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잃고 식물인간처럼 되었지만 여전히 앨리스다’는 뜻의
제목의 영화로,
평생을
아끼고 사랑해온 노부부가 알츠하이머를 맞닥뜨리면서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을 조명한 프랑스 영화 <아무르(Amour)>가
큰 관심을 받은 바 있었듯이
이제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병이 아닌
알츠하이머
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족
중에 치매라고 불리는 이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비참한 병을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라면
누구도 그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병이 되어버렸기에
영화를 보면서 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치매는
‘천벌(天罰)’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한
인간의 존재의미를 뒤흔드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병은
육체적
고통과는 다른 차원의 비참함을 안겨줍니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들지만 그것도 까맣게 모를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주고 있는 가장 사랑하던 과년한 딸을
‘도둑년’으로 말할 때가 많으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과연 그 비극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이 영화는 하바드 대학 신경학 박사 출신인 작가 리사 제노바(Lisa
Genova)가 쓴
『스틸 앨리스(Still Alice)』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신경학 박사 과정 중 80세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그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고
할머니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 알츠하이머 환자와 가족들, 의사들을
인터뷰한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영화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인 앨리스가 저명한 ‘언어학자’라는
사실은
그
비극의 정도를 짐작하게 합니다. 누구보다 깊이 언어를 이해하고,
언어를
기반으로 하여 최고의 지성을 이뤄왔을 인생에서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절망일까요?
또 그 가족에게는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까요?
자신에게
찾아온 절망을 감내하면서도 품위를 지키고 싶어하는 앨리스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자신의 인지능력을 잃고 나서도 계속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르>의 노부인과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자아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내렸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앨리스는 그 결심을 실행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은 계속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아를 잃어버린 앨리스 역시
가족에게
의미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삶과 더불어 계속되는 가족의 삶은
앨리스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정체성과는 다른 또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그녀의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앨리스는 어떤 모습이건 여전히 앨리스입니다.
영화는
자신을 잃어버린 이후의 삶에 대하여 마냥 어둡게 묘사하지만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절망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계속되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답을 내리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피할
수 없는 절망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이
같은 앨리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인생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 잃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한 가지 기술(One Art)>이 부분적으로 인용되고 있는데
이는 앨리스의 처지를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기술(One Art)>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1911-1979)/후고(後考) 옮김
상처 받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떠나 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오.
많은 것들을 잃을 각오를 하고 있으면
설령 잃는다 해도 결코 당황하지 않게 된다오.
매일 뭔가를 잃어버리는 연습을 하도록 하오.
열쇠를 잃거나 할 일을 깜박 잊어버려도 슬퍼하지 않도록 하오.
그러면 상처 받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떠나 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오.
그리곤 더 많이, 더 빨리 상처 받지 않고 여의는 법을
익히도록 하오.
누구나 장소, 사람들의 이름, 여행하려 했던 곳을 곧잘 잊어버린다오.
그런 건 아무리 잃어도 재앙이 아니라오.
난 나에게 남겨주신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소.
또 좋아했던 세 집에서 마지막,
아니 마지막이나 같은 집도 잃어버렸소.
상처 받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떠나 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오.
난 아름다운 두 도시를 잃어보기도 했소.
더 넓게는 내가 소유했던 얼마간의 영토와
두 강과 하나의 대륙을 잃어보기도 했소.
그것들이 그립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소.
--내가 좋아하던 당신의 장난스런 그 목소리,
멋진 그 몸짓까지도 잃어버렸지만 거짓말은 못할 것 같소.
설령 그것이 재앙처럼 보이더라도
다 놓아버리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다오.
<One
Ar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Lose something every 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Then practice losing farther,
losing faster:
places, and names, and where it
was you meant
to travel. None of these will
bring disaster.
I lost my mother's watch. And
look! my last, or
next-to-last, of three loved
houses w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I lost two cities, lovely ones.
And, vaster,
some realms I owned, two rivers,
a continent.
I miss them, but it wasn't a
disaster.
--Even losing you (the joking
voice, a gesture
I love) I shan't have lied. It's
evident
the art of losing's not too hard
to master
though it may look like (Write
it!) like disaster.
첫댓글 감사합니다. 시간이 될때 다시 들러서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