판하지 아니한 죄를 의미한다. 즉 드고아 여인은 다윗이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아들을 선처(善處) 주겠다고 하자(8절), 행여라도 그로 인해 발생할 불상사는 다윗이 아닌 마땅히 자신과 자신의 집안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애기하고 있는 것이다(공동번역). 따라서 본절은 다시금 "이 살인죄를 벌하지 않은데 대한 잘못은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만 있습니다"라고 의역할 수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408). 그런데 드고아 여인이 이같은 말을 한 진정한 목적은 분명 압살롬의 범죄의 근원적 책임이 그 부모 곧 다윗에게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려는 데 있을 것이다.
=====14:10
네게 말하는 자를...데려오라 - 이번 일로 인하여 드고아 여인을 기소(起訴)하려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해를 가하려는 자가 잇으면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 자신에게로 데려오라는 뜻이다(Wycliffe). 즉 지금 다윗은 국태 민안(國泰民安)에 힘쓸 최고 통치자로서 어려움에 처한 과부를 기꺼이 보호해 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
=====14:11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생각하사...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 다윗 왕과의 대화에서 세번째로 드고아 여인을 말하는 장면이다(4-7, 9절). 여기서 이 여인은 다시금 다윗 왕의 공정한 판단력을 흐트리고 그감정에 호소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즉, 드고아 여인은 여기서 하나님의 두 속성인 공의와 사랑 중 공의는 무시하고 사랑만을 강조함으로써 다윗으로 하여금 압살롬 문제에 있어서 공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
원수 갚는 자 - 히브리어로는 '고엘 하담'(* )으로, 그 뜻은 '피의 보복자'(avenger of blood)이다. 민 35:19에서는 '피를 보수하는 자'로 번역되었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을 가리킨다. 율법에 의하면 이들은 억울하게 죽임당한 친척을 위해 반드시 복수할 의무를 지니도록 되어 있다. 민 35:12 주석 참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11:11 주석 참조.
머리카락 하나라도...아니하리라 -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맹세는 하나님의 자비만을 생각하고 공의를 무시한 잘못된 맹세였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드고아 여인과 군중들(7절)의 입장을 다 들어보고 공정하게 판결을 냐려야 할 재판장인데도 오직 한 쪽 편의 말만을 듣고 섣불리 맹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편벽되기 쉬운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의 맹세는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경솔한 맹세 였다고 할 수 있다. 민 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참조.
< 설 교 >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삼하 14:1-11 / 김두옥목사
◑◑◑ 본문 이해와 요약 ◑◑◑
◗ 14장에서는 다윗의 장자이었던 암논이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에게 살해되었습니다.
- 본장에는 이복형이요, 왕세자 암논을 살해하고 압살롬은 외갓집 그술로 도피해 있던 그가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고자 하는 요압의 처신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 그래서 드고아 여인은 다윗에게 논리 정연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여 형제를 죽인 범죄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게끔 유도하였던 것입니다.
- 다윗은 드고아 과부인 이 여인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의분을 갖게 되었으며, 아무 생각 없이 이 여인을 도와주겠다는 맹세를 하게 되었는데, 다윗의 맹세는 그 여인에게는 승리요, 다윗 자신에게는 또다시 실수를 저지른 꼴이 되었습니다.
-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케 하여 다윗으로부터 아들의 안전을 확약 받은 여인은 이제 그가 찾아온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 여인은 겸손히 탄원하던 태도를 바꾸어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처사를 대담하게 책망합니다.
- 그러나 그녀는 점진적으로 그 의미를 자신의 상황과 결부시키는 방법을 씁니다.
-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들을 잃어버린 과부이며, 다윗은 비록 범죄 하였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그녀로부터 빼앗아 가고자 하는 엄격한 족속과 같다고 진술합니다.
- 그리고 압살롬의 손에 암논은 죽었지만, 언젠가는 죽을 자가 죽은 것이며, 이제 압살롬을 죽인다고 해도 죽은 암논을 다시 살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요압의 의도대로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사건은 후일 다윗에게 크나큰 고난을 초래하는 반역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 다윗은 개인적 약점이 있다 보니 압살롬에게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책임한 방치나 소극적인 태도는 자식의 앞날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의 가정의 성도들은 가정에 자녀에게 부모를 두려워할 줄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 요압은 다윗왕의 셋째 아들 압살롬을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를 보고 싶어 하는 왕의 마음을 헤아려 압살롬을 사면할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그의 계획대로 되어 압살롬과 다윗 왕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범죄한 자를 살려 두고 여전히 자기 악 속에 있는 압살롬을 사면한 다윗 왕의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다윗은 압살롬을 궁으로 불러들였지만 그를 보기를 거부했습니다.
- 다윗은 이처럼 엄히 징계해야 할 때에는 침묵하고, 관대하게 용서해야 할 때에는 가혹한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 그는 요압의 술수에 의해 압살롬을 불러들였으나 아직 회개가 없는 그를 화해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후에 압살롬으로 하여금 반역을 꾀하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 다윗이 압살롬을 사면한 것은 후일 그의 가정과 나라에 엄청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 우리는 다윗의 이 같은 결정을 통해 죄에 대해서는 자녀일지라도 단호하고 냉철한 판단과 결정을 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행복의 왕도는 말씀 순종이다. (사무엘하14장11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모든 사람이 행복을 원하는데 행복의 왕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뿐입니다.
- 11절을 살펴보면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다윗은 특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 하리라.”고 여인에게 동정을 베푸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이는 다윗이 드고아 여인의 호소를 듣고 그 여인의 아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약속의 의미로 한 말입니다.
- 다윗은 자신의 약속이 확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 을 두고 맹세까지 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 없이 성급하게 맹세한 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 다윗은 21절에서 자신의 맹세로 인한 올무에 걸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킬 수밖에 없었고, 더 나아가 15장30절에서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예루살렘을 황급히 빠져나가야만 하는 위기를 맞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 여기서 과연 문제는 어디에 있었고, 다윗이 실수한 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 율법은 판결을 내릴 때에는 자세히 사실을 확인하여 보고 신중하게 판결을 내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17장 4절에서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라고 하였습니다.
- 출애굽기20장7절에서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1장3절에서 아랫사람을 시켜 자세히 알아보는 수고까지 하면서 밧세바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 그러던 다윗이 이번에는 자세히 사실을 살핀 후에 판결을 해야 하는 재판 사건에 있어서는 그 모든 절차를 확인도 없이 생략한 채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그러한 어려움이 닥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내도 이상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재앙을 피하고 복을 얻는 길은 참으로 쉬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지 않고 하라고 말씀하신 일은 그대로 실천하면 쉬운 것입니다.
- 다시 말하면 행복이란 무슨 굉장한 도를 깨닫고 어려운 고행의 길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것, 그래서 어찌 보면 가장 평범해 보이는 곳에 그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 여호수아1장 8절에서 “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흔히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고 말함 같이 즉 학문을 성취하는 데에는 꾸준히 성실하게 정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빠른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믿는지?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약속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내는데 행복이 있습니다.
- 마찬가지로 행복을 얻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길에도 별 다른 왕도가 없기에 그 왕도를 찾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따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 야고보서1장 25절에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세상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화를 피하고 복을 얻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점을 치고 굿을 하는 등 온갖 허무한 일에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 시편119편1-2절에서 “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피하고 행복을 구하는 길을 그렇게 요란스러운 곳에 두시지 않았습니다.
- 단지 신명기30장15-20절에서 특히 “내가 너희 앞에 생명과 사망의 길을 두었으니 말씀을 따르는 자는 형통하고 복을 얻을 것이요 이를 거역하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믿음은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가고 서며, 안고 일어서는 훈련으로 하나님과 가까이 밀착하면, 항상 형통하며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사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충신 요압
삼하 14:1-11 / by skd1
왕의 마음을 읽는 지혜, 충신 요압의 한 수! (삼하 14:1-11) ✨
다윗 왕조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때로는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인물, 요압. 그의 삶은 다윗 왕을 향한 불같은 충성심과 뛰어난 전략가로서의 면모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아들 압살롬을 향한 다윗 왕의 그리움과 그로 인한 왕국의 긴장감을敏銳하게 감지하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요압의 이야기를 사무엘하 14장 1절에서 11절을 통해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충신의 자세와 문제 해결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숨겨진 눈물, 왕의 마음을 간파하다!
사랑하는 아들 암논을 잃고, 그 복수를 위해 친형을 살해한 뒤 멀리 그술 땅으로 도망간 압살롬.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윗 왕은 암논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살아있는 아들 압살롬을 향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깊이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3:39 "암논이 죽었으므로 왕의 위로를 받았더라", 사무엘하 14: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은 숨길 수 없었을 겁니다. 왕으로서의 공적인 입장과 아버지로서의 사적인 감정 사이에서 다윗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을 데려오고 싶지만, 살인이라는 죄를 지은 아들을 섣불리 용서하고 복권시키는 것은 왕국의 질서와 공의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왕의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가장 먼저, 그리고 정확하게 꿰뚫어 본 이가 바로 군사령관 요압이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깊은 한숨 속에서 아들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어쩔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갈등을 읽어냈습니다. 마치 예민한 레이더처럼 왕의 마음 깊은 곳을 감지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눈치가 빠르다는 것을 넘어, 왕을 향한 깊은 관심과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번뜩이는 아이디어! "이렇게 하면 어떨까?" 기발한 정책을 세우다!
왕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낸 요압. 그는 이제 이 꼬인 실타래를 풀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왕이 직접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령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계속 방치하기에는 왕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왕의 체면을 세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묘안'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바로 지혜로운 여인을 통해 왕에게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왕 스스로 결단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4:2 "요압이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슬기 있는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요압의 계획은 치밀했습니다. 그는 드고아 지역에서 특별히 '슬기 있는 여인'을 물색합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왕 앞에서 떨지 않고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슬픔과 간절함을 담아 연기하며 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이 여인에게 마치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서로 싸우다 한 명이 죽고, 남은 아들마저 친족들에게 죽임당할 위기에 처한 비극적인 사연을 가진 과부처럼 행동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왕의 자비와 판단을 구하도록 시나리오를 짜줍니다. (사무엘하 14:3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왕께 들어가서 여차여차히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이처럼 요압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정책(계책)을 수립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 "감독은 나, 주연은 바로 당신!" 적임자를 찾아 역할을 맡기다!
훌륭한 계획도 실행하는 사람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요압은 자신이 구상한 '드고아 여인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적합한 인물을 발탁하고, 그녀에게 정확한 디렉션을 제시하는 용인술을 발휘합니다. 그가 선택한 드고아의 여인은 정말로 슬기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압이 입에 넣어 준 말을(삼하 14:3) 그녀는 왕 앞에서 조금도 틀림없이, 마치 자신의 실제 이야기인 것처럼 실감 나게 연기해냅니다. (사무엘하 14:4-7)
여인은 왕 앞에 엎드려 도움을 간청하며, 자신의 두 아들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쳐 죽였는데, 이제 온 족속이 일어나 남은 아들마저 내놓으라고 한다며, 그렇게 되면 자기 남편의 이름과 씨가 세상에 남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이는 사실 압살롬으로 인해 대가 끊길 위기에 놓인 다윗 왕가의 상황, 그리고 압살롬을 처벌해야 한다는 공적인 요구와 그를 살리고 싶어 하는 다윗의 마음을 교묘하게 빗대어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여인의 호소는 다윗 왕의 마음에 깊은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왕은 그녀의 아들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사무엘하 14:8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요압은 이처럼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그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활용할 줄 아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는 대신, 적절한 인물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 요압의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마음을 얻고 길을 열다!
요압의 계획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드고아 여인의 지혜로운 말과 연기는 다윗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왕은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며 압살롬을 향한 자신의 진심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본문(1-11절)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이 사건은 결국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사무엘하 14: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사무엘하 14장 1절에서 11절까지 나타난 요압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리더 또는 주변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공감 능력의 중요성입니다. 요압은 왕의 말 못 할 고민을 정확히 파악했기에 올바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마음을 읽으려 노력할 때, 진정한 소통과 문제 해결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둘째, 상황에 맞는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능력입니다. 요압은 정면 돌파가 어려울 때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때로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적재적소에 사람을 활용하는 안목과 능력입니다. 요압은 드고아 여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훌륭한 리더십의 모습입니다.
물론 요압의 삶 전체를 볼 때 그에게도 어두운 면이나 과오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살펴본 이 장면에서만큼은 그의 충성심과 지혜, 그리고 결단력이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삶의 여러 관계와 문제 속에서 요압과 같이 상대의 마음을 읽고, 지혜롭게 해결책을 찾으며, 함께하는 이들의 능력을 세워주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무엘하 14:1~11
김동희 목사 / 삼하 14:1-11
1. 압살롬이 암논에게 복수를 하여 죽이자 다윗은 크게 슬퍼하고, 또 격노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이러한 다윗의 책망을 피하고자 그의 외할아버지였던 그술왕 달매에게 도망쳐 자신의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여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자 다윗 왕은 암논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던 마음도, 압살롬의 살인 때문에 분노했던 마음도 어느정도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2. 이러한 다윗의 심경의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파악한 사람은 요압이었습니다. 요압은 왕과 압살롬이 지속적으로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상황을 중재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에게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압은 모략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3. 그는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한 지혜로운 여인은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상복을 입히고, 기름을 바르지 않고 일부러 수척하게 하여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요압은 그녀에게 한 이야기를 지어 가르쳐주며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라 명령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윗의 상황을 빗대어 만든 이야기였습니다.
4. 드고아의 여인은 다윗왕을 찾아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왕이여 저를 도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들에서 싸우다 그만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슬픈일인데, 더 큰 어려움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온 집안 사람들이 다 나서서 저에게 형제를 때려죽인 아들을 내놓아라, 죽은 형제의 원수를 갚고 살인자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의 유일한 상속자를 끊으려 합니다. 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불씨와 같은 존재인데, 그것을 끄려고 합니다. 제 남편의 이름과 씨앗을 이 세상에 남겨주지 않으려 합니다. 왕이시여 도와주소서.
5. 다윗왕은 그 이야기를 곰곰히 들은 후, 여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나에게 맡기십시오. 내가 당신을 위해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비록 율법에 따라 동생을 죽인 자를 죽이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상황을 고려하여 선처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6. 여인은 이러한 다짐 앞에서 다시한번 다윗의 뜻을 분명히 하고자 다시한번 말하였습니다. “이 죄는 저와 저의 집안에 있습니다. 이 일로 죄없는 왕과 왕실에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겸손한 그녀의 고백에 더욱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너를 위협하는 사람이 있거든 데리고 오시오. 이제는 누구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녀는 다윗왕에게 확답을 들었습니다.
7. 여인은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다윗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 앞에서 맹세해 주십시오. 저의 죽은 아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집안 사람들이 살아 있는 저의 아들까지 죽이는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막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왕은 최종적으로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8. 이 여인의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요압이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으로 인해 분노한 다윗의 마음을 멈추고자 만들어낸 이야기였습니다. 요압은 이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였고, 그 상황속에서 다윗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고, 해결하게 하도록 맹세하게 한 것입니다. 자기의 문제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지만, 그것을 떨어져서 보게 하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9. 다윗이 드고아의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진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비록 두 형제가 싸워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인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법을 강하게 들이대어 나머지 아들마저 죽이면 그것은 더욱 큰 비극을 가져올 것이 뻔했습니다. 다윗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용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정작 자기 아들의 문제에서는 이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요압은 이야기를 통해 이 일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바른 길을 판단할 줄 알면서 미움과 분노 때문에, 또 여러 감정들 때문에 그 길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의 길을 비추어 주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 담긴 이야기와 교훈이 우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하고 우리로 하여금 옳은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에 날마다 귀 기울임으로 온전한 선택을 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0.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깊은 감정에 빠져 있던 다윗에게 드고아의 여인이 지혜로운 이야기로 깨달음을 주는 것을 바라봅니다. 다윗은 거울과 같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용서와 사랑의 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삶의 거울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 우리는 말씀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씀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깊은 감정에 빠졌을 때 우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은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위로받게 하시고, 우리의 죄악과 연약함을 돌이키게 하시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예수님 닮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길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쓰임을 받은 후에 오히려 버려진 야곱
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로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오른팔과 같은 사람으로 다윗의 명령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충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보여준 충성은 자신의 정치적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오른팔일 정도로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권모술수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례로 사무엘하 2장에 보면 요압이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아브넬에게 복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 진영과 이스보셋 진영이 싸울 때 아사헬은 아브넬의 뒤를 쫓아가다가 죽고 맙니다. 이후 종전이 이루어지고 아브넬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넘겨줄 것을 약속하며 서로 언약을 체결합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온 요압이 이 사실을 전해 듣자마자 당장 다윗을 찾아가 화를 내며 항의합니다. 그리고는 곧장 아브넬을 뒤쫓아 가 그를 죽여 버립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에 대해 사무엘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그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삼하 3:30)
이 구절만 보면 요압이 동생과 함께 아브넬을 죽인 것은 단순히 복수심 때문이었다고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압살롬의 반역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아마사를 죽입니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는데 그는 스루야의 동생인 아비갈의 아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요압과 아마사는 서로 사촌지간인 셈입니다. 그런데 반란군이 진압될 무렵 다윗은 아마사에게 요압을 대신할 군대 장관직을 제안하면서 그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아마사를 찾아가 그에게 인사하는 체하면서 그의 배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삼하 19:13~14, 20:4~13).
요압은 자신의 위치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라면 혈육도 가리지 않고 제거하는 잔인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그가 아브넬을 죽인 것이 단순한 복수심에서가 아니라 다윗과 아브넬과의 동맹 이후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계산이 깔려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압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모습은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1~3절)
다윗은 사람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강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약점이었습니다. 다윗은 매우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그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지극히 아꼈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자녀들을 아끼는 마음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로 인해 일어난 이 비극에 대해 다윗은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허물로 인해 빚어진 일이어서 다윗의 마음은 더더욱 찌르는 아픔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장남 암논이 저지른 잘못을 덮어주었습니다. 장차 보위를 물려받을 장남이었기에 다윗은 그저 화를 내는 것으로 모든 잘못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말은 압살롬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죽음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고 압살롬은 그러한 누이의 모습을 보며 2년 동안 칼을 갈았던 것입니다.
형 암논을 죽인 후 압살롬은 그술로 도망하여 3년을 숨어 지냈습니다. 그 3년 동안 다윗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압살롬이 품었던 분노가 결국은 암논의 죄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암논이 저지른 죄악 역시 다윗 자신이 지은 죄가 동기로 작용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다윗은 아버지로서 자식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암논이 죽은 이후 외모로나 성품으로나 리더십에 있어서나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 압살롬임을 다윗은 내심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을 용서하여 불러들이기에는 다윗은 너무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옳음과 그름 사이에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입는 드라빔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 뜻을 따라 행하던 결단력은 어느새 우유부단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범죄 이후 죄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선명한 분별력이 이제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이지러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요압은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읽고 즉각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요압은 그럴싸한 연기로 압살롬을 향한 왕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확고하게 돌릴 수 있는 한 여인을 찾아 다윗 앞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다윗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 요압은 드고아 여인을 가련한 한 여인으로 등장시켜 다윗의 동정을 자아내고자 했고 여인은 요압이 시킨 그대로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습니다. 드고아 여인이 다윗 왕 앞에서 꾸몄던 역할은 아들 둘을 둔 과부였습니다. 드고아 여인은 남편을 사별한 과부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 죽인지라 온 족속이 일어나 당신의 여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6~7절).
여인은 자신의 아들들이 싸워 한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아들마저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죽이려 한다며 다윗 왕의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즉각적으로 그 여인의 아들을 ‘다시는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라는 약속을 해주었을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자신의 의지를 재차 확인시켜 주기까지 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까지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압의 예상대로 다윗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발견하고는 압살롬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21~23절).
요압이 이러한 계획을 꾸민 것은 압살롬을 위해서도 아니며 다윗의 처지를 진심으로 동정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압살롬과 그에게 왕위를 물려줄 다윗을 대면하게 하고 화해시키는 중간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미리 다져 놓겠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요압은 자신의 행동 이면에 뚜렷한 하나의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압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매우 잘 이용했으며 그것은 왕이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 높은 권력을 교묘하게 이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경쟁이 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제거하고야 마는 냉철하고도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의 최후가 어떠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죽은 뒤 요압은 아도니야를 지지했고 결국 왕권을 잡은 솔로몬에 의해 죽고 말았습니다. 정치적 계산에 빨랐던 요압은 결국 자신의 계산에 의해 죽고 마는 어리석은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능력이 탁월했지만 권모술수에 능했고 자신의 야심을 따라서 움직였던 요압은 다윗을 도와 통일 이스라엘을 건설하는 일등공신이었지만 그는 쓰임을 받은 후에 오히려 버려지고 말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압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기회를 따라 움직이는 간사함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공로나 의를 드러내기 위한 부분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은 때로는 모험이며 결단이며 또한 선택이어야 하지만 그 동기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야심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며 또한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기 위한 결단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도>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1~22)
주님, 오늘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저희의 욕심과 저희의 의를 신앙적 열심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저희의 마음을 드리게 하시고 이것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요 예배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지혜로운 말 뒤에 숨은 진실을 살피시는 하나님
삼하 14장 1-11 / smile
① 오늘의 대표 성경말씀
“왕이 이르되 내가 반드시 이 일을 시행하리라 하니 드고아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멸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사무엘하 14장 11절)
② 오늘의 성경말씀 본문요약
사무엘하 14장 1 – 11절에서 요압은 다윗과 압살롬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려고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통해 왕의 마음을 움직이려 합니다.
1-3절: 요압은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한 것을 알고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불러 슬픈 과부처럼 꾸미고 자신이 가르쳐 준 말을 왕에게 전하게 합니다.
4-7절: 여인은 두 아들이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으며, 친족들이 남은 아들까지 죽이려 한다고 호소합니다.
8-11절: 다윗은 여인의 사정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고, 마침내 남은 아들의 생명을 반드시 보호하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③ 오늘의 말씀 본문 해설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 요압의 계획
요압은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통해 꾸며 낸 이야기를 전하게 합니다. 여인은 오랫동안 슬픔에 잠긴 과부처럼 행동하며 왕의 긍휼과 정의로운 판단을 이끌어 냅니다. 요압의 계획은 매우 치밀했지만,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는 지혜뿐 아니라 진실과 올바른 책임이 함께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 나는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때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기보다 사람의 감정만 움직이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생명을 살리겠다고 약속한 다윗
여인은 두 아들 중 하나를 잃었고, 남은 아들마저 친족들의 복수로 죽을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합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여인이 거듭 간청하자 남은 아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침내 그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그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합니다. 다윗은 생명을 지키는 판단을 내렸지만, 이제 그 판단을 자신의 가정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적용 질문: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옳은 원칙을 내 삶과 가정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④ 오늘의 말씀 시대적·지리적·성경적인 배경
시대적 배경: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인 뒤 도망한 상황에서 다윗은 아들을 그리워 하면서도 쉽게 불러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리적 배경: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요압은 그곳의 지혜로운 여인을 불러 왕 앞에 세웠습니다.
성경적 배경: 당시 살인한 사람은 피해자의 가까운 친족인 ‘원수 갚는 자’에게 보복당할 수 있었습니다. 여인은 이 제도를 이용해 남은 아들의 생명을 지켜 달라고 호소하며, 왕으로서 공의를 집행해야 했기에 압살롬을 불러들이지 못했으나, 마음으로는 자식을 향한 그리움에 시달리고 있는 다윗의 판단을 이끌어 냅니다.
⑤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과 깨우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혜는 필요하지만, 진실을 숨긴 지혜는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옳은 판단을 내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상처와 책임 앞에서는 결정을 미루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로만 정의와 긍휼을 주장하지 않고, 가정과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동일한 기준을 실천하기 원하십니다. 참된 회복은 감정적인 그리움만이 아니라 진실한 직면과 책임 있는 용서에서 시작됩니다.
⑥ 오늘의 묵상 기도
긍휼로 생명을 보호하시며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옳은 말을 하면서도 제 삶의 문제 앞에서는 책임을 피했던 모습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의 마음만 움직이려는 지혜가 아니라 진실과 사랑이 함께하는 지혜를 주시고, 깨어진 관계를 외면하지 않되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로잡게 하시옵소서. 오늘 제가 말한 믿음과 원칙을 제 삶에서도 정직하게 실천하게 하시며, 용서와 책임이 함께하는 참된 화해를 이루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⑦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성경 지식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 — 사무엘하 14장 2절
요압은 드고아에서 말과 판단력이 뛰어난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이 여인은 요압이 만들어 준 이야기를 왕에게 전하여 다윗이 한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었습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산악 마을로, 훗날 선지자 아모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거친 환경 속에서 지혜롭고 담대한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수 갚는 자 — 사무엘하 14장 11절
살인당한 친족의 원수를 갚을 권리와 의무를 지닌 친족을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율법적 공의를 명목으로 남은 생명마저 끊으려는 냉혹한 세력을 비유합니다. 여인은 남은 아들이 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왕의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회개가 없는 회복
삼하 14:1-20 / James Cha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삼하14:1)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삼하14:13)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요압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그술로 도망하여 산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윗의 오른팔과도 같은 군 사령관 요압은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해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것은 드고아의 지혜로운 한 여인을 통해 마치 선지자 나단이 그러했던 것처럼 압살롬을 기다리는 왕의 마음을 자극하여 압살롬의 복귀를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압살롬의 복귀를 요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요압은 압살롬 복귀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요압의 지시를 받은 드고아 여인은 상복을 입고 슬픈 기색을 띄고 다윗 왕 앞에 엎드립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두 아들이 있는데 아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없던 차에 우발적으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 죽였고, 온 집안이 들고 일어나 형제를 때려 죽인 아들을 내어 놓으라고 협박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를 듣고 이 여인과 아들을 보호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짜여진 각본대로 왕의 마음을 자극합니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처럼 그릇된 일을 하셨습니까?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친아들인 왕자님이 이 나라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처사는 지금까지 이 종에게 말씀하신 것과는 다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렇게 말씀만 하시고, 왕자님을 부르지 않으셨으니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13, 표준새번역)
2. 요압의 계획을 알아챈 다윗(18-20)
다윗은 이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요압의 계획임을 알아챕니다.
그리고는 여인에게 이것이 다 요압이 지시한 것인지를 묻습니다.
드고아 여인에게 요압이 할 말들을 일러주었고, 이 여인은 다윗 왕 앞에서 가감없이 대화를 통해 다 전했습니다.
이 여인이 말하고 있는 비유와 압살롬의 사건과는 몇가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1) 여인이 말한 두 형제가 서로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것처럼 표현했지만, 사실은 압살롬의 계획적인 살인이었습니다.
2) 다윗왕이 압살롬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사실은 압살롬이 도망한 것입니다. 그가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요압은 드고아 여인을 통해 다윗 왕의 마음에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덮고 압살롬을 복귀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요압의 계획을 알아차렸지만, 여전히 압살롬을 향한 마음에 이후에 요압의 원대로 허락합니다.
문제는 뉘우침이 없는 회복, 회개가 없는 회복은 온전한 회복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와 용서가 있어야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서로 미워하고 대립함으로 관계가 무너지고 힘들어질 때,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회개와 사랑으로 이해하고 용납하는 용서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정의와 관용 사이에서 성도가 취할 바른 선택
사무엘하 14장 1~11절 / 두란노큐티
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삼하14:1)
암논을 죽인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본문은 정확히 보여 주지 않는다. 아마도 본문은 복합적인 애증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을 것이다. 요압은 그런 다윗의 심경을 알아챘다. 아마도 요압은 앞서 나단이 했던 것과 같은 방법을 쓰려고 한듯하다. 다만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 앞서 아브넬 살해사건이나 암몬 점령 사건 때 다윗에게 가졌던 앙금이 남아 있었거나, 다윗이 그 때문에 자신을 껄끄러워해서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으리라고 지레짐작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요압의 작전은 성공했다. 요압이 과부의 소송을 꾸며낸 이유는 다윗의 정의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압이 여성을 통해 전한 사건은 판단하기 어려웠다. 살인자에 대한 처벌과 약자 보호를 위한 상속자 사면의 문제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의 문제도 같은 차원에서 고민하게 했다.압살롬이 비록 암논을 살해했지만,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를 만방에 드러낸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요압은 아마도 이 이야기를 통해 다윗에게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왕위 계승에만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을 것이다.
요압이 던진 고민거리는 열려 있다.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하고 그에게 왕위 계승을 약속한다면, 형제의 피를 흘린 사람이 왕이 되는 꼴이어서 왕권의 정당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그것은 여성이 말한 집안 사람들의 반응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왕자인 압살롬을 계속 망명 생활을 하도록 그대로 두는 것도 왕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일단 다윗은 과부의 이야기에서 살인자를 사면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이 선택은 요압이 강요한 꼴이어서 이어지는이야기에서 다윗의 진정한 선택과 그 결과를 보게 될 것 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 압살롬의 죄는 희미해지고 압살롬의 죄를 엄하게 다스려야 할 다윗의 마음은 가벼워집니다. 결국 죄의 무거움을 사라지고 아들을 향한 그리움만 남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마음이 향하는 것보다 말씀이 명하는 대로 따라야 함을 배웁니다.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세상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 뜻을 이루는 하늘의 지혜를 분별하게 하옵소서.
감정을 앞세우거나 인정에 휩쓸리지 않고 진리 가운데 바른 판단을 내리게 하옵소서.
공의의 기초 위에 관용을 베푸는 지혜를 주옵소서.
반석이요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외롭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노리는 악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고민과 갈등이 깊어질 때,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간구도 깊어지게 하옵소서.
감정보다 말씀
삼하 14:1~11 / 복음생명선교회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부정성을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 진리를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주해)
1~3절 : 암논이 죽고 3년의 세월이 흐르니 다윗이 도망친 압살롬을 그리워한다.
다윗의 마음을 알아챈 요압이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하여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에게 상복을 입혀 상주처럼 보이며 왕에게 말하라고 보낸다.
입에 말을 넣어주었다는 것은 토씨 하나까지 말한 것이 아니라, 핵심 내용만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혜로운 여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녀의 언변과 감정으로 다윗 왕의 마음을 돌려서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요압이 하려는 일은 다윗의 압살롬을 향한 마음에 면죄부를 주면 성공인 것이다.
따라서 요압의 관심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요, 하나님의 정의가 행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윗을 살펴서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고 자신은 그런 기회를 통해서 정치적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4~7절 : 드고아 여인이 왕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은 자신이 과부이며 두 아들이 있는데 아들 둘이 들판에서 싸우다가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온 집안이 일어나 동생을 죽인 자를 내놓으라고, 율법에 의거하여 그를 죽여야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법대로 하면 자신의 남편 씨가 끊어진다고 여인이 하소연한다.
8절 : 여인의 말은 다윗 자신에게 주는 말인데 아직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다윗이 왕으로서 이 사건을 조사해 보겠다고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비록 살인자이지만 남편의 대를 이어야 할 자식을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명령으로 보인다.
9~11절 : 다윗이 이 말에 여인이 다시 간구한다.
자신의 아들을 왕이 살려준다면 살인자를 살려주는 것이기에 왕과 왕위에 허물이 될 수 있지만 그 허물을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리겠다고 한다.
그러자 다윗은 그 여인을 위한 약조를 단단히 한다.
그러함에도 여인은 그 과정 동안 아들이 죽지 않도록 하게 해 달라고 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그 아들의 안전을 맹세한다.
(나의 묵상)
다윗과 요압은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관계이다.
다윗의 마음을 간파하는 요압, 또 그런 요압의 마음을 간파하는 다윗이다.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지만 그를 불러들이지 못하는 다윗의 마음에 짐을 덜어주려고 요압이 일을 꾸민다.
요압의 의도는 그다지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제 암논이 죽었으니 압살롬이 다윗 왕가의 제2인자 되었다. 그러나 압살롬 왕자는 살인을 저지른 자였다. 그럼에도 혹시 압살롬이 차기 왕이 되면 오늘의 자기 행보의 공적이 높게 평가될 것이고, 혹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다윗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자신의 이 행동이 점수를 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압의 의도에는 제일 중요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에 대한 생각이 빠졌다.
이 모든 것이 자식들에 대해 단호하게 대하지 못한 다윗의 태도 때문이었다.
사울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나님 뜻대로 행하던 다윗이 자식 문제에 이르니 형편없이 무너진다.
암논과 다말 사건에서도 유야무야 넘어가고, 압살롬의 살인에서도 우물쭈물 넘어간 것이다.
인간적 생각으로 왕의 자리를 이어갈 아들들이라 생각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윗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윗은 절체절명의 생사가 달린 사울과의 문제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다윗을 보호하시고 드디어 왕위에 올리셨다.
그런 다윗이었는데 어느 새 점점 하나님과 거리를 두게 되었나.....?
드고아의 여인이 말하는 바가 바로 자신임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다윗은 그 여인의 하소연에 감정이입이 되어 살인한 자를 보호해 주겠다고 큰소리친다. 물론 또 다른 살인을 막겠다고 한 명령이지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장면의 연속이다.
다윗의 마음을 알아챈 요압의 계획에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흔적이 없다. 그러니 요압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드고아 여인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여인의 하소연에 감정이입 된 다윗의 처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감정에 휘말려 처신할 때가 종종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한 채 상대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기 위해 행동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꼭꼭 하는 것이다.
그러면 꼭 사달이 난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기쁨을 주고자 하는 나나 그 마음을 받는 상대나 다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인간이니 결국에는 삐거덕댄다. 속으로는 곪는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니 서로 웃고 있는 것이다.
압살롬을 데려오고자 하는 요압의 뜻은 일견 다윗의 마음을 잘 알아차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윗의 답답함을 덜어주는 해법이었으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진행되니 또 다른 더 심각한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먼저 다윗은 압살롬 문제를 두고 기도하며 씨름해야 했다.
그리고 외가로 도망친 압살롬을 불러들여 꾸중이든, 벌이든, 함께 울든 하나님의 방식으로 반응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암논 때처럼 또 그렇게 자식 하나를 놓쳐 버린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나의 아들과 딸을 대하지 못하고, 그저 엄마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흐지부지하는 내 모습 - 때로는 비굴하기까지 하는 내 모습 - 을 보는 것 같다.
이후 압살롬의 태도와 그 결국을 알기에 더욱 두렵다.
부모의 인간적인 사랑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것들이다.
비정의 엄마가 되라는 것인가?
아니다.
내 생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감정보다는 말씀이다.
다윗의 감정을 잘 파악한 요압도, 드고아의 여인의 말에 감정이입이 된 다윗도(비록 연출된 장면이지만), 살인한 아들인데도 그리워지는 그 상황 속에서도.....
감정에 몰입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살펴야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묵상 기도)
주님, 말씀보다는 감정이 쉽고 가까워 곧 반응하는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이기적 감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리고 일을 어렵게만 만드는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의 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감으로 말씀의 빛 속에 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압이라는 인물 …
삼하 14:1-20 / 더온누리교회
장자 암논은 죽었다. 이제 다윗의 뒤를 이를 계승자는 현실적으로 압살롬이다. 이 때문인지 요압은 그에 대한 다윗의 화난 마음이 점차 누그러지고 그리워하는 것을 알게 된다(삼하 13:39). 요압은 그술 땅에 망명중인 압살롬을 어떻게 다시 예루살렘으로 불러 들일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요압은 왜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일까? 요압은 누구보다 다윗의 심정을 잘 파악하는 신하였다. 암논의 죽음과 압살롬의 망명은 다윗에게 큰 충격이었다. 압살롬에 대한 원망과 미련의 감정이 수시로 교차했을 것이다. 이미 장남 암논은 죽었으니 현실적으로 다음 왕위 계승자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의 다른 아들들은 아직은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요압은 다윗의 고민을 너무도 잘 파악했다. 정말 지혜롭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서 다윗과 압살롬이 결국 화해할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차기 정권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요압이 이렇게 궁리한 이유는 무엇보다 압살롬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압살롬이 암몬을 죽인 이유는 다윗왕이 처리하지 못한 근친상간에 따른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백성들은 암논에 대한 동정보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압살롬에게 더 마음을 준 듯하다. 여기에 만에 하나 압살롬이 그술 땅에 머물고 있을 때 다윗이 죽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겉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 질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압은 이런 저런 이유로 고심 끝에 드고아에서 “뛰어난 기지와 좋은 구변을 가진 슬기롭다고(2절)” 인정받는 여인이었다. 그 여인에게 철저하게 해야 할 말을 준비시켜 거짓 비유를 말하게 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정당화 시킨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목적도, 이것을 이루는 과정도 정당해야 한다.그럼에도 결국 드고아에서 온 여인의 구변은 다윗을 설득 시킨다(4-17절).
여인은 암논의 죽음에 연연하지 말고 압살롬을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양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데 익숙한데, 심지어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천연덕스럽게 이용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용하며 나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유혹을 잘 분별해야 함을 깨닫는다.하지만 다윗은 그 여인의 언변이 요압에게서 철저히 준비된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드고아의 여인은 다윗 앞에서 솔직하게 그렇다고 털어 놓는다. 결과적으로 이 솔직한 고백이 다윗이 압살롬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진실을 용기있게 말할 줄 아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윗이 요압이 사주한 것을 알아챘음을 안 드고아의 여인은 자신이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여인은 고민하지 않고 요압이 사주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요압은 매우 치밀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쩌면 교활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없는 이야기도 꾸며낼 정도로 이야기꾼이다. 모사꾼이다. 결정적으로 자신은 감추고 설득력있게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여인을 전면에 세워서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 했다. 요압에게는 압살롬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확인할 우선 사안이 아니었다. 압살롬이 다윗에 의해 쫓겨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회개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를 용서하고 복권 시키려 한 것이다. 그의 이런 계획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결정한 것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결정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인 안정과 미래 담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다윗을 존경해서가 아니다. 그저 다윗이나 압살롬이나 양 진영에서 신임을 받아 미래를 대비하려는 것 뿐이다.나는?
-주위에 이런 인물들이 꽤 많다. 상황이야 상관없이 자신의 입장과 명분만을 챙기려는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정의, 도덕, 사실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명분이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것은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가?”를 맞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직과 진실함이 아닌 위선과 사기의 방법으로 이를 이루려고 행동하기도 한다. 요압은 이런 종류의 사람들과 가장 잘 들어맞는다.
-요압은 압살롬을 차기 왕위 계승자로 생각하고 다윗이 그를 용서하고 왕궁으로 불러들여 왕위를 물려 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능하기 짝이 없고 외모가 수려한 왕자가 이방 땅에 머무는 것의 위험성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유사시 자칫 이방 민족과 손이라도 잡는 날에는 이스라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심사숙고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마침 다윗의 진노가 점차 누그러지는 것도 확인했다. 이 절호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왕이 공의로운 판단보다 국가적인 실리를 챙기도록 일을 꾸민다. 하지만 아무리 지혜로운 계책으로 이 일을 진행하였어도 다윗은 훗날 이 일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가지고 관리하여도 정의로운 가치라는 대의를 저버리면 실패한다. 결국 자신이 이를 통해 얻는 것이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다.*한편 다윗은 압살롬이 망명한 지 3년이 넘어가자 큰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는 듯 하다. 그런데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압살롬이 걱정되기 시작했다(13:39). 자신도 숱한 망명의 경험이 있었기에 압살롬의 처지가 남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선뜻 불러올 수는 없었다. 명분이 있었으나 자신의 욕망을 따라 불법을 행한 다윗도 자식 문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준 사람이 바로 요압인 것이다.
*요압은 드고아의 여인을 통해 백성들의 문제는 명쾌하게 해결해 주지만 자기 문제에 있어서는 이처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했다. 남의 문제를 잘 해결하듯 자신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남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자신을 동일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칭 “내로남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에게 갖다 대는 기준으로 자신에게도 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부분에서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내로남불의 삶이어서는 안 된다. 남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 남에게 대는 잣대를 자신에게도 댈 줄 알아야 한다. 남의 불의에 단호하듯 나의 불의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자신을 변호하듯 상대도 변호해 주어야 한다.
요압같은 인간적인 지혜와 나단같은 하나님의 지혜
삼하 14:1-20 / 조용호목사
◈ 주 해
1.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철저한 계획 하에 2년 동안 복수를 준비하여 이복 형 암논을 죽인다. 동생 다말의 일을 복수한 후에 그술로 도망하였다.
1) 다윗은 심히 통곡하고 매일 슬퍼하였으나 3년이 지나면서 암논의 죽음을 체념하고 압살롬을 향한 분노가 사그러 들고 있었다.
2. 요압은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는 줄 알고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는 계획을 진행한다.
1) 간교하게 똑똑한 요나답, 철저하고 똑똑한 압살롬에 이어, 머리가 비상한 요압이 나서서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는 이 일을 성사시킨다.
2) 요압은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데려와서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준다(2-3절).
3. 여인은 다윗에게 자기가 두 아들을 둔 과부인데 형이 아우를 쳐서 죽였다고 말한다.
1) 친척들이 피의 복수로 형을 죽이라고 자신을 핍박한다.
- 과부는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어 달라고 간청한다(7절).
2) 다윗은 사람들이 형을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며 명령하겠다고 한다(10-11절)
3) 율법에 의하면 살인자는 죽여야 하지만(민 35:19,31) 남편의 씨를 잇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과부는 남아 있는 아들을 더 이상 잃을 수가 없다.
4. 요압은 다윗에게 암논을 죽인 압살롬을 데려와야 한다는 말, 즉 매우 말하기 어려운 말을 매우 설득력 있게 여인을 통해 전달한다.
1) 살인자 압살롬을 율법대로 죽일 것인가? 계속 도망자로 있게 할 것인가?
- 아니면 압살롬을 사면하여 가족의 유대를 회복할 것인가? 압살롬을 이스라엘로 데려올 것인가?를 다윗에게 질문한 것이다.
2) 다윗이 여인의 살인자 아들을 사면하고 보호하여 주듯이, 압살롬을 사면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여인은 이 문제가 자신의 사건이 아니라 왕의 사건임을 조심스럽게 밝힌다(12절).
1) 여인의 집에 복수를 금한 왕은 지금, 자기가 자기의 집에 복수하는 자가 되어 있다.
2) 여인은 인간은 땅에 쏟아진 물을 담지 못하듯 죽음도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생명을 보호하시고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신다고 말한다(14).
- 인간은 죽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생명을 보호하고 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4) 여인은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하시며, 왕은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과 악을 분간한다”는 말로 마친다.
6. 여인의 말을 들은 다윗 왕은 요압이 압살롬을 집으로 데려오게 한 계책임을 알아본다.
1) 압살롬의 이야기임을 알아챌 뿐 아니라 이 계책이 요압에게서 온 것까지 정확히 안다.
2) 요나답, 압살롬, 요압이 똑똑하고 다윗도 상당한 능력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 인간적인 똑똑함을 발휘하지 영적인 똑똑함, 즉 하나님의 방법을 취하지는 않는다.
7. 왕은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게 한다.
1) 그러나 다윗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고 집에 거하게 한다.
2) 다윗은 압살롬을 데려오게 하나 아직 화해할 마음이 없고, 온전히 용서하지 못하여 아들로, 화목한 관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8. 요압이 여인을 통해 한 이야기는 나단의 책망을 생각나게 한다.
1) 지혜로운 이야기로 다윗을 깨우치는 것은 똑같다.
2) 그러나 나단은 이야기를 통해 다윗의 실체를 직면하게 하였고, 영적으로 깨어나게 했다.
3) 다윗이 영적으로 어디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하였다.
- 다윗을 책망함으로 회개하게 하였고, 징계를 선포함으로 다윗이 심판을 받아들이고 다시 의로 세워지도록 하였다.
9. 요압의 권면도 “매우 설득력 있고, 지혜로우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는 않는다.”
1)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 아버지와 탕자가 다시 화목하듯이, 하늘 아버지와 패역한 죄인이 다시 화목하게 하는 것은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2)하나님의 뜻대로 화목하게 하려면 다윗에게는 용서를, 압살롬에게는 회개가 필요했다. 그런데 요압은 단지 인간적인 정과 혈육의 정으로 둘을 다시 화목하게 하려고 시도한다.
3) 압살롬을 회개하게 하여 회복하게 하는 내용은 전혀 없고, 무조건 사면해 주라고 설득한다.
- 공의의 심판으로 바르게 교정하는 대신에, 다시 아들로 받아들이라고 설득한다.
4) 요압은 회개도 없고 징계도 없는 화평을 요청하여 허락받는다.
10. 요압은 매우 똑똑하고 인간적으로는 지혜롭다.
1) 다윗의 마음과 의중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다윗에게 전하지는 못한다.
2) 요압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윗의 마음에 화답하려고 한다.
3) 요압의 의도는 좋은 것 같다.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는데 어찌하지 못하는 답답한 다윗을 돕기 위해 한 행동이리라~
11. 그러나 요압의 인간적인 지혜와 선의의 마음은 다윗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1) 회개와 책망도 없는 화해의 시도가 더 큰 분쟁과 슬픔의 씨앗이 된다.
2) 아직 다윗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요압이 너무 성급하게 도우려 했기 때문이다.
- 다윗은 압살롬을 향해 분노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한 관계를 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
3) 압살롬도 마찬가지다. 회개하지도 않은 압살롬을 데려만 오지 그가 회개하도록 돕지도 않는다.
4) 다말의 강간부터 암논의 살인까지에는 압살롬과 다윗 모두에게 죄가 있다.
- 둘 다 자신들의 죄와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회개한 후에 화목하게 해야 했다.
5) 준비되지 않은 관계를 억지로 화해시키려다가 후에 압살롬이 반역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 더군다나 압살롬의 반역으로 압살롬을 데려오게 한 요압이 압살롬을 죽인다.
6) 요압처럼 틀어진 관계, 상처 입은 사람을 도우려다가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12. 다윗과 압살롬은 서로를 사랑하나 서로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주었다.
1) 압살롬은 암논을 그냥 놔두는 다윗에게 상처를 받았고, 다윗은 암논을 죽인 압살롬에게 상처를 받았다.
2) 다윗은 압살롬과 화평하고 싶으나 동시에 괴씸하다.
3) 이런 관계는 가족과 교회 안에 꽤 있는 관계다.
13. 우리는 나단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상처 입은 다윗을 찾아가는 사람인가?
1) 요압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적인 지혜로 다윗을 찾아가 도우려는 사람인가?
2) 인간적인 정, 선한 자아, 똑똑한 머리로만 사람을 돕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지혜로 돕는 것이 필요하다.
3) 내가 상처받은 자요, 불편한 관계에 있다면 나단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14. 요압은 눈치도 있고, 계책도 있고, 지혜도 있고 능력도 있는 자다.
1) 그러나 요압의 도움은 결국 다윗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기게 된다.
2) 요압은 다윗을 위로하는 듯한 말로 접근하고 나단은 다윗의 심령을 찌르는 말고 접근한다. 그런데 다윗을 칼로 찌르듯 한 나단의 말이 다윗을 살린다.
3) 나단은 장사복음(심판의 복음)을 전하였고, 요압은 심리적인 위로를 전하였다.
- 나단처럼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 나의 묵상
말씀 앞에 드러난 비참한 존재
나는 목사이지만 요압처럼 생각을 많이 하고 분별하고 합리적으로 조언하기를 좋아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머리가 빨리 회전한다. 요압처럼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 그리고 요압처럼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 마음을 알아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한다. 고통과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장사복음(심판의 복음)을 전하기 보다는 그들을 위로하며 돕고자 한다. 물론, 우리를 공감하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함께 해 주어야할 때도 있지만 나단처럼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못한다. 나단은 관계가 틀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 각오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나는 관계가 틀어질까봐, 담대히 장사복음을 선포하지 못한다.
또한 요압처럼 내 마음을 알아 주고, 달콤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단처럼 다가오는 사람을 싫어하고, 심지어 나단처럼 다가오는 하나님도 꺼려한다. 그러니 다윗처럼 회개하지 못하고, 다윗처럼 심판을 통하여 온전히 의로 세워지지 못한다. 요나답, 압살롬, 요압, 다윗...모두 똑똑하지만 생명은 없다. 하나님이 없다. 다윗은 나단을 통하여 회개하고 심판을 받아들였는데도 암논과 압살롬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한대로만 암논과 압살롬에게 대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나 또한 하나님이 나를 대하신 방법으로 대하지 못한다.
2. 복음을 통해 생명이 환히 드러나다.
심판 없는 화평, 심판 없는 회복의 달콤한 말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옛사람과 육신은 헛된 행복을 추구한다. 사단은 근거 없는 화평, 근거없는 부흥을 소망하게 한다. 근거도 없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집어 넣는다. 긍정의 힘은 복음이 아니다.
날마다 나의 어둠을 드러내시는 빛되신 주님께 나아간다. 날마다 올라오는 육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날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바라본다. 나는 불의하나 주님은 항상 의로우시다. 관계에 대한 책임을 항상 다하신다. 나는 탕자로 말씀 앞에 나가지만 하나님은 항상 아버지로 나를 맞아들이신다. 그 크신 사랑, 그 크신 구속의 은총이 나를 용납하고, 나를 향해 달려오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고, 나를 정죄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으로 나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은혜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나의 나됨은 추함 밖에 없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은 은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은총은 은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윗처럼은 아닐지라도 어찌 그 하나님의 은총을 쏟아버리겠는가? 십자가의 사랑, 심판중에도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어찌 부인하랴?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은혜,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용납하시는 그 은혜, 나를 아버지 집에 거하시는 그 은혜를 찬양한다. 그리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한다. 내가 지음받은 이유, 내가 구원받은 이유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함이다. 비록 패역한 죄인이나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리에 머문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영원 무궁하다.
◈ 묵상 기도
주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십니다. 주님의 징계가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알게 하옵소서. 저를 암논과 압살론처럼 대하지 아니하시고 다윗처럼 솔로몬처럼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속의 은총을 베푸시고, 잘못한 저를 징계로 바로 잡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만물 안의 구하는 헛된 마음을 성령의 불로 소멸하소서. 땅에 속한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주님 한분 안에거하며, 그 은혜의 영광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다윗처럼 바울처럼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며, 주님의 집을 짓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 사람들 떠나도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수수 떨어지는 영혼들, 주님과 멀어지는 이 시기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요압과 같은 인간적인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단처럼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주님의 마음과 지혜로 섬기고 돕게 하옵소서. 코로나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게 하소서. 바벨론 포로지에서 돌아오게 하옵소서. 장년들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인격적으로 나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인의 호소
사무엘하 14:1-11
<본문>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행한 자는, 또는 이렇게 하지 않은 자는 이스라엘 중에서 끊쳐 진다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하는 사고방식에서 멀어진 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민족성과 혈통으로 뭉친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사고방식이 서로 일치되어 하나된 특이한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다운 사고방식을 지키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정이나, 인간의 혈통의 관계를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다운 사고방식에 거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야 할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방국가와 전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이스라엘다움을 무너뜨리는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철저히 다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계에는 부모 자식, 친족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초월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죄를 범한 자식에 대한 다윗의 태도를 통해서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암논에 대한 다윗의 태도나 압살롬에 대한 태도는 분명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형제를 죽인 압살롬에 대해 3년이 지나자 그 마음이 간절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보다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정이 더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는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살인자에 대한 단순한 징계 차원의 규례가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어느 누구의 생명도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생명을 감히 누가 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스라엘다운 정신이 아니기에 끊쳐 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살인자가 살 수 있는 길은 도피성으로 피하는 것뿐이지만 그것도 모든 살인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고의성이 전혀 없는, 즉 과실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의 경우는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반드시 죽어야 하는 범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시행을 해야 이스라엘의 이스라엘다움이 온 배성들에게 선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것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윗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식에 대한 마음은 다윗이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을진대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자식의 죄를 처리한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의 규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식에 대한 정만 앞세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세워지고 무엇이 무너져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답은 분명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갈등과 고민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인간의 정과 관계만 세워지는 것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 마음을 요압이 눈치 챕니다. 그런데 요압은 압살롬을 용서하고 돌아오도록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인을 등장시켜서 다윗 앞에서 말할 내용을 가르쳐 주고 연기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한 말은 이러합니다. 자신은 남편이 죽고 아들 둘만 데리고 홀로 사는 참 과부인데, 이 아들들이 들에 나갔다가 서로 싸우게 되었고 말려줄 사람이 없어서 결국 형이 동생을 죽였는데 온 족속이 일어나서 동생을 죽인 죄를 갚아 저를 죽여야 하니 형을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남편의 두 아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어 대가 끊어지게 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호소에 대해 다윗은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8절)는 말을 합니다. 여인은 다윗의 말에 대해 “드고아 여인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비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9절)는 말을 합니다. 여인이 말하는 죄는 살인한 자를 하나님의 규례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를 의미합니다. 즉 다윗이 자신의 호소를 들어서 동생을 죽인 형을 죽이지 말 것을 명령한다면 그것은 곧 살인자에 대한 규례를 무시하는 허물이 되지만 그것은 모두 부모의 죄니까 왕에게 그 죄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여인이 다윗에게 하는 말은 요압이 미리 가르쳐준 것입니다. 따라서 9절의 내용도 요압이 가르쳐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압은 왜 여인을 내세워서 다윗에게 이런 말을 할까요?
어쩌면 요압은 다윗은 하나님의 규례를 세워야 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압살롬을 그리워 하지만 선뜻 돌아오도록 하지 못하는 고충을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이 모든 일을 이스라엘의 왕의 위치에서 바라보지 말고 부모의 심정에서 처리하라는 암시적인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인이 호소한 내용과 지금 다윗의 입장이 같습니다. 그래서 여인의 호소가 마음에 와 닿았는지 “왕이 가로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저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10절)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11절의 “여인이 가로되 청컨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생각하사 원수 갚는 자로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려워하나이다 왕이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로서 다윗의 굳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처리가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인의 말을 들으면 그 처지가 아주 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규례대로 한다면 결국 여인의 말대로 그 후사가 다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인의 말을 들어주면 하나님의 규례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러한 갈등에서 다윗은 인간의 정리를 선택합니다. 인정상 비록 살인죄를 지었지만 죽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지켜주겠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 앞범죄한 살인자를 지키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규례 자체를 반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의 처사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은 결국 자신을 보낸 요압의 속마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13-14절을 보면 “여인이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 같은 도모를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셨으니 왕께서 죄 있는 사람같이 되심은 그 내어 쫓긴 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아니 하심이니이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 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으로 요압의 의사가 다윗에게 충분히 전달되고 다윗은 그 말로서 여인이 요압이 보낸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여인의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인의 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인은 살인죄를 지은 자신의 아들을 지켜주겠다는 말을 들어서 왕은 왜 아들을 돌아오게 하지 않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신다는 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큰 함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말합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사랑과 자비하심을 근거 삼아 무조건 덮어주고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즉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덮어줘야 하고 넘어가고 받아줘야 하는 것이 사랑이고 자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요압은 여인을 내세워서 다윗에게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을 돌아오게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어떻습니까? 이것이 맞는 말처럼 들립니까? 사랑, 자비, 용서, 분명 하나님의 속성이고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죽어야 할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무작정 모든 죄를 덮어 버리는 식으로 사랑과 자비하심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서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베푸신 사랑이고 용서라는 뜻이지 모든 것을 그냥 봐주고 넘어가는 식의 사랑이나 용서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과 용서는 무장적 봐주기 식이 아닙니다. 분명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우리의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을 내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갚으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아들을 보지 않고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넘어가는 것이 사랑이고 미덕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적하고 자신의 죄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용서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대신 받으신 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용서를 보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없는 교회는 교회다움을 상실해 버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만큼 죄에 대해 지적하고 자신의 죄를 보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이 점을 잊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열심을 강조하며 교회에 득이 된다면 다른 것은 보지 않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듯이 교회를 위해 열심히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어떤 죄도 다 덮어지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죄도 봐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보셔야 합니다. 봐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 값을 아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의 죄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봐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인을 내세워서 압살롬을 돌아오도록 다윗을 부추기는 요압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여인의 말에 대해 아들을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다윗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 마지막 결과가 세상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 아니겠습니까? 신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무작정 심판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심판을 이미 받으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받으신 심판을 보시고 우리의 심판을 넘어가신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마음이 좋은 분이어서 죄도 그냥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무작정 봐주는 것은 세상이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아들을 죽이시는 아픔과 희생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어떤 해로움도 입지 않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서 그러한 식의 사랑과 자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나를 죽이지 않는 신을 원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경험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모두 죽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왜입니까? 나 대신 죽으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린 그분의 죽음 앞에서 죄의 심판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어떠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에 하나님의 의가 살아있는 모습입니다. 죄를 그냥 넘어가기를 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내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