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플러킹 (외 1편)
휘민
한밤중 인적 없는 빗속을 달리다가
무언가와 부딪쳤다
에어백이 터졌고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문을 열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룸미러에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짐승이 스쳤다
어느새 빗줄기는 잦아들었지만
와이퍼는 최고 속도로 사고를 지우고 있었다
그날의 악몽 이후 같은 꿈이 반복되었다
미러 속에 갇힌 생
눈을 뜨면 더 독한 지옥일까 봐
눈을 감은 채 밤새도록 머리카락을 뽑았다
귀울음이 되어 달라붙는 불길한 기척들
그날처럼 ⸺에어백이 터지고, 와이퍼가 끽끽거리고, 무언가
뒤뚱거리고, 잉잉거리며 ⸺내 잠속을 찾아오는 짐승들
누군가 내 목을 비틀기 전에 내가 나를 죽일 수 있을까
마침내 죽음은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죽음을 연기하기 위해
심장을 속이는 법을 배워야 할 시간
새의 깃털을 덮고 잠이 들었다
이번 생은 누가 꾸고 있는 악몽일까
*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 : 살아있는 동물의 가죽과 털을 마취 없이 마구잡이로 뜯어내는 것
―계간 《시와 편견》 2023년 여름
풍장
–세월호 참사 9주기에
너를 모래바람 속에 묻고 온 뒤부터
내 안에 검은 무덤이 들어섰다
물도 없이 입속에 털어 넣은 모래 알갱이들
뱉어지지 않는 슬픔에 목젖이 잠겨
아가야, 나는 저 바람의 문을 닫을 수가 없구나
너를 낳고 젖도 못 물릴 때 주인은 마두금 악사를 불러왔지
못난 어미의 눈동자에 별빛이 고이게 하던 늙은 악사의 투레질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낙타들의 발굽 소리 같기도 하던
그때 큰소리로 울던 것은 나였을까 마두금이었을까
나는 끝내 주인의 칼 끝에 목숨을 내어주고
모래바람이 인간의 천막을 들출 때마다 죄 많은 어미는
너의 비명이 묻힌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가끔은 휘청이는 운명에 혀를 깨물고
딱지가 엉겨 붙은 붉은 돌부리에 이마를 찧으며
눈물 주머니는 버렸다
사막에서 몸이 뜨거워지는 건
스스로 나를 죽이는 일
목숨이 무용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너의 마지막 비명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리라
너에게 가기 위해 오늘 신을 버린다
울음이 늦게 도착하는 이 고비에서
―계간 《시와 징후 Poem &Symptom》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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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민 / 1974년 충북 청원 출생.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시집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동화집 『할머니는 축구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