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의 탄생 ―관찰자 하 린
유치원에서 딸아이가 울면서 돌아옵니다 울음은 착합니다
누군가 엄마가 없다고 놀릴 때마다 아빠마저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게 소리치라고 차마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한쪽만 있다는 건 불편한 것일까요 부끄러운 것일까요
사라지기 좋은 계절이란 걸 압니다 채팅하던 사람이 자살을 한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조문을 가고 싶은데 사는 곳을 모릅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종교 전파자를 가끔 만납니다 귀찮아할 때까지 경청합니다 인상도 좋고 눈도 선한 당신들 최선을 다합니다만 나의 걱정거리가 지천이고 지척인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타면 미터기를 걱정합니다 라디오는 왜 기사가 원하는 주파수만 트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오후 4시부터 정체라서 불안과 불온이 밀려옵니다
새가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날아갑니다 나무 위 빈 둥지가 불현듯 궁금합니다 알 대신 무엇이 웅크리고 있을까요
관찰과 관찰자의 차이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내 숨통을 조이는 역할을 타인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다는 생각
딸아이는 자라면서 관계라는 말도 습득해갈 것입니다 대답이 뻔한 질문들을 다분히 나에게 던질 것입니다 당황하는 척을 하면서 감당해야 할 물정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계간 《시와세계》 2023년 여름호 -------------------- 하린 /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학위. 2008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시 창작 안내서 『시클』. 계간 《열린시학》 부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