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와 창조의 두 얼굴, 전쟁이 낳은 발명품
일상에서 자주 쓰는 기술부터
익숙한 생활용품과 음식까지.
우리 곁에서 흔히 보는 물건 중
전쟁을 통해 탄생한 발명품을 소개한다.
ⓒ alamy © 제공: 덴매거진
전투기 조종사 청력 보호 기술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이어폰에 적용되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조종사를 위해 개발됐다.
전투기 조종사나 NASA 우주인 등은 비행할 때
엄청난 소음을 견디면서 본부와 소통해야 했고,
엔진 소음을 지속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며 당시 은퇴한 조종사 10명 중 6명은
심각한 직업병인 소음성 난청을 겪었다.
이러한 이유로 1978년 미군은 보스(BOSE)사에
노이즈 캔슬링 기술 개발을 의뢰했고,
1986년 군용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첫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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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주머니로 실용성을 챙긴
카고 팬츠
양쪽 허벅지 부위에 큰
주머니가 달려 있는 통 넓은 바지,
Y2K 바람을 타고 다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 카고 팬츠는
1937년 영국군의 전투복에서 유래했다.
당시 영국 전쟁부는 지도, 붕대, 탄약,
군용 식량 등 전투 시 필요한 소지품을
넣어 다닐 수 있도록 골반과 허벅지에
주머니를 부착한 전투복을 군에 보급했다.
마침 낙하산 부대의 전투복 디자인을 고심하던
미국은 영국군의 전투복에서 주머니 개수를 늘리고
크기를 키워 군수품 소지에 용이한 바지를 만들었다.
화물, 짐이라는 의미가 있는 ‘cargo’에
바지를 의미하는 ‘pants’가 결합돼
군복 바지를 ‘카고 팬츠’라 부르기 시작했고,
전쟁이 끝난 후 군인들이 이 바지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면서 대중에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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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기술의 비약적 발전
후퇴익
오늘날 항공기 날개는
대부분 꼬리 쪽으로 젖혀져 있다.
이런 모양의 날개를 ‘후퇴익’이라 한다.
비행기가 처음 나왔을 때
날개 모양은 직사각형이었으나
제트기의 등장으로 새로운
날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직사각형 날개는 저속 비행용으로는 적합하지만
고속으로 비행하면 공기가 제대로 흐르지 못해
날개가 부러지거나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 독일 과학자 아돌프 부제만은
날개를 뒤로 젖히면 날개 앞에 부딪히는 공기의
속도가 떨어져 빠른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독일은 이를 기밀 사항으로 분류해 연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은
이 기술을 입수해 신형 항공기와 전투기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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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개발한 가정 필수품
전자레인지
필수 가전제품이 된 전자레인지는
레이더 생산을 담당하던
군수 기업에 의해 우연히 개발됐다.
연구원 퍼시 스펜서는 레이더 장비에 쓸
진공관 마그네트론을 연구하던 중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이 전부 녹은 것을 알아차렸다.
주변에 열을 발생시킬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마그네트론이 만들어내는 마이크로파에 의한
현상이라 확신한 그는 달걀 등을 이용한
실험을 거쳐 전자레인지를 발명했다.
1946년부터 상용화된 최초의 전자레인지는
‘전자레인지(Microwave Range)’ 대신
‘레이더레인지(Radarang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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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가 따로 필요 없는 만년필
볼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물자 부족으로
종이의 질이 좋지 않아 만년필의 날카로운 펜촉에
종이가 찢어지는 일이 잦았다.
헝가리 기자 라슬로 비로는 진흙이 묻은 공이
굴러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1938년
잉크가 있는 펜 끝에 볼을 달아
작은 마찰에도 잉크가 묻는 볼펜을 개발했다.
높은 고도에서도 잉크가 새지 않는 덕분에
영국 공군에 대량 공급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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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를 위한 발명품
티슈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초기
전쟁 물자 부족으로 곤혹을 치렀다.
특히 야전병원에는 붕대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필수 소비재 생산 기업 킴벌리 클라크는
면보다 5배나 흡수력이 높은 ‘셀루코튼’을 개발,
군에 납품했다.
셀루코튼은 붕대 대용은 물론
방독면 필터, 생리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전쟁 이후 엄청난 규모의
셀루코튼 재고 물량을 소비하기 위해
1924년 ‘크리넥스 티슈’를 만들어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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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을 보존하기 위한 도구
비닐 랩
주방에서 쓰는 비닐 랩은 사실
전쟁터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1933년에 만들어진 비닐 랩은 전쟁 중
총알과 화약을 습기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한 제조업체 기술자의 아내가
비닐 랩에 포장한 상추의 신선도가
시간이 지나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발견했고,
이후 1949년부터 비닐 랩은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제품으로 상용화되어
현재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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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대용 지방
마가린
1869년에 화학자 이폴리트 메주무리에가 발명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당시 전쟁을 대비하느라
버터 수급에 어려움이 생기자 보관하기 쉽고 저렴한
지방 제품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개발 초기 마가린은 생선 기름과
고래 기름으로 만들어 회색에 가까웠다.
게다가 악취가 심하고
맛도 없어 먹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후 주원료를 식물성기름으로 대체하면서
노란색을 띠게 되었고, 맛과 향도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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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신선도 오래 유지
통조림
오늘날 통조림은 병조림에서 출발했다.
1795년 영국과 한창 전쟁을 벌이던 나폴레옹은
상금을 내걸고 군에 식료품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한 식품 보존법을 공모했다.
우승자는 샹파뉴 지방의 셰프 니콜라 아페르.
그는 샴페인 병에 식재료를 담은 뒤
약간의 공간을 남겨 두고
코르크 마개를 닫은 병을 끓는 물에 가열해
밀봉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과일, 채소, 생선, 고기 등을 담은 병조림은
1803년부터 프랑스 해군의 배에 실려 시범 항해에 나섰고,
1806년부터는 프랑스 해군에게 본격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니콜라 아페르는
‘병조림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고,
1810년 병 대신 깡통을 이용한
통조림 발명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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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전을 견디게 해준
인스턴트커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이 악몽 같은
참호전을 버틸 수 있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인스턴트커피였다.
당시 사람들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는데,
전쟁터에서는 원두를 보관하거나 로스팅하기가 어려워
가루 형태의 커피를 전투식량으로 보급했다.
인스턴트커피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데다 보관이 쉬우며,
어디서나 손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군인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전쟁 중 큰 인기를 끈 인스턴트커피는
곧 대중이 즐기는 상품이 되었고,
6·25전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믹스커피의 원조가 되었다.
덴매거진 김보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