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레스타니(Pierre Restany)를 축으로 결성된 누보레알리즘 그룹의 중심 작가 클렝은 1958년 6월 5일, 친구의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인체를 이용한 모노크롬 회화를 시도하였다. 온 몸에 파란 물감을 바른 모델들을 커다란 종이 위에서 뒹굴게 하여 그 흔적을 그대로 남기는 이 작업은 1960년 3월 9일 파리의 국제현대미술화랑(Galeri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에서 관객들을 초청한 공개적인 퍼포먼스로 이루어졌다. 클렝의 지시에 따라 진행된 이 <인체측정(Anthropometries)> 퍼포먼스에서 클렝 자신이 작곡한 20분 짜리
<단선율 교향곡(Symphonie Monotone)>이 반복 연주되기도 하였다. 클렝의 <인체측정> 작업들은 관객과 더불은 행위의 과정에 주목한 점에서 퍼포먼스로 기록되며 또한 그것을
회화 형식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액션페인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편, 사람의 몸을
살아있는 붓으로 인식하여 생체의 에너지를 화폭 위에 그대로 담아낸 <인체측정> 작업은 우주의 에너지를 작업 요소로 끌어들인 <우주발생학(Cosmogonies)> 그림 -비와 바람,
불과 물의 작용에 노출시켜 만든 그림들- 과 같은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작가가 사망하기 1년 전에 제작한 이 그림은 젊은 시절 그가 열중하였던 유도시합을 화폭
위에서 벌인 것처럼 행위의 격렬함과 생동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일본에서 유단자 자격까지 따고 귀국하여 한동안 유도 교습을 했던 클렝은 유도의 대안으로 미술을 시작했으며, 종종 이와 같은 행위 작업을 통해 그 둘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클렝이 활동한 기간은 10년 안팎에 불과하지만 확장성이 강한 그의 예술은 미니멀아트와 행위예술, 70년대의 개념미술, 혹은 그 이후의 미술에서도 영향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