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내가 산다 신들은 지도일 뿐” 자연·죽음에 대한 공포 극복 통해 삶의 긍정성 부각
이따금 삶이 가혹하고 힘겹다고 느껴질 때, 우리의 마음은 한 장의 지도를 꿈꾼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지시해 주는 그런 지도가 있다면, 용기를 갖고 흔들림 없이 인생의 길을 걸어갈 텐데. 그런 지도를 가졌던 시대가 있었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기원전 8세기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는 그런 지도를 가졌던 시대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에게 그 지도는 하늘의 별이었고, 올림푸스의 신들이었고,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였다.
퀴클롭스에게 전우들을 잃고, 칼립소와 키르케의 유혹에 발이 묶이고, 세이렌의 노래와 스킬라의 광폭함에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그는 한순간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용기를 북돋아주던 아테네 여신이 있었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전우들이 있었으며, 낯선 이방인을 환대하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시대의 삶에 대해 헝가리의 문예학자 루카치는 이렇게 동경의 찬사를 보낸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에 겸손했으나 삶 앞에서 수동적이지 않았으며, 신화적인 힘들을 존경했으나 인간적인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낼 줄도 알았다. 그들은 생각했다. 내 삶은 내가 산다. 신은 내 삶의 나침판이자 지도일 뿐이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제우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인간들은 걸핏하면 신들을 탓하곤 하지요. 그들은 재앙이 우리에게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 자신의 못된 짓으로 정해진 몫 이상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오.”
인간은 모두 자신이 행한 바에 의해 자기 삶을 스스로 축복하거나 저주한다. 자신의 의지와 정당한 노력으로 포세이돈의 저주를 뚫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나라의 왕으로서 행복한 삶을 완성한다. 반면 그가 집을 비운 사이 페넬로페에게 구혼을 한다는 핑계로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먹어치우며 오만불손한 행패를 부리던 이타케의 구혼자들은 복수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왜 올림푸스의 신들을 상상했을까.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인들은 삶의 공포와 전율을 알고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요컨대 살기 위해서 그들은 올림푸스라는 꿈의 산물을 만들어 내야 했다.”
특히 그 시대의 인간들에게 자연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인간적인 형상을 부여함으로써 그 공포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푸스의 신’이라는 예술적 서사를 통해 더 오래, 삶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을 발견했던 셈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우주만물이 ‘신’이었다. 특히 인간의 형상을 한 신들은 매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인간들의 집을 찾아온다고 믿었다. 때문에 낯선 곳에서 오는 이방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는 기도를 하고 가축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의식과 함께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디세우스의 돼지치기는 떠돌이 노인의 모습으로 자신의 집에 찾아온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를 성심껏 환대한다.
“나그네여! 그대보다 못한 사람이 온다 해도 나그네를 업신여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모든 나그네와 걸인은 제우스에게서 온다니까요.” 이런 말과 함께 돼지치기는 떠돌이 노인으로 변장한 오디세우스를 제우스처럼 환대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가장 좋은 잠자리를 제공하면서.
오디세우스나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진심으로 환대한다. 낯선 자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태도는 이방인에게 일단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점이다.
손님이 어떤 신분인지, 누구인지를 묻지 않고 그가 누구든 무조건 환대한다. 주인과 손님이 함께 충분히 먹고 마시고 난 후, 비로소 주인은 손님에게 묻는다. 이방인이 떠나온 곳은 어디이며, 어떻게 이곳에 도착했으며, 그는 누구인지.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자신을 환대해준 파이아케스족의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에게는 자신을 찾아온 이방인을 무조건 환대할 의무가 있으며, 손님에게는 자신을 환대한 주인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가 있다. 아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환대에 대한 일종의 답례인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라는 뜻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가능케 했던 ‘환대의 법칙’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이타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중지된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던 오디세우스는 그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던 오만한 구혼자들의 냉대와 모욕을 묵묵히 견뎌야만 했다. 이때 파탄난 환대의 법칙은 가혹한 복수에 하나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호메로스의 인간들은 모두 언젠가 죽을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삶과 자기 자신을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살았다. 때문에 그들에게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자연이나 신이 아니라 삶으로부터의 이탈, 즉 언젠가는 직면하게 될 죽음이었다.
‘오디세이아’에서 호메로스가 이야기의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저승’의 에피소드를 삽입해 넣은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 즉 그 시대 그리스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내재돼 있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고통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사시의 11권에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귀향을 둘러싼 예언을 듣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을 때, 그가 확인한 것은 삶이 죽음보다 좋은 것이라는 점이었고, 그러한 깨달음이 이후에 그가 겪게 될 고난이나 고통으로부터 그의 삶을 지켜준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었던 아킬레우스를 만나 그를 칭송하는 말을 건네자, 아킬레우스의 혼백은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저승에서 사자(死者)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다.” 자연에 대한 공포나 죽음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고 삶을 긍정하는 한 방식으로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것은 신화 혹은 서사시라는 예술의 영역이었다. ‘오디세이아’에는 한 용감하고 지혜로운 그리스인의 여행담이라는 형식으로 이러한 내용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한 용기와 의지를 버리지 않으며, 신을 섬기듯 낯선 자들을 환대하며, 일상을 축제로 즐길 줄 알았던 그리스인들의 머리 위에는 항상 반짝이는 별들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한겨레 권용선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