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오도산
오도산전망대에서 바라본 합천호. 그 뒤편의 우람한 산이 황매산이고 멀리 구름 아래 보일 듯 말 듯 하늘금을 이룬 곳이 지리산 주릉이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 묘산면의 경계에 자리한 오도산吾道山은 깨달음의 산이다. 그렇다고 별천지가 나오는 신선이 살았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산을 닮은 것은 아니다. 덩치는 제법 크지만 산세는 웅장한 맛이 그리 빼어나지 않다. 유명세 또한 덕유산, 금원산, 기백산, 우두산, 가야산 등 주변의 걸출한 산들의 위세에 눌려 무실하다. 1962년 야생 한국 표범이 마지막으로 생포됐을 정도의 인적이 드문 깊은 산이다.
입산의 즐거움조차 오로지 거친 오름 끝에야 맞볼 수 있다. 산정에 오르면 주변의 뭇산들을 호령하는 광대한 조망이 트인다. 게다가 합천호가 발아래 넘실대고, 주변의 골과 골 사이로는 운해가 쉴 새 없이 넘나든다. 운해에 휩싸인 산들은 속세를 떠난, 또 다른 세상을 보여 준다.
등산로 정비가 잘 된 오도산자연휴양림은 마치 정원을 걷는 듯하다
자라가 고개를 치켜든 산
오도산의 본래 이름은 자라와 관련된 오대산鰲戴山이었다. 거창군 가조면에서 산을 올려다봤을 때 ‘자라가 고개를 치켜든 것처럼 우뚝 솟은 형상’을 본떴을 것이다. 조선조 정조 때 선비 이일협은 시문집 <이와집>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오도산자연휴양림의 소원탑을 지나며 조심스레 소원을 얹고 간다. 누군가 놓았을 첫돌 위에 돌이 하나씩 더 쌓이면서 소원탑이 됐을 것이다
수포대水爆臺는 가조 6경으로 거창 쪽에 자리한 오도산의 주 들머리다. 1833년 발간된 <거창부읍지>에 의하면 “오도산 아래 수석의 형승이 빼어난 곳이 있어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이 만나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강론하였다”고 했다. 수포대 바로 앞에는 1898년 김굉필과 평촌 최숙량 등을 기려 세운 모현정도 있다. 그리고 오도산 아래 산제동山際洞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전까지 ‘도산서원道山書院’이 있었다. 1659년(현종 즉위년)에 김굉필, 정여창, 정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던 곳으로, 3년 후 ‘도산道山’이라는 액호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은 ‘도학道學’이라 불렸다. 당시 성리학의 대가였던 김굉필과 정여창이 수포대에서 도학을 강론한 후 100여 년 후 도산서원이 세워졌고, 산 이름도 그 즈음 ‘오도산吾道山’이라 바뀌었을 것이다.
무릉도원 다름없는 오도산자연휴양림
추석 명절을 맞이해서 고향 가는 길에 가족과 함께 오도산으로 향했다. 새벽 일찍 나섰음에도 귀성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광주대구고속도로 거창IC를 빠져나와 황강을 끼고 도는 24번국도를 타고 합천호 상류에 이르러 지실골로 접어들었다. 오도산자연휴양림은 다행히 역대급 슈퍼태풍으로 알려진 ‘힌남노’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휴양림이 참 예쁘네요. 계곡물이 철철 흐르고 아기자기한 폭포가 많아서 정원을 보는 듯해요. 계곡 옆에 외따로 자리한 캠핑용 데크들이 전부 명당이라 캠퍼들에게는 무릉도원이겠네요.”
오도산과 숙성산·미녀봉 사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오도산자연휴양림은 계곡미가 아름다운 곳이다. 사방댐과 작은 인공폭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울창한 송림과 어우러진다.
등산로를 따라 솔숲쉼터라 불리는 송림에 들어선다.
오도산자연휴양림 관리소를 통과하니 왼쪽에 미녀봉 들머리가 나온다. 주변에 주차를 하고 오도산으로 향한다. 계곡의 사방댐을 두어 개 지나 오도산휴양림 맨 상단에 자리한 등산로 주차장에 당도한다. 오도산 등산로는 이곳에서 계곡의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한다. 황톳빛 도로를 따라 숲에 들어서면 수려하게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사방에서 잇달아 나타나고, 소원탑이 길옆에 세워져 있다. 조심스레 작은 소원을 하나 얹어본다. 이 돌탑 역시 누군가 놓았을 첫돌 위에 돌이 하나씩 더 쌓이고 서로의 울퉁불퉁함을 껴안으면서 소원탑이 됐을 터다.
솔숲쉼터에서 그네 타고 피톤치드 만끽
소원탑을 지나면 솔숲쉼터와 만난다. 쉼터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송림이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솔향, 피톤치드가 절로 힐링을 선사해 준다. 시원한 그늘과 아름다운 풍광은 덤이다. 휴양림 이용객들을 위한 다양한 트리 어드벤처 시설도 매력적이다. 그네와 해먹, 사각의자, 평의자, 로프웨어 등이 설치돼 있다.
소나무가 울울창창한 오도산자연휴양림 솔숲쉼터.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절로 된다.
“빼곡한 솔숲이 환상적인데요. 너무 쾌적할 뿐만 아니라 벌레나 모기도 없는 것 같아요.”
송림 한가운데 자리한 벤치에 배낭을 벗어놓고, 번갈아가며 소나무에 달린 그네를 탄다. 그네를 뒤에서 힘껏 밀자 짙푸른 녹음이 하늘 아래 펼쳐진다. 파란 하늘 조각이 수만 개의 솔잎 사이로 보인다. 소원탑을 지나며 빌었던 소원이 하늘 끝에 닿기를 희망해 본다. 단지 산길에 넘어지지 않기를 빌었을 뿐이지만.
솔숲쉼터를 벗어날 즈음 미녀봉과 오도산 갈림길이 나오고, 이내 오도재에 도착한다. 미녀봉과 오도산 경계이며, 가조면 수포대 갈림길이기도 하다. 오도산휴양림은 숙성산과 미녀봉 원점회귀 산행코스 기점으로 더 유명하다. 오도산과 연계산행도 할 수 있다.
숙성산은 도선국사가 산의 기운과 모습에 취해 7일 동안 꼬박 움직이지 않은 끝에 깨달음을 얻은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숙성산 정상은 ‘성인이 잠을 자는 단’이라는 뜻의 성수단聖睡壇으로도 불린다. 숙성산과 한 덩어리로 산을 이루며 솟은 미녀봉은 산의 모습이 영락없이 누워 있는 미녀의 모습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오도산 산간도로변에서 바라본 미녀봉과 가조면의 황금 들녘. 분지를 에워싼 금귀봉, 보해산, 비계산 너머로 남덕유산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덕유산 주능선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와따메, 허벌라게 빡시오!
오도재를 지나면서 산길은 이전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이다. 산사면을 오르는 등산로는 가파르고 좁고 투박하다. 시골의 인적 드문 뒷산을 오르는 듯하다. 잘 정비된 공원 같은 송림을 막 벗어났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자 사방에서 도토리가 후드득 떨어진다. 숲에도 등산로에도 떨어진 도토리가 한 가득이다. 숲을 이룬 나무도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대부분이다.
“산이 가파른 것은 둘째 치고 도토리 밟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요.”
“오도산 다람쥐는 평생 일할 걱정 없겠는데…, 그런데 어째 다람쥐가 한 마리도 안 보이지?”
등산로에는 도토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을 뿐만 아니라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도 지천이다. 등산로며 나무 밑동이며 숲이 파헤쳐진 곳이 수시로 나온다. 먹이를 찾거나 몸에 붙은 진딧물이나 곤충을 떼어내기 위해 몸을 비빈 흔적이다.
오도산 산정을 앞두고 길이 바짝 치켜든다. 바람 한 점 없는 한여름이었더라면 고생깨나 했을 산길이다. 비구름을 잔뜩 품은 서늘한 날씨와 시원스런 바람이 위안이 돼준다. 그래도 힘겨웠는지 아내와 딸이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오른다. 이심전심이 통했을까, 누군가 나무에 매달아 놓은 표지기의 글귀를 본 아내가 웃으면서 큰소리로 읽는다.
“와따메, 허벌라게 빡시오!”
오도산 산간도로변의 억새 너머로 합천호와 경남의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멀리 남해의 연화산과 와룡산, 금오산 등이 보일 듯하다.
숲 사면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서니 산간도로와 만난다. 도로를 따라 정상까지는 800여 m. 산간도로는 합천 묘산면 산제리에서 오도산 정상(KT중계소)까지 10km에 이른다. 차를 타면 누구나 쉽게 산정까지 오를 수 있어, 오도산은 등산인들보다 관광객들, 사진작가들에게 더 유명한 조망명산이다.
오도산 정상을 향해 난 도로는 산을 한 바퀴 휘돌아가며 북에서 남으로 멋진 전망을 선사해 준다. 미녀봉 뒤편으로 분지를 이룬 거창 가조면의 황금벌판이 보이는가 싶더니 짙푸른 합천호가 발아래 넘실댄다. 마치 하늘길을 걷는 듯 온 세상이 발아래 놓인다.
새천년해맞이행사지를 지나자 오도산전망대다. 데크에 올라서니 합천호와 미녀봉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때마침 구름이 주변의 산들을 넘나들며 흘러간다. 구름이 하늘을 잔뜩 뒤덮었음에도 산들의 행렬이 사방팔방에서 이어진다. 특히 북쪽 비계산 너머로 보이는 백두대간 덕유산 줄기가 장대하다.
거창의 박유산과 보배산 너머로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 남덕유산, 덕유산 중봉과 향적봉이 솟아 있다. 남서쪽 합천호 너머에는 황매산이 우뚝하고, 그 너머에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덕평봉, 형제봉, 명선봉, 반야봉이 솟구쳐 있다.
두무산 너머로도 수도산과 남산제일봉, 매화산, 가야산이 우람한 산세로 솟구쳐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구미의 금오산, 대구의 비슬산과 팔공산, 영남알프스의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영축산, 게다가 부산 김해의 금정산, 신어산, 무척산, 무학산까지 보일 것이다.
오도산은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뻗어내린 수도지맥(가야기맥)의 한 산이다. 수도지맥은 초점산, 국사봉, 거말산, 시코봉, 수도산, 단지봉, 두리봉에 이르고, 가야산 줄기와 갈라져 우두산,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미녀봉, 숙성산에 이른다. 오도산 10km 반경 내에만 해도 30여 개의 산들이 솟구쳐 있고, 오도산에서 보이는 이름난 산만 해도 100여 개가 넘는다. 경상남도의 산들은 거의 다 보이는 셈이다. 오도산 앞에 줄지어 선 산들을 구름이 쉴 새 없이 넘나든다. 이 얼마나 황홀한 조망인가.
산행길잡이
경남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 묘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오도산은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다. 합천호에서 피어나는 운무는 많은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을 유혹한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오도산 정상까지 쉽게 올라갈 수도 있다.
오도산은 수도지맥(가야기맥)의 한 산이다. 수도지맥은 백두대간 덕유산 직전 초점산에서 우두령을 지나 시코봉에서 가야양각지맥을 떨어트리고, 단지봉을 거쳐 두리봉에서 가야산을 떨구고,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우두산, 비계산, 두무산을 거쳐 오도산으로 솟구쳤다가 미녀봉, 숙성산을 일군다. 오도산은 주변에 두무산, 숙성산, 미녀봉과 함께 산세를 이루고 있어, 연계산행뿐 아니라 들머리, 날머리도 잘 고려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오도산의 가장 유명한 들머리는 거창군 가조면 도리에 자리한 수포대와 모현정이다. 이곳을 들머리로 삼으면 두무산과 오도산을 연계해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오도산자연휴양림 원점회귀 산행 코스가 각광 받고 있다. 자연휴양림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숙성산, 미녀봉과도 연계 등산이 가능하고, 오도산을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오도산자연휴양림에서 오도재까지는 송림이 우거진 산책코스고, 오도재에서 정상부까지는 제법 가파른 사면길이 이어진다. 정상부의 산간도로에 올라선 다음 새천년해맞이행사지와 오도산전망대를 거치면 정상이다.
교통
서울-경부고속도로-통영대전고속도로-광주대구고속도로-거창IC 또는 가조IC-20번 국도-오도산자연휴양림.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포대까지는 17km, 택시비가 2만 원쯤 되고, 오도산 자연휴양림까지는 21km, 2만5,000원쯤 나온다. 대중교통편은 거의 없다.
숙식(지역번호 055)
거창군 가조면에 대림가든(943-2435, 청국장), 채연면옥(944-6667, 육전 물냉면), 바우(0507-1332-9293, 냉면), 더우내(0507-1361-0096, 소갈비전골), 소반한정식(943-5575, 소반정식) 등이 있다. 잘 곳은 오도산자연휴양림(930-3733)을 이용하면 산행이 편하다. 야영데크 1만 원, 입장료 1,000원, 주차비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