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임광묵입니다.
형산 정경연 교수님이 계시는 사단법인 정통풍수지리학회의 간산예정이 있어서 글을 퍼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5월 14일 우당 신광주선생님께서 서천답사 일정이 있을때 답사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고 배울점이 많은 답사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답사기 32~35까지를 참고로 하시면 보탬이 되시리라 생각되고요
우리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 합니다.
제124차(2006년 9월 3일) 풍수답사(충남 서천) 안내
우리 학회 정기 답사는 매월 첫째 주(지방)와 셋째 주(수도권) 일요일 2회씩 실시해왔습니다. 그동안은 혹서기와 혹한기를 가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의 빠지지 않고 답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혹서기(酷暑期)는 피하자는 의견이 많아 7월 두 번째 답사와 8월 답사는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제124차 답사는 9월 첫째 주에 실시하며 장소는 충남 서천 지방으로 정했습니다.
서천은 금북정맥이 보령 성태산(624m)에서 월하산(423m), 월명산(544m), 옥녀봉(368m)으로 남하하여 금강을 만나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멈춘 정맥 끝자락에 있는 고장입니다. 산맥과 강 끝이 모두 바다와 어우러져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옛날부터 천혜의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사가 처음 당도한 곳은 지금의 장항(기벌포)이었습니다. 최무선이 처음 화약을 개발해 진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곳이기도 합니다.
또 서천하면 한산모시와 소곡주를 떠올리지만, 고려삼은의 한 분인 목은 이색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고려와 조선조에 명문가로 이름 날렸던 한산이씨(韓山李氏)들의 관향입니다. 그만큼 학문이 높은 지역인데 이는 풍수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도선국사 유산록을 비롯한 비결록(秘訣錄)에는 서천 지방에 유명한 혈들이 많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종천면과 판교면 사이 월명산 남쪽에는 동방제일지지인 복종형(伏鐘形)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주인을 못 만났다하니 많은 풍수 호사가들이 이를 찾고 있습니다.
이번 답사는 토정 이지함 선생을 낳은 한산이씨들의 뿌리를 이해하고, 서천지방의 산세와 인물을 살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우리 학회 답사는 누구든 참여할 수 있으며 특히 초보자들을 대환영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1. 일시 : 2006년 9월 3일 (일요일)
2. 집결지 및 시간
■ 서울 강남 : 양재동 서초구청 정문 건너편 (오전 08시)
☞ 지하철3호선 양재역 하차, 1번 출구(서초구청 정문 건너편)로 나오면 약 80m 전방에 〈수협은행〉과 〈GS25〉가 있습니다. 그 앞에 그린랜드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 일요일은 서초구청과 외교안보센타 사이 주차장은 무료이용 가능하나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못하므로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 경기․수원 :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신갈정류장 (오전 08시 20분)
■ 충청․호남 :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 (오전 10시 30분)
■ 기타 : 다른 곳에서 합류하실 분은 김승원 총무(011-229-7540), 또는 gudtks@korea.com으로 미리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3. 답사지(사정에 의해 순서와 장소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1) 금계포란 명당 한산이씨(韓山李氏) 시조 이윤경(李允卿) 묘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 자락 옛날 관아자리에 있다. 한산의 토착세력이었던 한산이씨들은 5대를 이어 호장(戶長)직을 세습하였다. 언제부터 일족이 한산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호장이 향리의 풍속을 바라 잡는 직위이므로 한산이씨의 선계가 한산에서 크게 세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산이씨 시조 이윤경 묘에 대한 유명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한산 고을 관아에서 이윤경의 후손 하나가 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동헌 현감이 앉는 마루에 갈아둔 널빤지가 해마다 썩어가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연중행사처럼 여겨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은 안개 같은 기운이 마루 틈사이로 스며 올랐다. 땅속에 생기가 흘러넘쳐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안 그는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계란을 파묻어 두었다. 몇 달이 지난 후에 꺼내보니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명당임이 분명하므로 그는 밤 몰래 시조를 이장하여 매장하고 평분으로 만들었다.
그 후로 한산이씨 집안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번창하게 되었다. 1세(允卿, 호장)→2세(仁幹)→3세(孝進, 비서랑)→4세(昌世, 판도판서)→5세(自成, 찬성)→6세(ꜘ)→7세(穡, 목은)→8세(種德, 種學, 種善)로 이어진다. 특히 대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과 목은(牧隱) 이색(李穡) 부자 대에 와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조선 5백년을 통해 한산이씨들은 재상 4명(중종 이유청, 선조 이산해, 영조 이사관, 고종 이경재), 대제학 3명, 청백리 6명, 공신 12명, 문과급제 198명을 냈다. 세조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李塏), 화담 서경덕의 문하인 토정 이지함, 한말 독립운동가인 월남 이상재 선생도 한산이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유골을 관아 대청마루 밑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실전(失傳)되었다가 24세손 이승호가 고종15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시찰을 하였다. 마침 관아가 퇴락하여 이곳을 수리할 때 묘 밑에 묻어 두었던 지석을 발견하였다. 전설적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시조 묘임을 안 그는 관아 자리를 지금의 면사무소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봉분을 크게 만들어 표석을 세웠다. 이곳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알려져 있으며 묘 앞에 3개의 알봉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2)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 묘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기린봉 가지언덕에 위치하며 무학대사 소점지로 알려지고 있다. 무학은 고려유신들을 적대한 것을 뉘우치고자 그들의 묘 자리를 잡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남양홍씨 발복지인 양주군 홍지 선생 묘와 원주원씨 발복지 원주시 원천석 선생 묘가 그 예다.
목은 이색은 이제현에게 배웠고 고려 충숙왕 7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학문이 높아 포은 정몽주, 야은 길제와 함께 고려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성계 등 당시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자 권력에 밀려났다. 그 와중에 그의 장남 종덕(種德)은 복사(伏死) 당하고, 차남 종학(種學)은 교살 당하였다. 조선 개국 후 이성계는 민심수습을 위해 목은을 한산백(韓山伯)에 봉하는 등 여러 번 새 정부에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목은은 끝내 거절하고 야인으로 일생을 마친다. 얼마 후 역적으로 몰려 죽었던 그의 아들들도 신원이 복원되었다.
목은은 절개와 고매한 인격뿐만 아니라 시(詩)로도 유명하다. 일찍이 “우리나라 문장은 최치원이 근원이며, 이규보가 다듬어 윤을 내고, 이제현이 절도에 맞도록 잘 고르고, 이색이 집대성하여 후세에 떨치게 하였다”고 평하고 있다.
목은의 손자(종선의 아들) 이계린(李季疄)은 세조 때 좌익공신이 되어 좌찬성에 올랐다. 그의 동생 이계전(李季甸)은 세조 때 정난좌익공신이 되어 영중추부사에 이르렀고 한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이계전의 아들 이우(李堣)는 대사성(大司成), 이파(李坡)는 의정부좌찬성, 이봉(李封)은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또한 종덕의 아들 이맹균(李孟畇)은 우찬성, 종학의 아들 이숙무(李叔畝)는 지돈녕부사를 지냈다.
3) 문헌서원(文獻書院)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에 있다. 이 서원은 고려말의 대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과 목은(牧隱) 이색(李穡) 두 분을 배향하기 위하여 조선 선조27년(1594)에 건립한 것이다. 이곡은 고려 후기의 학자로 이색의 아버지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이색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원·명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문헌서원은 선조 27년(1594)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광해군 2년(1610)에 한산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다. 이듬해에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고 인재 이종학·음애 이자·배옥헌 이개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고종 8년(1871)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에도 처음 문헌서원이 있던 곳에 단(壇)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짓고 문양공 이종덕 한 분을 더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4) 이하복(李夏馥) 가옥
충남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에 있다. 이 가옥은 전형적인 농가로 이색의 18세손이며 중추원 의관을 지낸 이병식이 조선말에 안채 3칸을 건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아들인 이형규가 사랑채와 아래채, 위채를 증축하면서 전체적인 모습이 형성 되었다.
진산이 오른쪽으로 휘감아서 우백호(右白虎)를 이루고 또 다른 산줄기 왼쪽에서 휘어 돌아들어 좌청룡(左靑龍)을 형성(形成)한다. 이집은 국(局)이 열리는 수구(水口)를 향하여 배치되었는데 수구가 트인 곳에는 나무를 가로로 심어 국(局)안의 영역감(領域感)을 강화시킨다.
명당지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은 초가로, 19세기 후반에 안채를 짓고 20세기 초에 사랑채·아래채·광채를 지으면서 안채를 늘려 지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그 앞쪽으로 一자형의 사랑채, 안채의 왼쪽에 광채가 있어 튼 ㅁ자형 배치를 하였다. 또한 사랑채의 오른쪽에는 2칸 정도 떨어져서 一자형의 아래채가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원래 부엌과 방 2개로 구성된 3칸 집이었으나, 후대에 왼쪽의 부엌을 늘리고 오른쪽으로 대청과 방·부엌 겸 헛간으로 사용하는 헛청을 덧달았다. 사랑채는 왼쪽에 대문을 내고, 부엌과 사랑방으로 구성되었다. 아래채는 며느리가 거처하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부엌과 방 2개, 광으로 구성되어 살림을 따로 하게 되어있다.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농가로, 전통기법에 따라 안채의 앞쪽지붕이 뒷 쪽보다 길게 처리된 것이 흥미롭고 며느리의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준 점이 특이하다.
안채
서천 이하복 가옥은 몸채 공간과 아래채 공간으로 나뉘는데 2개의 나란한 축으로 놓였다. 몸채는 앞쪽에 사랑채를 가로로 놓고 뒷쪽에 안채를 놓았다. 안채는 원래 3칸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지만, 20세기초에 사랑채를 지으면서 안채를 덧단 것으로 보인다. 지금 있는 안채는 6칸 크기에 ㄱ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왼쪽 끝에 부엌을 두고 안방·윗방·대청·아랫방 순으로 배치하였고 안방과 윗방, 아랫방에는 툇마루를 달았다. 안채 지붕은 초가지붕이며, 앞쪽 지붕 길이가 뒷면보다 길게 나와 흥미롭다.
5)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 생가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 263-4에 위치한다. 이상재(1850~1927)은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로써 1927년 타계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장(社會葬)을 치루어진 인물이다. 그는 종교가·정치가로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앙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고종 25년(1888) 전권대신 박정양을 수행하여 주미공사 서기로 부임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 신문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광무 2년(1898)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할 때,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저서로 논문집 『청년이여』, 『청년위국가지기초』 등이 있다.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1800년경에, 사랑채는 1926년경에 지었다고 하나 원래 건물은 1955년에 없어지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72년,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생가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어 선생이 생전에 남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징으로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짓는 내외담 없이 생가터에 들어서면 안채가 훤히 개방된 구조이다.
6) 한산 모시 마을
한산모시는 백제시대 한 노인의 현몽으로 건지산 기슭에서 모시풀을 발견한 이래 1,000년 동안 나라의 진상품으로 이어져 온 한산의 명물이다. 한산모시는 백옥같이 희고 우아하며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하고 가늘어 여름철 옷감으로는 으뜸으로 치고 있다. 서천군 한산면 일대는 질 좋은 모시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4. 회비 : 4만원 (회비는 당일 총무에게 납부)
5. 신청기간 : 9월 2일(토)
6. 신청방법 : 참가지 이름과 연락처를 E-mail이나 전화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7. 연락처
E-mail : gudtks@korea.com
김승원 총무분과부위원장(011-229-7540)
윤석구 총무분과위원장(011-774-1727)
이영재 고문님 : 019-646-6257(호남지역)
김종우 전회장님 : 018-401-2222(충청, 대전지역)
8. 기타 : 산행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과 나경패철, 필기도구 등
(우천시도 예정대로 진행하므로 비가 오면 우산이나 우의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