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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기 재건 모임을 앞두고 보고 싶은 얼굴들에 가슴이 설렌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나 PC를 뒤져 찾아 낸게
아직도 감회가 새롭고 생각만 하면 금방 행복해지는
1999년 나의 국민학교(율곡면 갑산리 계산국민학교) 동기모임 後記다
서울 모임 안 나오고 후회할 친구들을 위해 그 전문을 공개해 본다.
모임후 일일이 모든 친구들에게 전해 졌고 참석못한 친구들은 평생의 한이 된다고도 했고
여기에 등장하는 은사님은 국어과 선생님을 통해 수업자료로 활용 했다고 한다.
이 편지를 재 접하는 계산초등학교 출신의 양해를 구하며,
호사다마라 했던가
좋은일에는 시샘하는 무리가 있는것이 조화롭다는 의미 이겠지.
잊어버린 한마리의 양을찾는 어미의 마음같이 인순이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 전화부를 다 뒤졌다는 갑숙아 그 마음을 우린 다 고마워 했다. 여유로운 마음만큼이나 멋있게 성숙된 모습이 좋더라.
영원한 오빠
종희야, 어렵게 경찰을 통해 수배해서 통보했지만 실제 나타나리라고 상상 못했다. 사람의 정이 저런거구나 싶더라. 선망의 대상이면서 손닿지 않는 곳에 모셔져 있는 분같은 교장선생님 따님이 우리 친구라는게 그 옛날은 참 자랑 스러웠고 실감이 안났지. 막상 연락처를 통보 받고 너네 올캐를 통해 확인하고도 막상 전화하면 기억해줄까 말은 어떻게 연결해야 하나 고민 했는데 비온뒤 햇살같이 해맑게 편하게 맞아 주더구나.임박해서 연락 했지만 만사 제꺼두고 서둘러 만나준 정성 너무 고마웠고 대구에 있다고 했지.교장 선생님 께서도 아직 정정 하시다니 반가운 소식 이었고 다만 사모님께서 일찍 소천 하셨다니 위로가 늦었구나. 우리모두 너의 동창 되었음을 자랑 스럽게 생각 한다. 은사님과 이름바뀐 모교를 모델로 즉석에서 찍은 사진은 1장만 현상되는 폴라로이드라 만족 스럽지는 안더라도 두 세장 씩은 다 가져 갔지. 서로 갖겠다고 아웅 다웅 하는게 보기 좋더라.2차 모임 장소 합천식당도 30년 만남의 제격이었지. 비오는 외부와 격리된체 밖은 황강이 흐르고 고향을 만끽하며 볼수 있는 우리들만의 그 장소는 용점(옛날 이름은 현식)이 처의 작품이었다. 이번모임의 중심에는 기획부터 후렴까지 용점이 내외의 정성이 지극 했음을 밝히며 우리 모두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자.고향 노부모님 곁에만 있는것도 큰 효도 일텐데 고향지키며 오손도손 사는모습 부럽더라. 평생동행지기 아낙의 넉넉한 마음씀씀이도 아름답고. 다음부터 고향가면 편안한 마음으로 전화 할께. 처나 자식들에게 자랑 하면서.영순아,순덕아, 감정이 벅차서 참을 수가 없었지. 너네 몸살했지. 그바람에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니. 아마 그기 맨 밑층 아니었음 바닥 탈 났을거다 그지. 고맙다. 영순이 넌 낭군님과의 귀한 여행도 취소하고 달려 왔는데 정말 잘 온것 같다고 했지. 대구 있다고 했니? 대구 너네들 모임의 여흥은 네가 맡아라.순덕아 욕심 같지만 여자동창 한사람쯤은 고향에 있을텐데 했는데 고향의 인심과 맛을 동시에 안겨 주더구나. 몹쓸 끝나고 누가 신발을 훔쳐 혼났지. 요행히 찾긴 했지만 강아지가 보내기 아쉬움에 그랬나 모르겠다. 희영아 넌 프로더라. 돈받고 분위기 띄우는 영업해도 충분하겠더라. 때뭇지 않은 순수함과 애교는 사람의 간장을 녹이더구만. 보고 싶으면 전화하는 자유로움과 낭만도 좋고. 대구 모임 잘 추려서 멋있는 만남의 무대를 이어 간다니 고맙다.인걸아 정임아, 너3流?스캔들나는가 했다. 알고보니 형,언니의 못다한 인연을 애석해한 못이룬 못맺은 사돈간 정겨움이었더구나. 넓디넓은 포근함으로 감싸준 정임아, 범상하지 않은 여걸임을 알아챘지.서울에 있는줄도 모르고 따로따로 행차 했지 다음부터 봉순이랑 함께 같은 열차 옆좌석에 앉아 회포한번 풀날 기다려 보자.많은 사람 만나느라 항상 바쁘다는 우리의 영원한 큰누나 분자야 정말 포근함이 더해진 너의 가슴이 넓어 뵈더라. 여유롭고 늠늠한 모습도 보기 좋고.진읍의 명가수 도영씨 변함없이 넌 잘 놀고 주위를 즐겁게 해주대. 너 노래 음질은 옛날 그대로 젊은 오빠들의 마음을 한결 젊게 만들더라. 예쁜 모습이 너무 행복스러워 너네 신랑 좋겠더라.
역수야 모든 친구들의 즐거움을 챙기며 어루 만지는 마음이 꼭 큰언니 같은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푸근함을 더해주대. 아득한 기억속에 행복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꼈는데 역시 행복스런 자태가 보기 좋더라. 윤식아 덩치답지 않게 너 순진하더라.아직 눈물이 남아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너의 순수를 실감하며 마음여린 이쁜 시인같은 동창 있음을 가족들한테 자랑 했다. 이번 주소록 만드는데도 자청해서 하겠다고 해서 너무 고맙고 진한 우정을 느꼈다. 일일이 주소 확인하고 인쇄해서 코팅까지 했는데
윤자야 대구오는 희영이차에서 합승했지. 아득한 시간의 매듭중 선생님의 오해로 매맞았던 껌 이야기 듣고 나도 기억을 해 냈지. 망설이다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너무 미안해 하시며 전해 주니 고맙다고 하시면서 바로 사과 하시 겠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이런 무심결에 저질러진 매듭을 풀수있는 이런 만남이 너무 좋다고 선생님께서 다른동창들의 아야기도 귀담아 듣고 싶어 하시는 눈치더라. 사실 동창회나 사은회의 제일큰 목적하나가 이런것인데 진작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미안하다. 그러나 스승님의 진심은 자기제자를 올바르게 가르치겠다는 신념이 계셨고 그 와중에 예기치 못한 착오가 계셨던거라고 그리고 존경 한다고 네입으로 말할때 성숙한 어른을 느낄수 있었다.대구서 남편 사업 도우며 행복하게 산다고 소문 들었다. 종우야 넌 아직도 막내로 젊음 그대로 더라. 너 혼자 오빠로 남을래. 많은 친구 태워주어서 고맙다.
존경하옵는 정선생님 저희들 모임있고 바로 교장 선생님 승진 하셨지요. 그때 귀뜸이라도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전야제 케익이라도 준비 했을텐데. 여쭙고 싶었지만 궁금 했거던요. 저희 문하생 일동 축하를 드리며 사모님과 더불어 내내 행복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우주 한귀퉁이에 저희들의 자리도 만드셔서 좋은일 궂은일 있어면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요. 저희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미련함도 책해 주시고요.
영원한 젊음과 기품을 간직하신 진정한 사부로서 스승님 제자됨을 항상 자랑 스럽게 여기면서 그 옛날 호롱불 공부하던 신화를 자식들에게 들려주며 사회에 득이되는 사람이 되도록 하라는 선생님 훈시대로 반듯한 생을 살기위해 저희들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전해 드립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한국교단에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그간 연락드리지 못한 불민함도 다시한번 사죄 드리며 이제 철 들었음을 아룁니다.
그리고 동무들아 희소식 하나 전한다.우리 5학년때 담임으로 모두에게 각별한 애정과 공부방법을 지도해주신 은사님으로 총각 선생님 이셨던
넋두리가 길었지 첫모임에 참석못한 동무들 약올릴려고 그랬는데 나름대로 피치못할 사연이 있었을줄알고 다음 부산 모임을 기약하자. 첫모임에 함께 못한 친구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우리들은 언제나 소중한 같은 스승, 한 모교가 빚은 배움의 쌍둥이들임을 잊지말자. 내년 부산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1999년 9월 서울에서 너네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