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말이 [아이 러브 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인 것 같은데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나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나 인간의 삶은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어서 자주, 우리들의
사랑은 엇갈리기만 합니다. 영화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무
리 그것이 허구의 것이라고 해도 현실적 삶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이야
기들은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되죠.
그런 점에서 사랑 이야기야말로 대중들의 보편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영화나 가요 같은 대중문화 장르에 끊임없
는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이 러브유] 역시 엇갈린 사랑 이야기입니다. 탈렌트 김남주의 스
크린 신고작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영화는 지금까지 등장한
값싼 멜로 영화들 중에서 뛰어난 연출력으로 감정의 절제에 성공하고
있는 드문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게 그것인, 값싼 눈물 한 방울 쥐어짜거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를 늘어놓으며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모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뻔한 삼류 신파 멜로라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합니
다. [선물][인디안 썸머]같은 최루성 멜로를 비롯해서, [나도 아내가 있
었으면 좋겠다][불후의 명작][번지점프를 하다][그녀에게 잠들다][썸머
타임]같은 사랑 이야기들이,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넘쳐 났지
만, 그래도 억지 이야기는 많이 줄어들었죠.
[아이 러브 유]의 스토리 보드를 보면 이미 다른 영화 속에 많이 등장한
이야기여서 신선감이 떨어집니다. 엇갈린 사랑이야기, 그것도 두 남자
두 여자 사이의 릴레이식으로 엇갈려 가는 사랑이야기는 이미 [단적비
연수][천사몽]에서 봤던 것들입니다.
[아이 러브 유]에도 역시 두 여자, 두 남자, 모두 네 명의 남녀가
등장합니다. 오지호는 서린을 좋아하고 서린은 이서진을 좋아하고
이서진은 김남주를 좋아한다는 이런 식의 구성 역시 [단적비연수]나
[천사몽]이 그랬던 것과 흡사합니다. 따라서 이미 앞서 개봉되었던
영화들의 실패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 러브 유]는 이미 영화 속에서 상투적으로 변모해버린
릴레이식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깔끔하게 재포장하는데 성공하고 있습
니다. 그 성공의 일등공신은 이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은 문희융 감
독의 연출력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인 김남주와 오지호. 그들은 우연히 종합병원 응급실
에서 만납니다. 다큐멘타리 비디오 저널리스트인 김남주는 비디오 카
메라를 들고 죽어 가는 여인 서린을 찍습니다. 서린은 손목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시도했는데요, 서린의 곁에는 그녀의 보호자인 오지호가
있습니다. 오지호는 서린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왜 서린은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요?
김남주는 역시 초등학교 동창생인 이서진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그에 대한 사랑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실체에 대해 회
의를 하고 있죠. 하지만 이서진은 초등학교 때 이후 오직 김남주만을
사랑했었습니다. 평생동안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이서진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건의 실체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서진 자신도 모르게 그를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목숨까
지 내놓을 정도로 이서진을 사랑하는 여인은 누구일까요? [아이 러브
유]의 영화적 재미는 그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는 데서 비로소 시작됩
니다.
[아이 러브 유]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젊은이들은 모두 각각 자신이
믿고 있는 사랑의 대상에 대해 헌신적으로 몸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
시선이 엇갈려 있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죠. 자칫 뻔한 스토
리의 삼류 신파 멜로로 끝날 확률이 높은 이 영화를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감정선을 넘지 않으며 절제된 연출과, 이야기의 모든 것을 풀어
헤친 뒤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꾸며진 각본의 힘에 있습니다.
오히려 연기자들은 하나의 소품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연기자들의 미숙한 부분까지 가려주면서 이야기를 볼만하게 끌고 가는
연출의 힘은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
습니다.
그러나 [아이 러브 유]는 신파 이야기를 교묘하게 뒤틀어서 긴장감
을 부여함으로써 미학성은 획득했지만 대중성 상업성은 놓친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남주나 오지호, 이서진, 서린 같은 스크린에서의 신인급
연기자들로만 이루어진 캐스팅은 위험부담이 높은 것이었지만 감독은
이들의 장점만을 뽑아내서 훌륭한 앙상블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포장하
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공들여 찍은 화면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한 컷 한 컷의 앵글도
감각적이고 미장센도 훌륭합니다. 상투적인 이야기 속에서 범상하지
않은 재능을 만나는 즐거움, 그것이 [아이 러브 유] 속에는 존재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