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원씨 원성백계 대종회 //cafe.daum.net/wonsong100

화벌보(華 閥 譜) 이야기 (부평李씨,남평文씨)
세상에 드러난 높은 문벌의 족보.
즉 자신들의 집안이 문벌이 높은집안이고 일컷는 뜻에서 화벌보라고 합니다.
부평李씨 정랑공파 화수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가. 《고려사》 〈세가(世家)〉 태조 34년조에 처음 나타난다.
936년(태조19)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4년뒤인 940년 신흥사(新興寺)를 중수하고, 이곳에 공신당(功臣堂)을 세우고 공신당의 동서 벽에 삼한공신의 모습을 그렸다.
벽(壁)에 그린 삼한공신이라 하여 삼한벽상공신으로 부른다.
공신당에 그려진 삼한벽상공신은 고려의 개국공신 가운데서도 큰 공을 세운 인물들로
1. 홍 유(洪儒 의성) 2. 배현경(裵玄慶 성산) 3. 유금필(庾黔弼무송)
4. 복지겸(卜智謙 목주) 5. 신숭겸(申崇謙 평산) 6. 김선필(金宣弓선산)
7. 이총언(李총言 벽진) 8. 김선평(金宣平 안동) 9. 권행(權幸 안동)
10. 장정필(張貞弼 안동) 11. 윤신달(尹莘達 파평) 12. 최준옹(崔俊邕동주)
13. 문다성(文多省 남평)(文多省 남평) 14. 이능희(李能希 청주) 15. 이도(李棹 김의)
16. 허선문(許宣文 양천) 17. 구존유(具存裕 능성) 18. 원극유(元克猷 원주)
19. 금용식(琴容式 봉화) 20. 김훤술(金萱術 해평) 21. 한란(韓蘭청주)
22. 강여청(姜餘淸 냉천) 23. 손긍훈(孫兢訓 밀양) 24. 방계홍(房係弘남양)
25. 나총례(羅聰禮 금성) 26. 이희목(李希穆 부평) 27. 염형명(廉邢明서원)
28. 최필달(崔必達 강릉) 29. 김홍술(金弘述 의성) 30. 김락(金樂) 등이다
나. 이후 벽상공신 칭호는 1170년 정중부의 난으로 명종이 즉위하면서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의 초상을 그려 조정의 벽에 붙였다
화벌보(華閥譜) 고려지 서문 변역문
우리 동방 국사에 이르기를 신라가 망할 때 많은 영웅들이 다투어 일어났다.
궁예는 동주(철원)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태봉이라 하고
견훤은 도읍을 완산(전주)에 정하고 국호를 후백제라 하여 남북이 서로 다투고 침범했다.
이때 하늘이 어진 임금을 내리시어 고려를 세우고 지혜로운 신하와 사나운 장수들이 줄을 이어 하늘을 우러러 만세를 부르니 태종 왕건께서 나라를 세울 때 충성을 다하여 훈공을 세운 여러 신하들을 벽상에 기록하고 이를 자손에게 전하여 대대로 벼슬과 녹봉을 내리게 했다
475년에 이르러 하늘의 뜻이 다하여 왕씨가 망한 후 26년 세종조 정미년에
여조(麗朝)에 대대로 벼슬과 녹봉을 받은 신하들의 방명을 수록하여 화벌보라 이름하는 한 책자를 만들었다
그 후 성종 신묘년에 영상 김질이 이를 다시 압수하여 불태워 버렸으나 혹은 어느 선비의 집에 숨겨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나 들었다는 사람이 간혹 있었으나 나같이 한미한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500여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경인 병란때 서울에 사는 김민석씨가 고향을 떠나 남으로 피난을 오던 중 우연이 길거리에서 만나 소지한 행장에 여사(麗史) 화벌보가 있었다
내가 이것을 얻어 읽어 보매 세상에도 희귀한 것으로 천고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적을 일일이 베껴서 똑같이 싣고 마침내 그와 또 같은 수사본을 이룩하니 여기 43가(家)에 영광이 있기를 바라며 내 뜻을 전하여 기록하는 바이다.
세재 갑오중양절 대흥 이재하 근지
< 화벌보 >
나라를 세운 공신들은 높은 벼슬로 영화누리네
충성된 훈업은 대대로 녹을 이어받고 벼슬을 주어 가문을 이어가네
관직을 수록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모아 세보를 만들었네
< 벽상공신 >
한 자 은패에 공훈을 새겼도다
군후의 대례복에 통천관을 쓰고
대궐안 임금님 거실에 그 이름 나란히 걸었네
< 삼중대광 >
문반에선 중신이 되어 모든 정치 보살피고
무반에선 장군되어 나라 사직 받들었네
군후의 봉함 받으니 높은 벼슬 더욱 영광일세
첫댓글 화벌보..좋은 사료 감사합니다. 결국 원성백계는 시중공계의 상계로 나타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