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산품은 있되 명품은 없다.’
포도주산지로 널리 알려진 충북 영동군은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비상이 걸린 상태다. 농민단체 대표가 칠레현지를 찾아가 현지조사를 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현지시찰단이 칠레방문 후 군에 건의한 것은 밀폐형 비가림재배시설을 늘려줄 것이었다고 한다. 영동군의 시설비중은 전체면적의 6%수준. 과연 이것이 대안일 수 있을까. 영동과 인접한 옥천군은 80% 이상이 시설포도다. 오히려 옥천군은 칠레포도에 대한 계절관세부과로 당장 시설포도가 죽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생산과정·마케팅 차별화.. ‘안전’ 기본 기능성 추가를
정헌일 영동군 농정과장은 털어놨다. “벌써부터 대처를 해오고 있는데 품종을 개량하고 접목기술도 발전시키고…, 어쨌든 명품화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지역의 ‘와인코리아’라는 영농법인에서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는데 주세법에 걸려 어려움이 많다. 국가적 차원에서 풀어줬으면 하는데…. 가공쪽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만 어려움이 많다.”
정 과장은 신선도에서는 승산이 있다고 보지만 가격과 당도는 자신하지 못한다. 칠레산은 보통이 18°수준이다. 영동산은 13°가 평균이다. 유기농을 해야 16°수준을 맞춘다. 당도에서 밀린다는 계산이다. 품질에서 밀린다고 할 때 영동포도의 명품화는 가능할 것인가.
충북에서는 진천쌀을 치지 충주쌀을 쳐주진 않는다. 진천쌀이 좋다는 게 오래전부터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주시 주덕읍에서 생산되는 ‘월광’이란 상표의 쌀은 진천쌀에 비해 훨씬 비싸게 팔려나간다. 7년전부터 ‘고시히까리’란 일본품종을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 작년에 6만5000평에서 ‘월광’이 태어났다. 4kg, 8kg 소포장 형태로 유통되고 80kg 한가마 기준으로 23만원을 받는다.
쌀은 충주의 특산품은 아니지만 ‘월광’은 충주쌀중에서 명품의 대열에 올릴만한 상품임에 틀림없다. 특산품이 곧 명품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같은 예는 또 있다. 괴산군과 음성군은 고추에 관해서 만큼은 라이벌 사이다. 그런데 서로 경쟁하는 두 자치단체의 홍보컨셉은 ‘청결고추’로 중복, 차별성이 없다.
그러나 고추박사로 불리는 음성군 원남면의 이종민씨와 ‘고추 114’란 사이트로 전자상거래를 하고 있는 성의모씨의 고추는 항상 6000원 이상의 고가임에도 불티나게 팔린다. 굳이 고추의 명품을 들자면 음성·괴산의 ‘청결고추’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의 고추가 될 것이다.
충북 청원군 강외면 쌍청리에서 시설채소를 하고 하고 있는 홍이선씨. 홍씨가 생산하는 애호박은 선별이 필요없다. 크고 작은 것 구분없이 박스에 담아 놓기만 하면 백화점에서 직접 가져간다. 유기농산물로 팔리기 때문이다. 홍씨의 호박은 일반 농가보다 최소 두 배이상을 받는다. 가격도 홍씨가 정하고 시장가격의 등락에 관계없이 거의 일정하다.
특별한 취급을 받는 명품 농산물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는 지역의 특산물을 명품으로 착각한다. 특정농산물의 주산지라는 개념은 더 이상 그 상품의 가치를 보장하지 못한다. 생산과정부터 달라야 함은 물론 기능성이 추가되고 확연히 안전해야 하며, 포장도 달라야 한다. 명품농산물은 일반농산물가격이 내려간다고 해서 동반하락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의 농산물 명품화전략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