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자 경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오래 전 조상들은 겨울 내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먹지 못한 탓에 비타민, 무기질 공급이 제대로 안 돼 이맘때면 치아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면서 "정월 대보름에 맞춰 생밤, 호두 등을 껍질 채 깨어 이를 튼튼하게 단련시키고 씨앗에 농축된 영양분을 섭취하는 `이굳이` 풍습이 지금의 부럼 깨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스럼, 버짐으로 고생했는데 부럼엔 피부병을 예방하는 필수 지방산,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어 부럼깨기는 영양상으로도 적절한, 조상의 지혜가 담긴 세시 풍습"이라고 덧붙였다. 건강을 위한 부럼인 만큼 각 견과의 특징을 알고 자신의 체질에 맞게 적절히 먹어야 좋다.
▶밤=날밤은 완전 식품이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AㆍBㆍC 등 모든 영양이 고루 들었다. 특히 비타민 C가 풍부하다. 감기 예방, 피로 회복은 물론 피부 미용에도 좋다. 비타민 C는 열을 가하면 많이 파괴된다. 밤은 찌거나 구워 먹는 것보다 생으로 먹는 것을 권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밤 속껍질이다. 갈색에 떫은 맛이 나는 밤 속껍질엔 탄닌이 많이 함유돼 있다. 탄닌을 많이 먹을 경우 변비가 악화될 수 있다. 변비 환자라면 껍질을 완전히 까서 먹어야 한다.
▶호두=한방에서 호두는 사람의 뇌를 닮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한다. 이 말은 영양학적으로 옳다. 호두엔 필수 지방산(불포화 지방산)인 리노렌산이 많다. 리노렌산은 뇌세포를 구성하는 주요 물질이다. 두뇌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 치매를 예방하려는 장년층에게 권장하는 먹을거리다. 호두는 피부 미용에도 좋다. 꾸준히 먹으면 머리결에 윤기가 나고 피부가 매끄러워진다. 호두 기름이 화장품 재료로도 인기 있는 이유다. 예전에 어린이들이 앓았던 부스럼, 버짐을 막아 주는 효과가 있다. 지금도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는 아이에게 호두를 먹이면 도움이 된다. 리노렌산 외에 단백질, 비타민 B1ㆍB2가 많이 들었다. 이런 성분 때문에 정월 대보름 귀밝이술을 먹을 때 호두를 안주로 올릴 만하다.
▶잣=호두처럼 필수 지방산을 많이 함유했다. 필수 지방산은 몸에서 나지 않는 지방 성분이다. 반드시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돼지고기, 쇠고기 등 육류를 통해 먹는 포화 지방산보다 몸에 좋다. 호두처럼 피부 미용 등에 효과적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혈압이 높은 환자에게도 권할 만한 음식이다. 잣은 특유의 진하고 고소한 맛 때문에 한국 음식에서 깨, 대추와 함께 고명(모양과 맛을 더하기 위해 음식 위에 뿌리거나 덧놓은 양념들)으로 많이 쓰인다. 보통 호두, 잣은 너무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지만 그 맛 때문에 과다 섭취하는 이는 드물다. 질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먹어 주면 몸에 이상은 없다.
▶땅콩=단백질, 지방이 많아 몸에 좋은 견과류다. 특히 속껍질에 파이토 케미칼이란 성분이 미량 들어 있다. 생리 작용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먹을 땐 속껍질도 함께 먹는 것이 몸에 이롭다. 땅콩은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영양에는 큰 변화가 없다. 대신 땅콩을 볶아 먹을 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볶은 땅콩을 오래 두면 과산화 지질이 생긴다. 오래된 땅콩에서 나는 느끼한 맛, 냄새가 바로 과산화 지질 때문이다. 몸에 해로운 성분으로 암 등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땅콩은 오래 둘 경우 곰팡이 독이 생길 수 있다. 땅콩의 곰팡이 독은 맹독성인 만큼 주의해야 한다. 볶고 오랜 시간이 지난 땅콩은 절대 먹어선 안 된다.
현재 미국, 유럽 등에선 임신부에게 땅콩을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태내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태아에게 땅콩 성분이 잘못 들어갈 경우 유아기 아토피성 피부염, 아동기 비염, 성인기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 산모라면 땅콩을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이유다.
▶은행=먹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부럼이다. 적정량의 은행은 고혈압, 뇌혈관 질환 등에 좋다. 전문가들은 성인이면 하루 7개 이상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지적한다. 은행에 아미그다린 성분이 미량으로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아미그다린은 청산 배당체로 맹독성분인 청산으로 변하는 물질이다. 많이 먹을 경우 복통, 구토 등 식중독 증상이 나타난다. 심할 경우 혼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구워 먹으면 독성이 약해지지만 정해진 양을 지켜 먹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