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는 유난히 문과 창이 많다. 창호는 한옥의 얼굴이라고 한다.
엇비슷해 보이는 한옥의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 문과 창호이다.
한옥에서 창호는 멋과 맵시를 다양하게 연출해 집 안팎의 공간을
아름답게 창출하는 심미(深美)도 돋보다.
그보다도 한옥에서의 창호는 소통이 더 큰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창(窓)은 빛과 바람이 들어오라고 만드는 통로이다.
호(戶)는 방과 방을 이어주는 통로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을 합한 창호는 사람이 드나들 때는 문이 되고
가만히 있을 때는 통풍과 채광을 하는 창이 된다.
창덕궁에는 아름다운 한옥 낙선재가 있다.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후궁을 위해 지어진 집이다.
그 집의 전체가 하나의 목조예술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화려하다.
낙선재는 다양한 문과 창호로 한옥의 아름다움과 멋을 한껏 연출하고 있다.
정문 솟을대문 장락문(長樂門)이다.
장락(長樂)이란 오래오래 즐겁게 살기를 기원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낙선재의 정문은 장락문으로 특이하게 문지방이 돌로 되어있다.
문지방의 가운데는 홈이 파여 있다.
이것은 초헌의 외바퀴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장락문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한다.
낙선재는 'ㄱ'자 형의 조촐한 집이다.
여염집과 다르게 창살의 다양한 무늬가 위치에 따라
생동감 넘치게 변화를 주고 있다.
또 창호가 여려 겹의 화면으로 공간을 한껏 아름답게 손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 한옥엔 창 하나에
네 개 이상 문을 달아 통풍과 채광을 조절하고
안팎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도 있다.
겹겹이 단 창과 그 사이 공간을 통해 단열이 가능해,
열 손실을 막고 보온의 효과를 노린 조상의 지혜도 느껴진다.
건너 방에서 작은 마루 인 내루로 올라가는 문은 둥근 만월문이다.
건물 내부에 이런 만월형의 보름달 문이 만들어지는 일은 쉽지 않다.
대청에 앉아 맞은편을 보면 장락문이 있는 행각이 보인다.
그 중에 살대무늬가 아름다운 분합문이 눈에 뜨인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창살의 문양을 보노라면
아지 자기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 된다.
한국인은 방, 대청에 앉아 내다보는 자리에 아름다움이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성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방과 방으로 연결된 문에는 여려 종류의 창이
동시에 달려 겹창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겹창으로 만드는 이유는 방음과 난방이 목적이다.
각 방에서 바라보았을 경우
창살이 직접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처럼 보인다.
주로 거처하는 안방의 북쪽으로도 특이하게 창을 만들었다.
후원의 경관을 바라보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낙선재와 주위 행각들은 아름답고 다양한 문창살 모양으로 유명하다.
수십 가지 모양의 문창살은 그 모습이 대개 정갈하고 단정하다.
사치를 경계한다는 의미로 이 낙선재 권역 건물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창호의 디자인 감각이 우리 한옥의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좌우로 밀어서 닫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동시에 위로 열어 올려놓기도 하고,
모양과 기능도 다양한 것이 우리 창호이다.
우리나라의 문은 한지를 안에서 바르도록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옥 창호의 맛이란 바로 은은히 비치는 한지의 감각이다.
밝은 햇빛. 은은한 달빛으로 창호에 던져진 나무의 가지와
잎 새의 그림자들은 한 폭의 묵화를 이룬다.
또한 창호지는 소리를 잘 투과시켜 자연의 음향적 투영이 이루어진다.
앞뜰의 매미소리 뒷뜨락의 까치소리 처마의 낙수소리 등이
한옥의 공간에서 남다른 맛과 멋을 엮어낸다.
가난한 선비가 글을 읽기 위해 월광(月光)을 구하는 곳.
님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며 귀 기울이는 곳.
낙화하는 그림자에 규방처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
그런 멋들어진 기능을 가진 창호가
바로 한옥의 창과 문이었던 것이다.
한옥의 창은 한번 여닫을 때마다 다른 풍경화를 담아낸다.
한옥은 문 하나만 열고 닫아도 그 차이가 굉장히 크다.
창이 집의 '얼굴'이라면 창살은 집의 '표정'이다.
한옥에는 번다하고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창살만은 다채로워서
집의 여러 가지 창살들이 채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창호 대부분이 출입구는 안으로 열게 된 안여닫이이고
창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밖으로 밀어 열게 된 밖여닫이이다.
한옥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들어열개문이 있다.
이름 그대로 창호를 들어서 처마 끝이나 들쇠에 얹어 매다는 방법이다.
자연과의 합일이 바로 여기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땅을 사람과 뭇 생물들이 어울려 사는 생명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땅을 허물고, 물을 오염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한옥의 창호와 문에서 자연과 하나 되고 싶어하였던 소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통 조경의 원리인 차경(借景)이다.
가장 적게 인공을 가하고도 가장 쉽게 경치를 즐기는 방법이다
서양과 같이 공원이라 해서 원래 살고 있던 생명체들을 쫓아내고
사람이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 감상하지는 않았다.
정자나 마루에 앉아 창문 등을 그림의 액자 삼아 앞산의 경치를 빌려(借景)보았다.
경관을 빌려쓰는 것이니 집 밖에 있는 경관을 직접 찾아가 즐기거나
집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저 집 안에서 조망으로 즐기는 것이다.
선조들은 집에 앉아서 창과 문을 여닫을 때마다 수없이 다양하게
변하는 풍경을 만들어 보는 놀이를 즐겼다.
그 선조들은 자연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맞추어
풍광을 한옥의 창호 등을 통해 만끽하였던 것이다.
한옥에서 문과 창호는 공간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공간이다.
=한국차인연합회의 잡지 <茶人> 2010년 7월/8월호에 조영희가 기고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