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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웠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2,7-12ㄱ
7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8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9 그리하여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자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떨어졌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 사는 이들아, 즐거워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7-51
그때에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 속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것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며,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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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예언자는,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양털 같은 분이 앉아 계신 옥좌 앞으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인도되어, 민족들의 통치권을 받는 환시를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우체부 역할을 맡았지요. 대표적인 천사가 가브리엘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한 이유입니다. 또한 천사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말이지요.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제대로 고백한 이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볼 수 없다고 여긴 것을 이미 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없다고 하여 그분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볼 수 없다고 말하여서도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하늘의 천사가 사람의 아들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고백하고 믿고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증거를 대라며 따져 묻겠지요. 그렇다면 간단히 답하세요. 내가 그 증거라고. 그럼에도 믿고 따르고 살고 있는 내가 그 증거라고. 그리고 또 답하세요. 그래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 보려 노력하는 이가 나라고.
신앙은 도깨비 뿔을 단 이들의 괴기한 신비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늘의 이치를 땅 위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하여 신앙은 자기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 주셨고, 또 다른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오늘 자신의 삶 안에서 또 다른 십자가를 통하여 그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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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필립보는 구약에서 예언된 인물을 만났다는 확신 속에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촌락이었던 나자렛에서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다는 나타나엘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필립보는 직접 와서 보라고 제안합니다.
나타나엘이 있었던 무화과나무 아래는 라삐들이 성경 공부에 전념하는 장소였기에, 나타나엘은 이미 성경, 특히 사람들이 갈망하는 메시아에 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의 마음을 먼저 보시고 부르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난 나타나엘은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시는 구원이 성취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야곱이 꿈에 본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닫힌 문은 예수님을 통해 다시 열리고,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었던 천사 같은 영적 존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인 대천사들은 하느님의 손과 발이자 목소리가 됩니다. 우리도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는 하느님의 손과 발, 목소리가 된다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작은 천사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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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시킵니다(창세 28,12).
야곱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사우를 피해 도망가는 길에 베텔에서 꿈을 꾸게 됩니다. 야곱은 하늘이 열려 있고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를 오르내리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는 천사들의 층계를 통해 하느님의 집에 이르는 길, 하늘의 문을 발견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유일한 통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는 야곱의 꿈을 충만하게 완성시키십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가 되어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간성에 도달시킵니다. 역경과 위험 가운데 하늘 나라로 순례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층계를 한 걸음씩 올라가게 도와주는 존재, 하느님의 집에 도달하게 인도하는 존재가 천사들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많은 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세 천사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라고 부릅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이 맡은 임무에 따라 이름을 붙입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대천사가 성 미카엘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으로 예언의 뜻을 알려 주는 대천사가 성 가브리엘입니다. ‘하느님의 치유’로 우리를 살려 주고 안내하는 대천사가 성 라파엘입니다.
하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들에게 우리를 보살펴 주시도록 전구하여 하늘의 문에 도달하도록 합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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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시킵니다(창세 28,12).
야곱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사우를 피해 도망가는 길에 베텔에서 꿈을 꾸게 됩니다. 야곱은 하늘이 열려 있고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를 오르내리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는 천사들의 층계를 통해 하느님의 집에 이르는 길, 하늘의 문을 발견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유일한 통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는 야곱의 꿈을 충만하게 완성시키십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가 되어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간성에 도달시킵니다. 역경과 위험 가운데 하늘 나라로 순례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층계를 한 걸음씩 올라가게 도와주는 존재, 하느님의 집에 도달하게 인도하는 존재가 천사들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많은 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세 천사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라고 부릅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이 맡은 임무에 따라 이름을 붙입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대천사가 성 미카엘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으로 예언의 뜻을 알려 주는 대천사가 성 가브리엘입니다. ‘하느님의 치유’로 우리를 살려 주고 안내하는 대천사가 성 라파엘입니다.
하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들에게 우리를 보살펴 주시도록 전구하여 하늘의 문에 도달하도록 합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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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직무를 뜻하는 명칭입니다. 하늘 나라에는 특별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거룩한 영들이 많이 있는데, 성경에 따르면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등 천사들 가운데 일부가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미카엘은 다니엘서 10장에서 이스라엘을 수호하는 제후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서 9장에서 예언의 뜻을 설명해 주는 천사이고, 또한 루카 복음 1장에서 성모님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이기도 합니다. 라파엘은 토빗기에서 토비야의 여행길에 동행합니다.
이처럼 위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은 흔히 생각하는 착한 아기 천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 이름도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권세”,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으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시편 103,20에서는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힘센 용사들아.” 하고 노래합니다. 실상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使者), 하느님께서 사명을 맡기어 파견하시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천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맡기신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어 파견하시는 임무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 우리도 천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현존을 드러낼 때 우리는 땅 위에서 천사와 같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큰 천사가 아니라 작은 천사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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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 폭설이 내린 지리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했는데 밤새 내린 눈으로 모든 길이 덮여 있었습니다. 산을 좋아해서 수없이 지리산을 올랐지만 20여 명의 일행을 앞장서 안내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겨울이라 앞서 가는 사람이 길을 잘못 들면 그 긴 대열이 길을 잃고 위험에 빠지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맨 앞에서 눈에 덮인 산길을 더듬어 찾으면서 점점 더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바로 그때, 온몸에 비닐을 두른 낯선 청년이 성큼 성큼 우리 대열을 앞질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한 번 짓더니 날듯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그가 남긴 발자국 덕분에 무사히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청년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끌어 준 천사였습니다.
살면서 누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때가 있습니다. 또 삶이 힘겨울 때 힘이 되어 주고 굴레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특별히 삶에서 인생의 참된 가치를 가르쳐 주고 구원의 길을 걷게 해 준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은 더없는 축복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때는 성화(聖畵)에서 보듯 ‘날개 달린 천사’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을 빌리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먼저 부르심을 받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초대합니다. 필립보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진리를 탐구하던 나타나엘을 진리이신 주님께 안내합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바르톨로메오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르톨로메오는 필립보를 통해 주님을 만났고, 그분 안에서 참된 진리의 길을 발견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나의 천사가 되어 내 삶을 바꾸어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편 나는 누구의 천사가 되어 그 사람의 삶에 축복이 되고 있습니까? 피조물의 세계에서도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 되어 주면 하늘의 영적인 존재처럼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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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성경에서는 많은 천사들이 등장하지만, 교회에서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존재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초감각적인 존재, 곧 영적 존재들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존재들이 주로 하느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우리는 천사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참된 이스라엘 사람,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십니다. 나타나엘은 주님을 뵙고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기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나타나엘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당신 나라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초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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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엘은 놀랍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아신다는 말씀에 놀랍니다. 스승님께서는 ‘더 놀라운’ 일을 볼 것이라 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주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모습입니다. 미구에 닥칠 종말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영원히 살아남을 존재입니다. ‘천사의 행동’ 역시도 영원히 기억될 행위입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천사의 행동’입니다. 한순간 감동을 주었더라도 ‘순간의 천사’입니다. 지금도 감동을 주고 있다면 ‘영원한 천사’입니다. 한 번이라도 천사의 역할을 한 사람을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진짜 천사들’이 그를 찾아올 것입니다.
‘장기려 선생님’은 `6·25 전쟁 직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진료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불우한 이웃들에게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이산가족이었던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기억하며 독신으로 지냈고, 평생 ‘집 한 칸’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죽을 때까지 병원 옥상에 마련된 사택에서 살았던 것이지요. 춘원 ‘이광수’는 그를 두고 “성자 아니면 바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1968년 국내 최초로 ‘의료 보험 조합’을 만들어, 가난한 이들이 쉽게 병원을 찾도록 했습니다. ‘의료 보험 제도’의 전신인 셈입니다. 1995년 성탄절 새벽에 그는 하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비문에는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는 짧은 글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역시 천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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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대천사는 천사들의 지도자입니다. 성화에서는 흔히 칼을 들고 있는데, 이는 용과 싸우는 모습입니다(묵시 12,7-8 참조).
가브리엘 대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알렸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천사도 가브리엘이었습니다(루카 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는 토빗기의 여러 군데에서 의인 토빗을 도와주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누군가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남몰래 시작한 좋은 일이 돈 때문에 겉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즈음에 전혀 생각지도 않은 분이 찾아와 좋은 일에 쓰라며 돈을 두고 갔습니다. 꼭 필요한 만큼의 금액이었습니다. 그분께 참으로 감사드리며, 살아 계시는 하느님, 살아 움직이는 천사를 분명하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다른 천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 우리 역시 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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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가치관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타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말, 행동으로 ‘예의 없다’, ‘개념이 없다.’ 등 수많은 비난과 지적을 합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 자체가 없습니다.
솔직히 이 대상의 주인공이 자신이었을 때,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어집니다. 나의 의도를 자기 생각으로 바꿔놓고, 내 생각은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만들 때 과연 편할까요? 그런데 더 힘들게 느껴질 때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더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인터넷 활동을 하며 몇 차례 겪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받는 비판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얼굴이 비치는 방송은 사양이고, 댓글은 무조건 무시합니다. ‘그러든지 말든지….’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야 저 자신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스스로 겪어보니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 역시 판단 받을 수 있음을 떠올리며 그의 장점을 봐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개인을 향한 비난은 그저 한순간의 통쾌함을 바라는 폭력이자, 정의, 예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억압입니다.
나타나엘은 자기 형 필립보와 마찬가지로 예언서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단한 것은 성경을 자신의 해석에 맞추기를 거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간 것도 사람들의 해석을 거부하는 행동이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 안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는 사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들입니다. 심부름꾼들을 볼 수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들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런 거룩한 존재와 함께할 수 있어야 하느님의 조력과 치유 그리고 영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희망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존재에 더 가까워집니다.
타인을 비판적으로 대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주의하세요. 당신이 대하는 모든 대상과 당신 간에는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미움을 가진 채로 바깥 세상을 바라보면 미움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만 향하지 않습니다(카타기리 다이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
처음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전거를 타면 200km 이상 갈 것이고, 따라서 하루면 충분히 제주도 일주를 마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기분도 좋았고 이곳저곳 구경도 하면서 신나게 달렸습니다.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낮이 되어 뜨거운 햇빛이 내리비치면서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지고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엉덩이는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얼얼했고 다리 역시 “제발 좀 쉬어!!”를 외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하루에 완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틀 만에 힘들게 완주했습니다. 그러나 재미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힘든 기억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몇 차례 자전거로 미리 장거리를 다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의욕만으로 하루 만에 제주도 일주를 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무모합니까?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혹시 그냥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가겠다고만 하는 것이 아닐까요?
곧 다시 춤추게 하소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랜만에 방송 출연차 서울 나들이를 했다가,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이자 구약성경의 권위적인 해석가인, 윌터 브루그만 저(著)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Ivp)라는 책을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대혼란의 때, 사목자들이 양떼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시기, 꽤나 예언자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단 성급하고 대책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몇번 인용하는 것을 빼면...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이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제 지난날로 되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지금 인류는 긴급하고 힘겨운 배움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차분히 옛 세상을 단념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모든 생명체가 다시금 재생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살아계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초대이며,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더 친밀하고 더 배려하며 서로 유익이 되는 관계를 맺으라는 부름입니다. 이제 인류는 이 재앙을 통해 더 생산적이고 더 포괄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앙 한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우리 인간을 환대하시며, 극진한 사랑을 베푸시며, 발버둥치는 인류를 도우십니다.
사실 그간 인류가 쌓아올린소중한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연한 포기와 새로운 출산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께서는 변함없는 자비를 베푸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이 큰 환난에 당당히 맞서게 하시며 극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저자가 쓴 기도문 하나가 참 인상적이고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곧 다시 춤추게 하소서!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의 졸업식, 미식축구의 4강전, 메이저리그의 개막,
온 교우들이 모인 부활절 미사,
날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나누던 대화도 사라졌습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거대한 침묵을 강요합니다.
그 침묵이 낳는 것은 외로움과, 가정 내 폭력과, 일자리 상실과,
레스토랑과 바닷가와 거리에서 누리던 일상생활의 종말입니다.
우리는 기다립니다. 절망 가운데, 최소한 깊은 실망 가운데,
그러나 다르게 기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한 믿음 속에 기다립니다.
우리는 간절히 바라며 기다립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하여, 절망에 맏서 기다립니다.
생명의 하느님이신 주님이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리면서, 다시 시작될 춤의 다음 동작을 연습합니다.
기다림은 오직 잠깐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긴 여정을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이 서로 사랑하는 하느님의 선한 미래 속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침묵을 이기실 것을 압니다.
그 침묵은 어둠에 불과하기에...생명의 주님께서 이기실 것입니다.
아멘.
저자는 거듭 강조합니다. 이 엄중한 시기, 지금은 모임을 자제할 순간입니다. 그저 침묵하고 성찰할 순간입니다. 오직 어리석은 사람들만 계속해서 모임을 지속해도 된다고 고집할 것입니다. 어떤 정신 나간 목회자는 예수님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진정한 목회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멍청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큰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승리자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인류 구원의 서막을 알리는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눈먼 토빗에게 파견되어 치유자 하느님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오늘 특별히 치유자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게 한 중재자로서 라파엘 대천사의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닌 라파엘 대천사가 눈먼 토빗의 치유에 큰 힘이 되었듯이, 지금 투병중인 우리 인류에게 큰 치유의 힘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는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세 대천사의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아 인간을 다시 하느님께 데려가기 위해 일하는 거룩한 일꾼들입니다. 천사들의 이끎을 잘 따라가면 천국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천국에서 파견받은 천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 파견된 악마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심부름꾼으로서 우리를 천국과 반대 방향으로 이끕니다.
만약 우리를 이끄는 힘이 천사의 힘인지, 악마의 힘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 결말은 심각하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천사일 수 있고, 어느 정도는 마귀일 수 있습니다.
영화 ‘사랑과 영혼’(1990)은 한 여인을 둔 두 남자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몰리’는 갑자기 남자친구인 ‘샘’을 잃습니다. 샘은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죽습니다. 하늘이 열리지만, 그는 울고 있는 연인을 두고 차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귀신의 모습으로라도 몰리 곁에 머물려 합니다.
그러던 중 샘은 자신의 친구이자 직장동료인 ‘칼’이 돈 문제 때문에 킬러를 고용해 자신을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몰리까지 차지하려 하는 것을 봅니다. 샘은 무언가 해야만 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심령술사인 ‘오다 매’를 찾아갑니다. ‘오다 매’는 샘의 일을 도와줍니다. 반면 샘을 죽인 킬러는 칼을 도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엔 오다 매와 킬러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천사일 수 있고 악마일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천사나 악마가 된 사람은 거의 없기에 두 모습이 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쨌든, 오다 매는 천국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킬러는 지옥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몰리는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천사인지, 누가 악마인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겉보기엔 감옥에 여러 번 다녀온 오다 매가 더 사기꾼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다 매를 통해 말하려는 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샘은 몰리가 오다 매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동전을 집어 올려 그녀의 손에 쥐여줍니다. 영화에서는 오다 매가 친구가 빼돌린 4백만 달러의 돈을 기부하게 만든 일이 나옵니다. 돈을 몰리의 손에 올려준다는 것은 저 나름대로 오다 매가 돈 때문에 그녀를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결말은 이 일로 몰리는 오다 매를 통해 샘을 만나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악한 무리는 죽어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천사와 악마, 천사의 일을 하는 사람과 악마의 일을 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점을 보러 무당을 찾아갔다고 합시다. 무당은 공짜로 굿을 해 주거나 점을 봐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의 목적은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복채를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영화에서 칼과 킬러는 모두 돈에 중독된 이들이었습니다. 돈이 아니면 어떠한 행동을 할 에너지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오다 매는 돈이 아닌 연민의 마음으로 샘의 목소리 역할을 합니다. 끝나도 마음의 따뜻함 외에는 얻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고 악마는 복채를 챙깁니다. 이것으로 내 주위에서 천사와 악마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이 나옵니다. 그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란 칭찬을 듣습니다. 순결한 사람이고 세속, 육신, 마귀의 욕구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은 그 당사자도 천사의 일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세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천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먼저 미카엘 이름의 뜻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입니다. 이름 뜻대로 미카엘은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돈, 쾌락, 교만이 아닌 청빈, 절제, 겸손의 길로 사람을 이끌고 있다면 미카엘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은 나의 힘”이란 뜻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보통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모님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준 이가 가브리엘입니다. 미카엘 대천사가 사람의 마음에 하느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면 가브리엘 천사는 그 하느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누군가에게 양식이 되어주고 또 누군가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잉태되게 하고 있다면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라는 이름을 가진 라파엘 대천사도 있습니다. 토비트서에 라파엘은 토비아와 함께 여정을 하며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치유해줍니다. 누군가의 옆에서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고 부축해주는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라파엘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세속의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유학을 다녀와서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강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교구에서 공부시켜 준 것이고, 또한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그 대가로 돈을 받기는 싫었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는데 거부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료를 많이 주는 쪽을 조금씩 선호하게 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돈을 적게 주면 왠지 하기가 싫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재물에 치우치는 욕심을 경계해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98년의 기억입니다. IMF의 거센 파도가 밀려 올 때입니다. 많은 기업이 파산하였고,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인 직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 파도를 온 몸으로 맞아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민도, 국가도 갈 길을 몰라 방황하였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한국의 박세리 선수가 US 오픈 골프대회에서 극적으로 우승하였습니다.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어렵게 공을 살려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승하였습니다. 한국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을 하였습니다. 국가의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한국은 IMF라는 깊은 수렁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22년이 지났습니다. 저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파도를 잘 넘을 수 있었고, 가족들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2020년입니다. 코로나19라는 파도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K 방역으로 코로나19를 잘 막아내던 한국도 감염자가 늘어 또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면서 이웃과의 대화가 단절되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많은 사람이 생활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친 일상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신앙생활도 힘들어졌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에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2월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4관왕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영화가 가장 세계적인 영화가 되었습니다. 9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다이너마이트’가 미국의 노래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BTS의 음악성, 순수함, 진솔함, 메시지가 미국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22년 전 IMF의 파도를 잘 넘어갔듯이, 이번 코로나19의 위기도 함께하면 또한 넘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명을 지녔습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탄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을 일으켰을 때, ‘누가 감히 하느님처럼 구느냐?’라고 호통을 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교회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교회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권세’, ‘하느님께서 당신을 권세 있는 분으로 드러내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 무엇보다 즈가리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가브리엘인 저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원해서 정한 세례명은 아니지만 저는 가브리엘 세례명을 좋아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하얀 옷을 입고, 날개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박세리는 운동으로, 봉준호는 영화로, BTS는 음악으로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사람,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 옳고 그름을 알아 늘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날개가 없어도 천사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미사인가?
윤병훈 베드로 신부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1,51).
..... 저희도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한목소리로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나이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본격적으로 미사는 봉헌과 희생제사에 임한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이루신다. 희생제사는 믿는 이들에게 구원의 참제사를 이룬다. 하느님의 천사들과 성인들이 모여와 한목소리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한다. 이때 미사는 절정에 이르는 충만의 시간이 된다.
대천사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 천사들도 이 미사에 함께하는 장엄한 미사의 광경을 마음으로 그려 본다. 미사는 그래서 더욱 장엄한 찬양소리를 내며 드높여 진다. 이 시간을 주목하라. 알렐루야 송 못지 않게 ‘거룩하시도다’ 이어지는 주님의 영광 찬양노래는 우리를 주님께로 마음을 모으게 된다.
<천사의 일>
송영진 모세 신부님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2020. 9. 29. 화)(요한 1,47-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성(神性)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서 오르내린다는 말은, 천사들이 예수님의 시중을 든다, 또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원래 천사들은 하느님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하느님의 시중을 들고 하느님을 섬기는 존재인데(이사 6,2), 그 천사들이 예수님의 시중을 든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단식을 하셨을 때,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했지만 천사들은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태 4,1-11; 마르 1,12-13).
그 일을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한 것은 “예수님은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라고 신앙고백을 한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천사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히브 1,14).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사람들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드리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퍼센트 그대로 전하기 때문에, 천사의 말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천사가 사람에게 나타난 일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나타나신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18장의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보통 그런 경우는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났다고 표현하는데, 창세기 저자는 ‘천사’ 라는 표현을 생략하고 ‘주님’께서 나타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여기서 ‘천사들’은 하느님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나그네에게 사심 없이 호의와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 나그네가 하느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실천한 ‘사랑’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뵙게 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천사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이니, 우리가 하는 선교활동도 천사의 일을 하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교활동은 복음을(구원에 관한 하느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또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마태 9,37-38).
말씀을 전하는 일 외에도, 신앙인으로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것도 ‘천사의 일’을 하는 것이고,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천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 손’으로 가라고 지시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마태 10,10-11).”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당신의 일꾼을 먹이신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너희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마음 착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거든 그의 친절과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여라.” 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접대하는 그 ‘마음 착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먹이시려고 보내신 천사와 같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도 ‘천사의 일’이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기꺼이 맞아들여서 숙식을 제공하는 일도 ‘천사의 일’입니다. 두 일을 합해서 생각하면, 천사가 천사를 만나는 것이고, ‘천사의 일’이 ‘천사의 일’을 만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천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사탄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짝을 이룹니다. 사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인간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마귀 들린 것과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죄로 이어지지만, 마귀 들린 것은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의지를 빼앗기는 것이고, 그것은 몹쓸 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공관복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마르 1,32-34).”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과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같은 성격의 일입니다. 둘 다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마귀 들린 이들을 ‘어떻게’ 데리고 올 수 있었을까? 마귀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왔을까?
아니면 격렬하게 저항했을까? 저항했다면 어떻게 제압했을까? 어떻든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그 사람들은 ‘천사의 일’을 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요즘 뉴스에서 악마적인 증오심과 이기심과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죄와 악을 자주 봅니다.
그런 일들은 사탄이 옛날과 다름없이 아직도 여전히 집요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이 그런대로 돌아가는 것은 ‘천사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말씀을 전하고, 믿음을 증언하면서 더 많이 ‘천사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운데에 있는 ‘사탄’과 ‘사탄의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천사라는 명칭은 본성을 뜻하는 명칭이 아니고 직무를 뜻하는 명칭입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복음서에 대한 강론’에서 (Hom. 34,8-9: PL 76,1250-1251)
천사라는 명칭은 본성을 뜻하는 명칭이 아니고 직무를 뜻하는 명칭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거룩한 영들은 언제나 영들이지만 언제나 천사라고는 부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전하려 파견될 때에만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덜 중요한 것을 전하는 이들을 천사라 하고 중대한 사건들을 전하는 이들을 대천사라 일컫습니다.
따라서 동정 마리아께는 아무 천사나 파견되지 않고 대천사 가브리엘이 파견됩니다. 이와 같은 역할에 적합한 천사는, 가장 위대한 소식을 전해야 하는 만큼 천사들 중 가장 높은 등급에 속하는 천사여야 함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대천사들에게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십니다. 이는 그 이름으로써 그들에게 맡겨진 소임을 더 잘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 대한 관조로부터 비롯되는 지식으로 충만한 하늘의 거룩한 도읍에서는 천사들에게 있어선 그들을 식별하는 특별한 이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만 우리들에게 어떤 소임을 가지고 파견될 때에만 그 소임과 관련되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은가”라는 뜻이고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이며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입니다.
어떤 강력한 행위가 취해져야 할 때마다, 그 이름과 행동으로써,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을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미카엘이 소임을 받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교만으로 채워져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나의 보좌를 저 높은 하느님의 별들 위에 두고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고 외치면서 우리의 옛 원수가 일어날 때 그가 세말에 영원한 형벌을 받도록 대천사 미카엘이 파견되어 그와 투쟁했습니다. 요한은 묵시록에서 이 투쟁을 증언해 줍니다. “천사 미카엘이 그 용과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마리아께는 가브리엘이 파견됩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만국의 하느님이시고 전쟁에 능하신 분께서 세상에 오시어 겸손하게 나타나셨지만 “하느님의 권세”로써 높은 데 거처하는 악령들과 싸우게 되리라는 것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입니다. 실상 그는 그 치유의 직무를 통해서 토비아의 눈을 만지어 그의 눈에서 눈멀음의 어두움을 몰아내었습니다. 치유하러 파견된 이는 참으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이름을 지녀 마땅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대천사 축일인 오늘, 우리는 미사의 말씀에서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배웁니다.
복음에서는 나타나엘과 예수님의 만남 장면이 그려집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에게는 거짓이 없다."(요한 1,47)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받는다면 세상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은 불륜과 죄와 배반으로 부정해지기 전,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순결한 신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계약 상대로 불림 받아 주님과 약속을 나누던 그 순간의 이스라엘에게는 거짓도, 계산도, 속셈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신부, 그분 백성이 된 감사와 영광으로 충만한 상태였지요. 예수님은 나타나엘이 그런 순결함을 간직한 채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는 사람임을 보셨고 아셨습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나타나엘이 화답합니다. 한 쌍의 연인이 서로를 향해 사랑의 환성을 올리는 아가의 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서로는 서로를 알아보고 기쁨에 겨워 외칩니다. 티없이 순수한 바라봄과 알아봄, 그리고 확신의 순간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우리를 창세기의 한 대목으로 데려갑니다. 에사우를 피해 하란으로 가던 야곱의 꿈 이야기입니다.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 28,12)
야곱과 하느님을 잇는 층계는 사다리와 같습니다. 사람의 아들이시며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세상을 잇는 존재시지요. 그 위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천사는 메신저의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보호하지요.
"하느님 현존,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창세 28,16-17 참조)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 고백하였듯이,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하늘 계단의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고 하느님의 집입니다. 하늘의 문이기도 하고요.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 드러나신 하느님의 현존이시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며(요한 2,21 참조), 하늘의 문이십니다.(요한 10,9 참조) 그러므로 나타나엘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뿌리를 일깨우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이 만나는 환시 장면이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다니 7,10)
"연로하신 분"으로 표현되는 하느님 주변에 천사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시중들며 섬깁니다. 백만, 억만이라는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의미하지요.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다니 7,13)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인간 세상으로 치자면 황제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사람의 아들께 주어지고, 이제 온 세상 모든 민족이 사람의 아들을 섬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보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광경은 단순한 천사들 발현을 뛰어넘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현존을 보필하는 동시에 그분의 뜻을 품고 와서 전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있다면 그곳은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고 옥좌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는 이 지상의 고된 순례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전해지는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니, 우리는 천사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누군가에게 주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의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언감생심 어떻게 천사일 수 있느냐고요? 오늘 말씀에 그 답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입당송)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따르는 모든 신하들아"(복음 환호송)
천사는 첫째, 주님을 찬미하는 존재입니다. 둘째,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존재지요. 셋째, 천사는 그분 말씀을 따릅니다. 또 천사는 그분 뜻을 행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토록 부족하지만, 삶 안에서 주님께 찬미를 드리며 그분 말씀을 경청하고 따르면서, 주님 뜻을 행하면 감히 천사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약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천사를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는 오늘 되시길, 또 나에게 허락하신 가족, 이웃, 온 세상의 이름 모를 가난한 형제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천사로서 다가가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주는 그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니까요. 우리 모두의 축일을 축하드립니다.
대천사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저희를 온갖 위험에서 지켜 주시고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초월을 믿으면 대단해집니다.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님
천리안 시간 공간 초월자를 본 적 없고 예수님의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유튜브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미래학적 추리를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가톨릭은 예수님에 이르러 하느님 계획 알리는 예언자시대는 끝납니다.
그리고 예수님 전시대(BC) 예수님 후 시대(AD)로 서력기원만을 씁니다.
천지창조 때의 하느님말씀이신 예수님만이 인류 역사의 새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시작Α(알파)이며 마침Ω(오메가)라 하신 점 믿습니다.
천리안도 시공초월도 ΑΩ내에 들뿐 예수님은 영원세상의 조건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내 생각으로 가두려말고 초월자로 신앙하면 대단해집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천사들이다. -찬미와 심부름-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오늘은 참 아름답고 고마운 축일입니다. 바로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와 모든 거룩한 천사 축일입니다. 세상 한 복판에서 천사처럼 살아가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 세례명을 가진 참 많은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잠시 천사들에 대한 교회 공식 견해를 나눕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제1차 바티칸 공의회)하였지만, 천사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 대해 유권적 결정을 내린 적은 없습니다. 다만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 세 대천사 축일과 수호천사 기념일을 제정하여 천사 공경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도승 전례력에서는 대천사를 비롯한 수도천사 및 모든 거룩한 천사들을 오늘 경축합니다.
말 그대로 ‘천사들의 날’같은 기분 좋은 축일이요 우리 주변의 천사처럼 고마운 분들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날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로써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종종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천상의 메신저로 파견됩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성서에서도 자주 목격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 전반부가 바로 하느님 옥좌 주변을 가득 에워싸고 있는 천사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같았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감각의 대상인 이 세상과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일깨우며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포합니다. 천사들에 대한 교회의 견해를 개략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세 대천사를 통해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그대로 자비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존재들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이며,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합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즈카르야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이어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으로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며,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습니다.
이처럼 천사들 이름 말마디 마다 하느님이란 뜻의 ‘엘’이 따라 붙는 것을 통해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의 휘하에서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드러내는 실재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도 참 심오합니다. 제가 볼 때 나타나엘을 주님께 인도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는 그대로 천사였습니다. 마침 어제 본당 사제가 친구 신부를 저에게 안내했을 때 친구 신부의 순수함에 마음이 끌려 나타나엘 대신 친구 신부의 이름을 넣어 말씀 처방전을 써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오로 신부가 당신 쪽으로 가까이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 말씀이 생각나 써줬는데 바로 오늘 축일 복음임을 알고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이 복음을 강론할 때 마다 반드시 언급하는 이 대목입니다. 주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은 참사람과 참사람, 영혼과 영혼, 순수와 순수, 천사와 천사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참 나를 발견한 나타나엘에게는 그대로 평생 잊지 못할 구원체험이었을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우리 수도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이 롤모델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나타나엘의 하느님 찾는 갈망이 무르익어 순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선물처럼 주어진 만남이겠습니다. 천사같은 순수와 열정의 두분의 만남은 이어지는 나타나엘의 고백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천사처럼 순수한 영혼의 눈에 환히 드러난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자기의 신원을 알아 챈 예수님은 한껏 고무되어 나타나엘에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을 은밀히 예고해 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볼 것이다.”
그대로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하늘길이자 하늘문으로 계시됩니다. 바로 이 복음 말씀은 창세기의 야곱이 꿈에 본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을,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강생하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다리와 같고 사다리와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의 궁극의 사자로써 대천사들의 대천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갑니다. 그러니 제1독서 다니엘 예언서 후반부 말씀이 오늘 복음의 이런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됨을 봅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의 아버지께 이르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자 다리이자 사다리인 파스카의 예수님이 온 우주는 물론 인류역사의 중심이 되심에 대한 예언으로 점차 실현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천사들중의 천사가 예수님이십니다. 천사의 역할은 하느님 찬미와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입니다. 그러니 매일 평생 끊임없이 성당 제대 주변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 일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은 그대로 하느님의 천사들을 닮았습니다. 천사처럼 살다가 천사처럼 떠나신 바오로 수사님입니다.
비단 수도자들뿐 아니라 세상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 살아가는 모든 신자분들 역시 익명의 천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천사같은 역할을 새롭게 확인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화답송 후렴처럼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시편138,1ㄷ). 아멘.
<천사가 내려옵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하느님께서 땅으로 보내신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하느님과 땅의 하느님
사이에서 천사들이 노닙니다
천사들이 오르내리며 노니니
하늘은 땅이요 땅은 하늘입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땅의 하느님 사람의 아들을
닮은 사람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함께 하니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천사들과 함께하는 사람은
땅을 딛고 하늘을 품습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땅만 바라보는 사람은
천사들을 보지 못합니다
땅만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천사들을 거부하고 죽입니다
하늘 없이 땅도 없기에
하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땅에서도 죽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과 대화를 나누시며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천사를 생각할 때 전통적으로 날개가 달린 천사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렇게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는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그 직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면서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존재가 바로 천사라는 것입니다. 반면 악마는 천사가 하는 일과 정반대의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보다는 서로 인간적인 욕망을 채우게 하고 하느님과 인간을 단절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천사의 직무를 생각해 볼 때 그 직무는 사도의 직무와도 거의 흡사해 보입니다. 사도들은 바로 천사와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천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도로서 언제나 천사의 직무를 함께 수행하며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성령께 기도드립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함승수 신부님
오늘은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구약 성경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대체로 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세상에 개입하실 때 그분의 존재를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자(使者) 혹은 하느님의 사신(使臣)으로서의 인간세상에 파견되어 그분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권능’이란 뜻의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을 지닌 대천사는 나자렛에 사는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그녀의 삶에 하느님의 놀라운 힘이 작용하여 그녀를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되리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한편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의 ‘라파엘’이라는 이름을 지닌 대천사는 눈 먼 토빗에게 파견되어 그의 병을 낫게 함으로써 당신을 향한 원망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과 영혼을 사랑으로 치유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의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지닌 대천사는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파견되어 악을 물리치시고 당신 백성을 승리로 이끌고자 하시는 ‘구원자’ 하느님의 뜻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대천사 축일’을 통해 기념하고자 하는 것은 천사들 각각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천사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구원, 희망,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삶 속에서 그분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오늘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엘과 나누시는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어떤 마음가짐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이 필립보의 소개로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가 진실된 마음과 정성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아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하신 근거가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예수님 당시 ‘무화과 나무 그늘 아래’는 라삐들이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할 때에 자주 사용되는 장소였습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만 가지고 섣불리 그분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의 모습을 다 지켜보고 계셨음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따르려는 그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런 관대함과, 겉모습이 아닌 상대방의 진심을 꿰뚫어보시는 통찰력에 감동한 나타나엘이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순수한 믿음을 칭친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단순히 그에게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화려한 겉모습이나 대단한 기적을 보고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진심을 알아봐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보고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본 나타나엘의 모습을 칭찬하시면서, 그와 같이 순수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전해주시는 그분의 뜻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알려주신 것이지요.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현상이 아닌 본질을 볼 줄 아는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일으키시는 수많은 기적들 안에서 그분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천사 축일’을 지내는 것은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우진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은 천주교의 3대 대천사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 맞으신 모든 분들 축하드리면서 대천사를 닮은 사람이 되실 수 있도록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천주교에서는 천사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만, 자세한 사항이나 이름까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대천사 3명 이외에 이름부르는 것을 금하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는 선행을 베푼 사람들을, 특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을 천사라고 부릅니다. 따뜻한 마음을 천사의 마음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아 2가지를 생각하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믿어야 할 수 있습니다. 신뢰가 없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해 생각하고, 조금 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실천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이제는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요? 당연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실천이지요.
천사는 언제나 자신을 먼저 밝히기보다 하느님을 드러나게 밝히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3분의 대천사도 이름에 모두 하느님이 들어갑니다. 이름의 뜻도 매일미사에 잘 나와있듯이 하느님과 연결되며,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바로 우리가 이런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살아가며, 나만을 드러내기 보다는, 하느님을 먼저 드러내며 증거해야 합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하느님께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끔 소리소문없이 선행을 베푸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도움을 받게 된 이들에게 그는 천사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한 메신저입니다. 참으로 이 시대의 천사라고 할 수 있지요.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각자의 방법으로 삶 안에서 누군가에게, 특별히 어려운 이들에게 천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을 지켜보시는 하느님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또한 그 도움을 받은 이들 또한 얼마나 행복할까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의 실천으로 말이지요. 오늘 하루 그렇게 봉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
김효석 요셉 신부님
천사란 하느님을 모시고 살아가며,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천상적인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을 맡는데,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이런 천상적 존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세에서는 좀 낯설어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현세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천상적인 가치 혹은 그런 존재를 꿈꾸고, 그들에게 무언가 기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기대는 어린 시절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막연하게나마 우리 의식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천사가 정말로 있나 없나를 따져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고, 하느님의 보호하심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신앙의 표현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전달되기 위해 그 역할을 맡을 존재가 있고, 그것이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천사적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에 대한 교리는 하느님 사랑을 믿는 신앙이 그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나를 하느님께 가까이 가도록 도와주고 있는 천상의 천사들뿐 아니라 내 주변에 살고 있는 지상의 천사들을 기억합니다.
천사 같은 사람 <요한 1, 47-51> 9월 29일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님
천사는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을 보좌하고 하늘에서만 사는 존재로 알고 있지만,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세상 안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에도 “천사 같은 사람이다. 천사같이 살아야 한다.”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미전향 간첩으로 와서 자유를 얻고 많은 곳을 방문한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 사수동 수녀원을 방문한 느낌은 “저는 천사를 본 적은 없지만 있다면 저 수녀님들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노랫소리 듣고 더 놀랐습니다.” 하는 소리를 듣고 “천사이며, 천사의 소리가 그들을 통해 들려옵니다.”
착한 사람을 보면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자에게 천사 적 박사란 칭호를 주었습니다.
구약에는 천사의 발현이 자주 있었습니다. 미카엘 천사, 가브리엘 천사, 라파엘 천사로 규정되어 있지만 10월 2일은 수호천사 축일입니다. 수호천사는 각자 이름이 없지만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 천사, 베드로 천사, 요셉 천사, 각 사람을 따라다니는 천사가 있습니다. 천사를 “안젤로스”라고 부르고 심부름꾼이라 말합니다. 각 사람에게 따라 다니는 천사를 수호천사라고 배웠고, 그 수호천사에게 큰 도움을 받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원산 수녀원에서 수녀원 마당에 수호천사 학교를 만들어 나이 들어 초등학교 못 간 청년이나 어른을 모아 초등교육을 시키는 학교가 있었는데 오후에 학교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수녀원 들리면 수호천사 학생들과 어울려 놀면서 사랑받던 생각이 납니다.
천사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사제가 되어 첫 본당 신부로 구미에 갔는데, 1960년도 농촌이 가난하게 살 때였습니다. 성당 마당에 아침부터 중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10여 명 놀고 있어서 사정을 들어보니 돈이 없어서 중학교를 못 간 아이들이 많이 있다고 해서 수호천사 중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모아서 영어, 수학, 국어, 가사 등 중학교 과정을 시작하여 3년 운영했습니다. 구미에 공단이 들어오고 공단에 취업하려면 중학교 졸업장 있어야 한다기에 내가 졸업장 만들어 학생들에게 주어 취업도 했습니다. 돈이 없는 가정에서 중학교를 나와야 하는 사회구조에 따라 중학교 못 가는 학생이 없어 문을 닫았지만, 그 후 졸업생들의 소식은 중학교 정도의 실력으로 살아간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회도 천사 적 생각으로 사람을 돌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다른 이의 천사가 되어 살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을 돌보고 길을 인도하는 사람, 환자를 돌보는 사람, 하느님에게로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는 사람 모두가 천사입니다. 병원에서 병자를 돌보는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하지만, 저는 병자 옆에서 도와주는 간병사를 더 분명한 천사라고 합니다. 부모 이상으로 돌보는 간병사입니다. 저를 찾아와서 “무엇을 하면서 살까요?” 하면 “힘 있으면 간병사하세요.” 합니다. 참으로 병든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천사입니다. 천사로 살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천사는 하느님이 사람을 돌보라고 창조하셨다고 생각하고 그 의무를 사람을 통해 행하라고 하십니다. 나는 모든 이의 천사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천사가 되어 살아갑시다.
심홍보 베드로 신부님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 51)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삶이 중요하다.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린다.
하느님의 사랑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처음과 끝이
한결같다.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있을 수 없다.
대천사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는 알게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영원한 사랑이다.
사랑안에
대천사가 있다.
대천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향해 있다.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들을
더욱 충만하게 한다.
하느님의 뜻을
전달한다.
인간의
시간이 아닌
하느님의 시간임을
깨닫게한다.
사랑은 모든
시간을
아름답게 한다.
가장 강력한
사랑은
하느님 사랑뿐임을
대천사들은
우리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대천사들은
거룩해지는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거룩함을 통하여
성숙되고
성장하는 것이다.
사랑은
대천사들도
사람들도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한다.
하느님 사랑은
뜨겁고
변하지 않으며
언제나 한결같다.
사랑은
대천사들을 통해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랑은
거룩함을
지향한다.
하느님을
드러내는 삶이
거룩함이다.
거룩함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이다.
사랑은
대천사와 더불어
거룩한
사랑의 자녀가
되게한다.
사랑으로
빛나고
치유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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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고구마가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감자가 말합니다.
“저 옆에 있는 찹쌀떡을 봐. 뽀송뽀송하고 하얀 피부가 정말로 예쁘지 않니?”
그러자 질투심이 생긴 고구마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대꾸합니다.
“예쁘긴 뭐가 예뻐?”
이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던 찹쌀떡은 쑥스러워서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리를 뜨자 묻었던 하얀 밀가루가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떨어진 밀가루를 가리키면서 고구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봐~ 화장발이지.”
이 세상 삶에 이렇게 남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넘쳐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자신이 낮아지는 것은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지요. 따라서 자신이 높아지기 위한 노력을 더욱 더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쉬운 방법이 있어 보입니다. 바로 남을 억지로라도 낮추는 방법입니다. 남을 낮추면 낮출수록 그와 비교해서 자신은 높아진다고 생각하지요.
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서로가 경쟁자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친구에게 공부에 도움을 주면 그 친구가 나를 넘어서 등수가 올라갈 것이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공부할 때에는 남을 경쟁자로 생각하면서 철저히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이기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했을까요? 친구가 줄어들면서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남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삶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편견 없이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자신이 낮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오히려 행복한 삶을 우리들에게 가져다줍니다.
나타나엘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말씀하시지요.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는 나타나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게 되지요.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이지요. 대천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대천사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세상의 판단을 따르며 살지 않습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며, 하느님의 명령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흐름에 묻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철저히 하느님의 관점에서 살면서 하느님의 뜻과 명령에 충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나의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구겨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삶을 산다(신용묵).
62 양주 순교성지
경기도 북부 지역에 위치한 의정부교구의 순교성지는 ‘치명일기’의 기록에 의하면 병인박해(1866~1873) 때 3곳인 송도, 장단, 양주 관아가 있습니다. 이중에서 송도와 장단은 갈 수가 없는 곳이고, 양주 관아만 현재 갈 수 있는 곳이지요.
양주는 1801년 신유박해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으나 박해가 진정되고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70~90명 규모의 신앙공동체(교우촌)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이 양주에서는 다섯 분이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1866년 순교하신 김윤오 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 마리아, 박서방, 그리고 1868년 순교한 홍성원 아오스딩입니다. 김윤오 요한, 권 마르타, 김 마리아는 용인에서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셨고, 홍성원 아오스딩은 포천에서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양주에서 치명하셨습니다. 박서방은 양주 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는 지난 2008년 ‘경기 북부 지역과 한국 천주교’ 심포지엄을 통해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양주의 정확한 순교지를 찾았고, 성지터를 확보하여 2016년 5월 28일 교구장 이기헌 주교님의 집전으로 순교성지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현재 성지 개발 중이며 머지않아 성지 담당 사제가 임명되어 순례자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한 장소인 양주 관아는 양주 시에서 복원하여, 당시 관원들이 순교자들을 심문하며 고문을 했을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주소는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233이고, 이곳을 담당하는 순교자공경위원회의 연락처는 031-850-1497~8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천사가 되어줍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께서 왜 그와 나의 인연을 맺어주셨는지 생각해봅니다. 부모 자식이나 배우자, 형제나 친척, 같은 공동체 형제 자매나 한 직장 동료로 인연을 맺어주신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서로 경쟁하라고? 서로 이용하라고? 서로 견제하라고? 서로 다투라고? 서로 깎아 내리고 우위를 점하라고? 서로 각을 세우고 비판하라고? 서로 지켜보고 고발하라고?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 거칠고 험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면서 서로 의지하라고.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라고. 서로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라고. 서로 위로해 주라고. 서로 감싸 안아주라고. 서로를 성장시키라고. 서로를 구원에로 인도하라고.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주라고.
오늘 우리는 세 대천사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천사란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 개입하실때 매개역할을 수행하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자(使者), 하느님의 사신(使臣),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세 천사들은 그냥 천사가 아니라 대천사들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느님의 인류 구업 사업에 크게 협조한 영적 존재들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인류 구원의 서막을 알리는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눈먼 토빗에게 파견되어 치유자 하느님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큰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승리자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동료 인간들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한 가지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천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로 서로가 서로에게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오늘도 소리 소문 없이 대천사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날개없는 천사들을 만납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우리 시대 가슴 아픈 사람들의 절규와 호소의 현장에 묵묵히 함께 해주시는 동료사제들과 수도자들과 평신도들, 억울함에 하염 없이 뚝뚝 흘리는 그들의 굵은 눈물 방울을 말없이 닦아주는 그들은, 분명 이 시대 대천사들입니다.
자신도 힘겹고 어려우면서 명절 때만 되면, 사각지대 놓인 이웃들 위한 거금을 슬며시 놓아두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익명의 기부자들, 분명 이 시대 대천사들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 인간미 넘치는 세상, 사람 냄새나는 세상, 약자도 어깨 펴고 숨쉴 수 있는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세상을 건설하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 청춘과 인생을 바친 사람들, 분명 이 시대 대천사들입니다.
<천사처럼 되려면>
전삼용 요셉 신부님
전 태어나서 ‘천사 같다.’란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천사 같다.’란 말을 하면 참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2015년 현 교황님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뇌종양을 앓고 있던 한 살배기 지안나라는 여아의 머리에 입맞춤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기는 너무 큰 뇌종양을 앓고 있어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황님의 입맞춤이 있은 후, 2개월 뒤 지안나의 가족은 병원으로부터 기적 같은 전화를 받습니다. 재검 결과 뇌종양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5개월의 긴 화학 치료를 받은 뒤 기어 다니고, 스스로 먹고, 심지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만에 종양이 완전히 사라진 소녀는 이제 프리스쿨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 하나는 지안나를 교황님께 들어 올렸던 경호원의 이름이 지안나의 오빠 이름과 같은 도미니코였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호원은 지안나를 선택하여 교황님께 들어 올렸고 교황님이 입맞춤하게 했습니다. 그의 역할도 결코 작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사의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경호원 도미니코일 것입니다.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며 인간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천사가 자신이 하느님인척 자신만 바라보게 한다면 사탄일 것입니다. 천사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를 오가며 일하는 하느님의 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는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면서까지 하느님과 멀리 있는 사람을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다주려고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거의 성령께서 하시는 역할과 같습니다. 만약 그런 중개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도, 오늘 기념하는 세 대천사와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UN연설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세계적 보이그룹이 된 BTS가 미국 ABC 생방송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하였습니다. 그때 한 꼬마 팬이 무대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여자 꼬마아이는 BTS 멤버 중 하나인 지민에게 안기며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멤버 한명 한명씩 확인하더니 너무 기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 꼬마 팬이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생방송에 난입하게 된 책임은 방송 스탭에게 있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계속 울며 ‘지민... 지민...’을 외쳤고, 그러다가 노래를 다 따라 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스탭이 안타까워 아이를 들여보내 준 것입니다. 꼬마 팬은 지민에게 안겨 눈물을 터뜨렸고 지민은 따뜻이 꼬마를 안아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천사는 이렇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이어주려는 둘의 중간에 서야하고 둘 모두의 인정을 받아야합니다. 하느님께는 충실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외면을 당해서도 안 되고 사람들에게 인기는 있지만 본인도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과 인간, 모두에게 매력적인 이가 천사인 것입니다. 만약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려고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천사입니다. 선교하는 사람이 천사인 것입니다.
<천사가 내려옵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2018. 09. 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하느님께서 땅으로 보내신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하느님과 땅의 하느님
사이에서 천사들이 노닙니다
천사들이 오르내리며 노니니
하늘은 땅이요 땅은 하늘입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땅의 하느님 사람의 아들을
닮은 사람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함께 하니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천사들과 함께하는 사람은
땅을 딛고 하늘을 품습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땅만 바라보는 사람은
천사들을 보지 못합니다
땅만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천사들을 거부하고 죽입니다
하늘 없이 땅도 없기에
하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땅에서도 죽습니다.
천사의 직무
김기환 베드로 마리아 수사님
T.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알고 있는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내에서는 대천사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가장 높은 천사 쯤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총 9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9품은 이와 같습니다.
1품: 세라핌천사
2품: 케루빔천사
3품: 좌품천사
4품: 권품천사
5품: 능품천사
6품: 역품천사
7품: 주품천사
8품: 대천사(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
9품: 수호천사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은 천사는 존재자체를 두고서 천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는 직무 혹은 천사라고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라고 하는 존재는 존재자체가 천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 혹은 영적인 존재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존재들"이 "천사"라고 하는직무를 받게 되어서 "영적인 존재들"이 "천사"라고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와 "영적인 존재들"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할수 가 있는 것입니다.
"천사"는 부여받은 "직무"를 뜻하는 것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사라고 하는 존재는 "영적인 존재 혹은 영적인 존재들"인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어떤 나라에 외교관이 있다면 외교관은 나라로부터 부여받은 직무이고 외교관 이라고 하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외교관이 아니라 존재자체로서는 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교관이라는 직무와 직무를 부여받은 사람은 엄연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교관이라고 하는 직무를 부여받은 사람을 외교관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천사를 존재자체를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여받은 직무를 뜻하는 것이라면 천사의 직무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 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복음말씀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면 천사의 역할은 바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역할, 하늘과 땅을 연결 시켜주는 다리와도 같은 역할이 바로 천사의 직무를 받은 역할이라고 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부여받은 직무를 뜻하는 것이 라면 소위 말하는 영적인 존재들만이 이 직무를 받을 수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직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직무이고 천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의 역할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연결시켜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삶을 살아갈 때 땅에서부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 깨달아 실천하게 될 때에 우리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연결시켜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이들은 천사의 직무를 받아서 천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사의 직무는 영적인 존재들만이 받을 수 있는 직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는 보편적인 직무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천사의 역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알고 실천하는 천사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멘.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과 대화를 나누시며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천사는 어떤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그 직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면서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존재가 바로 천사라는 것입니다. 반면 악마는 천사가 하는 일과 정반대의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보다는 서로 인간적인 욕망을 채우게 하고 하느님과 인간을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때로는 그렇게 천사의 직무를 수행할 때가 있을 수 있고, 악마의 직무를 수행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사도들은 바로 천사와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천사의 직무를 수향할 수 있는 사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일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김기현 요한 신부님
필립 얀시라는 영성작가가 인도의 캘커타를 방문하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곳은 빈곤과 죽음, 그리고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문제들이 쌓여 있는 도시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데레사 수녀님과 다른 수녀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수녀님들의 헌신과 봉사가 가져온 결과를 바라보며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바로 평온함입니다. 아마 내가 그런 일을 했다면, 이런저런 일로 당황하고, 보도 자료를 후원자들에게 팩스로 보내고, 좀 더 도와달라고 요청하며, 안정제를 들이키고, 의기소침함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의 수녀님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녀님들의 평온함을 이해하려면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동이 트기에는 아직 이른 새벽 4시에 수녀님들은 일어납니다. 벨소리에 잠을 깬 수녀님들에게 ‘주님을 찬양하라.’ 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면 수녀님들은 ‘하느님께 감사하라.’ 는 말로 응답합니다. 얼마 뒤에 하얀 수녀복을 입은 수녀님들이 성당에 모이고, 처음 가난한 이를 돌보기 전까지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 사랑 안에 깊이 몰두합니다. 나는 캘커타에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집’을 운영하는 수녀님들에게서 당황하는 기색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관심과 연민만을 가지고 있었고, 미처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집착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일을 하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기도와 미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기도와 미사 안에 우리 영혼을 굳건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시편 저자도 그러한 체험을 하고 이런한 고백을 합니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은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우리가 성당에서 봉사하고 단체활동을 하고 행사를 진행하다보면, 관계 안에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쉬지 못해서 힘들고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상처받고 지친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생기를 얻지 못하면 어둡고 시무룩한 얼굴로 자기 단체에 출석만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하느님 안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열정과 변화 없이 늘 하던 대로 편한 대로 일하고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 단체 활동으로 지친 분들, 상처받고 갈등을 겪고 있는 분들, 하느님의 영광보다는 나의 영광을 생각하는 분들, 단체의 활성화보다는 나의 입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 그리고 불평과 불만이 많은 분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영혼에 생기를 얻고 힘을 얻어 평온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어제 팔당 유기농지에 다녀왔다.
가면서 약간 통통한 자매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남편에게 다이어트를 선언했더니, 남편이 무시하고 비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매님이 “내가 다이어트 성공하면 당신 차 버릴거야~”
그랬더니 남편이 이런 대답을 했다.
“다이어트 성공할 일 없으니, 평생 나랑 같이 살겠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방탄 소년단(BTS)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였습니다. 우리의 젊은이가 유엔 총회에서 연설한 것도 가슴 벅찬 일이지만, 그 내용이 더욱 가슴 벅차게 다가왔습니다. 24살의 청년은 어린 시절에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살이 되면서 심장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살았고, 다른 사람이 맞추어놓은 틀에 따라서 살았다고 합니다. 가슴의 심장은 식었고, 어린 시절의 꿈도 따라 식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청년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것은 음악이었다고 합니다. 음악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잘못하고, 실수하고, 두렵지만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나온 날의 나도,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나도 여전히 김남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잘못된 나의 선택도, 나의 실수도, 나의 두려움조차도 나라는 별을 더욱 밝게 하는 빛이 되리라 믿는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음악은 많은 이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이 두려움에서 용기를 얻었고, 절망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설을 마쳤습니다. “나의 이름은 김남준입니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기 바랍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천사 축일입니다. 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이고, 오늘은 저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을 좋아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성모님에게 나타나서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전하였습니다. 요셉 성인에게도 나타나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구원의 역사에 작은 돌을 하나 올려놓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비록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도 결코 천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얀 날개가 없어도, 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았어도,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면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천사입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으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적성성당에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컴퓨터를 사려고 했는데 비용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형제님께서 성당엘 찾아왔습니다. 성당 근처에서 군 복무를 하였다고 하면서 컴퓨터를 살 정도의 금액을 봉헌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성당엘 찾아오셔서 감사헌금을 봉헌해 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렸으며, 살아 움직이는 천사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다른 천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 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
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님
2018년9월29일 토요일 복음묵상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요한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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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진실에 가까울까 아니면 거짓에 가까울까?
진실과 거짓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진실이라는 거짓도, 거짓이라는 진실도 늘 가능할 수 있는 삶이다.
누구나 진실을 살 수 있고 거짓을 살 수 있다.
각자의 몫이고, 거짓에 대한 그 어떤 변명도 결국 비겁일 수밖에 없다.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과 노력이 크면 클수록 버거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삶 안에서는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이 삶 안에서는 거짓은 끝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은 마침내 끝이 온다는 진실이다.
진실과 거짓은 타인의 잣대에 의지할 수 없다.
사람들의 판결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안에 있는 진실과 거짓은 내가 가장 잘 알 일이다.
그리고 내 자신조차 잊고 있을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는 아신다.
그러니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내 자신과 하느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거짓이 없다 결코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진실하다고 굳이 말하려 하지 말라.
세상에 죄가 있고 그 안에 묶여 사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 끝날, 비로소 “진실하고자 참 많이 싸웠습니다.” 라는 고백이 가능하기를 희망한다.
천사같은 삶, -찬미, 봉사, 공부-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끝무렵에 맞이하는 참 기분 좋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오늘도 천사들과 함께 새벽 아침성무일도 초대송 후렴을 노래함으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천사들의 면전에서 어서 와 주께 조배드리세.”
우리 분도수도자들은 10월2일 수호천사 기념 미사를 봉헌하지 않고 오늘 대천사 축일에 모든 거룩한 천사 축일을 지냅니다. 하여 입당성가도 보호천사 293장을 불렀습니다.
-“주께서 보내 주신 하늘의 천사여/연약한 우리를 보호해 주소서 우리를 보호하는 수호천사여/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시고/늘 함께 하소서.”-
천사들의 존재는 그대로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를 보호하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주님 사랑의 표현이 천사들입니다. 바로 오늘 미사중 감사송 내용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천사들과 대천사들에게, 더없는 사랑과 존경을 드리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영광과 위엄을 끊임없이 찬미하며,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서 만물 위에 가장 드높으신 분임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끝기도때 마다 부르는 시편 다음 대목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요.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천사들이 손으로 널 떠받고 가리라.”
대축일 끝기도 다음 은혜로운 대목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평화 속에 보호하도록 당신의 거룩한 천사들을 보내 주시어, 주님의 축복이 우리 위에 항상 머물게 하소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를 보호하시는 천사들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수호천사와 수호성인의 보호를 받는 믿는 이들 하나 하나의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천사들과 함께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미카엘, 성 라파엘, 성 가브리엘 대천사들의 이름 뜻을 보면서 그대로 천사들은 하느님 중심의 존재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 하느님 같으랴?”는 미카엘 대천사, “하느님은 나의 힘”이라는 가브리엘 대천사,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라는 라파엘 대천사, 이름 마지막 하느님을 뜻하는 ‘엘’이라는 글자가 오로지 하느님 심부름꾼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바로 천사들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니 천사들의 임무는 크게 둘로 나뉘어 집니다. 하나는 하느님 찬미, 하나는 하느님 심부름, 그렇다면 믿는 이들 역시 천사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며 미사에 참석했다가 미사후 하느님의 사자로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들 모습이 흡사 천사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아니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천사같은 삶으로 만들어 줍니다.
눈만 열리면 하느님 중심의 찬미와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참으로 순수한 천사같은 형제자매들을 만납니다. 저에겐 어제 밤 늦게 귀원하는 원장수사를 공항에서 수도원으로 차량봉사한 수사님이 그대로 천사로 생각되고, 신부님을 병원에 시간 맞춰 차량봉사하는 자매님도 그대로 천사로 생각됩니다.
10여년 훨씬 넘어 매월 제 강론집을 편집, 복사, 제본해다 주는 자매님도, 10여년 훨씬 넘어 제 강론을 굿뉴스에 올려 주는 형제님도 저에겐 천사입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우리들은 착한 천사들을 만납니다. 알게 모르게 이런 천사들 덕분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천사처럼 살 수 있을까요? 사랑의 말씀공부, 사랑의 찬미, 사랑의 봉사가 하느님 중심의 마음 순수한 천사처럼 살게 합니다. 사랑과 마음의 순수는 함께 갑니다.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제1독서의 다니엘 예언자가 그 순수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한 눈에 나타나엘의 존재를 알아 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인간에 대한 이 이상의 찬사는 없습니다. 수도자는 물론 믿는 이들의 모범이 이런 참사람입니다. 참으로 순수한 나타나엘 역시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주님의 정체를 알아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참사람과 참사람의 참 축복된 만남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타나엘 역시 ‘엘’이라는 하느님을 뜻하는 말마디 돌림자가 같습니다.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 온 나타나엘입니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하느님 말씀 공부에 전념했던 순수의 사람, 나타나엘이었기에 주님의 인정을 받았고 주님의 진면목을 알아 봤으며, 더 큰 관상의 축복을 약속받는 나타나엘입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봉사, 말씀공부의 수행이 마음을 순수하게 하여 주님을 뵙게 되고 이어 천사같은 삶을 살게 함을 봅니다.
제1독서의 다니엘, 역시 ‘엘’자 돌림의 하느님 중심의 순수한 예언자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밤의 환시 속에서 사람의 아들을 봅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대로 사람의 아들, 파스카의 예수님의 교회를 통해,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천사들과 함께 당신을 찬미하는 우리 모두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시어 당신 사랑의 천사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주님, 저희가 천상양식으로 힘을 얻고 천사들의 보호를 받아, 언제나 구원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요한 1, 47-51(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고 있지만, 천사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 혹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의 학자들의 주장(그레고리오 대종의 천사직무론, 디오니시우스의 9품 천사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한 가지밖에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 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 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까? 그리고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만남의 신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사실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아 우리의 마음과 일상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싸우려면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신자가 아니더라도 종종 하느님의 선을 파괴하여 악으로 만들려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악마와 같다거나 악마라고 하는데, 교회는 하느님의 선을 파괴하고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막는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고 그런 존재를 악마 또는 사탄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하늘에서는 하느님을 섬기고 땅에서는 우리를 보살피는 영적인 존재 또한 있다고 교회는 믿는데 이런 존재를 천사라고 하고 그 대표적인 천사들이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대천사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천사와 인간의 임무를 오묘히 나누어 맡기셨으니 하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들이 이 땅에서 저희 삶을 보살피게 하소서.”
그런데 오늘 묵시록은 이 대천사 중에서 미카엘을 특별히 얘기합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악마란 악령에 힘입어 하느님의 선을 악으로 만드는 존재요 세력이라면 천사란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의 선을 선으로 보존하는 존재요 세력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당연히 악마와 천사 사이에는 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여 내 생각대로 고치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반대로 참으로 틀린 것이 있다면 고쳐줘야 하는 것처럼 내가 싫다고 악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을 악마라고 하며 싸워서는 안 되지만 참으로 하느님의 선을 파괴하고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막는 그런 존재나 세력이 있다면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가 악령과 맞서 싸우셨고 공생활 내내 복음 선포와 함께 악령을 추방하시고, 그제 복음에서 봤듯이 복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악령을 쫓아낼 힘과 권한을 제자들에게도 주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을 하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 힘을 받는 것이 기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청원기도를 좋지 않거나 저급의 기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청할 때 다른 것을 청하기보다 이런 힘을 청하는 것이 좋은 청원기도이고, 기도 안에서 이런 힘을 얻는 것이 옳은 관상기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안 계실 때 사람들이 악령 들린 사람을 데리고 와 제자들에게 그 악령을 쫓아내달라고 하였지만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했고, 그래서 제자들이 왜 자기들은 쫓아낼 수 없었느냐고 나중에 따로 묻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고 답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주님 위에 오르내렸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도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우리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우리가 기도 안에서 보고 체험하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길 위에서
이종훈 신부님
천사들은 사람들을 돕는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도와준다. 예수님도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셨으니(마태 4,6; 요한 1,21) 우리가 그들의 도움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모든 것을 당신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청원대로 되지 않으면 화내고 원망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린다. 그렇다면 순교와 예수님의 희생은 하느님의 실패고 천사의 존재와 임무는 거짓말이다.
하느님은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지치고 절망하는 엘리야에게 밥을 먹여 그가 당신 계신 산으로 걸어가게 도와주셨듯이(1열왕 19,5-8),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여 끝까지 하느님의 길을 가게 하신다. 그래서일까, 이콘의 천사들은 나팔이나 하프 같은 악기가 아니라 십자가, 창 등의 수난의 도구들을 들고 있다.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이 걷게 될 길을 예고해준다.
고통을 반기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악인도 고통을 당한다. 그러니 어짜피 받을 고통이라면 선하고 의로운 길 위에서 받는 것이 낫다. 그래야 천사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약속하신 것은 그들이 당신과 함께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루카 22,28).”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우리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피를 받아 자라나보다.
심홍보 베드로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우리 본당의 미쉘 수녀님 축일이기도 합니다. 수녀님, 축하드립니다. 대천사 축일을 지내는 여러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언젠가 브라질의 까마라 대주교님께서 자신은 왼쪽 어깨에 수호천사가 함께하고 계심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적이 있습니다.
무심코 생각해 봅니다.
내 수호천사는 나로 인하여 눈코 뜰 수 없을 정도로 바쁘실까 아니면 한가하실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 하느님을 만나고 그 분 안에 머물기를 갈망하기에 내 수호천사가 나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 연결시켜 주시기 위해 바쁘시기를!
내가 주 예수님의 말씀에 목말라하고 그 말씀을 내 일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애타하기에 내 수호천사가 내 안에 주 성령께서 임하시게하기 위해 바쁘시기를!
내가 주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시작하신 하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열절이 불타오르기에 내 수호천사가 나를 구원해주실 주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해 바쁘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천사를 보는 사람 <요한 1, 47-51>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님
작은 것을 보고 믿음을 고백하는 나타나엘을 보고 주님과 천사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천사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 저는 80년 동안 믿음을 살고 있었지만 천사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축일을 지내는 천사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존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으며 천사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악마와 싸우는 천사가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천사가 있어야 하며, 하느님 옆에서 시중들고 섬기는 천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라의 장관들 이름도 모르고 본 일도 없지만 한 나라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장관들이 있어서 여러 분야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천사의 역할을 사람들에게 위임하셔서 세상에서 볼 수 있도록 마련하셨습니다. 저는 수도원에서 상담을 주로 하는데 저 자신이 천사도 되고 천사를 만나기도 합니다. 악마와 시달리는 사람에게 악마의 세력을 물리쳐 주기도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어 자신의 사명을 깨우쳐 주기도 하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봉사하고 섬기고 나누며 친교를 맺으며 일치의 삶을 살도록 천사의 역할을 합니다. 상담 중 저는 가끔 이 말은 제 말이 제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이라고 전해줍니다. 2시간에서 3시간 상담하면서 아무것도 준비된 말이나 그 부분에 특별한 공부나 연구나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때그때 필요한 말을 하도록 이끄는 성령의 소리를 듣고 전해주는 천사 역할만 합니다.
어떤 때는 천사를 만나 하느님의 소리를 전해 듣기도 합니다. 믿음이나 신앙생활을 수준 이상으로 하거나 하느님의 체험이 강한 사람들이 상담을 청하면 저는 그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받고 서로 영적 삶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루는 “신부님! 저는 10년 전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느 성지에서 미사 중 나타나셔서 ‘나의 작은 십자가를 지어라’ 하시기에 ‘네, 지겠습니다.’ 응답했습니다. 30일 피정을 하면서 또 주님이 얼굴만 보이면서 나타나셔서 ‘자비의 기도를 하여라’ 하셔서 6년 동안 혼자서 하다가 3년 전부터 작은 기도 모임을 하면서 기도하는데 애로가 많이 있습니다.”고 하기에 절차상의 문제를 권고했습니다. 앞으로 기도 모임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를 하느님은 저를 통해 전해주라고 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천사 이상의 모습을 보고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천사 축일 ‘나는 얼마나 믿음이 있어야 천사를 볼 수 있겠나?’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천사로 보일 때 당신의 믿음은 나타나엘보다 더한 믿음을 살게 됩니다. 만나는 사람 안에 천사의 모습을 보고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 <그분과의 대화는 저녁 기도도 못 하고 3시부터 7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김연희마리아 수녀님
예수님께서는 영적 존재인 천사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며 사탄의 꾀임에 빠지지 않도록 돕고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기도 하고, 기쁜 소식을 알리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어린시절부터 늘 오른쪽 어깨에 천사가 앉아 있어서 ~
내가 나쁜 꾀임에 빠지려 하면 '안돼'하고 일깨워주고 어두운 길을 갈때 두려움에 떨면 '내가 지켜줄께' 하며 친구가 되어주는 천사가 있어 든든했습니다.
어른이 되서도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살때 천사를 보게 되지요.
마음이 탁하면 천사가 옆에서 나를 도우려해도 내치는 순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맑은 물에 세수하며 마음의 눈을 뜨고 거울 앞에 서서 오늘 천사가 될 준비를 하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주위를 환하게 비춰주는 당신이 바로 천사 ^-^입니다ㆍ
천사, 하느님 사랑의 표지
이종경 신부님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성가가 있습니다. 제목만으로도 마음에 감동을 줍니다.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 영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성모님께서 기도해주십니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도 그렇습니다. 그뿐 아니라 천사들도 우리를 도와줍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일꾼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창조된 영적 존재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돕고자 천사들도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드러내는 존재들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며 악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예고에서처럼 하느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병으로 고통받는 이와 여행하는 이를 돌보아줍니다. 천사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직무에 충실하며 우리의 구원을 돕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자녀가 먼 여행을 떠날 때, 부모님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도움을 줍니다. 자녀가 힘들고 지치는 여행길에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부모님의 손길을 발견할 때, 그 사랑에 감동합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천사들은 그 존재 자체로 하느님의 애틋한 사랑을 알려줍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 51)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느님의
모든 창조는
아름다운 섭리와
질서로 드러납니다.
영적여정으로
불리움 받은
우리의 삶입니다.
가장 높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부터
가장 낮은 땅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은
간절하며
아름답습니다.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대천사가
있습니다.
악이 아닌 선이
승리함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대천사는
분명 존재합니다.
아픈 삶을 치유하시어
건강한 영혼으로 다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시는 하느님의
대천사가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통해
우리의 삶은 희망을
되찾게됩니다.
이와같이
대천사의 역할은
가장 좋으신 하느님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아름다운 직분을
맡은 분들입니다.
우리또한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영적 여정이
참된 힘과 참된 겸손
참된 기쁨으로 새로이
채워지길 기도드립니다.
대천사들이시여
매일의 여정에
충실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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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에 유대인 절멸을 위해 지어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수용소에서 자그마치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해되었지요. 그런데 이 수용소에서 성탄과 새해 사이가 되면 사망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나치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혹한 노동조건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갑작스러운 전염병이 돌았기 때문일까요? 살해된 것도 아니고, 병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힘을 잃고 자리에 누워서 죽어갔답니다.
‘성탄이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새해가 되면 풀려나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용소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성탄이나 새해가 되면 풀려나갈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만들었던 것이고, 이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자 생체시계 조차 멈춰버린 것이지요.
희망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절망으로 변할 수 있는 희망은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희망은 전혀 변할 수 없는 가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절망으로 급변할 수 있는 희망을 쫓고 있습니다.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을 말이지요.
그렇다면 진정으로 변하지 않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주님께서는 당신께만 희망을 두라고 하십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분으로 참 희망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이라고 하지요. 이 뜻에 맞춰서 대천사들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로서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곧 희망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나타나엘은 사실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자렛’이라는 촌구석에서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립보의 제안을 따라 예수님을 보는 순간, 이 분이야 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을 모두 꿰뚫어 보고 계셨기 때문이었지요.
우리를 모두 꿰뚫어 보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을 당연히 주님께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천사들까지 파견하시지 않습니까?
어디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까? 절망으로 변할 수 있는 희망이 아니라, 절대로 변하지 않는 희망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이야 말로 진정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오늘의 명언: 희망은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보다 우세한지 계산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란 그저 행동하겠다는 선택이다(안나 라페).
희망을 품어야 인생이 즐거워집니다.(최규상의 아침편지 중에서)
한 젊은이가 지혜로운 노인에게 물었지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노인의 대답은 딱 한마디!
“응.. 인생이 딱 한 번인 것처럼 살아.”
힘들어도 한 평생. 즐거워도 한 평생. 결국은 늘 선택의 문제. 그런데 적당히 살아보니... 삶이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더군요. 조금 아프고 불편하고 불만족스럽다고, 냅다 "내 인생은 불행해"라고 하지 않고, 그 아픔 속에서 희망을 키워내는 것.
목련꽃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꽃봉오리 하나씩 희망을 키워가며 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들은 겨울을 단순히 버티는 게 아니라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희망하나 품어야 딱 한번뿐인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하느님의 일을 거들고 행하는 천사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
천사들은 주님의 계획을 알리고 그분의 명령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서 인간의 구원에 관여합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께 봉사하며(다니 7,9-10.13-14), 교회가 악의 세력에 맞서 펼치는 싸움에 간여합니다(묵시 12,7-12ㄱ). 천사들은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며 사람의 아들이 누구이신지를 사람들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일품 제후 천사들 가운데 하나로서 하느님을 도와 페르시아의 제후 천사에 맞섭니다(다니 10,13.21). 마지막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자로 나서고(다니 12,1), 종말의 큰 싸움에서 사탄에게 승리합니다(묵시 12,7 이하). 하느님께서 당신 외에 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시려고 강력한 행위를 취하실 때에 파견되는 천사가 바로 미카엘 대천사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전령사입니다. 이 천사는 신약성서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루카 1,11-17)과 예수님의 탄생(루카 1,26-38)을 알립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파견된 것은 “만군의 하느님이시고 전쟁에 능하신 분께서 세상에 오시어 겸손하게 나타나셨지만 ‘하느님의 권세’로써 높은데 거처하는 악령들과 싸우게 되리라는 것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한편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의 이름을 갖는 라파엘 대천사는 그 치유의 직무를 통해서 토비아의 눈을 만지어 그의 눈에서 눈멀음의 어두움을 몰아냈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전하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 봉사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바로 라파엘 대천사입니다.
어떻게 이 축일을 뜻 깊게 지내야 할까요? 이 축일에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과 세상사에 깊이 개입하심을 알아차려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의 영원 생명과 구원에 간여하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을 믿고, 그분의 사랑의 표지를 볼 수 있는 열린 마음과 겸손한 경청, 그리고 깨어있는 영적 자세를 갖춰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미카엘 대천사를 통하여 당신의 강한 권능을 보여주시고, 가브리엘 대천사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알려주시며, 라파엘 대천사를 통하여 온갖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이지요. 그 사랑의 손길에 감사드리며, 확고한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길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아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일꾼이요 중재자인 천사와 같이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디에서든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키고 기꺼이 응답해야겠지요. 또한 가브리엘 대천사처럼 언제든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데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를 치유하시어 당신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을 드러내고, 생명의 문화가 확산되도록 자신을 내놓아야겠습니다. 당신 외아들의 생명을 건네시어 우리를 살리신 주님의 그 생명의 축제에 모든 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부터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꿔가야겠지요.
천사 같더라.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님
선행, 미담, 희생.......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한 행동을 보고 아름다움 이야기를 듣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만날 때 기쁘고 그 이야기만 전해 들어도 마음은 감사가 넘치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 사람은 ‘천사 같다’는 표현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미담이 사라지고 희생이 어리석은 일인 줄 폄하되고 있는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천사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생명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세상에 천사가 되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아낌없는 희생이며 봉사이며 철두철미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잊고 맨날 맨날 나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해 줄 천사를 기다립니다. 주님의 뜻이 자꾸만 꼬이고 얽히는 이유라 믿습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자기 한 몸의 영화를 위해서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영예와 부귀와 존경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올랐으니 전혀 남부럽지 않고 누구보다 편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흥청망청 세상의 즐거움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묻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나서서 회개하며 지냈습니다. 한 마디로 선하신 하느님 앞에 ‘죄인의 대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재상임에도 늘 “단식하고 자루 옷을 두르고 재를 쓴 채, 기도와 간청으로 탄원”(다니 9,3) 하였던 까닭이었지요.
이러한 다니엘 예언자의 모습이 하느님께 얼마나 기쁘셨는지 “가브리엘이라는 이가 저녁 예물을 바칠 때 빨리 날아서”(9,21) 다니엘에게 하느님의 응답을 전하게 하시며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고 고백해 주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천사 같은 사람을 기뻐합니다. 천사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천사 같은 행동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기 원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세상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고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고대하고 계신 것이라 믿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천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되어 천사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내 기도에 내 영혼에 내 삶에 천사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고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돕고 낫게 하고 위로하는 천사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깁니다.
그들의 안녕을 원할 뿐 아니라 발 벗고 나서서 희생하고 더 사랑함으로 그리스도인은 정말 ‘천사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천사처럼 행하고 천사가 되어 도와야 할 일은 널려 있습니다. 이 땅에는 천사 같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우리 모두, 천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천사되어 줄 때 “그분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선택되리라 믿습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어머니와 함께 아버님이 계시는 비봉추모공원엘 다녀왔습니다. 외곽순환도로에서 길은 정체되었고, 옆에 가던 차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도 아니었고, 보험회사 직원들이 와서 일은 처리가 되었습니다.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은 차량의 전방과 후방이 녹화되는 블랙박스였습니다. 블랙박스는 저희를 도와주는 천사와 같았습니다. 말은 서로의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녹화된 영상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보험회사 직원들은 영상을 보면서 서로의 책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이 있다면 차량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차량을 옮기지 않으면 교통의 흐름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벌레는 땅위를 기어 다닙니다. 하지만 애벌레가 죽을 것 같은 순간을 견디어내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가 됩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애벌레가 일상의 삶에 만족했다면, 변화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애벌레는 평생 하늘을 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일상의 삶에 안주한다면,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땅 위에서 살수는 있지만 영적인 세상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날개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일상의 삶을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추구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예수님과 시몬의 첫 만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몬은 어부였습니다. 갈랠래아 호수는 시몬에게는 안마당과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물을 던져왔기 때문에 시몬이 고기를 못 잡았다는 것은 고기가 없는 것이지 시몬의 실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시몬은 깊은 곳으로 그물을 던졌고,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블랙박스가 모든 상황을 녹화하고 있었듯이,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차원으로 시몬을 인도하십니다. ‘이제 당신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시몬은 영적인 날개를 달 수 있었고, 이제 그의 이름은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저의 형제들은 모두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큰 형님은 9월에 태어나서 미카엘, 작은 형님은 12월에 태어나서 사도요한, 동생은 10월에 태어나서 프란치스카입니다. 그런데 저는 5월에 태어났습니다. 5월이면 마티아로 정하셨을 것 같은데 부모님께서는 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로 정해 주셨습니다. 제가 원해서 정한 세례명은 아니지만 저는 가브리엘 세례명을 좋아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하얀 옷을 입고, 날개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보면 천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야곱에게 나타나서 씨름을 하였습니다. 토비야에게 나타나서 길을 안내 하였습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천사는 이렇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요셉의원을 개원해서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무료로 진료를 해 주신 고 선우경식 선생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들에게, 길에서 잠을 자야하는 노숙자들에게는 천사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꽃동네를 만들어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고, 먹을 것을 마련해준 오웅진 신부님 역시 집 없는 이들에게, 버림받은 이들에게 천사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다 한번, 잠시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천사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헌혈을 하는 사람,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 먼 길 가는 이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람,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모두 천사입니다. 우리들 역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영적인 사람, 천사들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1,51)
김종오 신부님
천사들은 물질적 형상은 없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천사들 가운데에 하느님의 뜻을 체현하는 특별한 이들을 대천라고 부르는데, 교회는 다른 천사들의 이름은 금하고 있지만,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미카엘 대천사, 성 가브리엘 대천사 그리고 성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특별히 부르고 있습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 같으랴’는 뜻으로, 이 말은 천국에서 미카엘 대천사가 사탄들과 맞서 싸울 때 외쳤던 말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미카엘 대천사는 사탄과 맞서는 천사요 ‘하느님 백성의 보호자인 대 제후 천사’ (다니엘서 10,13이하) 입니다.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이라는 뜻으로, 구약에서는 예언자 다니엘이 체험한 환시의 의미를 알려주었고, 신약에서는 즈가리야와 성모마리아에게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준 천사입니다.
성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뜻으로 요한 복음(5.1-4)에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에 등장하는 치유의 천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영적 존재인 대천사 미카엘은 우리를 도와 ‘사탄과 맞서 싸워주고’, 가브리엘은 ‘하느님 힘’이 우리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 깨우쳐주며, 라파엘은 우리를 전인적이고 온전한 존재로 치유가 되도록 도와줍니다.
하느님의 뜻을 일깨워주고 그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대천사들은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대천사들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믿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주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믿는 만큼 그 특별한 선물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천사天使같은 삶, -하느님 찬미와 심부름꾼의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화답송 후렴이 위로와 힘을 줍니다. 천사들 앞에서의 삶은 바로 하느님 앞에서의 삶을 뜻합니다. 천사들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며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사실 미사전례 안에서 교회는 천사들과 하나되어, 하느님을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하고 찬미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존재이자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들입니다. 오늘 다니엘서에서도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존재로 드러납니다.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바로 하느님곁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시중드는 이들이 천사들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이고,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으로 모두가 하느님과 직결됩니다.
그대로 하느님은 천사들의 존재이유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상징하는 천사들입니다. 하느님은 천사들을 통해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언젠가 캐나다 뱅쿠버 교포성당에서 피정지도시 발타살 형제로부터 두 남동생의 이름이 멜키올, 가스팔이라는 말을 듣고 동방박사 세분의 작명이 참 좋다라는 생각을 잊지 못합니다. 혹시 아들 셋을 둔 분이 있다면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로 작명해도 참 은혜롭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대천사같은 자녀들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지요.
천사는 본성이 아니라 직무를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창조 때부터 구원역사의 흐름을 따라, 줄곧 이 구원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알리고, 이 구원계획의 실현을 위해 봉사합니다.
교회는 삶의 모든 면에서 천사들의 신비하고 능력있는 도움을 받습니다. 사람은 일생동안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의 보호와 전구로 도움을 받습니다. 바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 세계의 중심이십니다. 천사들은 모두 그분께 속합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의 생애는 강생부터 승천까지 천사들의 경배와 봉사에 싸여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과 천사들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보여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을 통해 활짝 열린 하늘길이요 하늘문임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며 누가 이런 천사들을 감지할 수 있겠으며 천사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 같은 사람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주님께서 찬탄하신 나타나엘의 진실하고 순수한 내면입니다. 이런 순수한 이들이 천사같은 존재로 천사의 존재를 감지합니다.
주님 역시 이런 이들에게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라 하며 참행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마음 순수한 이들은 저절로 하느님 찬미에 전념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심부름꾼 직무에 충실하니 그대로 천사들 역할입니다. 찬미의 기쁨으로, 하느님의 심부름하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천사같은 삶이라면 참 아름답고 향기로울 것입니다.
이런 천사같은 이들이 교회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합니다. 이런 이들의 무사無私한 삶자체가 축복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천사들과 함께 당신을 찬미하는 우리 모두에게 한량없는 은총을 내려 주시어 천사같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자작 좌우명 애송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한 연을 나눕니다.
이렇게 살 때 바로 천사같은 삶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일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이 시대 천사(天使)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교회 역사 안에서 천사(天使)들의 존재는 교부들과 신학자들 사이에서 잦은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애매모호함으로 인해 명쾌한 설명이나 해석이 힘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천사들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서는 신구약 성경 몇군데에 드러나고 있는데, 대체로 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 개입하실때 매개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자(使者), 하느님의 사신(使臣),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편에 서 있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합니다. 더불어 하느님의 명으로 인간 세상에 파견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합니다.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인간에게 알려줍니다.
‘하느님의 권능’이란 이름의 의미를 지닌 대천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파견됩니다. 그녀의 삶에 개입함을 통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든 인류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닌 라파엘 대천사는 눈먼 토빗에게 파견됩니다. 그의 병을 낫게 함을 통해 인류의 치유자이신 사랑의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하느님 같은가?’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닌 미카엘 대천사는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악을 물리치시는 승리의 하느님 이미지를 전달했습니다.
척박한 이 세상살이지만 가끔씩 천사의 모습을 지닌 동료 인간들을 만납니다. 말투나 사고 방식, 행동 하나 하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솔직히 세상의 좋은 것에 죽고 그리스도 안에 살겠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이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한 우리 수도자들, 사제들은 신원의 속성상, 맡고 있는 직무에 따르면 천사의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커녕, 평범한 한 인간 존재로서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도리에도 소홀하고, 자기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서민경제의 급격한 악화로 월 몇만원 안되는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생계형 체납자' 가구수가 200만 가구에 육박한답니다. 보편의료복지를 추구하는 이 시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5월, 20대 쌍둥이 형제가 한 달에 4만원이 조금 넘는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할 만큼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이들에게서 17개월분의 건강보험료 70만원에 대한 독촉장이 발견되었습니다.
극단적 가난으로 인해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소위 ‘차상위계층’의 서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체납보험료에 대한 면제혜택을 주기 위해 발벗고 나선 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 시대 또 다른 천사들이십니다.
지나친 자녀교육비 지출로 인해 허리가 휘청거리는 이땅의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 지자체가 뛰고 있습니다. 관내 고등학생들에 대한 교복 무상지급을 위한 예산을 편성해서 시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재원 마련을 위해서 지자체는 백방으로 뛰었답니다. 의미없는 지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지요. 고액체납자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밀린 세금을 징수했고, 관급 공사 과정에 투명성을 확보해 엉뚱한 지출도 최소화했답니다.
그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그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반대표를 행사하는 의원들을 보며 할 말을 잃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통과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시는 분들, 분명 이 시대 천사들이십니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고 있지만, 천사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 혹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의 학자들의 주장(그레고리오 대종의 천사직무론, 디오니시우스의 9품 천사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한 가지밖에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대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까?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만남의 신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사실 하늘은 이미 열려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아 우리의 마음과 일상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천사
최원석
예전에 레지오 마리아 활동할때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레지오에서는 일년에 두번은 수호 천사놀이를 합니다. 단원이 10명이면 각자의 이름을 접어서 올려 놓으면 카드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가 뽑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이 나의 기도 대상이 되어서 늘 함께 그분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서 기도하는 행사였습니다. 성탄과 부활을 맞이하여서 항상 해온 행사였지요 기도하고 그리고 성탄절이나 부활절이 되면 각자에게 선물을 하여줍니다.. 그리고 레지오 회합중에는 그 대상자를 위하여서 자신이 무엇을 하였는지 활동 보고시간에 보고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서 묵묵히 기도하여주고 잘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이 3분의 천사들의 축일이라고 합니다. 치유하는 천사 라파엘, 악마와 싸우는 미카엘, 주님의 탄생을 성모님에게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축일입니다. 하느님의 조력자이지요.. 여기서 어떤 천사를 닮고 싶으세요 ? 모두 하나씩은 닮고 싶습니다.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라파엘 천사 같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정의를 위하여서 악과 싸우는 미카엘 천사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을 전하여 주는 가브리엘 천사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빛의 조력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천사들의 임무인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들의 삶의 표상인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진리를 위하여서 싸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이 바라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헌신한다는 것? 누군가를 위하여서 헌신한다는 것.. 진리와 사랑, 파견이라는 것을 대표하는 천사들 .. 그분들의 이런 모습속에는 나의 것은 없이 오직 진리, 사랑 & 파견과 같은 그 로고스만이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곳을 향하여 가는 모습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그런 소명이 있을 것입니다. 천사가 천사로서 역할을 할수 있었던 것은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닌 진리, 사랑, 좋은 소식을 전하는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기에 천사로서 축일을 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의 소명을 보아야겠습니다..주님이 나에게 부여하신 소명은 무엇인가 ? 귀와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의 목소리를 들어야겠습니다..요한아!! 누구누구야!!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바를 나의 몸으로 실행해 내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에 맞는 빛깔을 낼수 있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빛내는 것이 아닌 주님의 빛이 내 몸에 투영이 되어서 나의 고유한 빛깔을 낼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소명을 찾고 그 안에서 행복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김명겸 신부님
모세를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하느님과 직접 대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다른 구절이 이야기 하듯,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천사들의 모습도, 하느님의 뜻을 당신 아들에게 전하는 모습입니다.
예언자나 천사들 혹은 다른 다양한 통로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더 잘 드러내시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려는 이유도 사랑이며,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도 사랑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이토록 다양한 것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갈 때, 우리 또한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고, 천사들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품을 수 있는 하루 되시기들 기도드립니다.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9, 51)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사랑은
나누는
기쁨입니다.
우리를 영원하신
하느님께로
안내하는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합니다.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사랑과 믿음
희망의 하느님을
만나게됩니다.
선택해야 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생생한 우리의
생활속에서도
기쁜소식이 있음을
알게합니다.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에게
다시 하느님을
향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하느님을
향하여있기에
대천사는 더욱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 또한
영원한 하느님만을
지향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천사
축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만나는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천사들처럼
가장 행복한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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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을 가장 큰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맞는 것 같습니까? 실제로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고생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종종 자녀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신부님, 제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아세요? 그렇게 집이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공부 다 시키고, 필요한 것은 다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부모를 만나러 오지도 않아요. 어쩌면 이럴 수가 있지요?”
괘씸한 자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부모 역시 문제가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말에는 ‘내가 이렇게 애를 썼으니, 너도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냐?’라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순수한 사랑보다는 보상받으려는 사랑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렸을 때에 단순히 의무감이 아니라, 키우는 재미 그 자체에 집중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부모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독립해서 가정을 잘 꾸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수성이 사라질 때에 미움과 다툼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이렇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에 물들어 있는 우리를 향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꾸짖지 않으십니다.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고 함께 하면서 응원해주십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는 중대한 사건을 전하는 이들이지요. 미카엘은 요한 묵시록에 나오듯이 우리의 원수와 싸우도록 파견되어, 우리들이 악을 멀리해야 함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동정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파견되어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했으며, 라파엘 천사는 토비아의 눈을 고쳐주어서 하느님의 치유를 전해주었습니다.
대천사들이 전하는 중요한 사명들은 바로 인간을 위한 한 없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주님의 사랑을 본받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어떤 보상을 원하는 삶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으로 나의 이웃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억울함이나 서운함을 단 한 번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도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의 억울함과 서운함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억울함과 서운함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대천사의 임무처럼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또 다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회복이란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와 새로운 관계를 잘 맺는 것이다(기시미 이치로).
약점
미국 휴스턴 대학의 사회복지학 연구원인 브레네 브라운 교수는 10년간 자신의 약점을 없애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요. 그녀는 너무나 참담한 마음으로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약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모든 자신의 취약성과 수치심에 귀를 기울이라.”
이렇게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안정적이고 마음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점이 있는 내 자신 역시 분명히 나인데 왜 그런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 있는 사람만이 지금의 삶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이 나보다 잘 되는 걸 기뻐해 주는 사람이 천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어느 한적한 마을의 숲속에 우주선이 나타납니다.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들은 지구의 각종 표본들을 채취하던 중 인간들이 나타나자 서둘러 지구를 떠나는데, 그 와중에 뒤쳐진 한 외계인만 홀로 남게 됩니다. 방황하던 그 외계인은 한 가정집에 숨어들고, 그 집 꼬마 엘리어트와 만나게 됩니다. 엘리어트는 외계인에게 E.T.(Extra-Terrestrial)란 칭호를 붙여주고 형 마이클과 여동생 거티에게 E.T.의 존재를 밝힙니다. 그때부터 삼남매는 엄마의 눈을 속인 채 집안에서 몰래 E.T.를 돌봐줍니다.
어느새 아이들과 E.T.사이엔 끈끈한 정이 생기고, 특히 엘리어트는 E.T.와 텔레파시로 교감할 정도로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E.T.덕에 분열되었던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E.T.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야 할 몸. 그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집안의 잡동사니로 자신의 별과 교신할 통신장비를 만듭니다. 그리고 할로윈 축제를 이용해, 우주선이 착륙했던 숲속으로 가서 그곳에 통신장비를 설치하지만, 그만 체력의 급격한 소모로 탈진 상태에 빠집니다. 특이한 점은 E.T.가 아플 땐 엘리어트도 함께 아프다는 것.
엘리어트와 E.T.가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 그동안 이 집을 조사해오던 항공 우주국 직원들이 들이닥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자전거를 타고 E.T.를 숲속으로 피신시킵니다. 숲에는 E.T.의 메세지를 듣고 온 우주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E.T.는 지구를 떠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어트와 E.T.가 작별인사를 하는데, 엘리어트가 눈물을 흘리자 E.T.의 심장이 뜨거워지며 “아프다(OUCH!)”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엘리어트도 “아프다(OUCH!)”라고 화답합니다. 우리나라 유명한 드라마 대사인 “아프냐?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뭐 이런 식의 말입니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이혼가정에서 태어나서 자신의 아픔을 이 세상을 넘어선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일종의 자기치유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고 자신이 잘 되기를 기도해주는 누군가를 아주 처음부터 원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세 대천사를 기리는 축일인데, 천사들이 아마도 우리 곁에서 그런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사는 주님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이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다가가면 천사는 인간보다 더 낮은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천사들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싫어서 뛰쳐나간 천사들이 사탄과 그의 졸개들입니다. 따라서 천사는 남이 자신보다 잘 되는 것을 기뻐할 줄 아는 본성을 지녔습니다. 사탄은 반대로 인간의 지위가 자신들보다 높아지는 것을 질투하여 끌어내리려 합니다. 하느님은 누군가를 자신들 위로 들어 높일 줄 아는 이들만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무언가 저보다 잘 하는 이를 보면 질투가 마음속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운동회 때 몸이 안 좋게 태어난 친구의 손을 잡고 모두가 꼴찌가 되려고 함께 걸어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아닌 척은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저보다 강론을 더 잘한다거나 운동을 더 잘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가 서서히 올라옴을 느낍니다. 사제가 되어서까지도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니 참 창피합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자신 위로 높이는 것인데 질투는 어떤 누구도 자신보다 더 높아지는 꼴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어찌 보면 예수님과 경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천사의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자신이 진정 천국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고 그런 자신을 천국에 올려주시는 주님께 무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겸손함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남이 슬플 때 울어주는 사람보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이 나보다 잘 되는 것을 기뻐해줍시다.
또한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또 다른 나인 상대가 행복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행복도 우리의 행복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가 아픈 것을 보고 혼자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것입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서 우리가 자신들보다 높아지기를 기도하고 지켜주고 있습니다. 천사들도 우리 옆에서 우리가 자신들의 모습이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름 없는 천사들의 사랑의 축제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
교회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천사들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언하였습니다. 그 핵심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감각의 대상인 세상뿐 아니라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와 영적 존재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지성과 의지를 지닌 순수 영적인 존재로서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과 구원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천사들은 하느님께 봉사하고(다니 7,9-10.13-14), 교회가 악의 세력에 맞서 펼치는 싸움에 간여하며(묵시 12,7-12ㄱ),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도록 도와줍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외에 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시려고 강력한 행위를 취하실 때에 파견되는 미카엘 대천사는 천상 군대의 우두머리로서 종말의 큰 싸움에서 사탄에게 승리합니다(묵시 12,7 이하). 가브리엘 대천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루카 1,11-17)과 예수님의 탄생(1,26-38)을 알립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눈먼 토비아를 치유해줍니다.
나보다 더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존재와 보이시 않는 영적 존재를 통하여 끊임없이 사랑을 보여주시고 당신의 선을 거저 건네주시며 매순간 나를 지켜주십니다. 이런 사랑의 손길을 알아차리고 감사드리며 우리 또한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도록 말씀을 전해주는 천사, 말할 수 없는 고민과 번민 중에 있을 때 사랑으로 들어주는 귀가 되어주는 천사,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이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위로의 천사, 모두가 나를 버리고 떠나버려도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천사, 불의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내편이 되어주는 천사, 절망의 어둠속을 헤맬 때 희망을 불러일으켜주는 천사.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천사가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인생에 그런 천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겠지요. 그런 천사는 나이나 성별, 지식과 재산, 신앙의 연륜이나 신분의 차이 그 어떤 것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생의 의미와 희망을 발견하며, 하느님을 회상하도록 도움을 주는 존재이면 충분합니다.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려면 먼저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젖어들고, 그분의 진리를 깨달으며, 열린 마음과 관대함,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함과 영의 정신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매번 완벽하게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기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보잘것없음을 인정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선과 사랑을 건넬 필요가 있습니다.
천사가 영적 존재이듯이 우리 또한 천사의 역할을 드러내놓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의 처지를 헤아리며 기도해주고, 시대의 아픔에 한마음으로 동참하며, 말없이 선행을 하고, 다른 이를 위해 배려하는 ‘말없는 천사’, ‘이름 없는 천사’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요?
드러내지 않고 사랑을 행하고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이름 없는 천사들’이 늘어날수록 이 세상은 밝아지고, 하느님으로 인해 신명나는 사랑의 축제를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각자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도록 힘쓰고, 또 나도 모르게 기도해주고 염려해주고 배려해주는 나의 이름 없는 천사를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드려야겠습니다.
15분 동안이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는 게 바빠 하루 단 15분도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내는 날이 수두룩한데, 오늘 제가 찾아 나선 분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더군요. “큰 일 났습니다. 오늘 저는 하루 동안 15분이나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돈 보스코와 함께 살레시오 수녀회를 공동창립하신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 성녀(聖女)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녀의 말씀에 얼마나 부끄럽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토리노에서 버스로 두 시간을 가야 나오는 모르네제의 시골 소녀 마리아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물에 물탄 듯한 신앙이 아니라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성인(聖人)이라면 열정보다는 깊은 내면의 평화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열정은 내면의 불순물을 활활 불태워버리기도 하고 연약한 육체를 승화시키는 힘이 되기에 성화의 길에 큰 힘이 됩니다. 마리아는 강렬한 육체적 에너지를 영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지니셨더군요.
당시 이탈리아 전역에서 이미 유명인사로 통했던 돈 보스코와의 첫 만남 때도 마리아는 그런 열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대도시와는 동떨어져 있던 시골 마을이었지만 그녀는 페스타리노 신부의 지도하에 또래 동정녀들과 의기투합해서 복음 선포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돈 보스코 못지않게 모르네제 소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녀의 순수한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녀는 미래에 대해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1864년 어느 날 돈 보스코는 아이들과 함께 모르네제로 소풍을 오게 됩니다. 그때 마리아는 돈 보스코와 첫 대면을 하게 되는데, 그를 보는 순간 그녀는 즉시 확신했습니다. “저분은 성인이시다! 안심하고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될 분이다!” 내면 가득히 신뢰로 가득 차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돈 보스코와 한배를 타게 됩니다.
돈 보스코의 제안에 따라 즉시 갈 곳 없는 소녀들을 위한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를 짓습니다. 오라토리오를 열어 아이들을 기쁨과 행복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살레시오 수녀회는 살레시오회와 더불어 신속하게 전 세계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1872년 살레시오 수녀회가 창설되고 마리아는 초대 총장에 임명됩니다.
마리아가 23세 되던 해 모르네제에 장티푸스가 창궐했는데, 가까운 친척들도 여러 명 전염되었습니다. 천성적으로 나 몰라라 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그녀는 그들을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다가 그만 자신도 덜컥 전염되고 맙니다. 겨우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그 후 그녀는 평생 병약한 몸으로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정식 학교 교육을 받은 바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글을 읽고 쓰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토록 병약하고 교육을 받거나 교육계에 종사한 적이 전혀 없었던 마리아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여성 교육 단체 혹은 여성 수도 단체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큰 단체인 살레시오 수녀회의 공동창립자 겸 초대 총장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장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겸손했습니다. “원장 수녀님!” 하고 부르던 수하 수녀들에게 틈만 나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원장 수녀가 아니라 부원장 수녀입니다. 우리의 원장은 성모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방식을 늘 이런 식인 것 같습니다. 나자렛 산골의 겸손한 처녀 마리아를 하늘의 모후요, 전 인류의 어머니로 들어 높이셨듯이, 모르네제 산골의 겸손한 처녀 마리아를 같은 방식으로 성덕의 정상에로 높이 들어 올리신 것입니다.
소녀 시절 마리아는 틈틈이 다락방으로 올라가 창을 열었습니다. 그 창을 열면 저 멀리 성당이 바라다 보였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즉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성체조배를 하곤 했습니다. 그녀가 습관처럼 열곤 했던 바로 그 창, 발포나스카의 창 앞에서 그녀의 열정과 용기와 열린 마음을 묵상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저는 세례명이 ‘가브리엘’입니다. 오늘이 축일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제가 정하지는 않았지만 저의 세례명을 좋아합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고, 요셉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을 보면 천사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분들입니다. 지난 화요일에 대전 가톨릭 대학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부제님들이 강의를 부탁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역에서 전의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였습니다. 조치원에서 천안, 천안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표도 예매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가는 날, 철도 노조에서 파업을 시작하였고, 제가 예매한 기차는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대전까지 가는 길이 멀기도 하고, 길이 막힐 것 같아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정말 천사처럼 버스를 예매 해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한 세상입니다. 인터넷으로 조치원 가는 버스를 예매하였고, 스마트 폰으로 버스표를 전송해 주었습니다. 저는 덕분에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눈은 외부의 사물을 보기도 하지만, 눈은 내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눈, 사랑의 눈, 희망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시기의 눈, 증오의 눈, 불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회색 빛깔로 보이게 됩니다. 우리의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있지만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아무리 좋아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빛에 의해서 반사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보면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카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적지가 같은 분들을 연락해서 승용차를 함께 이용하는 나눔입니다.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나눔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돼지 저금통을 가져오기도 하고, 군인들도, 기업체를 운영하는 분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생을 모은 재산을 기꺼이 신학교를 위해서 기부하신 분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나눔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를 해도 함께 나누고, 잔치가 있으면 이웃을 초대하였습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위해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예전에 농경시대에 있었던 방식의 나눔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고 분주한 현대사회에 살면서도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천사입니다.
천사적 삶, -찬미讚美와 선행善行의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천사란 말은 ‘messenger(전달자, 사자, 심부름꾼)’란 뜻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 또는 이웃사이에 선한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천사같은 삶을 사는 이들도 곳곳에 많습니다. 천사란 말만들어도 위로가 되고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우선 하루를 마치며 끝기도 때마다 부르는 다음 시편 대목은 더욱 그러합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 받들고 가리라.”(시편91,11-12).
하느님의 자비로운 현존을 상징하는 천사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음은 천사들의 보호가 늘 함께 있었기에 가능함을 믿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천사들은 그 이름에 따라 미카엘은 ‘하느님의 힘’을, 가브리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을,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를 뜻하며 그 역할이 다 다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전능하심을 널리 드러내는 천사들의 존재입니다. 천사신심 역시 우리 영성생활을 풍요롭게 함을 깨닫습니다. 토마스 머튼도 늘 천사가 있는 상본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합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과 영성체송 시편은 늘 들어도 흥겹고 힘이 납니다.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시편138,1).
이 거룩한 미사시간 위 시편 말씀 그대로 천사들 앞에서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노래 부르는 시간입니다. 언젠가 세기洗器중 수사님이 ‘미사때 제대 주변에서 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것 같다’고 한 말도 생각이 납니다.
요즘 밤새 활짝 하얗게 피어나는 ‘천사의 나팔Angel’s Trumpet’이란 재미있는 이름의 꽃이 있는데 흡사 전례기도시 찬미시편을 노래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이름의 꽃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에 보다시피 하느님은 역사 속에서 당신 활동을 중개하는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계십니다. 미사 전례 중 다음 천사들과 함께 감사송을 바칠 때는 말그대로 기쁨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나이다.”에 곧장 이어지는 천사들과의 합창인 ‘거룩하시다’입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말씀의 전례가 끝나면 곧 우리는 성찬전례시 천사들과 함께 윗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천사의 우선적 역할은 하느님 찬미이며 다음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선善한 다리역할입니다. 그러니 늘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착하게 사는 이들은 그대로 천사같은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나타나엘과 예수님의 만남은 늘 읽어도 반갑고 신선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와 주님과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찬사의 말씀은 없습니다. 이런 순수한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찬미와 선행의 삶을 삽니다. 천사들을 보고 천사같은 삶을 삽니다. 이에 즉시 이어지는 나타나엘의 화답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참사람과 참사람의 만남입니다. 참사람과 주님의 만남입니다. 참사람은 참사람이 알아봅니다. 이어 주님은 나타나엘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현존하심에 따라 ‘하늘이 열리고’(이사63,19;마르1,10;루카2,9-13), 야곱의 꿈이 예고한(창세28,17) 하느님과의 통교가 마음 순수한 믿는 이들에게 항구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마 우리 마음의 눈이 열린다면 이 거룩한 미사중 제대 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육화된 아드님이신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과 그의 백성을 잇는 다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내려오고 그의 백성이 하느님께 올라가는 사다리와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대천사들중 대천사the Archangel of archangers’이며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의 ‘궁극적 사자the Ultimate Messenger’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고, 그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갑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그대로 실현되고 체험되는 진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 천사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모두 천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며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보니 천사들이 부지런히 또는 분주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마치 영상처럼 그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사들이란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천사들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절들인데 오늘 주님의 말씀으로는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만 보내졌다는 뜻이고,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 그리스도 사이만 오가는 존재란 뜻인가요
제 생각에 사람의 아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그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사람의 아들들인 우리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 위에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천사들이 있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또한 합니다.
천사들과 성인들은 근본적으로 다른가?
성인들의 통공의 교리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성인들이 죽어 천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게 아니면 성인은 인간이 거룩하게 된 것이고 천사는 애초부터 사람과 다른 영적 존재인가?
이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교회도 믿을 교리로 말하는 것은 영적인 세계와 존재가 있으며 영적인 존재로서 천사라는 것을 말할 뿐, 그 이상은 말하지 않으며 천사란 하느님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사들을 생각할 때마다 천사의 존재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천사의 역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오늘도 그 역할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천사란 하느님의 전달자, 사절이고 그래서 그 역할을 하는 존재는 다 천사들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도 사람의 아들들 위에서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역할을 하면 다 하느님 천사들이며 그러므로 축일을 지내는 오늘 다른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천사의 역할을 잘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천사들의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오르락내리락 중에서 오르기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오르지 않거나 오르지 못하는 천사는 날개가 없는 천사지요.
천사 그림을 보면 거개가 날개가 있는데 그러므로 천사에게 날개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러므로 천사가 되어 천사의 역할을 하려면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날개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꿈과 열정입니다.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하늘까지 오를 겁니다.
다음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세상에로 내려가야 합니다.
더 친절하게 얘기하면 아기의 예수의 성탄 때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처럼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누구의 천사가 되어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누가 더 하느님의 사신을 더 기다릴지, 내가 천사가 되어 오길 누가 더 바랄지 생각해보고 또 찾아가야겠습니다.
신뢰감<요한, 1/47-51.>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님
잊어야하고 버려야할 것은 많이 있으나 신뢰감만은 잊어서도 안 되고 버려서도 안 됩니다. 작은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신뢰를 줄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의 중요성과 행동의 신중함이 요구됩니다. 아무 말이나 말이면 다 가 아니며 말을 하려는 사람은 사려 깊게 하려면 말하기 전 5분 아니 10분 기다리다가 해야 하며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은 준비 없는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하는 말이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은 행동에 있어 진실과 사랑이 없는 행동은 신뢰 받지 못합니다.
깨끗한 행동, 순진한 행동, 믿음이 있는 행동,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행동이 몸에 배여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잘된 행위를 거짓말로 덮으려하고 잘못된 말을 행동으로 덮으려 하면 부정과 부조리가 발생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신뢰를 주는 말과 행동이 온갖 욕망에서 나오면 그 욕망에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말이나 행동은 자신의 깨끗한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엘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말씀과 행동은 주님을 신뢰하고 평생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위에 신뢰를 주는 말씀과 행동을 보여준 사람을 통하여 주님에게 인도되어 주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도자나 진, 선, 미로 인도하는 책임을 진 사람은 말에 있어 행동에 있어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나를 믿고 따르라.”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잠에서 깨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하려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자기모습을 가다듬어 몸가짐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말에 있어 완전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의 삶을 살며 진, 선, 미 이신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 51)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천사가 있습니다.
창조와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대천사 축일을 통해
창조주의
오묘한 섭리를
사랑안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대천사의 역할은
하느님 말씀을
지키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헌신해야 할
모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사랑의 신비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믿음과
희망,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이름 모두가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영광을 위한
이름이기를 기도드립니다.
대천사들처럼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하느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 사랑으로
봉사하는
대천사들같이
우리또한 복음의
전달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길은
하느님께 시선을
두는 믿음에 있음을
알기때문입니다.
모든 창조의 목적은
하느님 영광과
찬미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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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미국의 하버드 의대에서 아주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의대생들을 봉사 활동에 참여시킨 후 체내 면역기능을 측정했더니 크게 증강이 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실험은 복자 마더 데레사의 전기를 읽게 한 다음, 인체 변화를 조사했더니 이 역시 생명 능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직접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나 그리고 누군가 봉사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면역기능이 높아지는 현상을 두고 연구진은 ‘데레사 효과’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봉사를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직접 봉사하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면 다른 이들의 봉사활동을 보고 응원하는 것으로도 내게 커다란 이익이 온다는 것을 위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응원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행을 보아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그 선행을 축소시킵니다. 그 사람을 작게 만들어야 자기가 커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선행하지 못하는 자기를 합리화 시키려는 것일까요?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더욱 더 작게 만든다는 것은 왜 모를까요?
이 세상의 작은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천사는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일을 한다고 해서 붙여지는 이름이 아닙니다. 직접 어떠한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말과 마음으로라도 함께 한다면 충분히 작은 천사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것은 어른이 되어서부터였지요. 그러나 지금 저에게 자전거를 못 탄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영 역시 아주 늦게 배웠습니다. 신부가 되어서야 초급반에 들어가서 발차기부터 배웠지요. 지금 현재 저를 보고서 수영을 못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모든 영법을 다 할 수 있으며, 또 오랫동안 수영을 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어쩌면 내가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랑의 실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지금 이 순간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접어버리고 대신 이 세상의 사랑을 전하는 작은 천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대천사 축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전하는 대천사인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를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천사는 될 수 없더라도, 세상에 파견된 작은 천사임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일인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을 전하는 행동뿐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하느님의 일을 전하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크게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 역시 하느님의 일에 동참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항상 사랑받을 궁리만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다(에리히 프롬).
너무 서두르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어느 책에서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나무늘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동물인지를 자세히 보았지요. 동물의 세계에서는 날쌔고 강한 동물만이 살아남을 것 같은데 나무늘보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1분에 1미터밖에 이동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느립니다. 더군다나 잠은 얼마나 많은지 하루에 18시간 정도 잠을 잡니다.
이 정도면 도태되어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지요? 그러나 어떤 동물보다도 생명이 깁니다. 위기에 둔감해서 위급한 상황이 와도 오래 버티고, 물속에서도 30분 이상을 버틸 수가 있습니다.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 안에서 이 나무늘보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바쁘게만 살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참 많은데, 급한 마음에 그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나의 바쁨을 이유로 오히려 사랑을 외면합니다.
오늘은 나무늘보처럼 여유 있는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구촌의 어려운 곳을 찾아 봉사를 하는 한 비야 씨가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좋습니다. 성이 한 씨라서 좋습니다. 나 씨면 나비야가 되고, 노 씨면 노비야가 되고, 왕 씨면 왕비야가 되는데 한 씨라서 좋습니다.’ 그밖에도 자신이 좋은 점을 몇 가지 이야기 했습니다. 저도 오늘 축일로 지내는 저의 세례명 가브리엘이 좋습니다. 우선 부르기 좋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이 좋습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한 몫을 한 것이 좋습니다. 어려서는 ‘가별’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브리엘의 한자식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인들을 만날 때면 저의 세례명을 소개합니다. 세례명을 설명하면서 외국인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제에게 중요한 ‘강론’을 가르치고 있으니, 제게는 어렵지만 의미 있는 소임입니다. ‘진실함, 자신감, 하느님의 말씀, 현시대의 징표’를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강론은 10분은 넘지 않도록 준비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짧은 강론은 마음을 움직이지만, 긴 강론은 몸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구에서 성소국의 일을 맡아서 하기 때문에 저에게 주어진 몫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젊은이들이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비록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도 결코 천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얀 날개가 없어도, 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았어도,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면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천사입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으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적성성당에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컴퓨터를 사려고 했는데 비용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형제님께서 성당엘 찾아왔습니다. 성당 근처에서 군 복무를 하였다고 하면서 컴퓨터를 구입할 정도의 금액을 봉헌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성당엘 찾아오셔서 감사헌금을 봉헌해 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렸으며, 살아 움직이는 천사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다른 천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 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천사가 되십시오.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천사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파견된 일꾼입니다. 히브리서1장 14절에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 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하고 적고 있습니다. 천사란 말은 그들의 정체나 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맡고 있는 직무와 사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될 때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아브라함은 길손을 대접하다 천사를 만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창세18장),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기도응답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다니8,17). 토비트는 라파엘 대천사를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의 축복을 누렸습니다(토비11,4-13). 구약에서 천사론이 전개되는데 하느님의 아들, 거룩한 자, 수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수한 영적존재로 나타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루카1,28),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도(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루가2장1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때 천사들이“하느님께 영광”이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할 것도 알려주고(마태12,13),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르1,13). 또한 흰옷을 입고 부활을 알려주었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묵시22,6).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 천사들이 영적인 실체라고 가르칩니다(1차 바틴칸 공의회). 그리고 선한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은 성경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바지 한다는 것은 성경과 교회 정통 가르침에 의거한 교회의 신앙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우선 길을 인도하고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과 동행하는 천사입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시편91,11). 마태복음은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18,10).하고 각자에게 배속된 천사를 언급합니다.
결국 천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사에 대한 의식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언자와 율법학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전해졌지만 이제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 교리교사를 통해 예수님의 계시진리가 좀 더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천사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천사는 존재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각 사람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사는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이웃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천사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이미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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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견줄 수 있느냐?'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만군의 주님 사령관으로 악마를 물리치는 대천사 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영웅’, ‘하느님의 권세’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 ‘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 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깨어있는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오늘은 ‘깨어있는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깨어있음’의 반대는 ‘잠들어 있음’입니다. 영성생활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바로 지금 여기서 깨어있는 삶입니다. 끊임없는 기도 역시 깨어있는 삶을 목표로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심오한 각성 상태,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깨어있음의 영성훈련이 참으로 절실한 신자들입니다.
과연 하루중 깨어있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잠든 채 흘려보내지 말고 일어나 깨어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깨어 사는 것입니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살기위하여 말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합니다.
“나는 깊게 살고 싶었고, 삶의 골수를 빼먹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었을 때 내가 정말로 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므로.”
또 미국의 작가이자 신학자인 프레데릭 뷰크너는 말합니다.
“당신의 삶에 귀를 기울여라. 그 측량할 수 삶의 신비를 바라보라.”
이렇게 온전히 듣고 바라보기 위한 침묵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세 대천사 축일입니다. 늘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에 충실하고 항구했던 대천사들은 물론 모든 천사들이 상징하는바 ‘깨어있는 존재들’입니다. 늘 깨어 있음은 지금 여기 활짝 열린 귀로 듣고, 활짝 열린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래야 하느님을 잘 섬기며 심부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하여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수행했기에 ‘하느님의 승리’를 뜻하는 미카엘 천사요, ‘하느님의 권세’를 뜻하는 가브리엘 천사요, ‘하느님의 치유’ 를 뜻하는 라파엘 천사입니다.
하느님 능력의 생생한 현존인 천사들입니다. 오늘 1독서나 복음의 분위기를 보십시오. 빛으로 충만한 깨어있는 분위기입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있을 때 하느님의 빛으로 충만한 삶이요, 영육으로 건강한 삶입니다. 유혹이나 거짓, 죄악의 어둠이 깃들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가 깨어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깨어있는 다니엘에게 하사된 환시체험이요 신비체험입니다. 환시체험중에 참으로 중요한 계시도 선사받습니다. 바로 우리 구원자 예수님께 대한 예언입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리라.’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예언입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활짝 열린 귀와 눈을 지닌 진정 깨어있는 각자覺者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봄(見)’에 관련된 단어가 6회 나옵니다. 깨어있는 삶에 잘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복음의 예수님도 나타나엘도 진정 깨어있는 분들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보다 좋은 찬사는 없습니다. 깨어있는 영혼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 깨어 나타나엘을 보라는 촉구입니다. 깨어있을 때 본질을 직시합니다. 나타나엘 역시 깨어있는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깨어있을 때 참 사람이요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시 주님을 알아보고 신앙을 고백하는 깨어있는 영혼 나타나엘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깨어 활짝 열린 눈으로 예수님을 뵙고, 활짝 열린 귀로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나타나엘의 즉각적 반응입니다. 이또한 깨어있음의 은총입니다. 이어 주님은 나타나엘은 물론 우리 모두가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깨어 끊임없이 하느님과 소통했던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하늘 길이자 하늘 문’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이르기 때문입니다.
깨어 사랑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길 때 우리 역시 하느님의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음은 바로 중력의 영향을 벗어남을 상징합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에만 끌리는, 이기적 에고(ego)가 없는 무아의 천사들이기에 그리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사신심 안에는 인간의 자유를 향한 간절한 염원이, 소망이 배어 있음을 느낍니다. 깨어있는 삶에 함께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 찬미와 감사의 성무일도와 미사 전례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찬미와 감사중에 깨어있는 영혼이요 깨어있는 영혼에게서 끊임없이 샘솟는 찬미와 감사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 우리 모두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아멘.
하느님 사랑의 도우미요 중개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버린 뒤, 늦가을 마지막 잎새를 바라볼 때, 가까운 이들로부터조차 이해받지 못할 때, 배신을 당하고 오해를 받을 때,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소외 당할 때,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는 메마름을 경험할 때 실존적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혼자일까요?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서 주님의 계획을 알리고 그분의 명령을 전달하는 전달로 인간의 구원에 개입하도록 파견된 존재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께 봉사합니다(다니 7,9-10.13-14). 또 그들은 교회가 악의 세력에 맞서 펼치는 싸움에 간여합니다(묵시 12,7-12ㄱ).
천사라는 명칭은 본성이 아니라 직무를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 중요한 것을 전하는 이들을 대천사라 하고 덜 중요한 것을 전하는 이들은 천사라 일컫습니다. 천사론에서 믿을 교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각의 대상인 세상과 우리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것뿐입니다.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갖는 미카엘 대천사는 천상 군대의 우두머리로서 종말의 큰 싸움에서 사탄에게 승리합니다(묵시 12,7 이하). 하느님께서 당신 외에 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시려고 강력한 행위를 취하실 때에 파견되는 천사가 바로 미카엘 대천사입니다.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을 갖는 가브리엘 대천사는 신약성서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루카 1,11-17)과 예수님의 탄생(루카 1,26-38)을 알립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파견된 것은 “만군의 하느님이시고 전쟁에 능하신 분께서 세상에 오시어 겸손하게 나타나셨지만 ‘하느님의 권세’로써 높은데 거처하는 악령들과 싸우게 되리라는 것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한편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을 갖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그 치유의 직무를 통해서 토비아의 눈을 만지어 그의 눈에서 눈멀음의 어두움을 몰아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이 탓에, 계절 탓에, 환경의 변화나 심리적 충격 때문에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 때문이든 일 때문이든 심하게 고통스럽고 불편한 것을 맞닥뜨리면 사람이 싫어져 무인도에라도 가고 싶고 일상을 벗어나고 싶기도 합니다. 이런 체험은 혈연의 형제보다 더 끈끈한 형제애를 살아야 하는 수도원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생명을 지니고 이 땅에 있게 된 것도, 매순간 숨쉬며 살아가는 것도 모두 내 밖의 ‘타자’(他者)의 손길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어디선가 말없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이들의 천사 같은 손길 때문에 이렇게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靈)이신 하느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구원 업적을 이루어나가시고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나아가 천사들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 선 안에 머물도록 이끌어주시며, 어떤 순간에도 함께해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선, 고통 중에 건네지는 위로의 말, 절망 중에 희망의 빛을 주는 격려, 소외되고 지쳐 있을 때 함께 해주는 관대함 등은 천사의 손길인 셈입니다. 단 한 순간도 하느님의 손길 없이 살 수 없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지혜일 것입니다.
늘 다양한 방법으로 천사를 보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도 또 다른 천사가 되어 이웃에게 다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고독사(孤獨死)가 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함께해주는 천사, 사랑을 전해주고, 빈자리를 채워주며, 가진 바를 나누는 천사가 됨으로써 모두가 하느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지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여러분은 천사의 존재를 믿나요?
천사를 만난 적은 있나요?
여러분은 마귀의 존재를 믿나요?
만난 적은요?
과학적으로 천사가 있니 없니 증명하긴 어려워도 우리는 사실 매일같이 천사도 만나고 마귀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천사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느끼게 해주고 하느님과 가까워지도록 해주는 모든 힘입니다.
반대로 마귀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가능하면 멀어지도록 만드는 힘이라 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이 하느님을 믿고 있고 하느님과 가까운 분이라면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그만큼 나도 모르게 많은 천사들을 만났다는 표시지요.
수많은 어려움이 있어 하느님을 떠나려 한 적이 있었다면 유혹자 마귀가 있었다는 뜻이지요.
네,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천사와 마귀가 있답니다.
오늘도 마주치게 될거예요.
오늘 내가 악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면 하느님의 군대인 미카엘 천사를 부르십시오.
오늘 내가 길을 못찾아 헤면다면 하느님의 뜻을 전해 줄 가브리엘 천사를 부르십시오.
오늘 내가 영육간에 치유가 필요하다면 하느님의 치유인 라파엘 천사를 불러 보십시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나의 주위에 있는 한 그 어떤 마귀의 권세와 유혹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천사를 많이 만나시길 축원합니다.
천사가 오르내리는 하늘을 보다.
주원준
신앙은 주님께서 받아들여 주셔야 가능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거짓이 없다”고 인정하신 나타나엘은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고 인정하셨는데도 겸손되이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노라고 대답하십니다.
주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일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말씀을 주님께 직접 듣다니! 나타나엘은 참 부러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우쭐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더 큰 선물을 주십니다.
앞으로 겪게 될 일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과 인간 사이에 ‘믿음의 선순환’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는 우리의 마음도 기쁘고 흐뭇합니다.
주님은 우선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보여 주신 미래는 지상의 일이 아닙니다.
인간적 집착과 이해에 사로잡힌 인생은 그 신비에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활약했던 천사들을 보여 주십니다.
마침 오늘 기념하는 천사들은 주님의 전령으로서 아브라함 시대부터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에게 전한 존재들입니다.
주님의 전령에 순종한 인물들은 천상의 삶을 지상에서 살았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런 삶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천사들의 합창.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님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느님 곁에 사는 천사들의 합창노래 울려퍼지는 천사들의 날. 나도 그들과 함께 찬미 찬송하며 아침을 열다.
우리는 착한 사람을 천사 같다고 합니다. 어 릴 때 교리시간에 사람의 오른쪽에 천사가 있고 왼쪽에 마귀가 있어 천사는 착한 일을 하라고 이르고 마귀는 악한 일을 하라고 이른다고 하며 선을 행하면 천사가 웃고 악을 행하면 천사가 운다고 수녀님들의 교리를 듣고 천사들을 기쁘게 하는 행동을 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분명이 천사적 생각은 저를 주님에게 이끄는 힘이었습니다. 오늘 나타나엘을 주님께서 “ 이스라엘의 사람이며 저 사람은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이 말씀에 나타나엘은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이 누구신지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부르시고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셨으니 모두에게 천사의 사명을 주시고 천사의 역할을 하도록 이끄십니다.
저는 천사가 되기 위하여 선을 행하도록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하고 선의 결과를 보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악을 계획하고 악을 행하도록 유도하는 이들뿐 아니라 악을 창조해 내는 무리들이 있어 선한 세상에 악의 씨기 뿌려져 이곳저곳에서 악의 나무가 자라고 악의 현실 속에 약한 사람 무지한 사람들이 속고 따라가는 일들 일어납니다.
본래 모두 천사로 만들어 졌는데 악마의 출현은 하느님을 시기하고 윗자리에 앉아 하느님을 능가한 지배자 되려고 하다가 실패한 무리가 악마의 무리입니다. 악마는 자기 능력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여 사람을 이용하어 활동하려합니다. 사람이 그 이용물이 되어 움직이며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고 윗자리를 찾지 하여 순명의 삶을 방해하고 사람을 어려가지로 괴롭게 합니다.
오늘축일을 거룩하게 지내고 천사의 무리 속에 살려면 귀에 말을 하는 천사의 숨소리도 듣고 따르도록 기도합니다. 하느님 천사들을 통하여 찬미 받으소서.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느님의 사랑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멈춘 적이 없습니다.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고유한 영역을
대천사들은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단풍의 가을이
천사들처럼 우리들곁에
아름다이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끈기가 부족한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대천사를 저마다의
역사안으로 보내주십니다.
하느님께로
길을 인도하는
대천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 온 길을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마다
은총과 축복이 있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대천사분들이
자신의 몫에 충실하듯
우리들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길에
충실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대천사의 길은
우리 마음의 길을
열어주며 하느님께로
이끕니다.
우리마음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끄시고 구하시는
대천사를 통해
우리의 삶또한 아름답고
향기롭기를 바라십니다.
대천사는
자신을 낮추신
사람의 아들을 드러내며
하느님을 우리가
잃지 않게 합니다.
저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축복의 날
되시길 바랍니다.
대천사의 본질은
더 좋을 수 없는
겸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자신은
어떤 모습으로
이웃들에게 비춰지는지를
성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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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한 자매님께서 봉투 하나를 제게 가지고 오셨었습니다. 그리고 이 봉투가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는지를 말씀해주셨지요. 교통사고가 났고 이 사고의 합의금으로 받은 금액을 성소후원회비로 써달라며 가져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의 집이 그리 여유 있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독고 노인이셨고, 살림이 어려운 생활보호대상자였습니다.
저로써는 참 큰 충격이었고, 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께서 며칠 전에 또 오셨습니다. 1년 동안 모은 돈이라고 하면서 성소후원회비로 써달라며 제게 또 흰 봉투를 내미시는 것이었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인 것 같은데,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가득하신 분입니다. 여유가 있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인데, 나눔이 먼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들인데,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할지를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이 세상을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또한 많이 있기에 살만 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분들이 바로 이 세상을 비추는 또 한 명의 천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천사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의 역할은 인간을 돕는 하느님의 협조자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축일을 맞는 대천사들이 바로 하느님의 협조자를 대표하는 역할이지요.
이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면서 단순히 ‘대천사 축일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협조자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하느님의 진정한 협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협조자의 모습이 과연 죽어서만 가능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앞서 저를 감동시키셨던 한 자매님의 모습을 볼 때, 바로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의 협조자의 모습, 즉 주님의 천사 역할을 이 세상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주 어렸을 때, 동화책을 보면서 ‘내가 천사가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음 역시 깨닫게 되네요.
우리 모두가 주님의 협조자, 즉 주님의 참 천사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인생의 기적을 일으키는 가장 쉬운 말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사랑합니다. 인생의 기적을 일으키는 가장 쉬운 말입니다. 그러나 안 쓰기로 작정하면 뜻밖에 불편한 말이 됩니다. 일생 쓰지 않으면 일생 기적도 없습니다(조정민).
도브리 할아버지 이야기
이 늙은 할아버지는 아마 전 세계에서 가징 존경할 만한 사람 중 한 사람일 것입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는 지난달 100세를 맞이한 도브리 도브레브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청력을 잃은 후, 매일 25km를 걸으며 돈을 구걸하고 살고 있는데요.
그는 매일 20km 이상 걷고 옷과 신발을 직접 만들며 돈을 아끼고 모았지만 그의 한 달 생활비는 연금으로 받는 10만원이 전부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는 구걸하며 모은 돈을 자신에게 쓴 적이 없습니다.
구걸로 모은 돈을 전부 고아원, 수도원, 교회 등에 기부하기 때문인데요, 한번은 구걸로 보은돈 40,000유로(약 5,400만원)를 기부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구걸한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매일 고아원에 기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는 불가리아의 Bayiove에 태어났기에 누군가 그를 'Bayiove의 성인'이라고도 부릅니다.
그의 사심없는 헌신에(당연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도브리 할아버지 Daydo Dobri"라고도 부릅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롤 모델을 찾고 있다면, 여기 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를 닮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요?
지난달 불가리아의 한 걸인 할아버지가 만 100세를 (1914년 7월 생) 맞이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에 상관없이 사람들로부터 성자로 불릴 정도의 존경을 얻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아가는 분, 이 시대의 성자이며 천사입니다.
놀라운 선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오늘은 순례41일차이자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어제 대망의 산티아고, 주님의 집에서의 하루도 풍요로웠습니다. 아침 '우리집민박'에서 6명의 한국 순례객들이 한식탁에서 함께 우리밥을 먹으니 정답기가 한 식구처럼 참 편안했습니다. '우리집'이란 호칭에 잘 어울리는 흡사 산티아고의 오아시스 가정집처럼 느껴졌습니다. 순례중 바람처럼 만났던 한국 분들을 다시 만나니 천국에서의 재회처럼 반가웠습니다. 다 흩어져 못만나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도 주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겠구나 하는 예감을 갖게 됩니다.
아침 식사후에야는 급히 서둘러 순례자 증서를 받기위해 순례자 사무소로 직행했습니다. 엊그제 토요일은 너무 사람이 많아 주일 아침시간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약30분쯤 기다렸다가 산티야고 순례를 끝냈다는 증서를 받았고 오후에는 잊었던 거리 확인서를 받아왔습니다. 거리를 보니 800km에 못미친 775km였습니다. 그러니 프랑스의 생장에서 여기 산티아고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775km임을 알게 됩니다. 두장의 두툼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순례증서가 한 장은 졸업장 같고, 한 장은 상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두장을 받기위해 많은 이들이 순진한 초등학생처럼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순례증서 2장, 순례중 들렸던 곳마다 받은 도장이 찍힌 카드를 액자에,넣어 거실에 걸어놓고 가보로 전하십시오."
이냐시오 형제에게 덕담을 건네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생각하면 대단한 것이니 몸소 순례를 하지 않고는 거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증서이기 때문입니다. 12시에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주교님이 순례자들을 위한 연중 제26주일 미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냐시오 형제와 저는 인산인해를 이룬 성당에서 도저히 자리를 잡을 수 없어 서서 미사에 참여할 수뿐이 없었습니다. 순간 이게 아니라는 예감이 스쳤고 즉시 10분을 앞두고 제의방으로 갔습니다. 어제 미사때도 제대에 서지 못해 씁쓸했던 기억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I am Korean priest"
제의방에 들어서니 미사를 집전하실 주교님을 포함해 30여명의 순례사제들이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고 제의방 수녀님도 반가이 맞이하며 제의를 주셨습니다. 마침 순례중 수차 만났던 대전교구 소속의 최재경 요한신부가 급히 제의를 입는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제일 늦게 제의방에 들어섰기에 미사시 사제들의 입장때는 제가 맨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제대 자리도 전망 좋은, 좌우사방, 위도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2014년 9.28일 연중 제26주일 미사를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봉헌하리라곤 하느님만이 아셨을 것입니다. 놀라운 선물에 감격했고 오늘의 강론 제목도 여기서 착안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온통 은총의 선물로 가득합니다. 새삼 국적과 인종, 언어와 풍습이 다 달라도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은 정말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선물인지 신선한 충격의 전율이었습니다. 새삼 인류에게 주신 하느님 최고의 놀라운 선물이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미사중에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놀라운 선물'의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나타나엘에겐 놀라운 선물입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값싼 선물이 아니라 평소 준비되어 있는 깨끗한 영혼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선물인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거짓이 없는 참 사람 나타나엘을 찾아오신 놀라운 선물인 주님이십니다. 주님에게도 역시 나타나엘은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나타나엘을 통해 자신의 신원을 재확인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또 나타나엘에게 놀라운 선물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볼 것이다."
눈만 열리면 미사 중 거룩한 제대위에서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볼 것이며, 도움을 주는 착한 이들이 주님의 천사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저와 함께 순례중인 이냐시오 형제도 저에겐 수호천사입니다. 오늘 1독서의 깨끗한 영혼 다니엘 예언자도 밤의 환시 중에 놀라운 선물을 받습니다. 밤의 환시 장면이 흡사 거룩한 미사가 진행되는 제단 주위를 연상케 합니다. 어제 산티아고 대성당 미사도 흡사 수많은 천사들이 제대 주변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듯 했습니다.
'그에게 통차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다니엘 예언자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의 말씀이요 저는 어제 산티아고 대성당 미사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눈을 열어 주시어 놀라운 선물 가득한 하루를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시편138,1-2ㄴ). 아멘.
우리 각자가 모두 천사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세분의 대천사 축일에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사자(使者), 즉 심부름꾼입니다. 하늘나라에 적을 둔 하느님의 일을 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참으로 개념 정의하기가 애매모호한 존재가 또한 천사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 지상에서 천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숨어서 피는 꽃처럼 소리 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대신해서 가난하고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을 위로하는 사람들 역시 이 시대 천사들입니다. 힘겨운 지상여정을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하며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한 천사들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각자 각자가 ‘천사’입니다. 우리 내면엔 선을 행하려는 좋은 의지,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측은지심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의 인호가 아로새겨져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하느님 자비의 역사가 생생히 기록된 노트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천사들입니다.
때로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질그릇 같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그 질그릇을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가득 채울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대천사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체험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내 삶 안으로 들어오자 어두웠던 내 삶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내 가까이 다가오자 무기력했던 내 삶이 봄 비 끝 초목처럼 생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빛을 발하고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내가 다시금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내가 고통을 잊고, 그로 인해 내 삶이 나아지는 느낌...이것이 바로 구원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낸 천사가 틀림없습니다.
한 인간을 바라보며 참으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한 인간이 때로 고통이고, 십자가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로 한 인간으로 인해 내가 숨을 쉴 수 있습니다. 한 인간으로 인해 내가 지옥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인간 존재 그 자체가 기쁨의 원천이고 행복의 원천이고, 그가 있음으로 인해 내가 오늘 구원되는 그런 체험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는 보다 많은 천사가 필요합니다. 측량할 수 없이 깊은 하느님의 사랑을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천사,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의기소침해있는 이웃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 무인도처럼 고립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로 다가가는 천사,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언어를 매 순간 사용하는 천사가 필요합니다.
천사는 엄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한 아기가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날 밤, 아기는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내일 지상으로 보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렇게 작고 무능력한 아기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너를 위한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지. 그 천사가 널 돌봐줄 거란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말을 모르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죠?”
“네 천사가 세상에서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말로 너한테 얘기해 줄 거란다. 그리고 인내심과 사랑으로 네게 말하는 걸 가르쳐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다고 해도 제가 하나님께 말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그럼 네 천사가 네 손을 잡고 어떻게 기도하면 되는지 알려 줄 거란다.”
“지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다던데 그 사람들로부터 저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란 말인가요?”
“네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보호해 줄 거야.”
그 순간 하늘이 평온해지면서 벌써 지상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하느님, 제가 지금 떠나야 한다면 제 천사 이름이라도 좀 알려 주시겠어요?”
“네 천사를 넌 ‘엄마’라고 부르게 될 거란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하느님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묘사합니다. 불꽃같은 옥좌에 앉아 계시고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고 그분을 모시고 선 이들이 억만입니다. 그분께 ‘사람의 아들’같은 이가 나아와 통치권과 영광의 나라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해 세상을 도와줄 수 있는 분으로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아들은 그리스도라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천사, 중재자, 메신저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중재자가 왜 필요한 것일까요? 왜냐하면 독서에서 묘사되었듯이 하느님은 범접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느님과 직접 맞대면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누구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중재자인 천사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천사들은 너무나 깨끗하고 순종적이어서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또한 주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기에 자신과 같은 처지이지만 자신보다 더 멀리 떨어져있는 인간들에 대한 자비심도 커서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중재해 줍니다. 이것이 천사의 역할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천사와 가장 가까운 역할을 하는 존재가 엄마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 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였습니다. 수많은 인종 차별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 날 로빈슨은 브룩클린 구장에서 경기를 할 때, 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백인 관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에게 야유를 보내고 욕을 해댔습니다.
그때 백인 선수인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서 그를 끌어안고 청중을 쳐다보았습니다. 갑자기 관중석이 조용해졌습니다. 나중에 로빈슨은 그의 어깨를 감싸준 동료의 팔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 주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엄마가 자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큰 사랑의 모습이고 천사의 모습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교회는 너무나 다가오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따라서 천사와 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엄마와 같이 보호해주고 가르쳐주고 아빠를 소개시켜 줄 천사가 있어야합니다. 그 천사와 같은 존재란 바로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우리 신자들입니다. 믿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자비를 느끼며 그들을 교회의 품으로 이끌려고 하는 이들이 천사와 같이 순결한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미든 믿지 않는 이들에게 천사와 같은 엄마들이 되어야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저의 큰 형님은 세례명이 미카엘입니다. 생일이 9월 달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형님은 사도 요한입니다. 생일이 12월 달이기 때문입니다. 동생 수녀님은 프란치스카입니다. 생일이 10월 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일이 5월 달입니다. 그래서 세례명이 필립보나 야고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례명이 ‘가브리엘’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생일과 가까운 세례명을 정했는데 저만 생일과 상관없는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세례명이 참 좋습니다. 요즘 대세로 떠오르는 ‘소통과 공감’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카오 톡, 페이스 북, 트위터, 사이월드’는 서로를 연결해 주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이 통로를 통해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삶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도 카카오 톡을 이용해서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유용한 정보를 받기도 합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서 벗들의 생각을 읽기도 합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은 우리의 힘’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전령(傳令)으로 일한다고 여기는 천사입니다.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구약성경의 다니엘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수의 탄생을 예언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수태를 알리는 천사’라는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루카 복음서를 보면 가브리엘이 제사장 즈카르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을 낳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으며(루카 1,5-20) 엘리사벳의 사촌인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여 그녀에게 예수를 수태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방문한 것을 가리켜 “성모영보”라고 일컫습니다. (루카 1,26-38). 교회에서는 3월 25일에 이날을 기념하고 있으며, 묵주기도의 “환희의 신비” 1단으로도 기념합니다. 가브리엘은 오늘날 통신업에 종사하는 사람, 라디오 기사, 집배원, 대사, 저널리스트, 우표 수집가의 수호천사입니다.
천사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야만 천사가 아닙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사람,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 옳고 그름을 알아 늘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날개가 없어도 천사입니다.
천사는 하얀 옷을 입고, 날개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보면 천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야곱에게 나타나서 씨름을 하였습니다. 토비야에게 나타나서 길을 안내 하였습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천사는 이렇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산 다면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계속 펴 갑니다.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님
이제는 해외에 관광을 많이 나갑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려는 거지요.
TV에서 봤다고 해도 실제 가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은 엄청납니다.
특히 죽기 전에 꼭 봐야한다는 말을 할 정도의 장소는 역시 놀랄 겁니다.
그런가 하면 스마트폰도 처음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계속 펴 갑니다.
나이 드신 분은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새 세상을 펼쳐갑니다.
사람이 만든 세상이 이렇다면 하늘나라의 경관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0)”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느님 사랑을
일깨워주는 대천사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모든 존재를 부정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대천사 축일은
진정한 사랑이 무언지를
일깨워줍니다.
사랑은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하느님 사랑을 통해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어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대천사들을 통해
나눌수록 풍요로워지는
하느님 은총을 만나게 합니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는
있을수 없습니다.
언제나 공경받아야
할 존재는 하느님 사랑을
나누고 전달하는 존재들입니다.
그 사랑을 대신할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하느님 사랑을 통해
아름답게 탄생됩니다.
생명의 신비는
생명의 기쁨으로
드러납니다.
생명의 기쁨은
하느님의 마음인
대천사를 통해 오늘도
우리를 끌어안으십니다.
생명을 생명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아픔을 치유로 이끄시는 것은
하느님 사랑뿐입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기에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대천사를 통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십니다.
모든 것이 찬미와 영광이 되듯
하느님의 대천사들처럼
하느님의 기쁨과 사랑을
드러내는 은총의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생명의 신비는
대천사들처럼
하느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께 찬미드리는
가운데 만나는 기쁨입니다.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기쁨임을
믿으며 모든 존재를 향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품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하느님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고
풍요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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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 걷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어나 걷기 위해서 이 아기는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어난다고 하네요.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인데, 아기가 걸으려면 최소한 2,000번 이상 넘어져야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묵상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은 어떠했을까요? 나는 능력이 특출해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벌떡 일어나 걸어 다녔을까요? 아닙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넘어졌고 그 넘어짐의 횟수가 2,000번 정도 되어야 제대로 걷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어른인 우리 모두는 2,000번 이상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넘어지고 일어서는 순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잘 걸을 수 있고 또 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넘어지고 일어서는 그 순간이 없다면 뛰는 것은 물론 잘 걷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이라는 것은 어떨까요? 이 고통과 시련 역시도 내가 더 잘 살고 더 행복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런 상황을 손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지요. 이미 갓난아기 때에 가장 어려운 순간을 스스로 벗어났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기억은 완전히 잃어버리고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불평불만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세상 속에서 묻어 살다보니 세상의 잘못된 관점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것들과 쾌락적인 것들만 충족되면 모든 것이 괜찮다는 잘못된 관점들이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변하게 만들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이지요. 대천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대천사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세상의 흐름에 묻어 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며, 하느님의 명령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흐름에 묻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철저히 하느님의 관점에서 살면서 하느님의 뜻과 명령에 충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가면서 창세기 28,12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지금의 세상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느님의 천사들을 볼 날이 오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의 잘못된 삶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는 바른 길, 하느님의 길을 선택해서 천사처럼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내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오프라 윈프리).
내가 집중하고 있는 곳은?
어떤 곳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질문을 던져볼께요.
“다시 태어나면 현재 모습처럼 되길 원합니까?”
대부분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떻습니까?
“다시 태어나면 현재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싶습니까?”
이 역시 대부분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세상의 모습만으로는 아무리 죽고 태어나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통해서만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할 때에만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까요?
천사
송영진 모세 신부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예수님) 위에서 오르내린다는 말은 예수님 위를(또는 주위를) 날아다닌다는 뜻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사들이 하늘의 하느님과 땅의 예수님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거룩하시다.' 라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은 천사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이사 6,2-3).
그래서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그곳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천사들의 존재 자체가 하느님의 현존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예수님 위를 오르내린다는 표현은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 또는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하느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분이 아니고(사다리가 아니고) 땅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라는 말씀은 하느님이신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영적 존재는 천사입니다. 천사들은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서 하느님께 바치고(토빗 12,12), 하느님의 응답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존재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주로 사탄과 싸우는 대장군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그의 존재 자체가 '주님의 기도'의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라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즈카르야와 마리아에게 나타났었기 때문에 그는 '주님의 기도'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빗기'에서 토비야를 돕기 위해서 나타났던 라파엘 대천사는 '주님의 기도'의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넓은 뜻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설명들을 다시 정리하면, 천사가 하는 일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또는 하느님의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호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날마다 그분을 찬미하고 찬송하여라(토빗 12,18)."
그래서 대천사들의 축일은 그 천사들을 시켜서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경축하는 축일입니다.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는 숭배 대상이 아닙니다(콜로 2,18). 사람을 돕기 위해 파견된 하느님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에 존경할 뿐입니다.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히브 1,14)"
이 구절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이웃에게 봉사하면(이웃을 도와주면) 그 사람이 바로 천사이다.' 라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우리를 도와준 그 사람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입니다. 반대로 어떤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을 기꺼이 도와준다면 우리가 바로 천사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다.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1-2)." (이 구절의 '손님'은 잘못된 번역이고, 이 말은 '나그네'로 번역해야 할 말입니다.)
낯선 나그네를 접대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한 사람은 아브라함, 롯,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 토비야 등인데,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사실은 천사가 아니라 하느님이었습니다(창세 18장). 낯선 나그네를 접대했는데 사실은 하느님을 접대한 것입니다.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을 아브라함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천하게 된 것입니다.
천사가 움직이면 마귀는 물러납니다(마태 4,11). (마귀가 떠나야만 천사가 다가온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은 마귀의 마음입니다.
이웃을 생각하는 이타심은 천사의 마음입니다.
마귀가 있어야 할 곳은 지옥이고, 천사가 있는 곳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각자 천사가 된다면 이 세상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수호천사
전진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 축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원의 역사 안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천사들이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의 일을 실행합니다. 천사가 신앙의 핵심은 아닙니다. 신앙의 중심점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참된 하느님이시고 참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모든 것은 이 축軸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은 자기 자신을 중심점으로 삼으려다가 타락했지만, 천사들의 영광과 기쁨은 살아 계신 하느님께 봉사하고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데 있습니다. 천사들은 실재하며, 그들의 존재는 신앙의 진리입니다. 천사들은 구원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순수한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신비롭고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천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신자들에게는,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의 천사가 그 보호자로 그리고 목자로 주어져 있다.”고 성 바실리오는 말합니다. 이로써 그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수호천사’를 지정해 주셨다는 신앙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천사들이 우리가 죽음을 넘어서 낙원에 들어가는 길로 함께해 주시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기도 자리
심종미 수녀님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군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하느님의 관계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마치 석가모니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이 자신을 거짓 없는 참된 이스라엘인으로 알아보고 또한 자신이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꿰뚫어 보고 계신 분으로 알게 되면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란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서로 바라보며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요즈음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아이폰 등을 통해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사생활까지도 다 알고 지냅니다. 정작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나 자신의 부모나 가족에 대해서는 모르면서도 나와 무관한 이들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치 많이 알고 있습니다.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조차 못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느 신자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좁지만 참으로 깔끔하게 잘 정돈된 집이 인상적이었는데, 한 가지 더 놀란 것은 그 좁은 공간에도 구석에 기도 자리를 마련해 둔 것이었습니다. 형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평소에 기도하며 지내는 모습이 물씬 풍기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온화하고 겸손한 그분의 자태가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 앞에서,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이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오십시오!’
우주에 외계인이 있는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교리는 믿을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두 번의 공의회를 걸쳐서 믿을 교리가 되었는데 놀랍게도 두 번째 공의회는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19세기 후반에 믿을 교리로 재확인 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19세기에 믿을 교리가 되었을까?
그런데 믿을 교리가 되었다는 것, 그것도 19세기에 와서 믿을 교리로 재확인되었다는 것 자체가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진 것의 반증일 것입니다.
실상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많고, 교회가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하게 반론을 펴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가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은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 뿐입니다.
천사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천사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유권적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서울 사는 제 군대 친구가 제가 소임을 하고 있는 진주까지 찾아왔습니다.
25년 전이니 진주는 그야말로 “진주라 천리 길”의 그 진주지요.
그 먼 길을 찾아온 것만도 너무 뜻밖인데 찾아온 이유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우주에 외계인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오기 전에 이 친구는 같이 군대 생활했던 목사님도 찾아가 똑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그 목사님은 성서에 외계인에 대한 얘기가 없으니 외계인은 없다고 아주 확언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부는 뭐라고 얘기하는지 듣기 위해 온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상한 사람의 쓸 데 없는 관심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과 관련하여 중요한 주제이지요.
저는 “있다, 없다”는 내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단언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든지 그런 존재를 창조하실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작은 앎과 유한한 경험을 가지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우리와 다른 또는 우리 이상의 영적인 존재도 만드실 수 있으시고, 만드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이 영적인 존재와 통공을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천사들과 통공하고,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천사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천사들과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가 서로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과 피조물이 서로 통공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모든 존재들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고 사신이 되어,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려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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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보낸 날이었지요. 오전에는 강화에 있는 인천신학교 부제반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 있었고, 오후에는 사무실에 돌아와서 업무를 봤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동창 모임이 있어서 늦은 시간까지 함께 했었습니다. 피곤함을 느끼면서 방에 들어오는데 저는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 했습니다. 글쎄 제 바지의 가랑이 부분이 완전히 터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언제 터졌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하기 전? 아니면 강의 때? 아니면 낮에 사무실에서? 아니면 동창들과 식사를 하면서?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방에 들어오기 전에 바짓가랑이가 엄청나게 크게 터져 있었다는 것이지요.
부끄러웠습니다. 너무나도 크게 터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다 보았을 텐데 이런 망신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바지가 터져 있는 것도 모르고 지냈던 저의 무감각함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감각이 죄에 대해서는 더욱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지 터진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 왜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그런 죄를 지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거짓 없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나타나엘을 향해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지요. 바로 죄를 짓지 않는 올바른 생활을 통해 천사의 모습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주님께서 인정하는 올바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를 반성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우리가 올바른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이 아닌 나중으로 미루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뒤로 미루면서 각종 핑계를 앞세우기에 바빴습니다.
많은 부자들은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온전하게 자식에게 물려줄까?”
이러한 고민을 들은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유산이란 죽었을 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멋진 삶으로 살았을 때 물려주는 것이다.”
내가 죽은 다음으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향해 올바르게 살아가는 믿음이라는 유산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지금 당장 물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역시 예수님께 칭찬을 받아 천사가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영광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헤르만 헤세).
모두가 스승이다(노회찬, ‘행복한 동행’ 중에서)
1992년. 2년 6개월 만에 만기 출소한 나에게 바깥세상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어두운 밤, 길 잃은 배처럼 아무리 찾아도 등댓불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에게 푸념처럼 말했다. 믿고 따를 만한 스승이 없다고, 온화한 성품의 선배는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그러나 누굴 스승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지 말하진 않았다.
사실 그때 나는 영웅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무언가 막힌 길을 뚫어 낼 만사형통의 완벽한 지도자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느새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거나 배움이 짧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정치가 가야 할 길을 배우고 시장 좌판 할머니의 갈라진 손에서 경제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배우곤 한다.
그렇다.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내가 갖지 못한 것, 배워야 할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그것을 발견해 내고 배우려 하기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스승’을 안이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이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모든 존재의 걸음걸이, 앉는 모양새까지 삶의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세계 최초로 8000미터급 정상을 16군데나 오른 것으로 유명한 등산가 엄홍길 대장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물었다.
“세계 최고봉을 다 올랐는데 아직 올라야 할 산이 남아 있는가요?”
엄 대장은 이렇게 답했다.
“낮은 산 역시 그 나름대로 오르는 묘미가 있죠. 산이 낮다고 해서 오르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높든 낮든 산은 산이고 거기서 배울 것이 있다는 말로 이해했다.
좋은 환경, 좋은 사람에게서만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제자는 스승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서든 소중한 진리와 삶의 이치를 터득해 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제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제자가 많은 스승보다 스승이 많은 제자가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진실한 사람
이재순 수녀님
사탄의 특성은 거짓입니다.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은 사탄의 하수인입니다. 남의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은 마귀와 함께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거짓이 없다고 좋아하십니다.
진실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 뵙고 따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에게는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진실하려면 우선 스스로가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인간은 남에게 속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속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위를 잘 식별해야 합니다.
마음에 떠올랐다고 다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유혹인지, 하느님의 뜻인지 고요히 기도하면서 똑바로 식별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왜 이 말과 행위를 하려고 하는가?”
그 동기와 목적을 헤아리며 사는 사람은 쉽게 속지 않습니다.
유시찬 신부님
오늘 복음 장면은 예수님 공생애의 초창기 첫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계시던 모습 중의 하나입니다. 나타나엘과 만나시는 장면인데 역시 묵상보다는 복음관상을 하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겠습니다.
먼저 이 복음 앞에 필립보와 나타나엘이 주고받는 대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즉 나타나엘이 필립보의 말을 듣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발길을 옮기게끔 만드는 나타나엘의 내면의 모습과 사람됨의 깊이를 느껴 보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다음은 나타나엘과 예수님이 만나는 장면인데, 두 분이 나누는 대화의 분위기와 대화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습니다.여기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예수님은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셨다고 하신 그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알아듣는 것이 좋습니다. 즉 메시아적인 평화 내지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라삐들의 표현 양식을 빌려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점을 참작해서 나타나엘의 모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증언하시듯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는 나타나엘처럼 깊이와 향이 나는 사람들을 접하면서 역시 우리 자신을 좀 되돌아보면 유익함이 많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향한, 세상을 향한 태도를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이 한생을 살고 있는지, 자신의 지금 모습이 어떤지를 짚어 봄으로써 약간의 궤도 수정이 일어난다면 은총이겠습니다.
천사, 보는 것을 보여주는 자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천사” 그러면 백의의 천사가 의미하듯 보통 사욕이 없고 남에게 좋은 일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런 뜻이 없지 않지만 오늘 복음의 천사는 하느님의 천사입니다.
하느님께 속하여 있고 하느님을 위하여 있는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여도 그 자체로 천사는 아닙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사절이기 때문에 사절로서 일을 해야만 사절입니다.
그런데 사절이란 무엇입니까?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누구로부터 누구에게 보내지는 존재입니다.
즉 소통을 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 천사가 아니라 소통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천사인 것입니다.
꽉 막혀 전혀 아무 것도 오고가지 않는 관계를 오고가는 관계가 되도록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사절 중에서도 특별한 사절, 즉 특사(特使)입니다.
막혀 있던 하늘과 사람 사이를 오고가는 특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가 사람의 아들 위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거”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하늘이 열려있음을 보게 하는 존재이고 하느님과 우리를 소통케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천사들처럼 사절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절이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사절이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리토 2서 5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하늘이 세상을 향해 열려져있으니 세상도 이제 하늘을 향해 돌아서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늘 관상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테파노처럼 열려있는 하늘을 먼저 보고 사람들에게도 그 하늘을 보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보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듯 우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고, 우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되고 듣게 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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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9월의 막바지에 들어서있습니다. 사실 9월 한 달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특히 강의가 많아서 더욱 더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강의준비도 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제 방은 지금 완전히 전쟁터 같습니다. 특히 늘 일을 마무리하고서야 정리를 하다 보니, 책상 위를 비롯해서 어느 곳 하나 깨끗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어제 새벽, 성당 문을 열기 위해서 사제관 키를 먼저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제관 문은 자동으로 문이 잠겨서 카드키가 있어야만 다시 들어올 수 있거든요. 하지만 어디에 붙어있는지 도대체 보이지 않습니다. 옷 주머니를 뒤져보고, 책상 위도 찾아보았습니다. 한 10분 이상을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았지요. 왜냐하면 제가 성당 문을 열어야 새벽 미사 오신 신자 분들이 성당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결국 두꺼운 책 사이에 끼어 있는 카드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카드키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사실 평소에는 이 카드키에 대해 반갑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카드키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는 카드키가 너무나 반가웠고, 지금 내가 찾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문득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 학창 시절에 ‘Love Is....’라는 글이 적혀 있는 책갈피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 다양한 사랑의 정의를 볼 수가 있었는데요. 저 역시 어제의 카드키 찾기를 통해서 ‘사랑이란 발견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평소에 카드키의 중요함을 몰랐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급할 때 발견하게 되면서 카드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지요. 마찬가지로 사랑은 이렇게 발견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실 나타나엘은 나자렛 출신인 예수님에 대해서 별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예수님을 그저 그런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서 그는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아시는 예수님,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이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일상 삶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변화될 수 있으며, 가정, 일터,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셨던 더 큰 일을 우리 역시 보게 될 것입니다. 즉,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사랑을 조금씩 발견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변화시킬 때,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노력에 대한 가장 값진 보석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존 러스킨)
마음의 평정(이용범)
타인에 대한 배려란 그런 것이다. 상대방의 실수를 용서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실수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물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설령 상처를 주었더라도, 상대방이 상처가 아님을 믿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배려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집착하지 말라. 행복한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나간 시간에 마음 쓰지 않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순간 순간을 풍요로운 시간으로 만든다. 지금 이순간의 행복이야말로 끝이 없는 유일한 시간인 것이다.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자신의 못난 점을 먼저 본다. 하지만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먼저 살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긍정하고, 마침내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남이 가진 것과 내 것을 비교하지 말라. 많이 가진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혹은 신으로부터 많은 빚을 떠안고 있는 사람일뿐이다. 대개 부자의 만족이란 가난한 자의 눈물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언젠가 그가 흙으로 돌아갈 때는 그는 당신보다 훨씬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셈이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모든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단 하나라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다면, 그의 영혼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불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것은 더 이상 욕망하는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 소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커다란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행복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이다.
욕망의 존재들은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행복이란 정신적인 기쁨과 마음의 평안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천사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탄탄대로와 외진 산길, 향기로운 오솔길과 거친 들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쉼 없이 교차되는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가장 큰 행운은 어떤 것일까요?
행운 중의 행운은 아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너무 좋아서 설레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해도 세상의 시름을 잊게 만드는 그, 한없이 부드러운 눈길로 단번에 내 깊은 슬픔을 치유시키는 그, 언제나 느껴지는 따뜻한 환대와 자상한 배려에 천국을 느끼게 하는 그...
그래서 천국의 향기를 온몸에서 풍기는 그, 말이 아니라 삶으로, 온 몸으로 천국을 증거하는 그, 그는 어떤 면에서 이 시대 또 다른 천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분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충실했던 하느님의 전령이었던지 그냥 천사도 아니고 대천사(大天使)입니다.
천사들은 항상 ‘골골하는’ 빈약한 우리 인간의 영적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유출되는 에너지이자 능력입니다.나약한 우리 인간의 구원과 성장을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영적도우미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놓여있는 영적 사다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설명 드리는 저부터 정말 알쏭달쏭한 존재인 천사란 존재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어디 먼 다른 하늘에서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천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사제들인 우리, 수도자들인 우리, 본당 단체장들, 다양한 단체의 봉사자, 지도자들, 오래 사셔서 많은 연륜을 쌓으신 어르신들이야말로 천사처럼 살아가야 될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 뭐라고 말들을 합니까? “천주교 신자가 저래도 되? 믿는 사람들이 더해요!”가 아니라 이런 말들이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와야겠지요.
“천사가 따로 없네!”
“정말 날개 없는 천사네!”
어르신들, 저물어가는 인생이 못내 아쉽겠지만, 그럴수록 더욱 분발하셔서, 후손들이 “뜨는 해도 아름답지만 황혼의 아름다움에 비교할 바가 못 되는구나!”라는 감탄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봉헌생활자들, 살아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겠지만, 때로 내 몸 한 몸 챙기기도 벅차겠지만, 그래도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나’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세상과 이웃과 시대의 아픔에 온 몸으로 투신하는 또 다른 천사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이난호
새벽 산책길에서 가끔 마주치던 노동자풍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치히, 치히, 하는 큰 숨소리가 마치 구호처럼 들려 우스웠지만 우직하리만큼 진지한 표정으로 달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느 날 그의 오른팔에 깁스를 해 ‘ㄴ’자로 꺾여 있었다. 그 팔을 목에다 붕대로 걸어 매고 예의 구호도 없이 슬금슬금 달리는 게 안쓰러웠다. 혹 끼니 걱정은 안 할까? 부양가족이 많지는 않을까? 절로 쾌유를 비는 화살기도가 나왔다. 얼마 후 깁스가 풀린 그를 보자 하마터면 ‘축하합니다.’ 소리칠 뻔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새벽, 힘찬 군가와 함께 저만큼에서 그가 달려오는 걸 보았다. “…저희 죄를 요옹서어 하아시이고오….” 세상에나, 군가가 아니라 주님의 기도였다. 하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의 다음 구절이었다. 속이 좁아 남을 용서하는 게 힘든 나는 매번 그 구절에서 걸렸다. 그의 뒤에 대고 속으로 ‘고맙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건 바로 그에게 주님의 기도를 부르짖게 하신 분께 드리는 감사였다.
나타나엘이 “스승님은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했을 때 나는 대뜸 그 중년 남자가 떠올랐다. 그라면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는 순간 망설임 없이 예수님을 고백했을 것이고 예수님은 그를 어여삐 보시고 나타나엘에게 하셨던 언약을 주셨을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분을 당겼다 밀쳤다 변덕을 부리며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잠깐 우쭐했던 걸 고백한다. ‘혹 그 중년 남자가 몇 번의 화살기도 때문에 주님의 기도를 부르짖게 된 건 아닐까?’ 우리가 드린 기도는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당쇠 김찬선 천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天使는 하늘의 사신이라고 풀어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오늘 복음을 자세히 보면 주님도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명을 받은 듯이 보입니다.
어떤 사명일까요?
라파엘은 하느님 치유의 사명이고
미카엘은 하느님 보호의 사명이고
가브리엘은 하느님 말씀 전달의 사명입니다.
아무튼 이런 전달자 천사의 존재를 인정함은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중간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치유와 보호와 말씀을 내리시기도 하지만 천사와 같은 중간자를 통해서 내리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가장 완전한 중간자, 중개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바로 중간자, 중개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천사이고 풀잎도 천사입니다.
주교 앞에서 옷을 홀딱 벗어 아버지에게 옷을 돌려준 뒤, 그리고 육신의 아버지와 결별을 하고 하늘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섬기겠다고 선언한 뒤 프란치스코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납니다.
강도가 “너는 누구냐?”고 프란치스코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위대하신 하느님의 사신이요.”하고 답합니다.
갑작스런 출현과 질문에도 즉시 이렇게 답하는 프란치스코는 자기 신원의식과 사명에 대한 인식이 아주 뚜렷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사람들에게로 가는 존재. 이것이 프란치스코의 신원이고 파견되어 말씀과 치유와 보호의 행위를 통해 주님 사랑을 전하는 것, 이것이 프란치스코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들뿐 아니라
수많은 천사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전해 받았고 이제는 우리가 천사가 되어 주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오늘 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며 다짐합니다.
천사 당쇠 김 찬선.
좀 어색한가요?
여러분은?
하늘나라의 일꾼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저는 성령님이 계시지 않아, 영혼과 육체가 깨어지는 첫 번째 모습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의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진실함은 하느님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지우개를 훔쳤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리고 깨끗한 영혼에 처음으로 상처가 간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양심이 매우 예민하여 작은 잘못을 해도 예민하게 느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것이 점점 무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이의 깨끗함을 잃어 하느님과 점점 멀어짐을 뜻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사회에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한 공장의 운전기사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저녁 약속이 본당 신부님과 있었는데 공장이 좀 늦게 끝나 제 시간에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다 내려주고 교통신호도 무시하며 달렸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이 저를 잡았습니다. 아르바이트라 얼마 받지도 않는데 당시 칠만 원을 벌금 무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운전병으로서 군대에서 배운 것을 써 먹기로 했습니다. 저를 딱지 떼면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공장 운전기사입니다. 지금까지 벌점이 많아서 이번에 딱지떼면 적어도 삼십일 면허정진데 그럼 저 회사에서 잘립니다. 갓 결혼해서 애들도 있는데 ...”
저는 손가락에 군대에서 함께 맞췄던 반지를 끼고 있었고 그 경찰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하며 저를 보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거짓말보다 이 십분 동안 한 거짓말이 더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서도 하나도 떨리지 않았고 그것이 잘 먹혀들어가니 묘한 쾌감도 느껴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타나엘을 보시며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을 의미하며 결국 하느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거짓말은 독과 같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하면 믿지 못하게 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 사랑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믿는 관계가 되어야하는데 결국 거짓말하는 사람은 그 관계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백성인 나타나엘에게 당신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즉시 예수님께서 야곱의 사다리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도망치는 도중 베델에서 꿈을 꾸었는데 바로 그 곳에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가 놓여있고 그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베델은 ‘하느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느님 집으로 통하는 문이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쨌든 ‘진실, 솔직함’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유는 천사들의 깨끗함을 지닌 이라야 그리스도라는 사다리 위에서 하늘과 땅을 오가며 하느님나라를 세상에 전파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하느님은 ‘하늘’에 사십니다. 땅에서 살지만 마음이 하늘처럼 깨끗한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도달한 이라야 하늘과 땅을 오가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재의 역할을 하는 사제직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대천사들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늘과 땅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하느님의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란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곧 하늘나라의 맛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천사처럼 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우선 죄인은 그리스도인 야곱의 사다리를 탈 수 없게 됩니다. 야곱의 사다리인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사람만이 그 사다리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늘과 땅을 이어주신 유일한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거짓과 양립할 수 없는 분이고 또 그 분을 따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거짓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라야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 되어 이 세상에 천사들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종들이 되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을 천사들처럼 깨끗하게 만들기를 결심하며 특별히 구체적으로 거짓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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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성당 리모델링을 위해 공사를 하다가 성전에 무대 조명을 설치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 조명을 설치해 두면, 예술제나 음악회의 행사 때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무대 조명을 전문적으로 설치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원하는 바들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이것들을 다 충족시키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냐고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5천만 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가장 기본적으로만 무대 조명을 꾸미면 얼마나 들지를 물었지요. 그래도 3천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답니다.
그들이 제시한 가격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1~2백만 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지요. 만약 제가 3~5천만 원 정도 든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명 업자들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공사비용도 그리 넉넉하지 않으니까요.
문득 생각의 차이에 대래서 생각하게 됩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생각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만약에 제가 이 조명 쪽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면, 조명업자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대해서 깜짝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예상 가격과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지요.
모르면 모를수록 생각의 차이는 더욱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즉, 주님을 모르면 모를수록 주님과 나의 간격은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점점 멀어지려고 하고 있는데, 당신 스스로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나타나엘은 충격을 받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는 것은 나타나엘의 지난날을 상징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을 그래서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주시는 분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를 알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들의 불충으로 멀어진 간격을 다시 좁혀주십니다. 즉,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역시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서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줄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는’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합시다.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좋은 글‘ 중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참 좋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보다 가진 것이 좋아도
남에게 베풀 줄만 아는 바보같은 사람
항상 당하고 살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이 부끄럽고 못나 보이지만
그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낍니다.
물론 그 반면에는
늘 실망감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사람
차라리 연락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남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봄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
남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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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때의 일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 1학년 때의 일로 아마 총장배 체육대회 중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체육대회는 신학교의 큰 행사 중 하나로 각 학년은 자기 학년의 명예를 걸고서 정말 열심히 경기에 임합니다. 당시 저희 학년은 전 종목에 걸쳐서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특히 포기했었던 농구가 결승에 오르는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학부 3학년과 대학원 1학년인 우리 반의 농구 결승전. 누가 봐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당연히 학부 3학년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결승전이라고 전교생과 학교 교수 신부님들이 관람하고 있는 가운데 결승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점수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팀에서는 봐주면서 하는 것 같고, 우리 팀은 이 정도만 되어도 성공했다는 듯이 즐기면서 농구를 합니다.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때 제가 승부욕이 엄청나게 강했거든요. 따라서 이러한 모습을 그냥 볼 수가 없었지요. 점점 과격해지면서, 상대방의 약한 파울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교수신부님들과 전교생이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큰소리로 욕을 하며 화를 내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의 승부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저희 학년이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의 일입니다. 저랑 농구를 할 때면 사람들이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 반의 승리를 가져오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게 된 것이지요.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공격적인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성공은 늘 단명으로 끝나지요. 반면에 그들이 저지른 해악은 자신과 남에게까지 널리 미치는 것 같습니다. 경쟁이 지나치면 결국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고, 자신도 불쾌해지며, 욕을 먹게 되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대학원 1학년 때의 저처럼 말이지요.
반면에 경쟁심을 버린 사람은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자기 식을 남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속상해하거나 움츠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천사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천사야.”라는 말을 자주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나 스스로는 그 천사와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천사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는데 더 익숙해 하면서 천사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 역시 천사들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천사는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하고 있으며, 나 역시 내 이웃의 또 다른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천사 축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선생님은 천사에요(최관하, '좋은생각' 중에서)
2학기 대입 수시 접수가 한창이다. 아이들이 입시 준비로 피곤한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무조건 일찍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등나무 옆을 지나던 중이었다. 그곳엔 3학년 수정이가 앉아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 생각과 달리 내 발걸음은 어느덧 수정이를 향하고 있었다. "안녕"
내 인사 소리에 수정이도 반갑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정이가 다음 날 원서 마감인 대학의 자기소개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피곤했지만 수정이의 안타까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밤늦게라도 정리해서 내게 보내면 살펴 주겠다고 하면서 수정이와 헤어지고 차에 올랐다.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선생님은 천사예요. 정말 감사해요. 피곤하실 텐데도.... 수정 올림."
'선생님은 천사예요.'라는 말이 나의 가슴을 쳤다. 수정이의 짧은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나는 깊은 위로를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나는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누워 버렸다. 그동안의 피곤함이 물밀 듯 밀려왔던 것이다. 몇 시간쯤 잤을까. 비교적 잠귀가 밝은 내 귀에 문자메시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자기소개서 보냈거든요. 봐 주시면 감사!"
시간은 밤 10시경이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일어나야 한다. 수정이가 기다릴텐데'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해야겠다'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또 문자메시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 아직 못 보셨나요? 기다리다 이제 자려고요." 수정이의 문자메시지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나는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자기소개서를 검토했다. 기다리고 있을 수정이의 눈망울이 떠올라 잠이 다 달아나 버린 상태였다. 다 마쳤을 때 다가오는 희열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나를 믿는 제자들이 있어 행복하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다른 이들보다 한 가지 더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나를 천사라고 불러 주는 나의 천사들을 사랑한다.
이 시대 천사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리도 자주 불평불만을 털어놓게 될까요?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그렇습니다. 남을 너무 의식하다보니 그렇습니다. 남보다 못한 내 모습이 불만족스럽고, 기대보다 못한 현실이 괴롭다보니 불평불만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내부를 향해 방향을 바꿔, 스스로를 개선시키는 에너지로 승화되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불평불만은 밖으로 튀어나와 세상과 남을 향합니다. 내 삶에 대한 불만족이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상대나 세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성숙한 자기방어수단이 불평불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평불만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적당한 불평불만은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불평불만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져 나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분들과 함께 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상당합니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불평불만에 아무런 응대 없이 가만히 있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본의 아니게 위로 차 함께 불평불만에 동조합니다. 덩달아 ‘불평꾼’으로 변해갑니다.
반면에 만났다하면 기쁨을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쁨의 도구는 바로 칭찬이며 격려입니다. 활짝 핀 미소입니다. 균형 잡힌 유머감각입니다.
요즘 웃음치료가 유행입니다. 자꾸만 웃음을 잃어가는 이 시대, 참으로 바람직한 시도입니다. 웃음을 준다는 것은 건강을 준다는 것입니다. 웃게 한다는 것은 생명을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미소를 짓게 한다는 것은 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이웃들의 얼굴에 미소를 감돌게 하는 사람들, 이웃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 이웃들의 등을 기분 좋게 두드려주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 천사들입니다.
발길 닿는 그 어디든 하느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 그 사람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이웃관계를 조성하는 사람, 맑고, 풍요롭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사람,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 천사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분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천사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위치한 영적 존재입니다. 천사는 말마디 그대로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입니다. 이 존재의 역할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한 정당의 대변인이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것 보셨습니까? 대변인은 오직 당 대표의 말을 전하기만 합니다. 당을 대신해서, 당의 입장에서, 당의 뜻에 맞게, 당을 위해서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어떤 면에서 하느님의 대변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팔, 하느님의 분신이 천사입니다.
오늘날 이 천사의 역할은 누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늘을 아무리 올려다봐도 날개달린 천사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천사의 역할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천사의 역할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바로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천사
김인한 신부님
천사를 소재로 다룬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곁에서 천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들어주며 함께 아파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홀로 있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만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이가, 함께 마음 아파하는 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보면 천사란 나와 함께 아파하는, 그리고 나와 함께 기뻐하는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전할 때, 그것은 기계적으로 우리가 늘상 받아보는 세금고지서나 전화비 통지서 같은 전달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마음 아파하고 마음 부대낀 그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천사란 또 다른 모습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모습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사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입니다.
그런 눈이 우리에게 늘상 머물러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천사가 받지 못하는 존귀의 관까지도 우리에게 내리시는 주님을 찬미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위로
변진흥
선천적으로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싸우려면 가슴부터 뛰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말도 잘 안 나오고 겁부터 나는 것입니다. 천성이 착한 것인지 아니면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르지만`….
A 역시 그런 사람에 속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싸움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동네 꼬마대장 노릇을 한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 속에서도 한 학년 밑의 아무개가 싸움을 걸어와 개천까지 내려가게 되었지만 결국 싸움을 못하고 대장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싸움을 걸거나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삶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30년에 걸친 그의 사회생활을 헤아려 보면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직장을 다섯 차례나 옮기게 되었습니다. 평균 3,`4년 만에 직장을 떠나게 되었고, 길어야 5,6년이었습니다. 그나마 제 뜻으로 직장을 떠난 적도 없습니다. 항상 직장이 그를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를 가장 슬프게 만든 것은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으로 도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등뒤에서 그를 격렬히 헐뜯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무도 그를 두려워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에 오히려 마음껏 짓밟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슬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며 하신 말씀, 곧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는 말씀을 듣고 위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천사들을 본받아 사는 신앙인
경규봉 신부님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 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 그러나 천사의 본질과 역할, 계급과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 등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또한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고(745년, 라테란 공의회), 삼대(三大) 천사의 축일과(9월 29일) 수호천사의 기념일(10월 2일)을 제정하여 천사공경을 장려하고 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란 뜻으로 구약성서에 2번이 등장하며(다니엘 10,13이하; 12,1), 신약성서에도 두 번 언급되었다(유다 1,9; 묵시록 12,7-9). 이 천사는 외경에서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미카엘 대천사 공경은 처음에 프리지아에서 발단되어, 서방교회로 확산되었고, 교황 젤라시오의 재임기간에(492-496) 북이탈리아의 가르가누스 산에 발현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발현 장소에 기념 성당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흔히 미카엘 천사는 악랄한 용과 싸우는 칼로 표현되며,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은 로마의 살레리아노가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이고, 1970년에는 그의 축일이 가브리엘과 라파엘의 축일과 합쳐진 것이다.
가브리엘이란 ‘하느님의 강함’ 또는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으로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다(다니엘 8,16-26). 그는 즈가리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였고(루가 1,11-21),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하였다.(루가 1,26-38)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란 뜻이다. 주님 앞에 서 있는(토비트 12,12-15) 일곱 대천사 중의 한 분인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아와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에 의하여 파견되었다. 라파엘은 이 땅을 치유하는 천사로 알려져 있다. 요한복음(5,1)에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주님의 천사’가 라파엘 대천사라고 한다. 라파엘 천사는 맹인의 수호천사이다.
9월 29일은 로마의 살레리아노가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로서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이었는데, 1970년에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축일까지 통합하여 지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감각의 대상인 세상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을 예배하고, 시중드는 존재들이다(묵시 5,11-12; 8,3.4). 또한 땅 위에서는 주님을 위하여 심부름하며 하느님의 일을 행한다(민수 22,22; 마태 13,41).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신자들을 인도하며(사도 8,26), 돕고, 보호한다(1열왕 19장, 다니 6,22). 그리하여 천사들은 하느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시며, 창조된 모든 것은 곧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며 돕는다.
그러므로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천사들처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신앙인이 되자. 우리 삶의 중심에 언제나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되자.
김병환 신부님
나타나엘은 필립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필립보의 안내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필립보가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나타나엘에게 가 그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극찬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당시에 보기 드문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보셨다. 그리고 나타나엘 역시 필립보가 찾아오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사실을 알아맞추시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 그리고 즉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한다.
나타나엘은 누구인가? 나타나엘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바르톨로메오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가나 지방 출신이었으며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난 이후 나자렛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았고, 즉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훗날 나타나엘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요한 21,2)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처음 뵙고 믿음을 고백하였는데 그 신앙고백은 사실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하였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심으로 보았지만 그분을 이스라엘에 국한시켰다. 곧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느님의 아들로 보았다.
이에 예수께서는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나서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훗날 있을 당신의 부활과 승천을 암시하시면서 인류를 위한 하느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통하여 당신은 인류를 위해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하신다. 따라서 나자렛 출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왕이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왕이신 예수께 깊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이다(히브 1,14). 성서는 자주 이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미카엘 천사는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두 번 언급되었는데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닌다. 미카엘 천사는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한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준 대천사이며,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이다. 그리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이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며,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 천사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그들 천사들까지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지고 계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제 더욱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천사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전하는 존재라면,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사랑과 그분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천사의 모습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예수님께로부터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47절)하고 칭찬을 들었듯이 우리 자신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세를 갖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춘다면,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올바로 사는 것이며, 우리의 모습이 진정 다른 사람들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천사가 되어 내 삶을 바꾸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한편 나는 누구의 천사가 되어 그 사람의 삶에 축복이 되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 되어줄 수 있다면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삶의 노력을 주님께 바쳐드리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천사들과 함께 주님께 영광을
김정호 신부님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평화방송 가족 여러분! 오늘은 천사들, 그 중에서도 특히 성서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세 분의 대천사를 공경하는 날입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와 성 가브리엘 대천사, 그리고 성 라파엘 대천사, 이 세 분입니다. 우선 이 대천사들의 이름이 나오는 성서의 대목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가브리엘 대천사부터 보겠습니다. 7 대천사 중의 한 분인 이 분의 이름,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니는 말마디인데, 성서에서는 모두 3곳에서 나타납니다. (1)처음 나오는 곳은 구약성서인 다니엘서 8,15-9,27까지의 대목입니다. 환시를 보면서 그 뜻을 몰라 애쓰고 있는 다니엘 예언자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서 그 환시의 의미를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는 장차 언제쯤 메시아가 오실 것이며, 그 분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 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2)그 다음으로는 신약성서 루가 복음 1,11-21까지에 걸쳐 나타납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제 즈가리야가 비록 늙은 나이이지만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하라고 일러주는 대목입니다. (3)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루가 복음 1,26-38까지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 예고 장면입니다. 나자렛에 살고 있는 한 시골처녀인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장차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라파엘 대천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라파엘!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명시된 성서는 구약의 토비트서가 유일합니다. 토비트와 그의 아들 토비아는 포로로 잡혀가서 아시리아의 니느웨에서 귀양살이를 하지만, 하느님께 충실하면서 의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멀게된 토비트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해주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여행을 떠난 아들 토비아를 지켜주고, 그의 아내가 된 사라를 치유해주었습니다. 이 토비트서 12,11-15까지 보면, 라파엘 대천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대천사는 우리 인간을 수호하고, 우리 인간의 사정을 하느님께 전하고, 하느님 앞에 머물면서 그 분의 시중을 드는 7 천사 중의 하나라고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신약성서인 요한 복음 5,1-4까지 보면,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 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다”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물을 휘젓는 주님의 천사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라는 믿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서에 묘사된 라파엘 대천사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는 그 분을 치유하는 사람의 수호자, 맹인의 수호자, 그리고 모든 여행자의 수호자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미카엘 대천사가 등장하는 부분을 찾아보겠습니다. 미카엘이라는 이름처럼 “하느님처럼 구는 자가 누구냐?”하고 소리치면서, 악마의 무리를 모조리 지옥으로 쫓아내고, 악마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분입니다. 구약성서 다니엘서 10,1-21에는, 다니엘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유다를 침공하는 나라에 맞서 싸울 때 지켜주고 있습니다. 같은 다니엘서 12,1에서도 다니엘과 그 겨레가 일찍이 없었던 어려운 때를 당할 때 그들을 지켜주면서 슬기로운 지도자들이 밝은 하늘처럼 빛나게 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신약성서인 유다의 편지 1,9에서도 모세의 시신을 악마로부터 지키는 미카엘 대천사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고, 묵시록 12,7-9에는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인 큰 용을 미카엘 대천사가 격퇴시킴으로써 하늘나라를 수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9월 29일은 원래 미카엘 대천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로마에 건축한 성 미카엘 대성당을 봉헌한 날인데, 교회는 바로 이 날 세 분의 대천사를 함께 기리면서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성서에 나타나는 가브리엘 대천사, 라파엘 대천사, 그리고 미카엘 대천사는 항상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힘을 줍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우리 인간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늘 지켜보면서 전달해 줍니다.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며 이 현세를 걸어가는 나그네 인생인 우리 곁에 머물면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들의 보호를 받아 언제나 구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 하느님, 천사들과 사람들을 부르시어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니, 하늘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뵈오며 주님을 섬기는 천사들을 보내 주시어, 세상에 사는 저희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소서. 저희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기리며 천사들과 함께 노래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나이다. 아멘.”
김주현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제 4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지만, 천사들에 대한 여러 학설에 대하여 어떠한 유권적인 결정을 내린 일이 없습니다. 다만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의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학설에 따르면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적인 존재로서 '천사'라는 말은 직책의 이름이지 본성의 이름은 아니며, 천사는 그 존재 전체가 하느님의 봉사자이며 전령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파견되어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을 도와주고,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사람을 처벌하기도 합니다. 또 그들은 하느님을 모시는 신하요 군대로 인식되었으며 때로는 하느님의 발현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사신으로서 인간에게 파견되고, 꿈에 나타나고, 흰옷을 입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창조된 영적인 존재이며 하느님의 군대이며,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도들에게 봉사하고, 어린이들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천사세계의 중심이시며 천사들은 그분에게 속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속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을 당신의 구원계획을 알리는 전령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천사들은 더욱 그분께 속한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창조 때부터 구원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 구원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알리고, 이 구원 계획의 실현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구약에서 천사들은 인류의 선조들이 타락하여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 지상낙원의 문을 닫았으며, 소돔의 멸망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호하였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구하였으며, 하느님의 명령으로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였으며, 율법을 전해주는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으며, 판관 기드온에게 그의 소명을 알려주었고, 판관 삼손의 탄생을 알렸으며, 예언자 엘리야와 이사야를 도와주었습니다.
신약에서 천사들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으며, 어린 예수님을 보호하였으며, 40일간 사막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께 봉사하였으며, 번민에 싸여 겟쎄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용기를 북돋아 드렸습니다. 결국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중요한 일을 하실 때마다 천사들을 보내셔서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 3명도 각기 고유한 임무를 가지고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먼저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 같으냐?'라는 뜻으로 주 임무는 하느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악마를 쫓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은 강하시다.',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으로 주 임무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신의 역할입니다. 성서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에 관한 내용이 3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다니 9, 21-27에서 구약시대에 다니엘 예언자에게 나타나 장차 메시아가 오실 것을 전했습니다. 두 번째는 루가 1, 11-19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보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의 부친 즈가리야에게 예고했습니다. 세 번째는 루가 1, 30-33에서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성령의 잉태하심으로 구세주를 낳을 것임을 알렸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셨다.', '하느님의 묘약', '하느님의 의사'라는 뜻으로 위협과 악마의 손에서 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토비트 3, 17에서 라파엘 대천사는 구약시대의 의인 토비야의 아들 소 토비야가 무사히 긴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래서 라파엘 대천사는 여행자들의 수호천사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들까지도 인간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천사들도 빼앗아 갈 수 없을 만큼 크십니다.
오늘 하루 천사들까지 동원하여 인간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느껴 보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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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다닐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제 동기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우연히 보고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제 사진을 몰래 빼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진은 저의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었거든요. 그 친구가 제 첫영성체 기념사진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진은 그 친구의 것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이 사진을 가지고 있을 이유도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진 안에는 저의 얼굴이 분명히 있기도 하지만, 그 친구의 얼굴도 그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저에게 있어서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지만, 그 친구에게도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그 친구와는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었네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요, 제가 냉담하고 있을 때 성당에 나갈 수 있도록 끌어주었지요. 그리고 함께 신학교를 들어가게 되었고, 둘 다 이렇게 신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첫영성체도 함께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보니 어떠한 만남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만남이 단 한 번의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언제 보겠어?’라고 생각하기 쉽고, 또 그렇게 단정을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만남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첫영성체 받았을 때, 그 친구와 아주 안 좋은 사이였으면 어떠했을까요? 고등학교 때, 그 친구와 대판 싸워서 얼굴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으면 제가 과연 지금처럼 신부가 되어 있을까요?
어떠한 만남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좋은 만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상대방이 천사처럼 착한 마음으로 나에게만 잘하기를 원해야 할까요? 그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변화되는 것을 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뀌는 것은 나의 강한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거든요. 따라서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써 다가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오늘을 대천사 세례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날로만 기억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천사와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함을 오늘 축일을 보내면서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천사의 모습으로 살라고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천사의 모습인가요? 이기심과 욕심으로 천사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축일 맞이하시는 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시다. 정병덕 라파엘 신부, 축하해~~~
꼭꼭 닫아두고 사는 세상(박종철)
직장동료 중 한 명이 얼마 전 가방을 잃어버렸다며 저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가방을 넣어둔 채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돈만 꺼내간 게 아니라 가방을 통째로 가져가 버렸다고. 돈을 잃어버린 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런 돈도 안되지만 가족 사진과 일기장 같은 자신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려 화가 난다는 말을 했습니다.
「돈만 가져가면 되지. 인정머리 없이 그런 것들을 가져가냐」고 말한 동료는 한 마디 덧붙이더군요.
책상에 커다란 자물쇠 하나를 채워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절대 물건을 잃어버릴 일이 없다고. 이제 잠시 어디를 나가도 그 자물쇠를 꼭꼭 채워둘 것이라고…….
글세, 뭐랄까요?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그날 하루 종일 왠지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사람보다 자물쇠가 더 믿음직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이든 꼭꼭 닫아두고 살아야 안심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그것이 문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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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의하면 천사(天使)들은 하느님의 심부름꾼들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 결국은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다.(히브 1,14) 천사들은 ‘거룩한 자들’, 또는 ‘하느님의 아들들’로 불리기도 한다. 그 중에는 ‘천사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케루빔’과 ‘세라핌’이 특별히 부각되는데, 이는 구약성서에서 ‘거룹’(Kerub, Kerubim; 창세 3,24; 출애 25,18-19 등 71번)과 ‘스랍’(Seraf, Serafim; 이사 6,2; 6,6)으로 불린다.
교회는 천사들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1215년 제4차 라테란공의회, 1870년 제1차 바티칸공의회) 그러나 천사에 대한 학자들의 학설은 다양하다. 다만 구약과 신약성서에서 이름으로 언급된 미카엘(다니 10,13; 10,21; 12,1; 유다 1,9; 묵시 12,7), 가브리엘(다니 8,16; 루가 1,11.19.26), 라파엘(토비 5,4; 6,5; 6,7)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원래 대천사들의 축일은 미카엘을 9월 29일, 가브리엘을 3월 24일, 라파엘을 10월 24일에 지냈으나, 1970년부터 오늘 9월 29일 미카엘 천사의 축일에 합쳐서 지내게 되었다. 다른 천사들에 대한 공경은 10월 2일을 따로 정하여 수호천사들을 기념하고 있다.
대천사 미카엘(Michael)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으로 특히 외경에 자주 등장하는데 천상(天上)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미카엘 대천사는 단지 구약의 다니엘서(10,13.21; 12,1)와 신약의 유다서(1,9)와 요한 묵시록(12,7-9)에만 언급된다. 미카엘 대천사 공경은 처음에 프리지아에서 발단되어, 서방교회로 확산되었고, 교황 젤라시오의 재임기간에(492-496) 북이탈리아의 가르가누스산에 발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 발현 지점에는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9월 29일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은 로마의 살레리아노가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에서 유래되었다. 이 대성당 입구에는 요한묵시록(12,7-9)의 기록에 따라 칼을 들고 용과 싸우는 미카엘 대천사의 상이 세워져 있다.
대천사 가브리엘(Gabriel)은 ‘하느님의 힘’, ‘하느님의 영웅, 용사’의 뜻으로 하느님 계획의 전달자, 환시와 예언의 설명자로 나타난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구약의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주었으며(다니 8,16-26), 즈가리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였고(루가 1,11-21), 하느님의 놀라우신 구원계획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려주었던(루가 1,26-38) 하느님의 사자이다. 아울러 요셉에게 약혼녀 마리아의 동정잉태를 설명하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로 명명하도록 지시하고(마태 1,20-21), 헤로데 대왕의 박해를 피해 성가정을 이집트로 피난시켰다가 헤로데의 죽음을 알려주고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도록 지시한(마태 2,13.19-20) 주님의 천사도 가브리엘 대천사로 추정된다.
대천사 라파엘(Rafael)은 ‘하느님이 치유하신다.’라는 뜻으로 치유하는 자, 맹인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일곱 천사들 중 하나로서 구약의 토비트서에 무려 42번이나 언급되는데, 그는 토비트와 그의 아들 토비아와 토비아의 아내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베짜타 못가의 병자를 치유하신 대목에서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 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다.”고 전한다.(요한 5,4) 여기서 ‘주님의 천사’는 라파엘 대천사를 가리킨다고 한다.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이기양 신부님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상에 날개를 가진 사람을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착한 사람을 "천사 같다"고 표현하지요. 천사는 사람과 교회를 지켜주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천사의 이미지가 교회에서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신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또 일부 장사꾼들이 "수호천사"라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의미로 천사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요.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세상에서는 살아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요? 우리 천주 교회에서는 이 천사의 존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천사는 어떤 변천사를 밟아 왔는지, 또 요즘은 왜 천사를 보기가 어려운지를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천사는 창세기에서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靈的)인 존재를 일반적으로 "천사"라고 표현했지요.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이 심부름꾼으로 천사들이 많이 파견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6장에 주인의 박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하가르 앞에 천사가 나타나 도움을 줍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16,9-10)
또 창세기 19장 1절-22절에는 멸망하는 소돔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고, 24장에는 늙은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얻는데 천사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편 천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처벌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사무엘 하권 24장에는 백성을 치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요.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2사무24,16)
그밖에 하느님을 모시는 군대로 천사들을 인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역할은 신약성경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처녀 마리아를 찾아오고(루카1,28), 약혼자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은(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에집트로 피신할 것을 일러주는 가 하면(마태2,13), 흰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이라고(묵시22,6) 성경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천사에 대하여 교회의 학자들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디오니시오 성인입니다. 성인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9품 천사에 달하는 천사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9품 천사란 천사의 등급을 치품(Seraphim), 지품(Cherubim), 좌품(Thrones), 권품(Dominantes), 능품(Principatus), 역품(Potestates) 주품(Virtus), 대(大)천사(Archangelus), 천사(Angelus)로 분류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아니고 천사에 관한 디오니시오 성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천사에 관하여 우리 신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요? 믿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과 감각을 초월하는 영원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천주교회는 745년 라테라노 공의회 때까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다른 천사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지요. 천사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는 존재하며, 천사의 등급이 또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는 권위 있는 해석을 유보한 채 다만 천사의 존재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증명해주듯이 예전에는 천사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천사의 존재에 관한 가르침도 확고했는데, 왜 우리 시대에는 천사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믿어야 되는지 믿지 말아야 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천사의 존재가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천사는 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하느님의 뜻, 즉 계시(啓示)의 원천이 성경에 그대로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전달해 줄 이유가 없어진 셈이지요. 성경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 예언자들이 사라진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구약시대 많은 예언자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경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원천인 하느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예언자들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것이지요. 예언자들은 사라지고 성경을 해석해주는 율법학자들이 존재하게 됐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맥락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또 성경을 해설해 주는 성직자와 수도자, 교리 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비교적 쉽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천사들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계시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이제 계시의 방법이 ??천사??에서 ??성경??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천사의 역할이 많이 퇴조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라테라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천사는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에 관한 축일로 오늘 9월 29일을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로, 또 10월 2일을 '수호천사 축일'로 정하여 공경하며 장려하고 있지요.
오늘 축일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천상 군대의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12,7-8)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다니9,21 이하 참조), 무엇보다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루카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 9월호 참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습니다.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마치 '천사 같다'라고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자주 접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천사 같이 사는 우리의 모습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사는 여러분이 바로 천사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천사
최혜영 수녀님
일본의 저명한 철학자 이나가키 료스케 교수의 <천사론>(김산춘 역, 성바오로,1999)을 읽어 보면, 천사는 신화나 동화, 혹은 문학이나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는 기존의 관념과는 달리 토마스 데 아퀴노의 천사론을 바탕으로 학문적으로 천사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인간 이해를 위해 원숭이 연구가 버젓이 학문의 세계에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천사에 대한 연구가 왜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느냐는 것이 저자의 반박입니다. 저로서도 별로 생각한 바는 없었지만, ‘신체 없는 정신’ 곧 인간 지성보다는 상위의 지성적 존재로서 순수한 정신적 존재인 천사에 대한 연구가 원숭이에 대한 연구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천사의 존재가 종종 등장을 하는데, ‘천사’(그리스어로 ‘앙겔로스)라는 말은 ‘사자(使者)’ ‘고지자(告知者)’로 번역될 수 있으며, 하느님 말씀이나 뜻을 전하는 자, 곧 하느님께 봉사하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며 하느님의 명령을 실행에 옮기는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천사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계획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가브리엘(하느님의 사람·영웅·힘이란 뜻) 천사는 루카 복음서 1장에서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역할을 하였고, 라파엘(하느님이 고쳐 주셨다는 뜻) 천사는 토비트 5장에서 늙은 아버지 토비트의 명을 받고 메디아로 여행을 떠나는 토비아에게 자청하여 동반자가 되어줍니다.
다니엘서 10장에는 미카엘(누가 하느님 같으랴는 뜻) 천사가 이스라엘인들의 수호자로 나타납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일까?
김덕진
한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로 꼽히는 P씨는 많은 인권활동가들의 스승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이다. 그가 가진 사회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가끔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한 그의 글들은 쉽고 이해하기 빠르고 명확하다. 구금시설·군·경찰·검찰 등 공권력의 인권침해, 과거사·의문사 진상규명, 집회·시위의 자유, 국가보안법 폐지, 반전과 평화, 장애인 인권, 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문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 이주 노동자 인권까지 그가 함께하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인권 이슈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정부 고위직의 러브 콜도 많이 받았고, 운동을 벗어난 곳에서 그의 힘을 빌리려는 청도 수없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40대 중반을 훨씬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가난하며 인권을 옹호하는 최전방에 서 있다. 보편적 인권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 중 반인권적 실정법에 항의하며 수없이 연행되고 구속되기도 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를 가두었던 경찰과 검찰에서도 무슨 일만 생기면 그에게 자문과 협조를 구한다. 무수히 많은 성명서를 쓰고, 토론회와 집회 사회를 보느라 심신이 지칠 테지만 후배들의 시시콜콜한 어려움까지 다 자기 일처럼 나서는 자상한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난 그를 보며 예수님의 삶을 목격한다. 예수님이 내게도 이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구나, 이렇게 살면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이겠구나 하며 생각에 잠긴다.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기만 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정하게 부와 명예를 챙기면서 입으로만 주님을 찬양하고 겉으로만 선행을 베푸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보다 P씨 같은 사람이 훨씬 그리스도인에 가깝다.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지병철 신부님
오늘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데려 오는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을 먼저 본 사람이 필립보이고 또 그 예수님의 참 가치를 먼저 알아 보고 그것을 나타나엘에게 전해준 사람이 필립보인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필립보에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고 나타나엘과는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신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먼저 오고 알아보았던 필립보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씀 같은 걸 안하시고 나중에 온 나타나엘에게만 말씀을 거셨을까...
요한 복음을 보면 이런 비슷한 경우는 또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하고 안드레아인데 안드레아가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형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왔던 안드레아 한테는 아무것도 안해주시는 반면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비록 안드레아가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아의 이름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안드레아의 이름도 뭐 거창한 것으로 바꿔줬을텐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필립보나 안드레아의 입장이었다면 한번쯤
“예수님, 왜 제 이름은 안 바꿔주십니까?”나 “예수님, 왜 저한테는 말씀을 안 걸어주십니까? 너무 불공평합니다.
제가 먼저 예수님께 왔습니다. 왜 시몬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시고 나타나엘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씀도 해 주시면서 나한테는 안해주십니까?
나도 이름지어주시든가...뭔가 의미심장한 말씀같은 걸 해 주십시오.“라고 했을법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질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첫 번째가 아닌 것은 또 있습니다.
천사들에 비해 늘 뒤지는 바로 우리 사람들이지요.
천사들 보다 못하게 만들어졌고 케루빔인가 세라핌인가 하는 천사들은 하느님 곁을 날아다니는데 우리들은 하느님 구경한번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천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게 아니라 늘 뒤처지는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이지요.
만고 제 생각이지만 억지스럽게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먼저 보다는 나중에게 더 관심을 가지시고 무언가를 더 해 주시는 듯 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못 따라가서 그런거지 안드레아나 필립보나 대천사들이 나쁘다는거나 그렇게 먼저 예수님을 보면 안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대신 이 두 번째의 영성도 한번 묵상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첫째가 되기를 좋아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둘째가 되고자 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해 주실 겁니다.
시몬은 둘째였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에게 반석이 되는 문제를 제시하셨고 나타나엘도 둘째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하느님의 집을 열어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지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우리 사람들에게 씌워주셨습니다.
언제나 첫째가 되려 하는 이 세상에서 한번쯤은 느긋하게 둘째가 되어보심은 어떨런지요..
하늘이 열리고, 보게 될 것이다.
윤경재 요셉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 50.51.)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세 대목이 있습니다. 모두 ‘보다(horao)’라는 동사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힙니다. 첫 번째 1,18절에서 복음서 저자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두 번째 1,34절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그리고 1,50.5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보게 될 것이다."라 말하시고 직접 당신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쓰인 ‘보다(horao)’ 동사의 의미는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다’라는 깊은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그저 외면적으로 슬쩍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았어도 그 실체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지요.
하느님께서는 우주 만물에 창조주를 깨달을 수 있는 흔적을 남겨두셨습니다. 사실은 조그만 흔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하느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그것을 알았기에 새와 여우와 의자와도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8,19-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실상을 꿰뚫어 통찰할 수 있는 눈을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안에 감추어져 있던 내용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계시(apokalypsis)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28,11-19절에 보면 “야곱이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제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이 꿈꾸어 왔던 하느님을 뵙는 것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베델이라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 바로 하늘의 문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하느님의 집이며 그 안에 천사들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몸을 사다리 삼아 위로(ana), 아래로(kata) 오르내릴 것입니다. 그 천사들은 아래서 위로 올라갈 때 인간의 요구와 이기주의를 하느님 앞에 가져갈 것이며, 또 천사들은 위의 질서를 아래로 가지고 내려와 세상에 하느님의 진리와 자비를 보여 줄 것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을 보며 우리는 많은 꿈을 꿉니다. 어둔 밤에 나가보면 제일 밝게 맞아 주는 것이 달입니다. 그 달을 보며 우리는 많은 사연을 이야기 하고 눈물짓기도 합니다.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고, 절망에 빠져 괴로울 때 한결같이 나를 따라오며 웃음 짓는 달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달은 그저 달이 아닙니다. 나의 친구이며 위로자이며 스승이었습니다. 달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천사의 모습을 달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제 그는 달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제 피조물 모두와 대화하게 됩니다. 피조물이 탄식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는 나가야 될 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를.
하느님은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 바다를 만드시고 나서 지느러미가 달려있는 물고기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먼저 새가 날아다닐 수 있는 대기를 만드시고 나서 새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충족시킬 하늘나라를 만드신 후에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는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만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하느님의 아드님마저 보내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천사들(messengers)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부지런히 움직이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서 지켜주고 있습니다. 성령에 눈 뜬 자들은 이 모든 것이 보일 것입니다.
날개 없는 천사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 젊은 부부의 애틋한 사연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숱한 난관이 버티고 있었던 사랑이었지만 사랑의 힘은 더욱 강했습니다.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지요. 너무나 각별한 사랑이었던지 운명의 여신은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신혼의 달콤함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끔찍한 교통사고의 와중에 목숨만 겨우 건진 남편은 기약도 없는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고가 워낙 큰 것이어서 남편은 회복의 희망도 거의 없이 침상에 누워 지내게 되었지요.
만만치 않은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아내는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야 했고, 만만치 않은 병수발에 신경을 잔뜩 써야만 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회복되리라는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세월은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청춘의 아내는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보기가 너무 안타까웠던 주변 사람들은 말도 많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한 평생 병자 뒤치다꺼리하며 보낼거냐? 7년 동안 했으면 충분하다. 이젠 시댁 쪽에 맡기고 새출발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그럴 때 마다 젊은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어떻게 얻은 사랑인데,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습니까? 만일 제가 침대에 누워있다면 그이도 마찬가지로 절대 저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한번 선택한 이 소중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가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분의 대천사 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어떤 존재를 지칭합니까?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하느님의 사자(使者), 즉 심부름꾼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보내시는 도우미,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을 영원히 찬미하는 영적인 존재 등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반드시 날개가 달린 천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날개는 없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소리 없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겸손되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의미의 천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 하느님 대신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들 역시 날개 없는 천사들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그 한 가운데서도, 꿋꿋이 견뎌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천사들입니다.
오늘 하루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지지해주고 서로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날개 없는 천사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길 빕니다. 이 세상은 아직 희망을 걸고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것을 알게 해주는 서로를 위한 천사로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나로 인해 상대방의 인생이 더욱 의미를 지니고, 빛을 발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나로 인해 이웃들이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한번 힘차게 새 출발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하늘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천사
강영구 신부님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대천사(大天使)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천사(天使)를 라틴어로 angelus, 희랍말로 앙겔로스라고 하지요.
천사(天使)라는 한자말은 angelus의 정확한 번역입니다.
하늘의 소식을 전하는 사자(使者)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명시된 대천사들은 모두 ‘엘’자 돌림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엘’은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미카엘(묵시 12,7-9)은 ‘누가 하느님 같은가’, 가브리엘(다니엘 9,21-23. 루가1,13.30-31)은 ‘하느님의 권세’, 라파엘(토비트 5,4)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입니다.
천사(天使)는 하늘과 사람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하늘의 뜻(天命)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천사를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하늘의 뜻(天命)을 따르려는 열린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 천사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천사가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쳐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자기를 비워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천사의 손길을 감지하고, 천사의 이끄심에 따릅니다.
그러나 욕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은 천사가 등 떠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천사(天使)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 곁에 있습니다.
천사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손길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도 천사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一明)
하늘을 마주 대하는 세상
박상대 신부님
요한이 보도하는 제자들의 소명사화는 공관복음의 그것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첫 제자는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였다.(1,35-40) 두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두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한 것에 힘입어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이나, 다른 하나는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아마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으로 추정된다. 요한복음에서 특이한 점은 한 제자가 다른 제자의 소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안드레아가 자기 형 시몬을 예수께 인도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께 인도한다.(1,41.45) 나타나엘은 공관복음의 바르톨로메오와 같은 인물로 추정된다.
나타나엘은 예수께 가기 전에 필립보를 만났다. 필립보는 그에게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이 기록한 메시아이며 요셉의 아들로서 나자렛 출신의 예수를 만났다고 증언한다. 예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말에 나타나엘은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곧바로 예수님을 만나서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후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한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의 메시아 고백을 인정하고, 그가 지금까지 체험한 것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더 큰 일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장차 드러내실 자신의 영광과 하늘나라에 관한 표징과 기적이다. 오늘 복음의 말로 표현하자면, 하늘이 열려있고, 하느님께서 계신 하늘과 땅에 내려온 사람의 아들 사이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왕래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케 한다.(창세 28,10-17)
결국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느님의 천사들을 나타나엘이 스스로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천사들은 하느님을 보필하는 영적인 존재이므로 비가시적(非可視的)이다. 물론 천사들도 하느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사람과 경우, 즉 토비아, 즈가리야, 마리아, 다니엘과 요한의 환시, 요셉과 동방박사들의 꿈속에서와 같이 가시적(可視的) 형상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천사들은 비가시적인 모습으로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 사이의 중개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은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이 땅에 현존하심을 말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세상은 열린 하늘과 마주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도래와 강생으로 인간세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을 의미한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요한 1, 43-51)
유광수 신부님
지난번 피정 때 나는 어느 형제분과 인사를 하면서 "아무개 아니냐. 만나서 반갑고 이 피정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그 형제는 내가 자기를 어떻게 아느냐고 말하면서 매우 놀라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 형제와 나는 한번도 만난 적은 없다. 다만 그 형제가 말씀 학교의 직원이 지도 하는 묵상 나누기에 매우 열심히 나오시고 아주 충실하게 준비하신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나대로 그 형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기회가 되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리라고 생각했었다.
그 형제에게서는 뜻하지 않았던 일이었던 것이다. 우선 신부님이 자기를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랬고 그것이 무척 고마웠던 모양이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가끔"신부님이 자기를 알아보았다."는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한다는 것이다.
누가 나를 알아 준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인가 보다. 그것도 전혀 예기치 못한 사람이 평소에 자기가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한다는 것은 놀랠만한 일인가 보다. 왜 그럴까?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준다는 것은 그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고 자기가 그 사람한테 관심의 대상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어느 낮선 곳에 갔을 때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 와서 인사를 하거나 반갑게 맞아준 경우 말이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나가와서 아! 누구시군요, 나는 평소에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 없나요.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 나타나엘이 예수님한테 처음으로 갔을 때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는 칭찬을 듣고 감격하여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예수님께 묻는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는 말씀을 묵상하자.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나타나엘을 보시고 금방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과연 예수님이 아시고 계신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면 과연 그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면 나는 과연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나에 대해서 아는가? 내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나와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등 여러 가지 질문이 일어난다.
여기서 몇 가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묵상해보자.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했을 때 반갑고 기분이 매우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반대로 두렵고 떨리고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일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 말고는 아무도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척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내 어두운 과거가 다 드러날까 봐 두렵고, 나만이 고이 간직해왔던 비밀이 탄로 날까 봐 두려울 것이다. 우리는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당황해하며 질문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네 구역"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Jonari(요나리) 창이라고도 부른다.
첫째는 나에 대해서 나만이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부분이 있다. 둘째, 나에 대해서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셋째,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 부분이 있다.
넷째,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결코 많지 않다. 어쩌면 나 자신도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알겠으며 또 내가 안다고 한들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양,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양, 말하고 판단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무지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나에 대해서 정말 얼마나 아는가? 내가 알고 있다고 하는 그것이 정말 나인가?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만덕 스님이 일년간 만행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다른 사람도 모르는데 내가 나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었다. 만행은 불교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알 수 없다. 왜 그런가? 내가 나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만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를 알 수 있는가? 나를 아는 분은 오직 나를 만드신 창조뿐이시다. 따라서 내가 나를 알고 싶으면 나를 만드신 하느님을 알아야 하고 그분을 통해서만이 나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나의 원형이시고 나를 만드신 분이시다. 그래서 시편작가는 이렇게 노래한다.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걸을 제도 누울 제도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위를 익히 보시나이다.
말소리 내 혀 끝에 채 오르기 전에, 주는 벌써 모든 것을 알고 계시나이다.
알으심이 너무나 놀랍고도 아득하와, 내 힘이 미치지 못하나이다.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곳 어디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새벽의 날개를 이 몸이 친다 하여도, 저 바다의 먼 끝에 산다 하여도
거기에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몸을 잡아 주시리다.
당신은 오장육부 만들어 주시고, 어미의 복중에 나를 엮어 내셨으니
묘하게도 만들어진 이 몸이옵기, 하신 일들 묘하옵기, 당신 찬미하오니
당신은 내 영혼도 완전히 아시나이다.
은밀한 속에서 내가 지음 받았을 제, 깊숙한 땅 속에서 내가 엮어졌을 제,
당신은 내 됨됨이를 알고 계셨나이다. (시편 138)
천사는 엄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한 아기가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날 밤, 아기는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내일 지상으로 보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렇게 작고 무능력한 아기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너를 위한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지. 그 천사가 널 돌봐줄 거란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말을 모르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죠?”
“네 천사가 세상에서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말로 너한테 얘기해 줄 거란다. 그리고 인내심과 사랑으로 네게 말하는 걸 가르쳐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다고 해도 제가 하느님께 말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그럼 네 천사가 네 손을 잡고 어떻게 기도하면 되는지 알려 줄 거란다.”
“지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다던데 그 사람들로부터 저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란 말인가요?”
“네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보호해 줄 거야.”
그 순간 하늘이 평온해지면서 벌써 지상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하느님, 제가 지금 떠나야 한다면 제 천사 이름이라도 좀 알려 주시겠어요?”
“네 천사를 넌 ‘엄마’라고 부르게 될 거란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하느님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묘사합니다. 불꽃같은 옥좌에 앉아 계시고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고 그분을 모시고 선 이들이 억만입니다. 그분께 ‘사람의 아들’같은 이가 나아와 통치권과 영광의 나라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해 세상을 도와줄 수 있는 분으로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아들은 그리스도라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천사, 중재자, 메신저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중재자가 왜 필요한 것일까요? 왜냐하면 독서에서 묘사되었듯이 하느님은 범접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느님과 직접 맞대면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누구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중재자인 천사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천사들은 너무나 깨끗하고 순종적이어서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또한 주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기에 자신과 같은 처지이지만 자신보다 더 멀리 떨어져있는 인간들에 대한 자비심도 커서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중재해 줍니다. 이것이 천사의 역할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천사와 가장 가까운 역할을 하는 존재가 엄마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 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였습니다. 수많은 인종 차별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 날 로빈슨은 브룩클린 구장에서 경기를 할 때, 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백인 관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에게 야유를 보내고 욕을 해댔습니다.
그때 백인 선수인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서 그를 끌어안고 청중을 쳐다보았습니다. 갑자기 관중석이 조용해졌습니다. 나중에 로빈슨은 그의 어깨를 감싸준 동료의 팔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 주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엄마가 자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큰 사랑의 모습이고 천사의 모습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교회는 너무나 다가오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따라서 천사와 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엄마와 같이 보호해주고 가르쳐주고 아빠를 소개시켜 줄 천사가 있어야합니다. 그 천사와 같은 존재란 바로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우리 신자들입니다. 믿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자비를 느끼며 그들을 교회의 품으로 이끌려고 하는 이들이 천사와 같이 순결한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미든 믿지 않는 이들에게 천사와 같은 엄마들이 되어야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오늘 나를 보시고 하느님께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필립보의 초대에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든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며 탐탁치않게 생각했지만, “와서 보시오.”라는 거듭된 초대에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처럼 완고하게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예수님을 향해 걸어갑니다. 나타나엘의 진리를 향한 개방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당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나타나엘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정말이지 평소 좀체 사용하지 않으셨던 극도의 칭찬을 건네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런 예수님의 칭찬을 통해 우리는 나타나엘의 인간됨됨이, 그의 깊은 신앙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 그 어디를 봐도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대단한 칭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나타나엘을 다른 무엇에 앞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바처럼 그는 무화과나무 아래 서 있던 사람, 하느님의 그늘 아래 서 있던 사람, 하느님의 얼굴을 찾던 사람, 하느님 나라를 간절히 고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 속 깊은 생각은 물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던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대단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을 봐서 나타나엘은 신앙의 정도를 걷던 사람, 다른 이들의 이정표요 귀감인 사람, FM 신앙인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빈말을 하신다거나 없는 것을 애써 꾸며 말씀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탁월했던 모범생 신앙인이었던 나타나엘에게 예수님께서는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더 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토록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던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을 약속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하늘나라의 아름다움, 감미로움, 그곳에서의 평화로움, 잔잔함, 행복을 맛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보고 하느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지 무척이나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부터 우리도 또 다른 무화과나무 아래인 하느님의 성전 안에서, 우리 각자의 본당 안에서, 가정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느님의 얼굴을 찾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노력을 통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나타나엘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향한 지속적인 개방성을 지니는 것,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는 일, 하느님의 집 안에 머무는 일,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일, 그 누가 뭐래도 충실하고도 당당하게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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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어떤 신문사의 기자들이 와서 갑곶성지를 취재해 갔습니다. 저에게 이곳 성지가 어떤 곳인지를 자세히 묻더군요. 어떤 분이 순교를 하셨고, 이곳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순교자들의 무덤도 있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역사적으로는 이러 저러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지 비석만을 제가 작년에 이곳에다 세웠다는 것만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럼 그렇게 의미 있는 성지는 아니군요.”
하긴 이곳 성지에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잘 알려진 순교자의 무덤이 있는 곳도 아니고, 그러한 순교자들이 활동하신 곳도 아니고, 또 그러한 분들이 순교하신 장소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그렇게 의미 있는 곳은 아니라는 식의 말씀을 많이 듣게 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인의 유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성인들이 이곳에서 순교한 것도 활동하셨던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지라는 곳이 기도하는 장소가 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없다면, 그곳에 아무리 이름 있는 성인이 활동을 했고 무덤이 있다고 한들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곳은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어떤 성지보다도 더 의미 있는 성지가 아닐까 싶네요.
결국 내 자신이 성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며, 내 자신이 있는 곳이 성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모습을 보고서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내가 있는 곳이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어떤 특별한 장소만을 기도하는 장소로, 거룩한 장소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당이나 성지에서만 신앙인답게 살고, 다른 곳에서는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단순히 누구의 영명축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축일을 지정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이 천사의 모습을 닮아서, 이 세상 안에서 천사의 모습으로써 주님을 증거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대천사들의 축일을 맞이하여 '나는 과연 천사처럼,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사탄처럼, 사람들에게 어둠을 전하는 존재인가?'를 깊이 묵상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이 세상에서 천사들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작은 삶의 체험 속에서 먼저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실천이 있을 때, 우리는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로 돌아가서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천사표야’라는 말을 곧잘 합니다. 내가 그러한 천사표가 되어 봅시다.
그것은 희망입니다('좋은 글' 중에서)
내 손에 펜이 한 자루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펜으로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편지도 쓸수 있으니까요
내 입에 따뜻한 말 한마디 담겨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말로 남을 위로 할 수 있고 격려할 수 있고 기쁘게 할수 있으니까요
내 발에 신발 한 켤레가 신겨져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발로 집으로 갈 수 있고 일터로 갈 수 있고 여행도 떠날수 있으니까요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눈물로 가난과 슬픔으로 지친 이들의 아픔을 씻어 낼수 있으니까요
내 귀에 작은 소리 들려온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과 아름다운 음악과 자연의 속삭임을 들을수 있으니까요
내 코가 향기를 맡는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은은한 꽃 향기와 군침 도는 음식 냄새와 사랑하는 이의 체취를 느낄수 있으니까요
내 곁에 좋은 친구한 사람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친구에게 내 마음 털어놓을 수 있고 지칠 때는 기댈수 있고 따뜻한 위로도 받을수 있으니까요
내 가슴에 사랑하나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할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