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생친구 남영희가 병고에 시달린다
체중은 줄어들고 피로가 몰려오고 몸은 늘 덥다고한다
간암 3기라니 진찰이 맞다면 내짐작으로는 몇개월 될것같다
아직 나이가 칠십도 안된 나이는 좀 억울한 편이다
옛날이면 67세이면 노인이지만 평균 여자나이 83세인
요즘에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병마는 찾아와 굳게 자리잡고
점점 영역을 확장한다니 너무나 딱한 일이다
남영희와 내가 처음 만난건 1969년 봄이다
성서를 공부하는 자리에서 같은 또래이고 동네가
이웃이니 잘지내 보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4살난 아들과 돌잡이 딸이 있었고
우리나이는 동갑나기 42년생이다
나는 첫딸이 첫돌잡이 되였다
우리는 매 집회때 말고도 수시로 만났다.
나는 삯월세 방이였지만 친구는 시집에서 작은 집을
사주어 경제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같은 종교를 가진
자매로서 우정은 자라났다
서로 선의에 경쟁자이기도 했다
친구가 딸아이 새옷을 사면 나도 사고 살림살이를 사면
나도 사고 먹거리도 같이 비슷하게 사오곤 했다
오늘은 이집에서 점심을 내일은 저쪽에서 점심을 먹고..
내가 셋방에서 전세로 그리고 73년도 집을 처음으로 샀을때도
누구보다 기뻐해주었지.
그러던 어느날
친구는 시아버지가 살림을 합치자고 하여 시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친구는 신길동이고 우리는 시흥이지만 만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큰 종교 행사때에만 만나고는 했다
1983년 우리는 부산으로 이사를 하여 10여년간 소식은 두절되었다.
1988년 다시우리는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여 다시 나의 고향가까운
서울 신도림동에 둥지를 틀었다
옛날 친구들이 그리웠으나 전화번호를 몰랐다
내가 생각끝에 전화번호 인명부에서 친구남편 이름을 찾으니
신길동에 아직 살고있다
떨리는 맘으로 우리가 서로 재회하던날 얼마나 반가우랴
그사이 우리나이는 48살이된다.
그후 부터는 20년간 가끔 만나서 무도장에도 가고 보험회사 시험도
보러 다니며 만났고 노래교실, 화진 화장품 하다못해 관광도
같이 다니곤했다
내가 컴을 배우면서 우린 좀 뜸했지만 늘 거기 그자리에서
친구는 안부를 전하고 염려해주는 잘익은 포도주 우정이었지.
당신은 내 이름으로 늘 달빛정원에 들어와 나의 사진과
근황을 알고 있었지
그리고 컴 잘하는 친구를 존경한다고 치켜 세웟지
그러던 요즘에 친구는 청천 병력같은 병마의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울면서 서로를 위로하게 될줄이야...
가장 가까이서 두가정 식구는 물론 친정까지도 빠삭하게 알고
지내던 친구야
살다가 속상하면 불러대고 의논할일도 투정부릴 일도 불러댔지.
자식자랑도 남편 흉도 보며 때로는 유능한 경험으로 이런저런
재테크의 조언도 해주었지.
친구야 내친구야
이제 자네가 없는 이세상에 누굴불러서 마음을 달랠까
그토록 멋부리고 인정많고 베풀기 좋아하던 친구야
늘 겸손하고 상대를 칭찬하기 좋아하던 당신이 아니던가
당신과 나 사이에 많고 많은 추억들과 다정했던
그 눈빛과 그 목소리를 어찌 감당하란 말이요..
아아 친구야
가지말아요 우리 같이 오래 살아요
남여사 당신은 어느정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니
이제 부터는 남은 인생을 감사하며 즐기며 웃으며 살아요
이렇게 좋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알콩달콩살아요.
어이~ 송여사 부르며...
우리는 행복하게 평균 나이만은 살아야 해요
친구야 힘내요 반드시 병마를 물리치고 일어나야해요
여호와는 생명을 만든 분이기에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매달리고 붙잡고 일어서요
우리가 열심히 살았던 그열정으로 하나님께 기적을 빌어요
친구야 파이팅 꼭 파이팅이야~~~~~~~
당신의 친구 달/
첫댓글 인생이란 고난속에 살면서도 다시 오똑이처럼 일어서지요...친구분도 병마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것이라 확신 해요...그분의 쾌유를 빕니다..
정말 애절하게긴글을 써내려갔군요.요쥼은 의술이 점점발달해가니.조금 희망을 걸어도될거예요.달님친구에게 기도해줍시다.
달님과 남영희의 우정이 부러워라 인생에 참된 벗 하나만 건져도 성공이라구. 영희씨 ! 서울 대학병원에 실력있는 의사를 믿고 기도하며 기다려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