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너머 장터로
뒤늦게 찾아온 동장군이 물러갈 기미를 보이는 일월 하순이다. 일요일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섰다. 이웃 동 언덕에 한 노인이 돌보는 수국은 시든 잎이 사라진 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줄기를 살피니 잎눈이 부풀어 도톰해졌다. 꽃보다 잎이 먼저 돋는 수국이었다. 꽃대감과 이웃한 꽃밭에는 안 씨 할머니가 보여 인사를 나누었다.
밀양댁 할머니는 겨울이라도 아침이면 꽃밭으로 내려와 서성임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할머니는 언 땅이 녹기만 하면 무슨 모종이든 구해 호미로 꼼지락거려볼 심산인 듯했다. 꽃대감tv 유튜브를 운영하는 친구는 엊그제 여러해살이 화초의 겨울나기 모습을 영상으로 내보내 잘 봤다. 그 가운데 히말라야바위취도 나왔는데 분홍색 꽃망울을 달고 있어 폰 카메라 피사체로 삼아 남겼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버스 정류소에서 102번 버스를 타고 시내를 관통해 안민동에 닿았다. 나목이 된 벚나무가 줄지은 안민고갯길엔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선 이들이 더러 보였다. 아스팔트 포장이 된 차도에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질주하기도 했다. 무릎과 종아리에 무리가 오질 않도록 쉬엄쉬엄 걸으면서 꽃대감 꽃밭에서 찍은 히말라야바위취의 꽃망울 사진으로 시조로 다듬어 봤다.
“추워야 더 추워야 이름값 하는지라 / 애태운 꽃망울은 몽글한 움이 되어 / 연분홍 물감을 칠해 시나브로 부푼다 // 아직은 한뎃바람 살갗이 시려와도 / 가녀린 겨울 햇살 고마움 표하려고 / 봄날이 멀지 않음을 온몸으로 알린다” 고갯길 산책 데크를 따라 오르며 남긴 ‘히말라야바위취’ 초고였다. 아침마다 지기들에 산책 중 남긴 사진과 함께 시조를 전하는데 내일 보낼 자료다.
안민고개에 이르자 주차장은 차들이 빼곡했으나 쉼터는 그늘이라선지 사람이 없었다. 내가 떠나왔던 시가지를 뒤돌아보니 공단지역과 주택지 아파트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가지를 빙글 에워싼 산세는 비음산이 대암산을 거쳐 용제봉으로 이어졌다. 용제봉에선 상점령에서 낮아졌다 불모산으로 건너가 시루봉으로 연결되었다. 먼 곳까지 가 볼 처지가 못 되어 마음속으로만 그려봤다.
안민고개 생태터널에서 남쪽으로 가 진해 바다와 시가지를 부감했다. 전망이 트인 볕 바른 쉼터에는 신중년들이 삼삼오오 환담을 나누었다. 남향의 벚나무는 아까 북향 벚나무보다 꽃망울이 조금 더 부푼 듯했다. 안민고갯길에서 양달과 응달의 벚나무는 실제 개화도 1주일 가량 시차를 두고 피었다가 졌다. 태백동으로 가다가 장복산 하늘마루길과 천자봉 해오름길에서 후자를 택했다.
도중에 진해남중으로 가는 사잇길을 찾아내 비탈로 내려섰다. 숲길 구간이 끝나자 진해 바다와 시가지가 더 가까이 보였다. 근래 개통된 2호 우회 국도로 자동차들이 달렸다. 굴다리를 지나자 교회에는 예배를 마친 신도들이 차를 몰아 떠났다. 경화역 근처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경화 오일장 장터로 갔다. 경화동 장터는 3일과 8일이면 근동에서 규모가 큰 오일장 가운데 한 군데였다.
장터 들머리 즉석 뒤집어 구운 따뜻한 찹쌀 호떡을 한 개로 점심으로 대신했다. 명태전을 구워 파는 주점을 알고 있으나 술을 끊어 주인장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설 대목과는 시일이 좀 남았어도 장터는 장꾼들이 많아 어깨가 부딪혀가며 지나야 했다. 내가 경화 장터에서 사야 할 품목은 주로 생선이라 어물전 좌판을 둘러보며 신선도와 가성비를 견주어 놓았다.
경화동 주택지 도로 일자로 길게 형성된 장터를 둘러보고 해조류 톳과 물미역부터 샀다. 고무장갑을 낀 아주머니는 자연산을 언급하면서 거제 바람의 언덕 해녀가 뜯었음을 강조했다. 생선은 반건조 조기를 산 뒤 다른 가게에서 갈치와 고등어를 골랐는데 선도가 썩 좋지 않아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동태와 명태포까지 샀더니 등에 진 배낭과 양손에 든 봉지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2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