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났습니다.
결과는...흐그그그극...묻지 마세요. 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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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투르크는 금장 한국의 상국으로 나서면서 남하하는 러시아를 견제한다.
이로서 초원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와의 충돌은 아예 확정된 셈이 되었지만
모스크바는 예민할 수 있는 이 소식에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동방인들과 맞닥뜨렸다는 소식이 모스크바의 궁정을 흥분케 했기 때문이었다.
탐험대는 몽골의 대 초원을 지나가면서 동방에 있다는 거대한 제국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그 소식을 따라 남하하다가 그들이 지배하는 영토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들의 외모는 몽골인들과 비슷하나 키는 좀 더 작고 피부는 더 누른 편입니다. 그들의 수도는 허베이(하북)의 북경이며
그들 말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라 합니다.' 라고 탐험대의 보고서는 전했다.

그 후 수년간 탐험이 더 진척되었고, 러시아의 육군 탐험대는 마침내 대륙의 끝에 도달하였다.
그 끝에서 펼쳐진 거대한 바다를 바라보며 탐험대장 이하 탐험대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수십년 전, 마젤란이 이끌었던 스페인인들은 세비야 항으로 돌아왔을 때
신대륙의 서쪽에는 유럽과 신대륙 사이에 놓여있는 대서양보다 더 거대한 바다가 있다고 했었다.
자세한 내용은 스페인이 국가 기밀로 분류하면서 러시아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러시아인들 또한 그 거대한 바다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이듬해 1월,
모스크바에서는 새로운 차르, 보리스 1세가 즉위한다.
유능하고 정력적인 새로운 차르는 러시아의 번영을 보증한다며
모두들 연회석에서 즐거워했으나
한편으로는 세기가 한 차례 지나갈 때는 반드시 거대한 동란이 일어난다며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6세기가 끝나는 데에는 2년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1599년 8월.
그런 이들의 예감을 확신으로 바꾸는 사태가 일어난다.
투르크의 술탄은 금장 한국의 상국으로 행세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가 가진 수많은 타이틀에 대 몽골의 칸이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집어넣기를 원했다.
투르크의 군대가 허울만 남은 칸의 나라를 해체했고
황금 씨족의 후예들은 유럽에서 사라진다.

초원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이 좁은 산악지대에 남쪽으로의 방위 전체가 달려있는 러시아로서는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오스만 투르크가 볼가 강 하류를 장악하게 되면
볼가 강 하류의 무역 중심지로 짭짤한 수익을 올려주는 아스트라한에
술탄이 눈을 돌릴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리고 이 지역이 위험해지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베리아로의 진출이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아예 분단될 수도 있었다.
강적이 체첸의 험난한 산들을 넘기 전에 미리 제압해야만 했다.
그러나 참전을 요구한 차르의 사자 앞에서
스웨덴은 자신들과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먼 땅의 분쟁에 개입하는 걸 거절할 뿐만 아니라
정교회가 주도하는 러시아 동맹에서 탈퇴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스웨덴의 이 배신에 모스크바는 이를 갈았지만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루지아는 당연히 참전에 응했고
체첸 전 지역은 순식간에 수만의 대군이 부딪치는 전쟁터로 돌변한다.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러시아군은 볼가강 유역을 순식간에 제압했지만
그루지아군의 소극적인 기동과 무능으로 투르크 군대가 그루지아를 짓밟자
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었고
체첸의 높다란 산들은 투르크인들 만큼이나 러시아인들에게도 장벽이었다.
게다가 동방으로의 진출이 계속되면서
궁정에는 자금이 없어 매달 걷은 세금이 병사들을 징병하는 데 빠져 나갔고
자금이 시중에 풀리면서 물가가 뛰기 시작했다.
이 혼란을 틈타 수년 전에 암살된 게 분명한 (지금의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가 바로 그 암살의 주모자였기 때문이다!)
선황의 아들 드미트리를 사칭한 가짜 드미트리가 나타나면서
러시아 국내 정국은 급격히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전쟁을 오래 끌 입장이 아니게 된 차르 보리스 1세는 전선의 장군들을 다그쳤고
러시아군은 아나톨리아 반도 깊숙히 진군한 끝에 헬레스 폰토스 해협에 다다랐다.
그 옛날 왕중의 왕,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쳐들어가기 위해 건넌 해협 앞에 서서
러시아 군 모두 잠시 감회에 빠져들었지만
그 감회도 잠시, 콘스탄티노플에서 출항한 투르크의 대함대가
그루지아의 함대를 바로 그들 앞에서 박살내 버린다.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이 명백해졌고
러시아는 해군이 없는 자의 한계를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전쟁은 추가로 2년을 더 끌었다.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가 쑥대밭이 된 후에도
러시아의 험난한 사정을 알고 있던 투르크는 쉽사리 평화협상장에 나오지 않아
러시아는 승전국임에도 거의 사정하다시피 해서 간신히 평화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긴, 모스크바는 지금 평화를 얻은 조건이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반란군이 한때 모스크바까지 침범하는 바람에 차르가 야반 도주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였던 것이다!

1607년. 러시아의 내부 사정은 이보다 나쁠 수가 없는 상태였고
서쪽의 발트해부터 동쪽의 시베리아까지 전 러시아에서 불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러시아 군대는 반란군들을 토벌하는 데에는 간신히 성공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한계였고
투르크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술레이만 대제의 사후 무능한 술탄들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그들의 내부 사정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러시아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오스만 투르크는 유일하게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러시아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전격적으로 이집트를 정벌,
맘루크를 합병한다.
이로서 오스만 투르크 - 티무르의 이슬람 동맹은 실제로 온 이슬람을 장악하게 되었고
러시아는 안 그래도 만만찮았던 적이 이제 이슬람의 챔피언을 자처하게 된 상황에 직면했다.
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을 되찾겠다는 약속...지키지 못할 수도...)
첫댓글 우오!!! 시험 끝난 거 축하드립니다
저이벤트진심 -_-;;
사실 금장한국 오스만이 먹기를 기다린것같은데..ㅎㅎㅎㅎㅎㅎ-수도가 NP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