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천국 광저우
▲ 곽수근 기자 |
중국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廣州)는 비행기로 우리나라에서 3시간반 정도 걸리고 2010년엔 아시안게임도 개최한 대도시입니다. 이 광저우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단연 ‘짝퉁’ 입니다.
옷·시계·가방·신발 등 한국에서 유통되는 짝퉁 명품 대부분이 광저우에서 왔습니다. 광저우대 부설 어학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로 북적이는데, 상당수는 중국 상인들로부터 좀더 싼 값에 짝퉁을 떼어다 팔기 위한 목적에서 온 짝퉁업자들입니다.
◇세계 최고 최대의 ‘짝퉁 天國’인 중국 광둥성
시 당국으로선 ‘짝퉁’ 이미지가 달갑지는 않지만, 지역 경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짝퉁 산업을 무시할 수도 없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명품 짝퉁 가방을 전문으로 파는 ‘바이윈세계가죽제품무역센터(白云世界皮具貿易中心)’이라는 시장이 있는데, 시 당국이 여기서 거의 매일 단속을 하지만 적발되는 상점은 거의 없습니다. 주인들이 단속할 때를 미리 알고 가게 문을 닫고 사라지기 때문이죠. 닫힌 가게들 앞에는 점원들이 줄지어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OO시면 단속이 끝나 가게 문을 여니 그때 오라”고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중국 광둥성의 한 공장에서 BMW, 아우디, 랜드로버 등 명품 자전거와 똑같은 짝퉁을 만들고 있다. |
최신형 고급 스마트폰도 제품 포장부터 내장 프로그램까지 모든 게 진짜와 똑같은 짝퉁이 버젓이 팔립니다. 부팅 속도와 화면 해상도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외관상으로는 정품과 똑같습니다. 최근 광저우 공안국이 삼성과 애플 등의 최신형 스마트폰 40억위안(약 7400억원) 어치를 똑같이 베껴 중국 각지와 해외에서 진짜로 팔리도록 만든 일당을 붙잡았습니다.
이들은 인근 선전(深?)에서 짝퉁 스마트폰을 만들어 광저우 물류회사를 통해 중국 다른 성(省)과 동남아, 러시아 등으로 유통시켰습니다. 사용중 응용프로그램(앱)이 자주 충돌하고 시스템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로 가져온 스마트폰들이 모두 진짜로 위장한 짝퉁으로 밝혀지면서 수사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적발된 가짜 스마트폰의 제조 원가는 300위안(약 5만5000원)인데, 도매상들에겐 500위안(약 9만2000원)에 팔았습니다. 시장조사기관은 이런 짝퉁 스마트폰 규모가 올해 4000만대에 이르러 전 세계 스마트폰 예상 판매 대수(약 9억6000만대)의 4%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처럼 광저우가 짝퉁 메카로 뜬 데는 선전시와 동관시 등 인근 도시의 탄탄한 제조력과 풍부한 인력 덕분이 큽니다. 광둥성에는 짝퉁 생수, 짝퉁 음식, 짝퉁 제품 공장, 짝퉁 유화촌(油畵村)은 물론 남의 나라 마을을 통째로 베낀 ‘짝퉁 마을’까지 있습니다.
▲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의 ‘할슈타트(Hallstatt)’ 마을을 고스란히 베낀 중국 '후이저우 하슈타트어(哈施塔特)’. |
‘짝퉁 마을’은 광둥성 후이저우(惠州)시 북서쪽 외곽에 있는데, 지도에 표기조차 없습니다. 덩그러니 놓인 벌판에서 언덕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에 차량들이 빽빽이 주차돼 있었는데, 모두 고가(高價) 수입차였습니다. 사람들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갔더니 수정처럼 맑은 호수가 펼쳐졌습니다.
뾰족 솟은 시계탑과 하늘색·분홍색·베이지색 등 파스텔톤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들은 동화처럼 어우러져 있더군요. 붉은 옷을 차려입은 예비 부부들은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유럽풍으로 앞치마를 두른 여성들은 방문객들을 미소로 맞고 있었고요.
◇유럽의 세계문화 유산 도시를 통째로 베낀 ‘짝퉁 도시’ 중국 각지에 속출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의 ‘할슈타트(Hallstatt)’ 마을을 그대로 베낀 ‘후이저우 하슈타트어(哈施塔特)’입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할슈타트는 아름다운 자연뿐 아니라 유럽 초기 철기문화와 소금광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관광명소인데, 광둥성의 부동산 개발회사가 60억위안(약 1조1000여억원)을 들여 복제했답니다.
▲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의 ‘할슈타트(Hallstatt)’ 마을을 고스란히 베낀 중국 '후이저우 하슈타트어(哈施塔特)’. |
설계 전문가들을 관광객으로 위장해 오스트리아로 보내 할슈타트를 샅샅이 조사한 뒤, 마을 전체 구조는 물론 건물 외관과 방 내부, 실내 장식까지 꼼꼼히 사진과 동영상으로 몰래 담았을 정도로 치밀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토대로 호수를 파고 중앙광장의 천사 조각기둥, 교회, 호텔, 식당과 기념품점, 골목길까지 똑같이 만든 것이지요.
만약 세종대왕과 충무공 동상, 광화문 거리와 광장 등 광화문 일대를 고스란히 베낀 마을을 다른 나라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착공 초기부터 후이저우 하슈타트어 마을은 허락 없이 세계문화유산을 베꼈다는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화가 난 할슈타트 마을 주민들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정식으로 중국 정부에 문제삼아야 한다고 비난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짝퉁 중국’을 조롱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짝퉁 마을’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도 할슈타트를 베낀 배경엔 깊은 장삿속이 깔려있었습니다.
짝퉁 마을 소문으로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 중국 부자들이 대거 몰려와 완공도 되지 않은 집들을 불티나게 샀다고 합니다. 이곳의 집값은 지금 1㎡당 1만위안(약 180만원) 이상으로 후이저우 다른 지역의 2배가 넘고, 6000만위안(약 108억원)이 넘는 고급 별장들도 즐비합니다.
원조(元祖) 할슈타트 마을 주민들의 비난도 금방 사라졌습니다. 왜냐구요? ‘진짜’를 보고 싶다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할슈타트로 대거 몰려가 돈을 써댔기 때문이죠. 수십명에 불과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1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하자, 할슈타트 시장이 후이저우에 찾아와 “우리 마을을 중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문화 교류를 약속했을 정도랍니다.
중국에서 짝퉁 마을 원조는 상하이(上海)입니다. 상하이시가 2001년 외곽에 9개의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면서 각 지구를 서로 다른 서양 건축양식으로 꾸미도록 한 것이 짝퉁 마을의 계기가 됐습니다. 시 중심에 몰린 인구를 외곽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부자들을 겨냥한 고급단지를 만들었고, 이를 위해 서양의 유명마을을 베끼는 전략을 사용한 것입니다. 영국 튜더 양식으로 지은 집들과 뾰족탑 교회, 인공 템스강으로 꾸민 템스 타운과 독일 마을을 베낀 동네 등이 이때 생겼습니다.
인근 항저우(杭州)엔 짝퉁 에펠탑과 프랑스 마을을 베낀 곳이 생겼지요. 최근에는 유럽의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중국으로 직접 진출해 짝퉁 마을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한 이탈리아 기업은 이탈리아의 마을을 광저우와 충칭(重慶) 등에 그대로 베껴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의 ‘할슈타트(Hallstatt)’ 마을을 고스란히 베낀 중국 '후이저우 하슈타트어(哈施塔特)’. |
이런 ‘짝퉁 마을’ 건설 열기를 중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서양 마을을 베끼는 건 중국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난과 “가까운 동네에서 유럽의 마을을 만날 수 있으면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으니 환영”이라는 반응이 엇갈립니다. 해외여행을 하기 어려운 평범한 중국인들이 짝퉁 마을로 ‘대리 만족’을 할 수 있으니 좋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일부 중국 건축가들은 한술 더떠 “유럽 마을 복제는 중국이 서양을 뛰어넘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중국 고대 황제들이 다른 나라를 정복한 뒤 그곳의 상징 건물을 그대로 베껴 황궁(皇宮)에 들여놓은 것과 같은 식이라는 거죠. 유럽 마을을 베끼는 것이 확대되는 중국의 유럽 지배력을 상징한다는 주장인데, 여러분도 동의하십니까?
● 곽수근 광저우 특파원 / 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