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다법製茶法 / 복효근
전주에 가면 茶門이라는 찻집이 있어
그 쥔장은 야생차를 고집하는데
그 냥반 따라 순창 회문산 야생차를 따러 갔다
여린 찻잎 다시 말하면 차의 잎
차의 입, 차의 입술
햇살과 바람과 이슬을 마시는 차나무의 입을
그 야들야들한 갓난 아이의 입술 같은 찻잎을
잔인하게 또옥똑 따는 것을 보고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 어린 잎순들을 달구어진 가마솥에 넣고 덖어서
꺼내어 덕석 위에 쏟아놓고
손으로 부벼서 찻잎에 상처를 낸다
찻물이 잘 우려나오게 하기 위함이리라
그러기를 아홉 번이라
아아 잔인하고 모진 제다법이여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완성된 차를 시음해보시라
갓 만든 차를 다관에 담고 물을 붓자
영영 죽어버린 줄 알았던 찻입들이
잘 익은 물 속에
제가 마신 회문산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다 풀어내 놓는데
아홉 번의 가마솥 모진 연단을 연록색 향기로 빚어내 놓는데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애초 나무에 매달렸던 그 형상으로 돌아가
물고기처럼 다관 속에 노니는데......
그 차를 마시고도
그 찻잎의 흉내를 한 자락이라도 내지 못할 량이면
이승에서건 저승에서건
다시는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출처] 복효근 시인 4|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