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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카카오, 길빵 모두 실패했고 청량리만 확인하고 65번 버스에 올라탔어요. "학교 잘 도착했어요. 다녀올게요. 넘 걱정 마셔! (파이팅!) (예주/나)" 서서 가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꼭 통학 버스 같습니다. 적자 타령하던 서울 시내버스 노조가 임금 3.2% 인상으로, 어제(16) 2시간 남겨 놓고 극적 타결을 했어요.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가격 올리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데, 공공 업종은 스트라이크 한 방이면 직방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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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을 사냥은 한예종으로 잡고 '시조사' 전 정거장에서 하차한 후 목적지인 한예종까지 천천히 걸어갔어요. 어림잡아 3km 되는 거리입니다. 청량리-석계-양평으로 이어지는 국철 노선이 내 기준 44년의 시간을 거슬러 훅 치고 들어옵니다. 워워. 시조사 앞에 안식일 교회가 새로 지어져 있는 걸 확인하고서 우회전을 했어요. 직진처럼 좌 회전하면 청량리 시계탑 가는 길입니다. 시조사나 삼육대 모두 제 7일 안식교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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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는 장로교 통합/고신/합동 만 정통이라며 시조사를 얼마나 깔보았는지 웃음이 납니다. 중고 가전제품 가게와 현대식 모텔을 지나 직진하면 외대-한예종-신의 문-장이 동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가을 사냥이 명분이지만 실은 한예종 고사장 풍경이 궁금해서 인 서울 한 것인데, 예주는 이미 고사장에 들어갔고, 에스더랑 밥이나 먹을까 하다가 고사장에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건널목을 건너 일부러 좌회전을 했어요. 목적지 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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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장사(효농)를 할 때 나와바리가 청량리였고 1994년 장사를 접은 이후 좌 회전할 이유가 없어졌는데 이 길로 진입하는 데 대략 30년이 걸린 것 같네요. 에공! 호박죽 차를 기억하니? 300M를 지나 다시 좌회전을 하면 홍릉-카이스트 길이 나올 것이지만 경희대 회기동 캠퍼스로 가는 나는 우회전을 해야 합니다. '본죽' 지나 '꽃집'을 확인했고 의료원 건물이 보이자마자 상아탑이 바로크 형태로 뻗치기를 하고 있네요. 경희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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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벚꽃이 죽여주는데 9월 회기동 상아탑은 가을 축제 베너만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공간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44년 전 기억을 어찌 소환했을까요? 베르크 손이 말한 ‘지속’처럼 과거는 사라져 뒤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현재 속에 포개져 살아 있었습니다. <미스터 선샤인> 김태리가 아마도 경희대 출신일 것입니다. 보통 대학들은 봄에 축제를 하지만 경희대는 봄/가을 두 번에 거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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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천막이 보이는 건 과별 베이스캠프일까. R.OT.C 천막이 썰렁한 것은 육사 통합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임관식 때 폼 나게 수여하는 빨강 반지는 육사, 녹색 반지는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파랑이는 삼사관 학교입니다. 요나의 박 넝쿨이 있는 흡연실을 지나 교정까지 오늘 중으로 갈지 모르겠네요. 앗, 여기가 막강 한의과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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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우리 예주 정시 성적표 받는 날입니다. 아빠 학창 시절 성적표는 큰 의미가 없었는데 우리 공주는 희비가 엇갈릴 만큼 중대사일 것입니다. 탁아소 1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은 의무교육이었고요 고입 연합고사까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습니다. 숭실고를 갈 생각이었는데 문득 대학생이 멋져 보여서 인문계를 진학했어요. 그런데 3년 내내 깡패 짓만 하다가 겨우 졸업을 했습니다. 고교 3년 얘기를 쓰자면 삼국지 1권 분량은 되는데 패스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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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출결을 개의치 않았으니 말해 뭐 합니까? 우리 때는 수시라는 제도가 없었고, 학력고사를 본 후 대부분 전기에 원서를 넣었고 떨어지면 패자부활전은 후기가 유일했습니다. 서울로 대학을 가야 하는데 도대체 담임이 원서를 써주질 않는 겁니다. 2박 3일을 졸라서 경희대 한방과를 넣고, 이튿날 단국대 도예과를 지원했어요. 그땐 눈치작전도, 복수지원도 모두 가능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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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원, 9시간 가는 완행열차를 타고 상경했으니 성과가 있어야 하잖아요. "하나님! 저를 살리시려거든 새 줄을 내려주시고 죽이시려거든 한 줄을 내려 주소서!" 원서 대가 3만이었는지, 15000원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원서를 넣고 기분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야호! 명동 입구 미도파 건너에 코스모스 백화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8층 커피숍에 스튜어디스처럼 생긴 미스 박 누나가 커피숍 직원이었어요. 촌놈이 서울 심장부 고층에 앉아 처음으로 비엔나 거피를 마셨 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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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도 인 서울 하는구나 니들은 다 죽었어. 했어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을 죽 때렸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캄캄할 때 나와서 호떡을 사 먹은 곳이 남대문 근처일 것입니다. 당시 스물두 살쯤 되었을 그 누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80년 대 만해도 대입 발표를 마치 국회의원 개표 방송처럼 했어요. 공부는 안 했어도 혹시 미달되는 학과가 있을까 봐 눈에서 지진이 날 정도로 예상 커트라인을 지켜보았어요. 끝내 행운의 여신이 저를 비켜갔고, 광주 변방에 있는 S 대학에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입대를 해버렸습니다. SINCE 2018>>
2026.9.19.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