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의 춤의 이동, 그리고 탱고
이명박 서울시장은 [강금실 전장관이 서울시장이 되면 공무원들은 좋아할 것이다. 강 전장관은 노는 것 춤추는 것을 좋아하니까 공무원들은 매일 놀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여기서 정치적 문제를 거론할 의도는 없다. 내가 주목한 것은, 춤추는 것은 일하지 않고 노는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강 전장관이 즐겨 추는 춤은 살풀이 승무 등이다. 대중적인 춤은 아니다. 근대 춤에 대한 기록은 1905년 11월 3일 [매일신보]에 [도무연회]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이 처음이다. 춤은 [도무]에서 [무도][무용]으로 바꿔 불려졌다. 한국 현대무용은 최승희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현재 전국 55개 대학에서는 매년 춤 전공자 2천여명을 사회에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은 강 전장관의 살풀이나 승무보다는 김수로의 꼭지점 댄스나 나이트 댄스, 브레이크 댄스, 혹은 탱고나 살사 같은 라틴 춤이나 자이브 차차차 등 스포츠 댄스에 더 관심이 많다.
춤추는 것을 무조건 향락적 행위로 보는 시각은, 춤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다. 대낮 카바레에 장바구니를 맡겨 놓고 춤을 추는 유부녀들을 경찰이 단속하던 때가 물론 있었다. 춤 자체보다는, 춤이 매개가 된 불륜으로 가정파괴가 문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춤은 일을 방해하는 것인가?
일과 놀이는 삶의 건강한 양대 축이다. 건강하게 놀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는 없다. 춤은 놀이문화에서도 가장 본능적 행위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는 고대 원시인들이 들소 사냥을 나가서 거둔 수확의 즐거움이 춤으로 표현되어 있다. 집단적 군무를 통해 정신적 일체감의 희열을 표현한 것이다. 김수로의 꼭지점 댄스를 독일 월드컵 공식 춤으로 지정하자는 네티즌들의 청원운동도 이것 때문이다. 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혁명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개발독재시대에 춤은, 시간의 낭비요 일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소모적 움직임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건강한 놀이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춤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찾는 기능이 재인식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한국인의 춤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정보화 사회의 발달과 함께 문화적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춤은 결국 사람이 살고 있는 토양의 가장 밑바닥에서 우러나온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춤은 공통적으로 상체를 이용하는 춤이다. 그것은, 한 곳에 정착하는 농경문화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둘 때까지 그 땅을 떠날 수 없다. 그래서 하체는 거대한 대지 위에 붙박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것은, 그러한 농경문화의 전통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춤사위들도 손동작이 매우 화려하다.
그러나 서양의 춤은 하체의 춤이다. 말을 타고 혹은 텐트를 치며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착하는 것보다 이동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체가 발달되어 있다. 유목민의 전통을 갖고 있는 서구에서는 상체보다는 하체를 훨씬 다양하게 이용하는 춤이 발달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춤들은 대부분 화려한 발동작 위주의 하체 춤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우리 문화의 틈새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요즘, 하체를 이용한 브레이크 댄스나 탱고, 살사 같은 춤들이 관심을 끌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농경문화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IT 강국으로서 디지털 유목민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한 곳에 정착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정보의 바다를 유람한다. 인터넷 웹서핑을 통해 거대한 세계를 빠른 속도로 훑고 지나간다. 속도는 새로운 시대의 키워드이다. 그래서 강 전장관이 즐기는 살풀이나 승무 같은 전통 춤사위뿐만이 아니라 하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다양한 춤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문화상품인 탱고는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 속으로 삼투되고 있다.
2006 세계주니어 피겨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피겨 요정 김윤아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속 3회전 트리플 루츠를 연기할 때 영화 [물랑루즈] O.S.T에 들어있는 [록산느의 탱고]가 흘러나왔다. 여성포탈 마이클럽 닷컴에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1회 드라마 어워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부문 1위는, [달콤한 스파이]의 탱고 키스씬이 차지했다. 다니엘 헤니와 남상미가 탱고를 추다가 한 키스씬은 32%의 지지를 받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선아와 현빈 커플의 계단 키스씬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4월 2일까지 갤러리 현대와 두가헌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화가 천경자의 전시회에는 200여점의 그림이 걸려 있다. 천경자의 에세이 [탱고가 흐르는 황혼]에는 [내가 적당히 가난하고, 이 땅에 꽃이 피고, 내 마음 속에서 환상이 사는 이상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삶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리 이어질 것이다]라는 글이 있다. 탱고의 비극적 선율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의 능동적 자세를 불러일으킨다.
3월 15일부터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갤러리에서는 한국 주재 중남미 대사관 소장의 미술작품들이 전시된다. 중남미 지역 미술전문 화랑인 갤러리 베아르떼가 기획한 이번 전시회에는 아르헨티나 탱고 춤과 음악 공연이 포함되어 있다. 아르헨티나 한국 이민 2세들로 구성된 [오리엔 탱고]의 연주가 있고, 공명규와 아르헨티나 탱고 축제 CITA의 젊은 마에스트로인 알레한드로와 이바나 커플의 탱고 공연이 있다.
또 범아시아 시장을 겨냥하며 올해 초 일본에서 싱글로 발매된 비의 타이틀곡은 [새드 탱고]다. 박진영이 작곡한 이 노래는, 탱고 곡은 아니지만 탱고의 선율이 살아 있다. 또 일본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박화요비의 5집 [사막을 나는 나비] 뮤직비디오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촬영된 탱고마을이 나온다. 루이스 브라보가 연출한 [포에버 탱고]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네 차례나 내한공연을 가졌고 국내 탱고 인구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영화 속 탱고라면, [여인의 향기]에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알 파치노가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여인과 탱고를 추는 장면이 생각날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는 [박봉곤 가출사건]에서 안성기와 심혜진이, [바람의 전설]에서 이성재와 박솔미가 탱고를 춘다. 이명세의 [형사] 남녀주인공인 강동원과 하지원은 영화 찍기 위해 탱고를 배웠다. 우아한 몸동작을 위한 감독의 권유 때문이었다. 명계남 성지루 성현아 주연의 [손님은 왕이다] 예고편은 탱고 음악의 대부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 일레트로닉스 버전으로 되어 있다. 단편 [소풍]으로 칸느 영화제 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송일곤 감독은 [깃](2004년)에서 매혹적인 탱고를 보여준 바 있다. 송일곤 감독의 신작 [마법사들]에서도 탱고 음악은 중요하게 사용된다. 총 94분의 런닝타임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단 한 개의 컷으로 이루어졌다. 씬과 씬 사이, 혹은 과거와 현재 사이를, 후고 디아즈의 탱고 음악 [Amurado]가 연결해준다. 탱고는 비극적 자살로 생을 마감한 주인공의 슬픈 내면을 표출하면서, 살아있는 멤버들의 상처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현상은 문승욱 감독의 [로망스]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며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김지수가,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탱고를 출 때이다. 무표정한 그녀는 탱고를 출 때만 환하게 웃는다. 탱고는 비극적인 그녀의 삶을 지켜주는 안식처다. 그녀의 애인인 조재현은, [마법사들]에서 장현성이 그랫던 것처럼,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나자고 말한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민속춤이 있고 대중적 춤이 있지만 왜 탱고가 우리 문화 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는가. 그것은 한의 정서 때문이다. 1880년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둣가에서 하층민들이 삶의 애환을 표현하면서 시작된 탱고는, 1930년대 파리로 건너가 우아한 사교춤으로 변모된다. 이것이 컨티넨탈 탱고다. [라꿈파르시타]에 맞춰 고개를 과장되게 좌우로 교차하는, 우리가 흔히 탱고라고 생각하는 그것이다. 또 자이브 차차차 파소드볼레처럼 댄스스포츠가 된 탱고도 있다. SBS 설날 특집 스페셜 [쉘위댄스]에서 박찬민 아나운서가 춘 그것이다. 탱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힙합과 뒤섞이면서 아메리칸 탱고가 되었다.
아르헨티나 탱고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포에버 탱고]의 서울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부터이다. 이제는 수많은 동호회가 생겨났고 백화점 문화센타 등에도 강좌가 개설되어 있으며 탱고 전문 밴드 [네오마이징거]도 창단공연을 가졌다. 작년에는 제 1회 서울탱고 페스티벌이 개최되어 아르헨티나와 유럽에서 활동하는 탱고 무용수들이 공연을 했고 워크샵도 진행했다. 또 셀리 포터 감독의 영화 [탱고 레슨]의 주인공 파블로 베론도 작년 10월 내한해서 공연과 워크샵을 가졌다. 그리고 오는 3월 25일 강남구민회관에서는 [탱고 코리아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아르헨티나 탱고 홍보대사인 공명규, 세계탱고페스티벌에서 1위를 한 화이의 탱고 공연도 펼쳐지고, 펄 시스터즈 멤버였던 배인순도 자신의 탱고 솜씨를 공개한다.
현재 국내에는 서울 홍대 앞의 [탱고 오나다], 압구정동의 [땅게리아 델 부엔아이레], 대전의 [아수까] 등 탱고 전문바가 운영되고 있고, 매주 금요일 밤 탱고 공연을 하는 와인바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있다. 살사와 탱고를 병행하는 바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매력은 그 깊은 한의 정서다. 탱고 음악은 삶의 환희보다는 슬픔을 연주한다. 하체를 화려하게 이용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상체의 리드에 의해 하체가 움직인다. 지구 반대편에서 생성된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한국적 감성과 만나서 중요한 문화적 코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쌩유.
스크랩해갑니당..^^
[달콤한 스파이] 키스씬은 다니엘 헤니가 아니라 [데니스 오]로 바로 잡습니다.
잘 간추린 유익한 글이네요. 이명박 서울시장은 홍문표 의원이 전국생활체조연합회장으로 계신, 2005년 중앙대에서 개최한 댄스스포츠 행사에 와서는 자기도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춤꾼의 아우라가 있는 이에게 이중적인 말을 하였으니, 대선에 나온다고 해도 댄스 동호인으로부터 표에 영향을 받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비극, 한......인상이 가지는 가장 공통적인 소재....정치란 본래 누구나 할것 없이.....? 열심히 탱고 춥시다,,,,,,
즐탱!
춤~~ 그중에 탱고!... 애환이 담겨있다지만..활력을주는 춤인거 같습니다. 점점 빠져들어가는 이즈음에..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카사노바] 영화 개봉하는데..주인공이 히스 래저, 카사노바님하고 안닮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