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장로들은 시장과 같이 부정한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많은 곳에서 돌아왔을 때 손을 씻고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정하게 되었다면 제사를 드려야지 손을 씻는 것으로 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이런 장로의 전통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고 지적하십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하지 않고 자기의 경험과 전통으로 가르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욱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어떤 음식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더럽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생각, 곧 죄였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1-2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두로라는 지역으로 가십니다. 그 때 한 여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귀신들린 어린 딸을 고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여자는 수로보니게 족속입니다. 수로보니게는 수리아와 페니키아의 합성어로 그녀가 수리아에 속한 페니키아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방인입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에게 던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포기하지 않고, 맞는 말씀이지만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였으니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고 말씀함으로 여자의 간청이 이루어 졌음을 말해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일차적이었지만 이방인의 구원도 무시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이런 행동은 앞에서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대조가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외적인 정결함을 지키며 장로들의 전통을 통해 선민사상에 젖어 있었던 반면에 이 여인은 이방인으로 예수님께 부정한 동물 취급을 당했지만 그 속에서 나온 말은 부정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붙드는 정결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을 두루 다니시고 다시 갈릴리 호수로 오십니다. 이방 지역이라고 여기던 곳에서도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고 돌아오십니다. 그때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행동으로 고쳐주십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 병자와 소통하시며 그에게 믿음을 불어 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치유는 이사야 35장 5-6절의 성취였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것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보시고 탄식하시는 메시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책망한 것 뒤에 고침 받은 이방 여인, 그리고 이 귀머거리의 치유 사건을 배치함으로 바리새인들의 영적인 어눌함과 귀먹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바리새인과 같은 영적인 어눌함과 귀먹음이 없는지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 듣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제대로 말씀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없을까요? 또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고 살아가는 것은 없는지 돌아 봅시다. 우리의 경험과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거나 앞서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수정하며 영적인 귀와 눈을 열어 놓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