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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기위해서 공금녀 일행과 함께 식당을 찾아나섰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서, 큰길까지 가는 길이... 어둠속에 묻혔다.
가로등 하나없이... 큰 건물의 복도에서 켜져있는 전등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전부다.
캄보디아... 사정은 알지만, 차라리 프놈펜보다는 씨엠립 형편이 더 낫다.
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큰길로 나왔다.
4차선의 넓다란 도로였지만... 어둡긴 마찬가지다.
지나다니는 차량도 적다기보다는 거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게다가 가로등도 없다보니 도시 전체가 어둡다. 그러다보니 여행자로 찾아든 나도 어둠에 가라앉는다.
모퉁이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받았지만, 캄보디아어로 작성된 메뉴판은 도움이 안된다.
다행히 주문을 받는 직원이 영어를 한다. 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이름도 알수없는 요리를 단지 rice라는 설명만 듣고 주문했다.
공금녀 일행은 100배가이드북을 뒤져가며, 뭔가를 한참 떠들더니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는 캄보디아식 생맥주를 핏처로 주문했다.
공금녀 일행이 주문한 요리는 캄보디아식 쑤끼라고 해야할까? 난 아직도 그 요리 이름을 모른다.
우리나라 뚝배기같은 질그릇에 양념된 국물을 끓이고, 그 안에 제공된 다양한 음식을 익혀먹는 요리다.
그런데... 난 사실 태국의 쑤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남들은 다들 태국의 쑤끼에 열광하는데... 아무래도 난 식성이 좀 별난 것 같다.
내가 주문한 요리는 밥과 함께 국이 제공된 요리인데... 국에는 돼지고기와 야채 그리고 당면이 들어있다.
음... 당면이 아닐수도 있겠다... ㅡㅡ;; 생긴건 당면같이 생겼는데... 쌀국수일까???
어쨌든 저녁식사를 끝마치고, 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고, 공금녀 일행은 마켓을 찾아본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프놈펜의 물가가 베트남보다 더 비싼 것 같다.
내가 먹은 저녁식사비용이 3$이였다. 베트남에서 라면, 1$정도일것 같은 음식인데...
그러고 보니 먹는비용은 중국이 제일 저렴한 것 같다. 베트남은 교통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나린1 게스트하우스는 3층으로, 1F은 리셉션과 사무실, 주방과 게스트룸이 자리하고, 2F과 3F이 객실이다.
2F에는 넓다란 테라스가 있어서, 식당겸 Bar로 이용한고 있다.
내 방은 3F이다 3F에도 작지만 테라스가 있고, 길다란 쇼파가 놓여있다.
난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는 피곤함과 귀차니즘에 편승하여, 자리를 잡았지만...
솔직히 좀 심한 방이다. ㅡㅡ;; 너무 좁아서 숨이 턱턱 막힌다. 게다가 여기는 호치민보다 더 덥다.
난 방으로 들어서 선풍기와 환풍기까지 모두 돌렸다.
이 작은방에 환풍기를 달아 놓은건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선풍기를 틀고, 환풍기를 돌리자, 좁은 방안에 가득차있던 후덥지근한 열기가 빠져나간다.
그래도 그곳에 누워서 견디고 있기는 싫었다. 카메라와 일기장을 들고, 테라스의 쇼파로 나갔다.
사진을 보면서, 밀려있던 여행기록을 작성하는데... 옆 쇼파에 앉아있던 여행자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호치민'에서 넘어왔다고 하자. 이 친구는 '씨엠립'을 여행하고, 이제 베트남으로 넘어간단다.
프놈펜은 결국 경유도시인건가...ㅡㅡ;;
독일인인 이 친구는 방콕에서 부터 여행을 시작했단다. 그러면서 베트남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그 친구에게 내 카메라에 찍힌 베트남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어디가 좋았냐고 추천해달란다.
난 '나트랑'과 '훼' 그리고 '하롱베이'와 '싸파'를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모기가 장난이 아니다. 앉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물어뜯어댄다...
베트남을 여행하면서도 단 한번도 모기에 물려본 적이 없었는데...
캄보디아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게 모기라니...ㅡㅡ;;
모기와 정신없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마켓을 찾아 나섰던, 공금녀 일행이 돌아왔다.
사내녁석이 그렇지않아도 모기가 있을 것 같아서 모기향을 사왔단다. 고마운넘...ㅡㅡ
모기향을 피우고나니 한결 나아졌다. 공금녀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고...
사내녀석과 담배를 한대 피웠다. 이녀석 베트남에서 비용을 얼마나 지출했냐고 묻는다.
난 중국에서 넘어올때 중국 위안화를 베트남 동으로 한전한 것과 하노이에서 100$을 환전했었다.
16만원 정도를 쓴것 같다고 하자. 이녀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자기들은 60만원씩 120만원을 지출했단다.
'나트랑'에서 한국여행자들을 만나서 같이 단란주점가고, 노래방다니고 하면서 지출이 커졌단다.
난 그냥... 잘먹고, 잘놀자가 여행모토였으니... 재미있었으면 됐지...하고 말았다.
이들은 베트남에서 출국수속중에 여권 겉표지가 떨어져 나갔다.
나도 우리나라 여권 겉표지가 잘 떨어진다는 얘기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이 친구들은 이 문제때문에 내일 대사관에 들렸다, 숙소를 옮기겠단다.
난 내일 이용할 교통편을 수배하기 위해 1F으로 내려갔다.
아까 버스에서 내릴때 이야기를 했던, '존'이라는 툭툭기사를 찾았다.
툭툭은 하루에 10$, 오토바이는 7$이다. 아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이 친구와 얘길 했었다.
난 혼자니까, 니가 한사람을 더 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 구하긴 했는데 그쪽은 두명이란다. ㅡㅡ;;
그러면서 다른 오토바이 기사를 소개해준다. '데이빗'이라는 자기와 비슷한 분위기의 친구를 소개해준다.
내일 아침 9시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이친구들과 담배를 한대 피우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여기 게스트하우스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이 아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이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만을 제공해주고,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한다.
그 식사와 잠자리라는 것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테라스 한쪽귀퉁이에 모기장을 치고 잔다.
이들은 단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여행자들의 투어기사로 나서 그 수입으로 살아간다.
그나마 그것도 오토바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존과 데이빗도 마찬가지다.
존은 꼼뽕짬 출신이고, 데이빗은 끄라체에서 왔다고 한다.
난 그들에게 굉장히 안좋은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친구들 역시 그걸 알고있다. 두친구다 대학을 다니다 휴학을 하고, 이 일을 하는 중이다.
이 친구들의 말을 빌자면,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고, 부자들은 가난한자의 노동력을 착취한단다.
게다가 정부의 부정부패는 상상을 초월하고, 정부에서도 부자들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할수 없는 상황이라고한다.
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캄보디아의 희망을 봤다.
젊은이들이 자각하고, 잘못된 기존의 방식을 타파해 나가려 한다면, 언젠가는 고쳐지리라...
아침에 기분좋게 눈을 떳다.
좁은방 분위기에 더워서 잠도 제대로 못 이룰것 같았지만, 예상외로 편안하고, 안락하게 자고 일어났다.
전혀 더운줄도 모르고 시원하게 잠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2F 테라스로 내려가 아침을 주문했다.
커피와 참치샌드위치. 참치샌드위치는 커다란 바게트빵에 참치가 듬뿍 들어있어서 정말 맛있다.
커피는 베트남 커피에 익숙해진 나에게 그렇게 크게 어필하진 않았지만, 아낌없이 듬뿍주는 진한 커피라 좋다.
아침을 먹는 동안, 데이빗이 올라왔다. 그리고 오늘 일정을 대충 얘기하기 시작한다.
첫번째로 시 외곽의 킬링필드를 방문하고, 시내에 있는 뚜얼슬랭과 왓아룬, 왕궁등을 돌아보자고 한다.
그러자고 하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래도 낮이 되니까 도로에 오토바이나 차량의 통행이 늘어났다.
킬링필드는 오토바이로 30분가량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비포장길로 들어서고 부터는 심하게 흔들린다.
데이빗 역시, 걱정이 되는지 오토바이를 몰면서 수시로 손을 뻗어 내가 뒤에 앉아있는지 확인을 한다.
'Are u O.K ?'하면서...
하지만, 난 그 자식이 핸들에서 손을 놓을때마다 더 위기감을 느꼈다는거...ㅡㅡ;;
킬링필드에 들어서 나는 위령탑에서 묵념을 하고 나왔다.
이곳에 서서 무슨 말을 할까...? 죽은자들에 대한 묵념밖에는 할게 없었다.
내가 생각보다 일찍 나오자, 데이빗은 무슨 문제가 있나하는 눈치다.
난 데이빗에게 너희는 참 슬픈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주고, 말없이 오토바이에 올랐다.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서 난 다시한번 오토바이에서 떨어질듯 말듯한 묘기를 연출했다.
하늘로 심하게 튀어 오를때 마다, 데이빗은 손을 뒤로 뻗어 아직까지 메달려 있는 나를 확인하고...
난 그때마다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있는 그 녀석때문에 공포에의한 패닉상태가 되어버린다. ㅡㅡ;;
다음에 도착한 곳은 '뚜얼스랭'박물관... 이곳을 박물관, 내지 기념관이라고 해야할까??
폴포트 정권이 들어서기전에는 고등학교 건물이였던 곳을 개조하여 수용소 및 만행과 학살의 현장으로 이용한 곳이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 건가를 생각했다.
아니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수 있는 걸까?? 난 이곳에서 나 역시 인간이라는게 참 부끄러웠다.
만행을 저지른 주체는 '폴 포트'일지라도...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게끔 그에게 힘을 준 자들은 누굴까?
베트남전이 끝나고, 캄보디아가 내전에 휩싸였을때... 당시 국왕인 '시아누크'가 좀더 책임있는 지도자였다면..
시아누크 국왕은 정말 무책임하게 '폴 포트'를 인정하고, 자신은 국외로 피해버린다. 그가 피한 곳이 북한이라는...ㅡㅡ;;
물론 당시 내전이 장기화되어짐에 신속한 내전의 종식을 위하여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백성을 사랑해야하는 군주의 도리는 분명 아니였다. 무책임한 놈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이 시아누크 국왕도 역시 폴 포트 처럼 잔인하지는 않지만, 그놈 못지않게 나쁜놈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전이 없었더라면, 킬링필드라는 비극이 일어났을까??
아니, 더 뒤로가서 그 욕심많은 돼지새끼 같은 프랑스 놈들이 인도차이나에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그렇게까지 뒤로 가지 않더라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에라도 프랑스놈들이 양심을 찾았으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여러분은 아시는가?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지배하던 이 인도차이나 반도는 일본군에게 모두 점령당한다.
프랑스놈들은 독일군에게 아주 박살이 나서, 자기네 본토도 몽땅 털린 마당에
식민지에까지 지원군을 보내는 건 고사하고,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을 쓸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점령한 일본군 역시 멍청한건지, 통이 큰건지...
당시 캄보디아를 통치하던 프랑스 총독에게 그냥 계속 캄보디아 통치를 맡겨둔다.
그때 일본군은 어서빨리 인도까지 점령하기 위해 버마전선으로 병력을 보내야 할때였다.
그런데 문제는 2차대전이 끝난뒤에 발생한다.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캄보디아였지만,
통치는 여전히 프랑스인 총독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프랑스인들의 뻔뻔스러움과 수치심없는 욕심을 보게 되는데...
자기네 본토까지 잃었다가, 연합군에 의해서 겨우 되찾은 주제에 캄보디아는 자기꺼라고 챙기고 나온것이다.
이 얼마나 돼지같은 놈인가 !!!!!
아... 난 역시 인종차별주의자...ㅡㅡ;;
(여행기간 : 2006년10월17일 ~ 12월09일)
킬링필드의 위령탑
위령탑 내부에는 이곳에서 발굴 된 유골이 모셔져있다.
두개골에 나있는 상흔들이 그들의 죽음을 말해준다.
'뚜얼슬랭' 벽에 걸려있는 희생자들의 사진...
저 여인은 당시 캄보디아 관리의 부인이였다고 한다.
당시 '폴 포트'정권은 안경만 쓰고 있어도 지식인이라고 처형시켰다는...
그래서일까... 캄보디아인들중 안경낀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
'뚜얼슬랭'의 교실을 개조하여 만들어 놓은 수용소...
정말 딱 한사람이 누울 공간밖에 되지 않는다...
아니 나는 발도 못뻗겠다.
이곳을 돌아보다... 난 지금 내가 묵고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방이 생각났다.
그방을 보고, 숨이 턱턱 막힌다고, 고개를 흔들던 난...
아직도 팔자좋은 여행자이구나...
그런데 게스트하우스 사장넘이 혹시, 예전에 폴포트정권하에서
한자리 하던 놈은 아닐까???? 방만드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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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울한 느낌의 프놈펜이죠.
설 지나고 상해가신다는데... 중국인들은 설연휴가 한달 가량씩 되기도하는데.. 잘 다녀오십시요 ^^
어라! 저두 설날에 상해에 가요!!! 연오랑님 세오녀님 잘하면 만나뵐지도????
20일 출발, 27일 도착입니다. 상해 번개 한번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