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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쿠라 사절단((岩倉使節団) 혹은 암창 사절단은 1871년 메이지 유신 후에 일본 과도정부가 파견한 해외 사절단으로 네덜란드 선교사 귀도 베르덱이 러시아의 피터대제가 서유럽으로 보낸 대사절단에 착안하여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메이지 유신 전에 도쿠가와 쇼군에서도 미국에 한 차례(1860년), 유럽에 두 차례(1862년과 1863년) 사절단을 보낸 바 있었다. 특명전권대사인 이와쿠라 토모미의 이름을 따서 이와쿠라 사절단이라고 부른다.
[편집] 일행
이와쿠라 토모미와 그를 돕는 세 명의 부대사가 동행하였다. 부대사는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로 당시 정권의 장관들이었다. 이와 행정가들과 학자들도 대동하였는데 그 총수는 48명이었다. 그리고 60명의 유학생들을 함께 데려갔는데 그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한 후 귀국하여 일본의 중요한 지도자들이 되었다.
[편집] 여정
그들은 1871년 12월 23일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하였다. 그 곳에서 워싱턴 디씨를 거쳐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러시아, 프러시아, 독일,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를 여행하였고 돌아오는 길에 이집트, 아덴, 실론, 싱카포르, 사이공, 홍콩, 상하이를 방문하였다. 1873년 10월 13일 귀국하여 거의 2년 동안 여행하였다.
[편집] 임무
그들의 첫째 임무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의 여러나라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에 대하여 재협상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둘째 임무는 교육, 과학기술, 문화, 군사, 사회와 경제 구조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일본 근대화를 촉진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첫째 임무는 대단히 수행하기가 어려서 당대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늘어났지만, 둘째 임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