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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장단(一脚長短)
하나의 다리가 길거나 짧다는 뜻으로, 남을 살피거나 일을 논의할 때는 진실로 길고 짧음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다.
一 : 한 일(一/0)
脚 : 다리 각(月/7)
長 : 길 장(長/0)
短 : 짧을 단(矢/7)
말에도 품격이 있다. 표현에 따라 같은 말도 달리 들린다. 한 젊은이가 어떤 사람이 다리 하나가 짧다고 말하자, 홍석주(洪奭周)가 나무랐다. “어째서 다리 하나가 더 길다고 말하지 않느냐? 길다고 말하면 짧은 것이 절로 드러나니 실은 같은 말이다. 말을 할 때 긴 것을 들고 짧은 것은 말하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입의 덕[口德]이다. 남을 살피거나 일을 논의할 때는 진실로 길고 짧음을 잘 구분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때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고 남의 단점을 드러낸다면 군자의 충후한 도리가 아니다.” ‘학강산필(鶴岡散筆)’에 나온다.
박지원이 ‘사소전(士小典)’에서 말했다. “귀가 먹어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귀머거리’라 하지 않고 ‘소곤대기를 즐기지 않는다’고 하고, 실명한 사람은 ‘장님’이라 부르는 대신 ‘남의 흠을 살피지 않는다’고 하며, 혀가 굳고 목이 잠긴 것을 ‘벙어리’라 부르지 않고 ‘남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등이 휘고 가슴이 굽은 것을 ‘아첨하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며, 혹 달린 사람은 ‘중후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전의 현감을 지낸 홍휘한(洪徽漢)은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동무들이 그를 소도둑[牛賊]이라고 놀렸다. 나중엔 별명이 되어 벗어날 수가 없었다.
참판 홍인호(洪仁浩)가 말했다. “소도둑이란 이름이 우아하지 못하니 오늘부터 축은(丑隱)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하였다. 홍공이 만년에 마침내 축은으로 행세하였다. 다산의 ‘혼돈록(餛飩錄)’에 나온다.
오래전 명일동으로 한학자 손종섭 선생을 찾아뵌 일이 있었다. 선생의 책 ‘옛 시정을 더듬어’를 읽고 깜짝 놀라서였다. 당시 80을 바라보던 선생과 아파트의 좁은 서재에서 손수 타온 차를 앞에 두고 공부 이야기를 했다.
우리말의 운율을 얘기하다 7·5조 가락 얘기가 나왔고, 일본 하이쿠의 5·7·5 음수율로 화제가 번졌다. “내가 하이쿠의 앞쪽 다섯 자를 줄여 7·5로만 시를 지어 보았어요. 길 가는데 앞에 다리가 불편한 이가 걸어가면 그 사람을 지나쳐 가기가 참 미안하지요. 그래서 ‘저는 이 앞서 가기/ 차마 어려워’라고 해 보았어요.” 다른 귀한 얘기보다 이 말씀이 오래 두고 생각난다.
말의 행간
사복(蛇福)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승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원효를 찾아가 포살계(布薩戒)를 지으라고 요구한다.
원효가 시신 앞에 서서 빌었다. "태어나지 말지니, 죽는 것이 괴롭나니.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거늘(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사복이 일갈했다. "말이 너무 많다."
원효가 다시 짧게 고쳤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死生苦兮)." 처음엔 14자였는데, 4자만 남겨 할 말을 다 했다.
다음은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의 한 구절이다. "악사 사면(師冕)이 공자를 뵈러 왔다. 계단에 이르자 공자께서 '계단입니다' 하시고, 자리에 이르자 공자께서 '자리입니다' 하셨다. 모두 앉자 공자께서 '아무개는 여기 있고, 아무개는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옛날 궁정의 악사는 장님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그가 찾아오자 孔子께서 친히 나가 맞이하는 장면이다. 원문으로 27자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인데, 시각 장애인을 배려하는 孔子의 자상함과 그 자리의 광경이 눈에 선하다.
홍석주(洪奭周)는 '학강산필(鶴岡散筆)'에서 그 문장의 간결하고 근엄함에 감탄했다. 그는 '모두 앉았다'고 한 표현에 주목했다. 孔子와 다른 사람들이 앉아 얘기하는 중에 사면이 왔다.
그런데도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앉았다'고 한 것에서 다들 일어선 것을 알 수 있다. 고작 악사 하나가 왔는데 왜 일어났을까? 스승인 孔子께서 일어나시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孔子께서 일어나신 것은 어찌 아는가? 공자께서는 관복 입은 사람과 맹인을 보면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반드시 일어나셨다는 다른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장면을 우리더러 쓰라고 했다면 서사가 몇 배는 길어졌을 것이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말한 글쓰기의 비법은 이러하다. '풍부하나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간략하지만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는다(豊而不餘一言, 約而不失一辭).' 한 글자만 보태거나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맵짠 글을 쓰라는 말씀이다.
'사간의심(辭簡意深)', 말은 간결해도 담긴 뜻이 깊어야 좋은 글이다. 말의 값어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다. 다변(多辯)과 밀어(蜜語)가 난무해도 믿을 말이 없다. 사복이 원효에게 던진 '말이 많다'는 일갈이 자주 떠오른다.
(참고) 학강산필(鶴岡散筆)
조선 후기 문신 홍석주(洪奭周)가 견문한 명인들의 시문과 언행들을 중심으로 서술한 만록집으로, 저자가 만년에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 노년을 보내면서 지난 날의 견문(見聞)이나 독서에서 얻은 견해들을 잡록형식으로 적은 글이다.
'학강산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분야는 경학(經學)과 같은 유학사상인이다. 송대의 유학을 존숭하여 청대의 고증학을 비판하고 있다.
청나라의 학자들이 고증학을 실학(實學)이라 부르고 있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도리어 주경(主敬)과 구방(求放)하는 공부인 송유(宋儒)들의 학문태도를 실용(實用)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던 정약용(丁若鏞)의 경학태도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모기령(毛奇齡)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학강산필'의 많은 부분은 역사에 대한 비판과 평가이다. 이것은 중국의 경우와 우리 나라의 경우를 모두 언급하고 있다. 나머지는 문학에 대한 견해이다. 대개 조선 말기에 자주 거론되었던 ‘천기론(天機論)’에 대한 생각이다. 홍석주는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천기론을 주장하였다.
홍석주는 시는 성정(性情)에 근본하지만 천기로 발현한다. 그래야 그 의경(意境)은 진지하고, 그 사(辭)는 유원(悠遠)하며, 그 기(氣)는 유동(流動)하게 된다. 그 용(用)은 감인(感人)이 주가 되어야 하고, 그 공(功)은 흥권징창(興勸懲創)에 돌려야 한다.
그 효(效)는 이풍역속(移風易俗)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종래의 효용론적 문학관을 답습하고는 있다. 그러나 시의 표출과정과 작용을 명료하게 집약해 놓았다. 조직과 꾸밈을 반대하고 진솔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유로(流露)된 작품이야말로 진실성을 획득하게 되어,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천기를 주장하는 홍석주는 시의 형태에 있어서도 근체시보다는 고시(古詩)를 좋게 생각하였다. 특히, 사영운(謝靈運)이 부화(浮華)한 표현을 쓰기 시작하여 뒷날의 시도(詩道)에 손상을 주었다고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학강산필'은 1984년오성사(旿晟社)에서 영인하고 발행한 '연천전서(淵泉全書)' 제7책에 수록되어 있다. 다음 이야기는 홍석주(洪奭周)가 쓴 학강산필(鶴岡散筆)에 기록된 내용이다.
엄격했던 자식 교육
조선 정조때 두루 여덟번이나 판서를 지낸 이문원(李文源)의 세 아들이 가평에서 아버지를 뵈러 상경하였는데 아버지는 아들들이 말을 타고 온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며 "아직 젊은데 고작 일백여리를 걷는 것이 싫어 말을 타다니 힘쓰는 것을 이렇듯 싫어해서야 무슨 일을 하겠느냐?"하면서 세 아들에게 즉시 걸어서 가평으로 돌아갔다가 이튼날 다시 도보로 올 것을 엄히 명령하였다.
그 세 아들중 한 사람이 이존수(李存秀)로 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李天輔)였으니 영의정의 손자요 현임 이조판서의 아들들인데 말을 타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불호령을 받고 걸어서 가평으로 내려 갔다가 걸어서 다시 올라오라는 엄한 질책을 받았다니 이 얼마나 엄격한 자식 교육입니까?
이렇게 자라난 이존수 또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는데 그는 나아가고 물러나고 말하고 침묵함에 법도가 맞았고, 지휘하고 일을 살피는 것이 민첩하고 영민해서 간교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속일 수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불과 30-4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산업이 농경 위주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힘든 농삿일을 하지 않으면 호구지책이 막연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시대가 변하여 힘든 일은 하려들지 않고 모든 생활이 편리 위주로 시간 개념도 바뀌면서 이런 옛날이야기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은 어쩌다가 도시에서 시내뻐스를 타고 내리는 광경을 목격하노라면 시내뻐스 한 정거장을 이용하는 젊은 승객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되고 '뻐스를 기다리는 시간이면 가고도 남을 거리를 차를 타다니'하며 이해를 못하는 나 자신을 생각해 본다.
성인도 시속을 따르라는 옛 말을 생각하면 요즘 세상에 그러려니 해야 하지만 천지가 개벽을 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으니 세상에서 힘든 일을 격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인 것이다.
효경(孝經)에 있는 말씀이다.
在上不驕(재상불교)
高而不危(고이불위)
制節謹度(제절근도)
滿而不溢(만이불일)
윗 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지위가 높아도 위태롭지 않고, 절제하고 아껴 법도를 삼가면 가득차도 넘치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해 주면서 학원이나 보내면서 성적 내기에 전념하면서 세상살이의 원리와 사람으로써 지켜야할 법도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는 자식의 장래를 망치는 일이며 특이 몸으로 힘든 것을 체험 시키지 않는 것은 곧 자식을 병자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가장 무서운 건 소인
劉元城言: 人家子弟, 寧可終歲不讀書, 不可一日近小人.
유안세(劉安世)가 말했다. "집안의 자제가 일 년 내내 책을 읽지 않을망정, 단 하루라도 소인과 가까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
朱夫子極稱其有味.
주자께서 그 말에 맛이 있다고 지극히 칭찬하셨다.
人不讀書, 則心放而百邪棄之, 其害固大矣.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마음이 제멋대로 놀아 온갖 사특함이 그를 망치고 만다. 그 해로움이 실로 크다.
然今歲不讀, 明年猶可及也.
하지만 올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내년에 읽을 수가 있다.
彼小人者, 寡識而喜諛, 所進者玩好之具也, 所慣者儇薄之態也.
저 소인들은 아는 것은 적으면서 아첨하기를 좋아한다. 가져오는 것은 즐기며 놀 거리이고, 익숙한 것은 약삭빠르고 경박한 태도다.
人家子弟, 心志未定, 情慾將萌.
어느 집안이고 아이들은 심지(心志)가 안정되지 않아 정욕이 싹트기 쉽다.
淫媟之語, 一入其耳, 後雖有嚴師良友, 朝夕而先後之, 亦無及矣.
음란하고 문란한 말이 한 번 귀에 들어가면, 나중에 비록 엄한 스승과 좋은 벗이 아침저녁으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더라도 방법이 없다.
所謂小人者, 非必大奸巨猾包莊凶險之謂也.
이른바 소인이란 반드시 크게 간사하고 교활하거나 잰 체하고 음험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委巷流俗之徒, 自謂能愛人, 而壞人心術, 戕人壽命者, 比比是也.
뒷골목의 시속을 따르는 무리로 제 입으로는 능히 사람을 아낀다면서 남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남의 수명을 해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嗚呼! 可不懼哉?
아아!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덮어놓고 책만 읽으라기보다는 바른 마음자리를 심어주는 것이 먼저다. 책은 지금 안 읽어도 다음에 읽으면 된다. 마음은 한번 흐트러지면 추스르기가 어렵다. 마음밭을 황폐하게 하는 원인은 소인(小人)을 가까이하는 데서 비롯된다.
못 보던 것, 신기한 일, 자극적인 내용들은 아직 심지가 안정되지 않은 젊은이의 마음을 못 가누게 만든다. 딴 데 쏠린 마음으로는 책을 읽어야 소용이 없고, 엄한 스승의 훈도나 좋은 벗의 권면도 효과가 없다.
학원을 여기저기 보내고,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것으로 부모 노릇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차라리 책을 읽히지 않더라도 젊은이들이 빠지기 쉬운 소인의 유혹을 차단하는 것이 먼저다. 든 사람보다 된 사람이 낫다.
말의 품격
말에도 품격(品格)이 있는 법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지요. 평소에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생애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언어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앞날은 자신이 하고 있는 말처럼 부정적으로 되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뿐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나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지요.
긍정의 언어와 부정의 언어는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긍정의 언어를 쓰면서 살아가면 조금 더 세상이 밝아지겠지요.
사람의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격(格; 水準)을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말 한마디가 사람의 귀격(貴格)과 천격(賤格)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귀격 말투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말투입니다. 그러나 천격 말투는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말투이지요.
논어(論語) '위령공편'에서 공자(孔子)는 '사달이이의(辭達而已矣)', 즉 "말은 뜻을 전달하면 그만이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미사려구(美辭麗句)'로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경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탕과 겉모습이 조화를 이룬 군자(君子)의 경우 내면의 깊이만큼 표현하는 능력도 중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인격이 갖추어진 사람은 말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마련입니다.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고, 유머나 비유, 반전 등의 기법을 통한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입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 맞도록 적용법을 달리하기도 하고, 의문을 갖고 질문을 통해 추구하는 진리를 찾기도 하는 것이지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이는 아는 것을 분명히 말하며 시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꼭 말하는 내실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리고 사람을 제대로 읽는 것,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해야 그들이 하는 말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가가면 따뜻하고, 말은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보면 기품과 위엄이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자신은 물론 사람을 다스리고 사람 공부를 하고 싶다면 먼저 말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不知命, 無以爲君子也),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없고(不知禮, 無以立也),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也)'는 성현의 말씀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말은 곧 나의 인격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방과의 소통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말의 품격은 인품에서 비롯됩니다.
말 공부라는 것은 말 잘하는 법이 아닙니다. 바로 인품의 성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통해 말의 격을 높이는 공부를 하면 삶의 품격을 높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지도자가 되려면 자신의 강점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타인의 약점이나 결점을 감싸주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품위와 연결되지요.
실제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 해도 삶의 진정한 가치라고 할수 있는 품위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뛰어난 능력이 오히려 재앙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 뛰어난 품격을 갖춘 지도자가 갖출 덕목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품격(品格)입니다.
천박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예의를 중시합니다.이것은 하루아침에 갖춰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의에도 품격이 있다고 합니다. 언제 어떤 경우에도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천박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품격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의리(義理)입니다.
사리사욕이 없는 맑은마음으로 상대를 먼저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의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상황이든 이해득실을 우선하여 행동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닙니다. 이 의리를 잃어버리는 순간, 인생이 비참해집니다.
셋째는 인정(人情)입니다.
인정은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이렇게 인간관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인정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인정이 없으면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관계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인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넷째는 수치심(羞恥心)입니다.
인간만이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는 언제나 당당하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요즘처럼 막말을 일삼는 시대에 정말로 이 말을 무겁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수치를 모르는 언행을 하고도 태연한 이 시대의 여야 정치인들로는 결코 세상을 이끌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품격 있는 말을 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에 죄(罪)와 복(福)이 왕래합니다. 세상에 나서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품격 있는 말을 하고 품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막말을 일삼으면 천격이 됩니다. 우리 이왕 사는 한평생 귀격이 되면 어떨까요?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脚(다리 각)은 ❶형성문자로 腳(각)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却(각; 굽어 구부러지다)으로 이루어졌다. 다리는 무릎에서 굽으므로 脚(각)이라 하였다. ❷형성문자로 脚자는 ‘다리’나 ‘(물건의)하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脚자는 ⺼(육달 월)자와 却(물리칠 각)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자와 卻(물리칠 각)자가 결합한 腳(다리 각)자가 쓰였었다. 卻자는 발음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계곡을 지나가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니 발과 관련된 의미를 조금은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腳자는 본래 사람의 ‘종아리’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허벅지와 종아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다. 또 해석에서는 腳자가 脚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脚(각)은 (1)종아리. 다리 (2)짐승을 잡아 그 고기를 나눌 때, 전체를 몇 등분(等分)한 그 부분, 등의 뜻으로 ①다리 ②물건의 하부(下部) ③토대가 되는 것 ④다리로 걷는 것같이 보이는 것 ⑤몸둘 곳 ⑥지위(地位) ⑦밟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팔 비(臂)이다. 용례로는 발꿈치를 각근(脚跟), 다리뼈를 각골(脚骨), 다리에 난 털을 각모(脚毛), 다리에 속하는 부분을 각부(脚部), 다리의 테두리 선을 각선(脚線), 다릿심으로 걷는 힘을 각력(脚力), 다리에 동여매는 띠를 각대(脚帶), 사람이나 사물의 어떤 방면에서 있어서의 등장이 눈부실 만큼 찬란히 빛남을 각광(脚光), 연극의 꾸밈새로 무대 모양이나 배우의 대사 따위를 적은 글을 각본(脚本), 본문 밑에 붙인 풀이를 각주(脚註), 걸음으로 품팔이하는 사람 또는 먼길을 다니면서 심부름하는 사람을 각부(脚夫), 발로 밟고 참을 각답(脚踏), 다리가 아픈 병을 각질(脚疾), 다리 아픈 증세를 각통(脚痛), 다리가 저림으로 다리 감각이 없어짐을 각마(脚痲), 발끝으로 발의 앞 끝을 각첨(脚尖), 어떤 목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님을 행각(行脚), 어떤 사물이나 견해나 조건 등에 근거를 두어 그 입장에 섬을 입각(立脚), 튼튼한 다리 또는 잘 걷는 다리를 건각(健脚),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기둥을 교각(橋脚), 외짝 다리로 하나 뿐인 다리를 독각(獨脚), 처지나 지위를 잃음을 실각(失脚), 잎자루나 잎줄기에서 가까운 잎의 부분을 엽각(葉脚), 산기슭으로 산의 비탈이 끝나는 아랫부분을 산각(山脚),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불길을 화각(火脚), 말의 다리로 마각이 드러남을 마각(馬脚), 무쇠처럼 억센 다리를 철각(鐵脚), 벌겋게 드러낸 다리를 적각(赤脚), 비스듬히 걸어가는 일 또는 비스듬히 걷는 걸음걸이를 사각(斜脚), 두 다리를 쌍각(雙脚), 자기의 발 밑을 잘 비추어 돌이켜본다는 뜻으로 가깝고 친할수록 더욱 조심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각하조고(脚下照顧), 발이 실제로 땅에 붙었다는 뜻으로 일 처리 솜씨가 착실함을 각답실지(脚踏實地), 말의 다리가 드러난다는 뜻으로 숨기려던 정체가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마각노출(馬脚露出),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등에 쓰인다.
▶️ 長(길 장/어른 장)은 ❶상형문자로 仧(장),兏(장)은 동자(同字), 长(장)은 약자(略字)이다. 長(장)은 머리털이 긴 노인이 단장을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나중에 노인이 전(轉)하여 나이가 위인 사람으로 관리(官吏)의 長(장), 또한 성장하다, 길게 자라다, 길다 따위의 뜻에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長자는 '길다'나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長자는 머리칼이 긴 노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길다’였다. 長자는 백발이 휘날리는 노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후에 '어른', '우두머리'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長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張(베풀 장)자나 帳(휘장 장)자에 長자가 쓰이기는 했지만, 長자가 부수로 지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長(장)은 (1)어떤 조직체(組織體)나 또는 부서 단위의 우두머리(책임자) (2)긴 기다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오랜의 뜻을 나타내는 말 (4)길이 (5)늘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다 ②낫다 ③나아가다 ④자라다 ⑤맏 ⑥어른 ⑦길이 ⑧우두머리 ⑨처음 ⑩늘 ⑪항상(恒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릴 유(幼), 짧을 단(短), 늙을 노/로(老)이다. 용례로는 좋은 점을 장점(長點), 긴 것과 짧은 것을 장단(長短), 목숨이 긺을 장수(長壽), 맏 아들을 장남(長男), 한 관청의 으뜸 벼슬을 장관(長官), 오랜 기간을 장기(長期), 장편으로 된 노래를 장가(長歌), 길게 내는 소리를 장음(長音), 어른과 어린이를 장유(長幼), 나이가 많고 덕이 많은 사람의 존칭을 장로(長老), 통나무를 길쭉하게 잘라서 쪼갠 땔나무를 장작(長斫),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을 장고(長考), 아주 능한 재주를 장기(長技),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짐을 성장(成長), 모임을 대표하는 사람을 회장(會長), 집안의 어른을 가장(家長), 도와서 자라나게 한다는 조장(助長), 시간이나 물건의 길이 따위를 처음에 정한 것보다 늘이어 길게 함을 연장(延長), 위에 서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 통솔하는 사람을 수장(首長), 특별히 뛰어난 장점을 특장(特長), 오륜의 하나로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유유서(長幼有序), 길다란 목에 까마귀 부리 같이 뾰족한 입이라는 뜻으로 관상에서 목이 길고 입이 뾰족한 상을 이르는 말을 장경오훼(長頸烏喙), 오래 서서 분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권문세가에 빌붙어 이익을 얻고자하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장립대명(長立待命), 긴 눈과 날아다니는 귀라는 뜻으로 옛일이나 먼 곳의 일을 앉은 채로 보고들을 수 있는 눈이나 귀 곧 서적을 이름 또는 사물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널리 정보를 모아 잘 알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목비이(長目飛耳), 길고 짧음은 상대적 관계에서 비교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단상교(長短相較), 멀리 불어 가는 대풍을 타고 끝없는 바다 저쪽으로 배를 달린다는 뜻으로 대업을 이룬다는 말을 장풍파랑(長風波浪),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함을 일컫는 말을 장수선무(長袖善舞), 날이 새도 창을 가리고 불을 켜놓은 채 며칠이고 계속하는 술자리를 일컫는 말을 장야지음(長夜之飮), 길고도 긴 봄날을 일컫는 말을 장장춘일(長長春日), 사업의 오랜 계속을 도모하는 계획을 일컫는 말을 장구지계(長久之計), 길게 뻗친 숲의 깊은 곳을 일컫는 말을 장림심처(長林深處), 오랫동안 살아 죽지 아니함을 일컫는 말을 장생불사(長生不死), 늘 길거리에 모여 있으면서 뜬 벌이를 하는 막벌이꾼을 일컫는 말을 장석친구(長席親舊),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함을 일컥는 말을 장와불기(長臥不起), 먼 장래의 계책이라는 말을 장원지계(長遠之計), 긴 줄로 해를 붙들어 맨다는 뜻으로 시간의 흐름을 매어 멈추게 하려는 것 즉 불가능한 일을 이르는 말을 장승계일(長繩繫日), 장자의 일만 개의 등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부자가 신불에게 일만 개의 등을 올리는 반면에 가난한 여인은 단 하나의 등을 바치지만 그 참뜻만 있으면 가난한 여인의 한 등이 장자의 만등에 못지 않다는 말을 장자만등(長者萬燈), 부자는 3대까지 가기 어렵다는 말 곧 아버지가 고생해서 재산을 만들고 그것을 보고 자란 아들인 2대는 그것을 잘 지키지만 3대인 손자는 생활이 사치하여 마침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룩한 가산을 탕진하는 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장자삼대(長者三代), 긴 베개와 큰 이불이라는 뜻으로 긴 베개와 큰 이불은 함께 누워자기에 편하므로 형제 간에 우애가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장침대금(長枕大衾) 등에 쓰인다.
▶️ 短(짧을 단)은 ❶회의문자로 예전에 짧은 것들의 치수를 잴 때에 화살(矢)과 콩(豆)으로 쟀다는 데서 '짧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短자는 '짧다'나 '가깝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短자는 矢(화살 시)자와 豆(콩 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短자는 '투호'라 불리는 화살 던지기 놀이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투호는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시작된 놀이로 화살을 손으로 던져 통에 넣는 놀이였기 때문에 短자에 쓰인 豆자는 투호 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투호 놀이로 화살을 던지는 것은 활로 쏘는 것보다 사정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短자는 '짧다'나 '가깝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短(단)은 화투놀이에서 띠를 석 장씩 갖추어 끗수를 더 얻을 수 있는 약(約) 곧 '청단, 홍단, 초단' 같은 것으로 ①짧다 ②키가 작다 ③가깝다 ④숨이 가쁘다(숨이 몹시 차다) ⑤오래되지 않다 ⑥적다, 부족하다 ⑦짧게 하다 ⑧뒤떨어지다 ⑨어리석다, 천박(淺薄)하다 ⑩헐뜯다 ⑪모자라다 ⑫흉보다 ⑬허물, 결점(缺點) ⑭요절(夭折; 젊은 나이에 죽음) ⑮짧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난쟁이 왜(矮),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늘일 연(挻), 길 장(長)이다. 용례로는 짧게 줄임을 단축(短縮), 짧은 기간을 단기(短期), 낮고 모자라는 점을 단점(短點), 짧은 시문이나 짤막하게 끝을 낸 글 또는 짤막한 영화를 단편(短篇), 일찍 부러짐으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단절(短折), 목숨이 짧음을 단명(短命), 짧은 칼을 단검(短劍), 짧은 칼을 단도(短刀), 좁은 소견으로 자기의 의견 또는 식견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단견(短見), 부족한 점이나 못한 점 또는 나쁜 점을 단처(短處), 글 아는 것이 넉넉하지 못함 또는 짧은 글을 단문(短文), 짧게 나는 소리로 짧은 소리를 단음(短音), 짧은 머리털을 단발(短髮), 짧고 작음으로 키가 작고 몸이 작음을 단소(短小),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천박함을 단천(短淺), 소견이 짧음 또는 짧은 생각을 단려(短慮), 긴 것과 짧은 것을 장단(長短), 오래 삶과 일찍 죽음을 수단(壽短), 가장 짧음을 최단(最短), 낮고 짧음을 저단(低短), 식견 등이 얕고 짧음을 천단(淺短), 남의 약점을 들어서 헐뜯어 말함을 훼단(毁短), 숨쉬는 사이가 짧음을 기단(氣短), 타고난 능력이 부족함을 재단(材短), 작은 것이 정밀하고 세차다는 뜻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다부지고 강한 면모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단소정한(短小精悍), 떨어지고 빠지고 하여서 완전하지 못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단편잔간(短篇殘簡), 사람이 빈궁해지면 웅지를 품지 못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지단(人窮志短), 긴 것이나 짧은 것이나 다 함께 사용함을 일컫는 말을 용장용단(用長用短), 긴 것은 자르고 짧은 것은 메워서 들쭉날쭉한 것을 곧게 함을 이르는 말을 단장보단(斷長補短),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는 뜻으로 좋은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함을 이르는 말을 절장보단(絶長補短), 남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언장단(不言長短),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장일단(一長一短), 남의 장점으로 나의 단점을 고침을 일컫는 말을 이장보단(以長補短), 길고 짧음은 상대적 관계에서 비교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단상교(長短相較), 장단을 가려서 격식에 맞춘다는 뜻으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점은 취한다는 말을 사단취장(捨短取長), 자기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동시에 남의 잘못을 욕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을 망담피단(罔談彼短), 머리털은 빠져서 짧으나 마음은 길다는 뜻으로 몸은 늙었으나 일 처리는 잘한다는 말을 발단심장(髮短心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