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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류제국은 LG 입단 협상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오해를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하루 빨리 계약을 마무리 짓고 LG 선수단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마음 뿐이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고교시절 KIA 김진우와 함께 마운드를 양분했던 류제국(29). 김진우는 KIA타이거즈 입단을 했고, 류제국은 시카고컵스와 계약하며 태평양을 건넜다. 그 후 두 선수의 야구 인생은 한 마디로 파란만장했다. 김진우는 사생활 문제로 야구판을 떠났다가 다시 복귀, 이젠 어엿한 KIA의 중심 투수로 성장했고, 류제국은 시카고컵스, 탬파베이, 샌디에이고, 클리블랜드를 오가다 2010년 4월, 텍사스 레인저스 캠프 도중 방출 당했다.
가족들과 함께 귀국한 류제국은 팔꿈치 수술과 함께 공익근무로 군 복무를 대신했고, 지난 10월 제대 후 현재 LG와 입단 협상 중이다. 그런데 LG와의 협상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류제국이 일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그 기사로 인해 류제국은 졸지에 ‘배은망덕한 선수’가 되고 말았다. 해외파특별지명으로 인해 한국으로 복귀할 경우 LG 유니폼을 입어야 했던 류제국은 수술과 재활, 훈련 등을 병행하면서 LG의 도움을 받았고, 그 또한 내년 시즌에는 LG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를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사는 류제국과 그의 가족들한테 큰 상처를 안겨줬다.
오랜만에 류제국을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2년 만에 보는 것 같다. 그동안 공익근무로 복무 중이었는데 어떤 일을 했었나.
“고양시 덕양구청에서 불법광고물과 현수막, 입간판 제거를 맡아 열심히 일했다. 불법 현수막을 떼다가 가끔 시민 분들과 부딪히는 일들도 벌어졌지만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보낸 시간들이 돌이켜보면 나한테 엄청난 자양분을 선물해준 것 같다. 내가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야구를 얼마나 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야구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막상 소집해제가 되니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의 큰 숙제를 마무리한 듯하다.”
샌디에이고 시절, 백차승과 함께 섰던 류제국.(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신했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운동하는 시간이 많았을 것 같다.
“체육관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재활 훈련에 매달렸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이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LG 구리훈련장에 나가 피칭 연습을 했다. 지금은 라이브 피칭도 마쳤고 평균 구속이 144~145km 정도 나온다. 아마 실전으로 들어가면 150km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공을 던지면서 통증을 느끼지 않고 피칭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렇다면 팔꿈치 수술한 부위는 완쾌된 것인가.
“완쾌됐다. 팔에 통증을 느끼지 않으니까 자신감 있게 던질 수 있는 것 같다. 2년 넘게 실전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부분을 제외하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LG와 연봉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양측의 이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이 일로 난 LG 팬들에게 ‘배은망덕한 놈’으로 찍히고 말았다. 내가 LG측에 (봉)중근이 형이 받은 액수(계약금 10억 원+연봉 3억5000만 원) 이상을 원했다는 기사가 나간 것이다. 야구하면서 구단과 직접 협상을 해본 게 이번이 처음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몸값과 관련해선 에이전트가 맡아 진행했기 때문에 의사 전달 과정에서 서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중근이 형의 몸값을 직접 거론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LG에 확인해 보셔도 된다. LG에선 일단 훈련하면서 협상을 계속하자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LG에서는 류제국과의 계약을 염두에 두고 수술비를 지원하고 훈련장소를 제공했을 텐데, 막상 쉽게 계약이 되지 않으면서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었겠다.
“내가 힘들 때 경제적인 도움을 준 부분에 대해선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수술비가 약 150만 원 정도 들었다. LG에서 그걸 대신 내주겠다고 했을 때 내가 부담을 느끼자, LG에서 ‘수술비가 얼마나 든다고 그러냐. 부담 느끼지 마라. 우리 지명권 선수이고 언젠가는 우리 팀에서 뛸 선수이니까 그 정도는 지원해주겠다’라고 말씀해주셨다. 훈련장 제공은 내가 부탁드렸다. 공을 던지려면 훈련장이 필요했고, 아는 곳이 없어 LG측에 도움을 요청했고, 흔쾌히 받아주셨다. 여러 가지로 고마운 부분이 많다.”
내년 시즌 마운드 복귀를 앞두고 몸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 류제국.(사진=일요신문)
-LG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일본 진출을 알아본 것인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 LG와 10월 중순에 한 번 만났고 그 후 연락이 없었다. 10월 중순에 만났을 때 가급적이면 10월 말까지 연락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다. 만약 LG에서 나랑 계약하지 않겠다고 하면 나도 대책을 강구해야 했기 때문에 10월 말까지 대답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지만 LG에선 FA 문제로 정신이 없으니까 FA 문제가 정리된 다음에 만나자고 말씀하셨다. 일본행은 미국에 있는 에이전트(엘런 네로)의 생각이다. 에이전트는 행여 LG와 계약을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대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난 에이전트에게 좀 더 지켜봐 달라고 얘기했었다. 일본행을 알아본다는 기사로 인해 비난받고 공격받았던 게 참으로 힘들었다. 무엇보다 임신 7개월인 아내의 마음 고생이 컸다. 한국에서 마음 편히 야구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사람인데 난데없는 일본행 운운으로 내 이미지가 나빠졌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미련이 남는 건 사실이지만 가족들이 고생할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잠시 생각만 했었다. 난 LG 유니폼을 입고 싶다. (서)재응이 형, (봉)중근이 형 등을 보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2001년부터 시카고컵스에서 활약했지만 메이저리그보다는 마이너리그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훨씬 많았다. 시카고에선 최희섭과 탬파베이에선 서재응과 함께 생활했는데, 지금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희섭 형한테도 고맙지만 무엇보다 재응이 형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탬파베이의 조 매든 감독은 이상하게도 선발로 나간 재응이 형이 무너지면 꼭 중간계투로 날 내보냈다. 한 번은 2007년 4월 애너하임전에 재응 형이 2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강판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때 내가 중간계투로 나가 4이닝 동안 삼진 2개를 포함해 1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재응이 형한테 쉽게 말도 못 걸었다. 이런저런 눈치도 보이고. 하지만 생활하는데 있어선 형이랑 정말 재미있게 보냈다. 재응 형의 성격이 워낙 좋아서 선수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렸다. 형이 KIA에서 연착륙하는 모습을 보고 부럽기도 했었다.”
-지금 LA다저스와 연봉 협상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류현진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종종 현진이가 전화를 걸어선 ‘형, 나 야구하기 힘들어’라고 하소연도 하고 후배들 중 유일하게 나한테 반말하는 후배가 현진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현진이가 밉지 않았다. 현진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누구보다 현진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좋은 대우를 받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배짱이 두둑한 선수라 미국 애들이랑 ‘맞장’ 떠도 절대 밀리지 않을 친구다.”
야구를 통해 숱한 절망과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가 가야 할 길은 분명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류제국의 환한 얼굴을 내년 시즌 야구장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사진=일요신문) |
류제국이 LG 유니폼을 입고 내년 시즌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 그의 야구는 이제 다시 출발선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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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럼 시간끌지 말고 얼른 계약해서 팀원으로서의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엘지에서 좋은성적 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