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본 적 없는 광활한 시베리아의 자연을 접할 수 있을
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사실 난 이 영화에 대한 아무런 사
전지식없이 상영관 에 들어섰다.
초,중반부까지의 영화적 배경은 눈이 시려올 것만 같은 한
겨울의 눈덮힌 모스코바이다.
일때문에 러시아의 여행길에 오른 미국여성 '제니'와 의기양양한 러시아 육군사관생도 '안드레이 톨스토이'는 우연찮
게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모스코바를 향하는 기차안
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짦은 아쉬운 만남을 갖지만,후에 두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엮어주는 것은 안드레이가 남긴 사진 한장.
후에 제니는 이 사진을 들고 모스코바의 사관학교에 찾아가
게 되고 여기서 알게된 사관학교장(?)을 통하여 안드레이에
게 전해주게 된다.
상류사회의 품위와 사교가 일렁이는 사관학교 무도회,한바탕 들썩거리는 분위기의 서민적인 러시아 전통 펜케익 축제등, 화려하면서도 웅성거리는 흥취가 빛나는 19세기의 러시
아적 배경속에서 미국인 제니는 어느덧 러시아에 동화되어 가고 안드레이,사관학교장,그밖의 많은이들과 친해져 간다.
이 부분까지의 영화 장면은 코믹한 요소를 많이 가미하여
러시아 상류사회와 사관생도들, 그리고 서민들의 모습까지 해학적으로 그려내어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
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까지의 이러한 해학적 요소는 중반부 이후부터 이 영화가 본래 담고 있는 가장 명확한 소재인 '제
니'과 '안드레이'의 사랑 얘기를 서서히 드러내므로서 사라져 버린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의 감독은 안드레이와 제니,그리고 사관학교장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삼각관계를 그려내므로서 젊
은 두사람의 사랑의 깊이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하는 두 연인사이에 나이많은 사관학교
장이란 인물을 끼여넣음으로 해서 -그는 이 사랑스러운 미
국 여자 제니에게 청혼까지 하게 된다.결과적으론 엉뚱하
게 청혼서를 대신 읽게 되는 안드레이의 청혼이 되지만- 안
드레이의 고관에 대한 갈등과 제니에 대한 질투와 편견을
유발시킨다.
관객들이 초,중반부의 영화의 해학적 요소에 웃음을 삼키
기 힘들만큼 긴장했다면 영화 후반부에서 관객들은 극단적
인 상황으로 치닷는 두 연인간의 비극적 스토리의 전개에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비극의 발단은 안드레이의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오페라
공연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애인 '제니'로부터 질투섞인
오해의 감정을 지닌 안드레이는 결국 공연도중 제니와 나란
히 앉아 관람하는 사관학교장을 바라보며 증오의 적개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대에서 뛰쳐나와 그를 공격하게 된다.이
사건은 후일 그 자리에 참석했던 황태자에 대한 공격으로
오판되어지고 안드레이에게는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극단의
조처가 취해진다.
시베리아 유형장으로 끌려가기 위해 희미하게 슬픔의 자국
을 남긴채 기차에 오르는 안드레이. 그를 뒤늦게 찾아 슬픔
을 위로하는 사관학교 교우들의 모습과 그들의 불가항력적
인 하나된 노랫소리,그리고 그 울림...
1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외국인의 신분으로 드디어 10년만에, 마음속 깊히 녹아스러
지는 듯한 죄책감을 안고 예감할 수 없는 먼 시베리아까지
옛사랑을 찾아오게 되는 제니.
하지만 먼길을 찾아온 그녀는 결코 안드레이를 만나지 못한
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이미 타지에서 세아이
를 가진 가정을 이룬 것이다.
그러한 안드레이의 극명하고도 현실적인 새로운 삶의 흔적
만 보고 좌절된 기대감만을 안은채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
따라 다시 뒤돌아서 가는 제니를 안드레이는 먼발치에서 그
냥 묵묵히 바라만 본다.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이 영화의 특징중 하나는 19세기말
의 러시아 배경과 이보다 조금 시간이 경과된 20세기초의
미국 배경을 각기 다른 두가지의 내러티브(엄밀히 말하면,
세가지)를 이용하여 극을 교차적으로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
다. 영화<잉글리쉬 페이션트>처럼.
20세기초(1905년경)의 배경은 미육군 훈련장으로,모짜르트
를 모욕한 상관에 대하여 "모짜르트는 위대한 작곡가다"라
는 불멸의 고집을 꺽지않은채 그에 대한 댓가로 군용 마스
크를 온종일 써야하는 혹독한 체벌을 당하는 훈련병의 이야
기를 그리고 있다.
또 하나의 이 시대(1905년경)의 내러티브는 세월이 흐른
뒤 나이든 '제니'가 군에 간 아들(위의 훈련병)에게 자신
과 그의 아버지사이의 관계를 편지로 적어 설명하는 부분이
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훈련병인 -안드레이와의 사이에
서 태어난-아들을 찾아가는 제니의 모습과 자신을 찾아 먼
시베리아벌판을 달려온 제니의 돌아서는 발걸음을 묵묵히
시켜만 보는 안드레이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대비하여 보여
준다.
이 영화를 단순한 관조자의 입장에서 비평해 본다면 극중
외국(미국) 여자로 나오는 제니의 시종일관적인 영어 구사
와 간간이 쓰이는 러시아인역 배우들의 유창한 영어 솜씨
가 관객들에게 사뭇 기이하면서도 신비롭게 들리는 러시아
어의 정열적 요소를 제압하고 이 작품 전체의 예술적 열정
을 어색하게 만들어 버렸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영화 감독은 '피는 눈물보다 진하다(?)'는 올드
패션한 마무리 방식을 막판에 효과적으로 구사함으로서 두
남녀간의 이별의 아픔을 모자간의 혈육적인 끈으로 연결시
켜 이야기의 긴장감을 승화시킨다.
하지만 '만남-이별-남겨진 혈육'이라는,관객들에게 가장
큰 감동과 슬픔을 자아내게 하는 다분히 허리우드 스타일
의 세가지 요소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이 어슴푸레하게 느
껴져서 조금 아쉬운 듯하다.
*미 훈련병(안드레이의 아들)이 왜 '모짜르트는 위대한 작
곡가다' 라고 불굴의 고집을 부렸는지 이 영화를 본 관객이
나 위의 내 글을 다소 주의깊게 읽은 사람들은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