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리 매향
아침 최저 기온이 빙점 근처 머문다만 동장군 기세는 누그러진 일월 끝자락이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월요일은 새벽같이 이른 시간에 현관을 나섰다. 이틀 전 낙동강 강가 트레킹에서 살펴둔 레포츠 숲길을 한 구간 더 걷고 싶었다. 그날은 열차로 삼랑진역으로 나가 낙동강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 김해 생림 강변 숲길을 걸어 도요마을까지 걸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왔다.
미명의 새벽 퇴촌삼거리로 나가니 서녘 하늘엔 하현으로 기우는 열여드레 달이 걸려 있었다. 가로등이 훤한 창이대로는 오가는 차량이 한산했다. 창원대 삼거리로 나가 김해 불암동으로 가는 97번 좌석버스를 타고 시내를 통과하니 일터로 향하는 이들이 다수 타고 내렸다. 창원터널을 통과해 장유를 지나자 승객이 불어나 혼잡해진 서김해에서 시내로 들어간 분성사거리에서 내렸다.
풍유동 차고지에서 출발하는 첫차로 도요로 가는 61번 버스를 탔다. 익숙했던 창원 거리와 다른 김해여서 차창 밖은 대성동 고분군이라든가 경전철 지상 선로가 보이기도 했다. 삼계의 아파트단지와 정수장을 지나 나전고개를 넘으니 골짜기에 공단지역이 나왔다. 창원에서 구획으로 정돈된 공단을 보다가 무질서하게 들어선 공장 지붕을 보니 인문 환경이 거칠고 삭막하게 와 닿았다.
교외로 나간 버스는 생림면 소재지에서 축산 단지를 지난 강변 도요마을로 갔다.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혼자였다. 도요(都要)라는 지명 유래는 강변에 도요새가 날아와서 불리었고, 다른 설은 옛적 가야시대 전란이 나면 임금이 피신해 올 요새와 같은 곳이라고 했으나 둘 다 문헌에 전한 기록이 아닌 구전일 뿐이다. 강변이라 물 빠짐이 좋은 모래흙에 감자 농사가 잘된다고 했다.
이른 아침이라 농부는 보이질 않아도 논에는 봄 감자 농사를 지으려고 두엄을 뿌려 트랙터를 갈 준비를 해 놓았다. 들녘이 끝난 강둑에서 서니 삼랑진에서 흘러온 물길이 원동을 향해 흘렀다. 일교차가 크거나 계절이 바뀌는 때면 강기슭으로 안개가 피어오를 듯한 지형이었으나 간밤은 그럴 여건이 아니라 시야를 가리지는 않았다. 무척산이 신어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선 줄기였다.
몇 해 전 겨울 어느 날 대학 동기와 한림정역에서 강변 따라 모정에서 마사를 거쳐 도요에 이르러 산비탈로 갓 뚫린 길을 걸어 용산까지 갔더랬다. 4대강 사업으로 강 건너편 삼랑진에서 원동을 거쳐 물금으로 가는 벼랑으로는 생태 보도교를 놓아 자전거길이 뚫어졌다. 이를 본받아 김해에서는 마을이나 농지가 없는 가파른 산악 지대임에도 강 언저리를 따라 레포츠 숲길을 뚫었다.
선로사 가는 갈림길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간 강기슭은 쉼터와 함께 정자가 나왔다. 강 건너는 밀양과 양산을 서쪽에서 경계 짓는 천태산과 원동 뒤에는 토곡산이 가파르게 솟아 버텼다. 삼랑진에서 구포로 이어지는 경부선 철길로는 간간이 열차가 지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탈을 따라 높다란 산마루로 올랐다가 내려선 곳이 상동면 여차리였다. 여차 용산에도 숲길이 개설되었다.
상동 여차리는 김해에서 가장 북단으로 강 건너는 양산 원동 강변 가야진사와 마주했다. 강 언저리에 지금은 기능을 상실한 나루터가 나왔다. 강 건너편에는 신라 적부터 가야와 맞닿은 국경 강물에 용신제를 지내 국태민안을 빌어준 제단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도 그곳 군수나 선량이 제관이 되어 통돼지를 강물에 띄워 용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가야진사가 빤히 보였다.
용당나루는 4대강 사업 때 달무리 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이후 김해시에서는 예전 자라던 고매를 정비 매화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강 건너 원동은 순매원과 영포마을 매화가 알려졌는데 거기 못지않은 명소였다. 연륜이 수십 년으로 헤아려질 고목 매실나무에는 자잘한 꽃망울이 부풀어 연방 꽃잎을 터트릴 기세였다. 은은한 매향을 맡으면서 감로리까지 걸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4.01.29
첫댓글 같이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