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을 다 빼믄 번데기가 되어서 가븐다 일주일 되기 전에 새알같이 고치를 짓고 나방이 되는데 나는 큰일날새라 고치를 푸대에 담아 리어카에 싣고 버스를 타고 가믄 귓가에서는 오독 오독 오독 오독 부지런한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번데기는 나방이 되고플텐디 몇 키로 얼마에 떨어지는 돈이라도 받아 잠실로 오믄 호독 호독 호독 호독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쳐 있다
누에가
우화해서 나방이 되기 전에 고치에서 실을 뽑는다. 실은 비단이, 번데기는 식재료가 된다. 안기임 시인에게는 생활과 노동이 곧
시다. 먹성 좋은 누에들이 뽕잎 갉는 소리를 비에 적셔 자신의 애잔한 마음을 가만히 들려준다. 앞의 ‘빗소리’는 미안함을 자꾸
찌르는 누에들의 항의이고, 뒤의 ‘빗방울’은 허전함에 글썽이는 사람의 눈물을 닮아 있다. 번데기도 나방이 되고 싶었으리라는 연민이
이런 감정들을 자아냈다. 여기에 자기 삶과 꿈을 투영시켰다는 데 이 시의 묘미와 감동이 있다. 고단한 인생 중에 누군들 나비가 돼
훨훨 날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을까.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