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사흘 동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복음을 듣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력이 다하지 않도록 먹이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염려에 제자들은 오병이어를 기억하지 못하고 광야에서는 떡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이 몇개 있는 지 묻고 제자들은 일곱 개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감사 기도하신 후에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떼어 주십니다. 또 생선 두어 마리도 똑같이 행하십니다. 새로운 모세로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새백성을 먹이십니다. 이것은 메시야께서 원근 각처에서 사람을 모아 은혜와 구원을 베풀고 먹이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 49장 8-12절의 성취였습니다. 바리새인은 계속해서 예수님께 표적을 구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선지자임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탄식하면서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번 수 많은 기적으로 표적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표적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표적을 주어도 믿지 않는 그들의 완악함입니다. 표적이 믿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옵니다. 이에 예수님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떠납니다. 배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라고 되어 있는데, 헤롯 당원의 대부분이 사두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빵이 없다고 수군 거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우둔한 마음을 책망하시고 오염성이 강한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위선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과 일행이 도착했을 때 소경이 나아와서 고침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서 두 번에 걸쳐서 눈이 밝아지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밝아지게 하시는 사역을 점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것은 앞에서 어두워진 제자들의 영적인 눈도 앞으로 점차적으로 밝아 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을 합니다.
이 사건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을 다닙니다. 그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하는지 묻습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하나 등 다양하게 사람들은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단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 후에 예수님은 비로소 제자들에게 당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가르쳤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주님의 말에 반대하고 막았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구원 받으려면 무조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순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생각과 삶의 양식을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참 된 선지자이자 그리스도로서 당신을 드러내시며, 구약의 성취자로 자신을 점점 더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은 점점 더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록 때때로 믿음이 약하여 지더라도 말입니다. 마침내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바른 고백을 할 수 있었고, 다른 제자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바른 고백 후에 바로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획에 불만을 가지고 막아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정치적 독립을 가져다 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계획은 베드로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 예수님은 처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에 맞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