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전과 배꽃
오락가락 어제는 아침부터 내린 봄비가 밤까지 끝이 없었지만 겨우 마른 땅이나 적실라나.
봄비는 기름 같으나 길가는 사람에게는 질퍽 거리는 진창을 싫어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도 봄비는 대지에 뿌리내린 식물에게는 반가운 손님일 것이다.
어제 같은 새봄에 매화 꽃 피고 벚꽃 피더니만 이번 비로 젖은 대지에 물기를 머금은 탓일까 산과 들엔 어느새 연두빛 새순은 대지를 물들인다.
봄버들은 벌써 줄기를 한뼘이나 키워 냈고 실핏줄 같이 줄기 줄기를 늘어 뜨린 능수버들은 솜털 같은 꽃잎을 봄바람에 날려 보낸다.
그동안 이리저리 봄을 쫒아 집에 있는 날이 없었던지라 어제는 모처럼 다리뻣고 뒹굴며 느긋한 하루를 보냈지만 역마살의 유혹을 주저 앉히는 것은 힘든 시간 이었다.
비가 와도 딸랑 우산 하나 챙겨들고 집밖을 나서면 만나는 것이 연두빛 봄이고 배꽃피는 봄인데 가끔의 휴식도 필요한 것이 사람의 몸인지라 마음만은 천번만번 들길을 걸었고 한적한 오솔길을 걸었다
小梅零落柳僛垂(소매영락유기수)
조그마한 매화꽃 지고 버들 춤추며 드리웠는데
閑踏靑嵐步步遲(한답청람보보지)
한가로이 푸른 산기운 밟노라니 걸음 더디어라.
漁店閉門人語少(어점폐문인어소)
고기잡이집 문 닫았고 사람소리 적은데
一江春雨碧絲絲(일강춘우벽사사)
온 강에 내리는 봄비 실실이 푸르구나.
- 野步 / 陳澕 -
봄비 한번 오고 나면 두터운 겨울 옷 한벌씩 벗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만큼 봄비가 오고 나면 기온이 올라 간다는데 지난 몇일 기온이 앞서 간 탓에 비 그치고 나면 기온이 내려가 오히려 평년기온을 찾을 것이란다.
먼지 않은 상록수나 솔가지 마다를 씻어 내린 봄비가 지나가고 나면 대지는 갈색의 겨울 빛을 지우고 싱그러운 연두빛 옷으로 갈아 입을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해맑은 푸르럼에 희거나 붉거나 연분홍의 봄이 깊어 가면 4월 또한 깊어 갈 것이다.
따뜻해진 4월의 봄 기온에 키를 키운 청보리는 이삭을 내밀 것이고 꽃잎을 떨군 과수의 가지 마다에는 알알의 작은 열매를 물고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 비치로드 트레킹 길에 만난 녹차잎 새순을 가리키며 연두빛 여린 새순을 지금 따서 덕어 말리면 우전차가 된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한주일 정도 더 시간이 지나면 절기상 곡우란다.
작설, 우전, 세작, 중작...뭐 이렇게 나열이 되는데 곡우가 되기전에 아직 잎이 자라기 전 새순을 따서 차를 만드니 그 것이 우전차 이고 우전차가 그래서 좋다는 설명을 더해준다.
추적추적 봄비에 어디 커피 향만이 생각이 날까?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우전차 한잔 올려놓고 쑥떡 한조각의 봄을 느끼는 것 또한 봄을 제대로 그려내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 한폭이 될 것이다.
滿地梨花白雪香 (만지이화백설향)
눈처럼 하얀 배꽃에 온 땅이 향기롭고
東方無賴捐幽芳 (동방무뢰연유방)
봄바람은 얄궂게 진 꽃마저 흩날리네
春愁漠漠心如海 (춘수막막심여해)
아득한 시름은 바다만큼 깊어 가는데
棲燕雙飛綾畵樑 (서연쌍비릉화량)
쌍쌍이 나는 제비 들보 위에 집 짓는다
- 尹宣擧 / 春詞(봄노래) -
피고 지는 봄꽃 중에 지금은 배꽃이 피는 시기다.
물론 고도에 따라 나뭇잎이 나오는 시기나 꽃이 피는 시기가 차이가 있겠지만 거리를 나서면 색색의 튜울립이고 불타는 연산홍이요 들녘을 나서면 만나는 꽃이 순백의 하이얀 배꽃이다.
요즘에야 봄꽃이 워낙에 다양하고 흔하다 보니 글을 쓰는 사람들의 소재도 다양 하겠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봄꽃의 소재라야 기껏 매화나 두견화 그리고 요즘은 배꽃이다.
순백의 개끗함이 글을 쓰는 선비의 마음에 와 닿아서 일까? 아니면 순백의 깨끗함을 청렴결백에 비유하여 지고지순한 선비의 지조를 사랑 했음일까
어제 부터 내린 봄 비 그치고 하이얀 배꽃이 벌,나비를 부르는 날 따스한 봄볕에 백곡의 씨앗은 싹을 티울 것이며
우전차를 따는 아낙의 손길은 더 바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