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의 승려이나 절간의 執鞭之士 (지금 나이 70이 되도 年富力强해서 꼭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도 할일이 많은 세상서 절간에 가서 아줌마, 할마시하고 퍼대고 앉아있는 불교서 處士나 居士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중국의 선종이 몰락한 이유로 약간을 든다. 대개 착한 승려들은 계률이 지키는것이 점점 느선해지고 앉아서 참선하지를 않해서 그렇다고 한다. 한국의 승려나 절간 집편지사의 일부는 구한말에 유교가 불교를 탄압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조가 망한 당시 (1909) 승려수는 수천명이 넘었다. 이들은 가족을 않갖이는 불교스님으로서 할 하안거 (여름 석달동안 박에 나가지 않고 수도) 동안거(겨울 석달동안 수도)는 했다. 그 당시 한국 인구는 1,000만명이기 때문 한말에 불교가 유교정부로 부터 탄압을 받어 불교가 교세가 그것밖에 안됫다면, 지금 이조망한지 100년이 됬고 남한 인구가 4,000 만 넘으니 비구 비구니 수가 적어도 2만명이 넘어야된다. 지금 비구, 비구니 수는 12,000 명 정도고 그나마 안거라고 하는 스님수는 2,000 명밖에 안된다고 한다.
유교가 통치했는 중국과 한국에서 경찰이나 군대를 절에 진입시켜 중들을 붙잡어 감옥소에 넣고 구타한 例가 없다 (그런것은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다). 전두한씨가 집권할려고 할당시 군대가 절에 진입해서 승려들을 깡그리 잡어 두들겨 팻는데, 그 당시 서울에 잇는 도선사라고 하는 절에서 전 종정 이청담선사를 팔어 치부한 혜성이란 승려는 두둘겨 맞어 내장파렬로 죽엇다고 한다. 절에 붙어 생계유지하는 불교신자란 것은 맹랑한데 요것들이 글썼는 것 보면 웃기는 것이 많다.
한 예로 이조 초기 전략적인 이유에서 한국 남단 제주도 한라산록에 큰절을 세우고 절에 전답을 턱 없이 많이주어 승려들이 그곳에서 딴곳에 가지말고 살게했다. 그러나 그 절 주지로 됬든 중들은 절 논답을 팔어 그 돈 가지고 본토로 토겨버렷다. 이렇게 몇대를 하니 절 재산은 다 없어저 중들도 살수없어 본토로 가고 본사는 폐사가 되고 말사등에선 점쟁이 무당 박수가 들어와서 점치고 굿해서 살었다. 그러다가 안 모라고 하는 사람이 제주 목사가 되서 가보니 사정이 이판인것을 알고, 이사람이 순 유교만 아는 사람이기 때문 말이 절이지 무당 박수 소굴인 절 암자등을 다 없앳다. 이 사실을 절간의 執鞭之士들이 사실을 비틀어 그절 주지들이 절 논 밭 팔어 챙긴돈 가지고 토긴 사실은 말않고 단순히 유교가 제주도 불교절을 다 없앳다고 한다.
구한말에 한국사찰을 구경한 미국인이 썬 여행기를 보더라도 한국서는 유교와 불교는 둘다 참신한 힘이 없어 서로 관섭할 元氣조차 없고 (유교는 절간 집편지사보단 주로 예수쟁이 말하는 것 같이 불교 못잡어 먹어 안달할 기운도 없고), 절 재정 자체가 외부서 뜯어 먹을 건덩이가 없어 외부 관섭이 전혀 없고 [現物稅(송이버섯, 적설차, 山菜)부과도 일부 절에만 국한된 현상] 따라서 전래되는 방식으로 자률적으로 운영이 되는데 절은 그런대로 비까번쩍하지 않지만, 아주 퇴락 된데는 없고, 중국 절보다는 훨씬 유지가 잘 되엇다고 써있다. 한국 절에 비해 중국 절 특히 중국선방은 완전히 퇴락해서, 중국 선종의 혜능 대사가 주석인가 뭔가 했다는 상하이 근처 절은 지난 세기 (20세기) 禪으로 가장 잘 알려진 虛雲대사가 그 절 주지, 방장 으로 가기전은, 중들이 절에서 닭키우고 돼지키워 生計을 유지하고 선방은 없어진지 오래고, 절은 형편없이 퇴락했다고 써 있다. 중국 불교는 禪房이 없고, 선방하고 관련이 없는 염불종이 우세하다고 써있다. 선방이 없는 이유로 결핵을 들었다. 결핵증상이 나타났거나 보균자 스님이 참선하는 선방에 한명이라도 있어면 선방이 쑥대밭이 된다고 써여있다. 페니실린이 없엇든 그 당시는 전연성 질병인 결핵은 중국 절엔 치명적이엇다. 콜록콜록하는 출가자는 그만 還俗해서 잘먹어 치료하라고 할수도 있지만, 아직 증상이 들어나지 않는 결핵 보균자가 한명이라도 있어면 전염되어 절은 완전히 망한다고 써있다. 이렇게 중국선방은 결핵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런데 한국 절은 결핵이 심각한 장애라고 써지 안했다. 전래되는 이야기나 기록을 봐도 한국절이 결핵때문 큰 피해를 본적이 없다.
결핵이 중국선방을 싹쓸이 햇는데 왜 한국절은 전부 선종중심 사찰인데도 결핵이 대단하게 위세를 떨치지 못했는가 이유를 살펴보자. 흐릿비맀한 불교신자들은 한국절에서는 계률을 잘지켜 護法神들이 보호해서 그렇다고 할른지 모른다. 그렇다면 중국은 염불해서 극락왕생햇다는 표증으로 서방을 향해 단정히 앉아 염불하면서 遷化했다는 불교신자들이 한국에 비해 왜 압도적으로 많은가? 앉아서 서방을 향해 염불하면서 坐脫한 사례가 구 한말 당시 중국 염불종 (실제 천태종)의 유명한 제한대사*가 썬 기록에도 있는데, 그 스님이 귀로 들은 것은 계산에 넣지 않고, 자기 눈으로 직접 본것만 해도 20이 넘는다고 했다.
[*천태종의 제한대사, 염불종의 인광대사, 선종의 허운대사를 중국 근세 불교의 가장 큰 스님들로 여길수있다. 인광대사는 유교에 기초한 불교를 주장해서 인광대사의 교가 가장 세력이 있고, 선종은 교세가 미미하다. 미국서 가장 큰 절인 L. A. 근처 西來寺와 세계에서 가장 큰 室內佛像이 잇는 New York 시 교외의 莊嚴寺도 인광대사의 교인 淨宗절이고, 지금 Dallas시를 흐르는 Trinity (예수교의 三位一體) 옆에 세계에서 坐佛像으로 가장 큰 불상을 건립할려고 드는 불교도 정종이다. 달라스는 텍사스에 잇고, 뉴멕시코, 텍사스, Louisiana, Mississippi, Alabama, Georgia를 바이블 帶 (Bible belt) 라고 불리는데 예수교 중심이다. 달라스가 이 바이블대의 최 중심이다. 이 달라스에서 Trinity 江을 내려다보는 좌불상이 서면 미국은 불교국가가 된다는 feng shui (風水) 설이 있어 예수신자들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예수신자는 그교의 교리에서는 feng shui 없지만 그래도 그 말 들어면 불안하기는 풍수믿는 미국사람하고 마찬가지다 (요샌 미국 점쟁이도 풍수가 어쩌니 한다) 사실은 미국은 불교국가로 가지않고 유교국가로 가고 있다. 미국 친 불교 인구는 겨우 2% (6백만)인데 非 기독교-유태교-회교수가 급속하게 증가 해서 과거 14-16% (30년전)에서 30% 이상 된다고 볼수잇는데 30%의 대부분이 딴 종교 보다 유교에 가장 가까운 개념를 갖고 있다. ]
분명히 한국 선방 승려가 중국 선방승려 보다 계률을 잘지켜 결핵으로 부터 피해를 훨씬 덜 당한것이 아니다. 이유는 한국 절에서는 김치를 겨울철에 먹고 선방이 온돌방이기 때문이다. 절에는 5辛菜인 파, 마늘, 정구지 (부추), 달래를 써지 않고 배추를 소금에 절여 장독에 담아 땅에 묻어두면 한 겨울철에 비타민 C 가 가장 많히 생긴다. 특히 푸른 배추로 담근 김치를 먹어면 다른 비타민도 많기 때문 결핵균에 대한 저항이 크다. 온돌 방이고 장판을 써는 방이 보균을 안한다는 것은 이젠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서는 카페트를 써는데 이 카페트는 세균 배양에 아주 적합해서 세균 투성이가 된다. 따라서 적어도 한달에 한번씩 蒸氣배쿠엄을 해야하는데 귀찮다든가 몰라서 안한다. 따라서 미국인들 한테 천식이 많다. 온돌 장판 방에는 세균이 앉더라도 수분이 없긴때문 증식을 할수 없고, 온돌에 불기가 들어가서 장판이 뜨거워지면 세균은 당장 죽어버린다. 그리고 아랬목, 위목 구별은 잇지만 방 전체가 뜨근 뜨근 해서 누워자면 몸이 풀린다. 중국 사람은 온돌을 안써고 난로를 써고 바닥이 나무 널판이거나 흙이기 때문 세균이 배양되기 딱 알맞아 결핵 보균자 침이 바닥에 붙으면 결핵균이 당장 증식된다. 몸을 풀지 못하고 춥게 자기 때문 몸이 허약해저서 결핵균에 약하다.
그리고 한국 절은 중국절에 비해 재산이 많다. 그 이유는 고려에서 이조로의 천이는 위의 집권층이 바뀐 역성혁명일 뿐이고, 중국의 원이나 명나라 몰락처름 내란이 일어나서 완전히 기존재산이란것이 인정이 되지않은것이 아니다. 이조가 500년동안 집권 하는 동안 중국서는 명이 일어나서 망하고, 그다은 청이 일어나서 망햇다 . 명은 이자성난이 일어나서 망한다음 만주의 청족이 중국 전토를 평정해서 청조가 성립 되었다. 중국서는 이런 왕조가 바뀌는 내란동안 절의 땅 문서는 무효화됫다. 청의 왕조 가 성립됨에 따라, 주로 강희, 건륭의 100년동안 절의 재산이란것이 생겻다. 그에 비해 한국절은 고려때 부터 잇었든것은 이조때도 고스란히 인정되엇다. 이조 초기 부녀자들이 절에 너무 많히 가서 여말모양 사회문제가 됫다. 절에 가는 부녀자들은 그래도 재산이 좀 잇거나, 글잔이라도 아는 선비층 들 집안출신이 주다 (아주 상사람 즉 속칭 쌍놈층 집안부녀자들은 돈이 많어도 절에 가지 않는다). 그 당시 유교 관리들이 절을 페사 시키고 싶어도 지 어미나 할매가 절에 가서 퍼대고 앉아있는 파들이기 때문 절을 폐사시키면 지 에미 지 할매가 매일 왜 그랬냐고 볶아될것이기 때문 왕명으로 절을 폐사가 아니고 이전시켯다고 해야 햇다. 유교개념에서는 개인이나 법인의 재산을 무단하게 뺏을수 없다. 그래서 이사비, 정착금을 주어 깊은 시골의 다른절로 소개시키거나, 부녀자들이 머리에 쌀 한 두 되라도 머리에 이고 올수없는 멀고 깊은 산골에 절을 다시 짓고 이사가게 햇다. 그런 절에는 수입이 없어니 논 밭 뿐만 아니라 노비도 많히 주엇다. 중국서는 적어도 1,000년 전 부터는 정부서 절에 노비 주고 논 밭 준 일은 없다. 그래서 한국 절은 깊은 산골에 있어도 재산이 좀 잇어 살기가 나어 영양실조 걸린 승려는 없었다. 중국 절은 영양실조 걸린 승려가 많은 것이 허운대사의 제자로서 미국에 중국 정통불교를 전한 宣化 대사의 글에도 나타난다. 홍길동 전에도 해인사는 논 밭이 많어 추수를 많히 하기때문 홍길동이 해인사 트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살든 시절 해인사는 富刹로 누구든지 알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면 저 머리깎고 참선한다는 무리들중 조사라고 하는 인물들도 결핵이 뭔지도 모르고, 그러니 결핵에는 속수무책이고, 머리깍은 인물이나 절간의 집편지사란 것들은 그 주제에도 잘못된 책임을 남한테 전가시킬줄 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