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탁 소
몇년 전부터 이용하고 있는 세탁소의 부부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얼마나 친절하고 밝은 표정인지 장애가 단점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항시 성실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잘 마무리 한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여러 세탁소가 있고 주인이 자주 바뀌는 경우도 있으나
이 세탁소는 항시 바쁘고 많은 분들이 찾으며 여러해 동안 변동이 없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장애가 있다는것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과 약한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한다는 정서가 가미되었음을 부인 할수는 없으되 이러한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것이다.
이처럼 여러가지의 이유나 무의식적인 습관에 의하여 가야할 곳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것들이 고정되어 있는것이 아니고 항시 변하고 분석해 보면 무척
복잡하고 다양하다.
일상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가는 경우가 있고 이득 때문에 가는 경우가
있으며 마음이나 생각이 먼저 가는곳도 있다.
오늘 맡겨놓은 세탁물을 찾으러 가보니 엄마는 바느질을 하고, 유치원생인듯한
아들은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부모가 말을 못해도 자녀는 말을 할줄 알았다.
엄마가 무어라 손짓하자 쉽게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맑고 밝고 아름답게 자라기를 빌어본다.
나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에 올라와서 보니 빌딩도 많고 아파트도 많고 좋은집도 많이 있는데
내가 가야할곳은 하늘에서 가장 가깝다는 봉천동의 반지하에 있는 쪽방 이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교육 시킨다고 식당에 일 나가시고,누나는 매형,누나,조카 셋
이서도 살기힘든 좁은 방에 방 하나를 더 만들어 더 살기힘든 동생들을 돌보고
공부를 시키게 된것이다.
그때 대학을 다니던 나는 어디에서든 짓눌리는 가난에 힘들었고 불공평한 세상에
불평도 많았다.
그당시 매형은 목사님의 승용차와 교회차 운전을 하였고 누나도 식당이나 파출부등
의 일을 하였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진것이 없는 사람이 할수있는 일이 많지 않은것이다.
누나의 반 강제에 의하여 교회에 나가는것과 기도생활을 하였지만 교회에 나가는
것이 평안과 위로를 주는것만은 아니었다.
봉천동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이기에 잘사는 사람들만 있는것이
아니로되 그들과 비교하여서도 항시 부족하였다.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 어느날, 어떤 일에도 당당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고 세상의
풍랑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바꾸었다.
그때 만난분이 현재 섬기고있는 교회의 목사님과 언젠가 올린 <호박 같은사람>이라는
글에 나오는 할머니 전도사님이다.
그 당시 목사님은 장년에서 부터 유치부 아이들까지 여러부서를 필요에 따라 섬기던
전도사로 나 만큼이나 가난하고 힘들었으며 우리집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그 후에 그 당시 교회의 담임목사님 동생과 결혼하게 되었고 여러 우여곡절끝에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 교회의 담임을 하게 되었다.
어떤때는 신앙적으로 부족하여도 목사님과의 의리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때도 있음을
돌아본다.
우리의 신앙이 어떤때는 영화에 나오는 조폭들의 의리만도 못할때도 있다.
요즈음에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갖추어지고 부족함이 없는듯하며
교육부서의 예로 보더라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결손가정이 거의 없다.
교회가 커지면서 그렇게 힘들고 곤핍한 영혼이 오는것을 막고있지 않은지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돌아 보게된다.
힘들고 가난한 영혼에게 무엇인가를 하여주는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그들이 와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새힘을 얻고 살아갈수 있도록 하는 한마음의 기도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머리 둘곳없이 가난하여지고 온갖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영혼에게 새힘과 소망을 주시려는 사랑
때문이고 그들을 품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힘들어 지치고 눈물 흘릴때 모두 아신다고 하시며 같이 눈물 흘리시는 주님 이시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고 그런 이룸으로 치장된 모습을 보시는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더라도 그 모습으로 그대로 나오시기를 원하시며 보신다.
그러한 안식과 평안과 교제를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만 전하고,연약함만을 자랑한다고
한듯하다.
감사한것은 옛날 언젠가처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것이 부담으로 다가
오거나 주눅드는 일이 없다는것이다.
다른것은 몰라도 교회에 나오는 모든 영혼에게 나와 같은 이러한 은혜가 임하고 이
땅의 모든교회가 가난한자,지친자,눈물흘리는자에게 안식과 평안을 줄수있는 복된
모임이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올해에 목사님께서 제게 유난히도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없다.
필요에 의해서 이시겠지만 서리집사 인데도 기획위원이 되게 하셨고 3부 대예배 대표
기도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안수집사의 대상이 되고 교육을 받고 있으니 올해내에 임직을 할것같다.
교회 내에서 중직이 되어가는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적으로 주어지는것이 어떠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진실할것을 다짐한다.
하나님을 잊고 사람이 높히고 낮추는 일에 동요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할것이다.
되돌아보면 복음성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걸음마다 자욱마다 다 죄뿐입니다. 쓰리고
아픈 마음 가눌길 없어서 골고다 언덕길을---->,모든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인도하여
주신 길임에 감사를 드린다.
부족한자로서 무릎꿇고 더욱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모든것의 근원되시는 주님께 감사
와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세탁소 얘기를 하려했는데 교회와 내자랑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세탁소 문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010-*****번으로 문자를 남겨 주세요.>
세탁소 부부는 말을 할수없기 때문에 글이나 몸짓을 통하여서만 의사가 전달된다.
이처럼 영적으로 답답한 심령을 안고 말못하여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많다.
말못하는 분들의 입을 열어 주시고 무엇인가에 막혀 답답한 심령이 있다면 뚫어주사
참 자유와 기쁨이 임하게 하소서.
인간으로는 할수 없으되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수있는 일임에 기도를
드린다.
우리 조상들은 결혼하여 출가하는 딸에게 <출가하면 벙어리3년,귀머거리 3년을 보내고
죽더라도 그 집 귀신이 되라.>고 가르쳤다.
이말의 옳고 그름은 다음에 따지더라도 어느 누구든지 며느리의 입장에 있어본 사람이
시어머니의 입장에도 선다는것을 알아야겠다.
유난히도 시어머니 역할만을 하려는 사람이 있고,말못하고 귀막고 사는 분들의 아픔
이 되는 일만을 교묘히 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공동체 내에는 말잘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목사님,전도사님이나 앞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간결하고 조리있게 말을 할수있도록
개발하고 노력하여야 하고,기독교 신앙은 말씀으로 말미암기에 신앙생활을 잘하면
말을 잘하는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것이 이 세탁소 부부처럼 말을 할수 없는분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고 가슴을
치며 죄인이고 부족하다고 눈물 흘리는 세리의 기도라는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달
아야겠다.
내가 쓰는 글에 주님께서 성령으로 인쳐주사 어느 누군가에게 소망과 자유의 언어로
남기를 원한다.
현재의 상황이 어떠 하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가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소망,사랑이 가득한 은혜의 삶을 이루기를 원한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본문중...입을 열어 주소서}
제가 "수화"를 조금 알고 "구화"도 읽을줄 아는데요.
농아인들 글을 잘아는 사람들은 입 모양이 보통인들 말하는 것처럼 표현되고 움직여요..어느농아인 자매가 수화로 말하길 소리 한번 내질러 볼까 하고
달팽이관 수술을 했는데 소리가 들어는 오지만 목소리가 단어로 연결 되어 들어오진 않는데요.음성을 내 지르니 혀가 굳어서 힘을 내질 못 한데요
펌프물 올릴때 마중물 붓잖아요....물 양이 작으면 물 올리기가 상당히 힘들죠
그렇게 생각하면 될거에요..혀를 멈추고 소리만 내지르면 단어가 안되죠..혀를 굴리면서 목소리를 끌어 올려야 소리가 단어가 되어 나오지요.
혹~글쓸때 도움될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