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굿당" 군자봉-성황사]
안산시와 시흥시에는 경순왕과 관계된 설화가 있다.
그설화는 표고 198m 의 군자봉에 얽힌것이다.
경순왕이 안산 잿머리 해안에 있는 해봉산에서 군자봉으로 백마를 타고 오갔다는 곳이다.
옛날 군자봉 정상에도 경순왕과 부인 안씨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고, 그사당에는 두 영정이 있었다고 한다.
이사당이 해방직전까지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된 후에는 다시 재건을 보지 못했다.
단지 뜻있는 무속인들에 의해 허름한 서낭당 형태로만 유지되어 왔는데, 이마저 세월이 지나면서 없어졌다. 없어진 대신 무속인들은 오래 된 느티나무 아래에 단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올리고 굿을 하곤 했다.
그들은 이사당에 모신 신을 大王의 신이라 했다.
대왕은 경순왕을 일컫는다.
전국 어디에서나 무속인이 경순왕을 신으로 모실때는 '김부대왕'이라 고 위패에 썼다.
김부는 경순왕의 이름이다.
그런데 유생이나 왕의 후손들이 쓰는 글은 왕의 이름을 쓰지않고 경순이란 시호를 사용한다.
이유는 군왕,성인, 조상에 대한 예의 때문에 이름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현 이상의 고을에는 사직단,문묘,성황사 가 표기되어 있다.
사직단은 나라의 땅, 즉 국토를 지킨다는 토지 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문묘는 그 지역 유생들이 성인 공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성황사는 순수 민간인들에 의해 세워져 고을의 안녕과 풍년, 또는 개인의 복을 기원하는 곳이다.
경순왕은 천년사직 신라를 고려태조 왕건에게 넘겨주고 전국 각지로 유람할때 장구땅(안산)에도 들렀다.
여기서 경순왕은 노루도 사냥하고 바닷가로 나가 고기도 잡으며, 오가는 중국 상인들도 보면서 망국의 한을 달래곤 했다. 물론 그에 따르는 옛 신하도 있었다. 오를때는 말을 타고 오르기도 했다.
그때 자주 찾은곳이 군자봉이다.
이때는 무명봉이었다. 지금도 이산에 가보면 어렵잖게 말을 타고 정상에 오를수 있을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다.
정상에 오르면 남향으로 바다가 일목요연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경순왕은 그 풍경을 내려다 보며 시름을 잊곤 했다.
군자봉이란 신이름이 생겨난 것은 조선조 세종대왕의 여덟째 왕자 영웅대군의 묘소가 있어서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