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형 저서 '일본 다시보고 생각한다' 2편 1부 '한국과 일본의 차이']
"층층시하와 핵가족"
※ 약 40년 전 이야기이니 참작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바테 기무 (패티김)의 ' 사랑하누(는) 마리아'가 한때 일본에서 유행된 적이 있다. 1960년대 후반이었다. LP로 100만 장 이상 팔렸다. 그러나 당시 그 음반이 한국 가수의 한국 노래인 줄 아는 일본인은 거의 없었다. 넓은 음역의 허스키 보이스로 부드러운 정감을 표현하는 패티 김의 노래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지간한 일본의 가수로서는 도저히 못 미치는 독특한 평가를 받았다.
한. 일 국교정상화가 된 지 수년 후인 그 무렵만 해도 보통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그런 명가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음반을 만들어 내는 쪽도 '한국인의 한국 노래'로서가 아니라 어느 동양계 구미지역 여가수의 노래로 가장해서 팔아야 했다. 그만큼 우리 한국인의 존재는 일본에서 당당하지 못했더 것이다.
아버지가 한국인인 톱 클레스 여가수 미야코 하루미 (본명 이춘미)는 1976년 히트한 '기타노 야도 (北노 宿)'와 함께 한국계임이 밝혀지자 울며 불며 '한국인이 아님'을 호소한 적도 있다. 그 3년 전의 김대중 씨 납치사건으로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이미지가 극도로 악화댔던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78년 경 이성애 (李成愛)가 '가슴 아프게'를 부르자 일본에서는 최초로 '한국인의 한국 노래'가 당당히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일본 오사카에 유흥장이 밀집한 미나미라는 지역이 있는데 아성애의 '가슴 아프게'는 여기서 바람을 일으켰다.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다.
당시 이성애를 일본에 데뷔시킨 흥행업자 미키 (三木) 씨는 '엔카 (演歌. 일본의 대중가요)의 고향을 찾아서'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는데 이것이 일반 대중에게 먹혔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엔카하면 고가 마시오 (古賀政男. 故人)를 연상하는데 그는 일제 때 선린상고 (善隣商高)를 다녔다. 많은 일본인은 그가 한국의 '소리'와 '노랫가략'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엔카를 발전시킨 것으로 믿고 있다.
어쨌든 이성애 이후 일본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중가요가 번졌다. 최근에는 '조용필'과 '부산항'을 모르는 일본인이 드믈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에 조용필 붐이 일어났다'면 과장이다. 한국에서 청소년시절을 보낸 고가 마사오가 일본 가요계의 큰 존재이긴 하지만 우리의 대중가요와 일본의 엔가는 뿌리가 다르다. 우리 대중가요는 일제의 암흑시대에 땅을 빼앗기고, 나라를 쫓긴 유랑민의 분노와 슬픔과 허무를 달래는 노래였다. 해방과 6.25를겪으면서도 그런 감상 (感傷)은 이어져 갔다.
일본 엔카의 근원은 전혀 다르다. 일본인은 예부터 전쟁터에서의 무용담을 이야기에 가까운 가사로 엮어 샤미센 (三味線)이라는 악기에 선율을 곁들여서 노래하는 버릇이 있었다. 구로다부시 (黑田節)니 나니와부시 (浪花節)니 하는 '부시'는 원래 무사에게서 전화된 노랫가락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일본의 부시는 비장 (悲壯), 용기, 인내, 승리를 주조로 한다. 대중은 그러한 부사 (武士)를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감상에서 부시를 (節)를 읊조려 왔다. 금세기에 들어와서는 청국, 러시아, 영.미 등 강대국을 상대로 싸우면서 옛 '부시'는 엔카라는 대중가요로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의 엔카는 시대가 변해도 대중에게 전승된다.
TV프로는 하고 많은 날마다 엔카를 빼놓는 날이 거의 없으며 가수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현대음악과 엔카를 고루 부를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엔카는 층층시하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중가요는 젊은 핵가족들애게 밀려난꼴이다. TV의 쇼 프로마다 온통 몸을 있는대로 흔들고, 쉰 목소리로 절규하듯 하는 젊은 가수들만 판을 친다.
지금 우리가 유랑민의 센티멘털리즘을 노래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전승할 가치가 있다. 옛것이라 하여 마구 없애는 '핵가족 문화'는 세대마다 잇고 전승하는 감정과 정신을 단절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노래뿐이 아니다. 우리의 핵가족들은 옛 장롱을 없애고 자개장을 쓰다가 요즘에는 원목장이 유행이다. 장맛 김치맛도 전승되지 않는다. 일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오동나무장이 신부들의 필수품이며, 고장마다 전승되는 된장맛을 계속 간직하고 있다.
일본은 층층시하 사회이며 우리는 핵가족 사화다. 정치인, 경제인, 관료, 언론, 가정이 모두 그렇다. 우리 방송국에선 50이 넘으면 거세되는 핵가족이지만 일본의 방송국 재작진은 층층시하 체제다. 흘러간 옛노래는 정말 쓸모엇어졌느지, 방송국 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핵가족들은 언젠가 늙었을 때를 생각할 때 세대마다의 단절을 걱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