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경(월간 "까마" 편집주간)님의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서예를 배우러 오시는 분에게 나는 “왜 서예를 배우려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예상치 못한 질문인지 상당히 많은 분들이 당황해 하기도 하고 때로 기다렸다는 듯이 서예를 하고자 하는 이유를 자세히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당황하는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취미로 해 볼까 하는 사람이거나 친구가 하니까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하려는 사람이 많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왠지 어려서부터 서예가 꼭 하고 싶었는데 생업에 쫓기어 못하다가 이제야 마음먹고 시작하거나, 서예와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답게 느껴져 서예의 길을 취미로 택하게 되었다는 분이 많다. 요즈음도 이렇게 서예를 공부하고 싶어 오시는 분 중에는 대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나 주부들이 많지만 가끔 젊은이들이 인생을 걸고 하고 싶어 오시는 분도 있다.
아무튼 어떤 경우라도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 시작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오랫동안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다지며 열심히 한다. 1∼2년 먼저 공부한 선배들의 글씨 쓰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1∼2년 후면 무조건 그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잘 할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지나고 보면 스스로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아서인지 힘들어하기도 하고,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남이 쉽게 하는 것을 보면 쉽게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노력이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을 걸고 시작한 젊은이들도 공부를 해가다 보면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길에 절망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나 취미로 시작하신 분들은 어떻겠는가? 짐작은 된다. 얼마나 힘든지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것자고 이 고생을 하나 ”라는 말씀을 하신다.
때론 친구들이 놀러나 다니자는 유혹에 공부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신다.
얼마나 답답하고 잘 안되면 그런 말씀을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취미도 젊어서 익혀 놓아야 취미가 되겠구나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떤 취미든 소비 지향적 취미가 아닌 다음에야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그만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진다. 그리고 뻔한 말이지만 힘들수록 보람도 큰 법이라고도 말씀드리고도 싶어진다.
이 시대에 서예를 한다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젊은이들에게는 비전이 없어서 서예를 인생을 걸고 공부해 볼 의미가 적고, 취미로 서예를 택한 분이나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께서도 서예를 배워 특별히 영화를 누릴 가능성도 없는데, 이렇게 힘들게 공부할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면 이 말이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비록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 될 수 있을지언정 비전이 있다든지 가치 지향적 성취감까지를 고려한 말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인생을 되돌아 볼 때 황혼의 나이에서 생각해보면 여생을 즐기는데 쓰는 것이 좋은지, 여생을 자기 보람과 자기만족을 추구하거나 보다 가치 지향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누군가 취미로 서예를 시작한다 해도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고 젊은이들이 지금 서예에 인생을 걸고 시작 한다 해도 크게 비전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기계화되는 세상에 기계화 할 수 없는 보기 드문 예술이기도 하고 그것이 감성이 메말라 가는 현대에 많은 감성적 충족을 줄 수 있는 예술이기도 하며 사람의 언어를 직접 표현 할 수 있는 예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는데도 이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드물 것이며 가족 간에 나눌 수 있는 정과 격 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더욱 이만한 가치를 주는 것이 드물다고 생각 할 것이다.
이러한 서예의 특징은 산업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라피 또는 문화상품에 얼마든지 적용되고 응용될 수 있으리라는 비전을 나는 일찍부터 느끼고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감성을 순화하는데 까지도 그 영역이 확대 되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사람이 여기에 아직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버리는데, 그것을 지금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만큼 앞서 갈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리고 실제 해보면 섬유 패션을 비롯 건축, 가구등 각종 산업 디자인 부문과 한지공예 등 각종 전통 공예 등 앞으로 우리 생활과 산업에 응용분야가 무궁 무진 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고리타분한 과거의 서예를 그대로 하는 것을 벗어나 시대를 초월하여 적용될 수 있는 진정한 서예를 깨쳐 알아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전제가 있지 않다면 그 어떤 시대가 와도 비전은 없다.
그러나 만약 젊은이들이 지금 서예를 시작하여 업으로 삼고 깊이 연구하여 서예의 정수를 터득한다면 그 어떤 시대가 와도 그 무엇보다도 의미 있고 비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이 늦게나마 서예를 시작하여 고생스럽게 공부하시는 것이나 취미로 공부를 하시는 것 또한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취미로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도 비생산적인 일에 자신의 인생을 소모하기보다, 보다 생산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면서 보람도 있고 건강 장수에도 도움이 되는, 서예를 하는 것이 후손들에게 보다 모범이 되는 일일이기도 하고 스스로 뿌듯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생을 살아가다가 이왕에 치를 환갑이나 칠순잔치 등이라면 지금 유행하는 것처럼 음식점에서 노래방 기계 놓고 친인척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좀스러운 찬치 대신에 보다 품위 있고 보람 있는 전시 계획을 세워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잔치에 들일 비용으로 서예 전시장을 빌리고 그간 공부한 것을 임서하기도 하고 창작하기도 하여 전시회를 열고 그곳에서 뷔페로 잔치를 벌인다면 자신과 집안의 격도 올리고 대접받는 분들도 흐뭇할 수 있는 멋진 잔치와 전시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품이 엉망진창이라면 보는 이로 하여금 괴롭게 하기도 하겠지만 5년 10년 열심히 공부했는데 웬만하면 그렇게 될 리는 없을 것이다.
실제 지금까지 취미로 공부하신 분들 중에는 이런 목표를 정해놓고 공부를 해 오신 분이 많지 않다. 오히려 쉽게 취미라는 말을 하면서도 진정한 취미가 되지 못하고 매달려 시간을 허비한다. 진정한 취미가 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눙이 나서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목표 없이 무작정 가다보면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취미라도 목표를 정해놓고 공부하다보면 성취감도 더 생기고 성취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목표를 정하여 공부를 해 나아가면서 진정으로 삶의 격을 높이는 취미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면 그 목표는 어느새 다가와 있을 것이다. 보다 격이 있는 생각으로 목표를 정하여 공부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