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소산 머슴새 공연리뷰-순천대 김길수 교수
2006년 09월 21일 00시 00분 입력
느림과 침묵의 연극성
-푸른연극마을의 <동소산 머슴새>를 중심으로
의병사 소재…이상현실의 길항구조 모색
씨름 장면 극적 고조감은 창작진의 내공
푸른 연극마을의 '동소산 머슴새'(오성완 작, 연출, 광주 오일팔 기념문화관 민주홀)에선 묻혀진 의병사 소재가 연극화되면서 느림과 침묵의 앙상블이 일정량 흡인력을 발한다.
보성 평민 출신 깔담살이 안규홍(박영진 분)의 의병 궐기 과정, 민중의 아픔을 이해하고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려는 정신 세계, 외세에 대항하는 남도 민중의 정서가 감상층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대의 움직임은 스펙터클하고 다이나믹하다. 놀이의 질펀함, 해방감, 유머와 익살이 가미된다. 남도 특유의 판소리가 선을 보인다. 죽은 자의 염원, 살아있는 자의 가슴앓이, 판소리(김안순, 김현란 구음)와 선율 기호가 내면 파고들기에 기여한다.
탈과 코러스 활용, 남도 의병 궐기 상황 및 당대 격랑 분위기가 서사적으로 펼쳐진다. 구체 무대와 상징 무대가 교차한다. 상징 공간의 활용 작법, 이는 원거리 접근과 근거리의 움직임 선을 다채롭게 빚는데 기여한다.
배창희의 음악 선율은 현실과 회상 공간의 넘나들기를 자연스레 실현시킨다. 무대 후면 샤막, 그 뒤편에 설정된 탄력적인 타악 연주(이상호)는 충돌의 연극성을 극대화시켜 준다.
상상의 무형 이미지를 향한 배우들(이당금, 나윤정 외)의 대응 설계, 가학 행위에 대한 반응 기호(백신진 외)는 공연 아우라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일깨워 준다.
헝겊 인형(김현수, 김주환 설계) 및 그림자 활용 역시 상상의 내면 공간 확장에 기여한다. 격렬한 의병 전투씬, 위기의 극점에서 독백 언어는 시적 코드로 일부 전환된다. 많은 분량의 전투씬, 서사 색조의 지루함, 이를 희석시킬 처방이다.
공연의 최대 압권은 폰쇠(정일행 분)와 규홍(박영진 분)의 씨름 장면.
누가 이길 것인가. 연극적 기대감이 고조되고, 그 순간 극단의 격렬함은 느림과 침묵으로 빚어진다. 움직임의 속도, 정적, 강렬한 집단 소리 효과, 이는 심미성을 탐구한 공연 창작진의 내공 흔적이다.
문제는 희곡 구성력이다. 이상과 현실, 의병의 길과 시민적 안정의 길, 두 영역의 갈등 및 길항 구조가 탐색될 필요가 있다. 탈 및 코러스 활용 작법 역시 서사 무대를 펼쳐감에 있어서 정밀 실험이 요구된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과의 부조화 관계, 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문제 제기가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켰는가, 이를 향한 극작술 보완 처방이 요구된다.
너레티브 그림을 줄일 필요가 있다. 격자 상징 무대, 차트, 코러스 활용은 격랑의 시대, 그 헝클어진 상황 창출 및 성찰 작업 유발에 효과적일 수 있다.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극적인 행동과 고발성 이야기다. 이를 날씨줄로 엮어 탐색함은 차후 중요 숙제다.
그럼에도 남도 의병사를 연극화하여 민족 심상의 원형과 그 정체성을 일깨우려던 시도는 일련의 의미가 있다. 각성과 깨닫기를 향한 서사극 실험, 느림과 침묵의 연극성, 이를 개발하려 한 집단 육체언어 탐구 정신이 빛을 발한다. 이 모두 보성예술촌 합숙 훈련을 통해 연단 된 푸른연극마을 단원들의 땀과 창작 철학에 기인한다. 김길수(연극평론가·순천대 문창과 교수)
무등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