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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악회 2차 백두대간 15구간 종주기(늘재-버리미기재)
한걸음 한걸음은 삶을 더욱 공고히 다지고
일시 : 2002년 7월 02일(화요일)
날씨 : 흐림
구간 : 15구간 (늘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버리미기재)
도상거리 및 시간 : 14.9km. 9시간 35분
누계 도상거리 및 시간 : 283.7km. 130시간 37분
총 683.4 km중 283.7km완주 41.1%완주
백두 대간 15구간 산행기
차 례
이번 백두 대간 산행부터는 좀더 정확한 산행을 위하여 인공위성을 이용한 휴대용 지리정보시스팀인 GPS를 이용했습니다.
산행전 백두 대간의 지도를 후가위프로그램으로 백두 대간 등산지도를 미리 저장시키고 후가위 프로그램에서 주요 웨이포인트를 선정하여 산행중 주요 좌표를 입력하고 GARMIN GPS V로 주요 웨이포인트 좌표를 Down Load하여 산행중 활용하고 산행 완료후 GARMIN GPS V로 측정된 트랙로그와 웨이포인트를 후가위프로그램으로 편집 제작하였습니다.
GPS 사용기종 : GARMIN GPS V로 GPS. 오차는 약 10M 이내,
지도상의 청색으로 이어진 선은 GPS에 의한 트랙로그로 지도상의 등산로와는 다른 실제 등산로의 모습입니다.
위성에 의한 고도 측정 오차는 기후에 관계없이 약 30M 이내로 좌표뒤에 고도는 GPS로 측정된 고도입니다.(tokyo좌표 사용)
산행 지도는 GARMIN GPS V로 측정된 트랙로그를 후가위프로그램으로 편집 제작하였습니다.
2. 15구간에 대한 소개
3.15구간 주변의 인문 및 역사 소개
4.산행기
5.산행 소감
6.
7. 후기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2.15구간에 대한 소개
15구간부터는 우측으로는 문경시 농암면,가은읍이 자리 잡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이 자리 잡고 있다.늘재에서 곧바로 청화산에 오르면 좌측 청화산 골짜기 의상 저수지를 경계로 충북과 경북의 도 경계선이 이어져 오다가 청화산에서 구십도 꺽어지면서 백두대간을 경계로 도경계선이 되다가 대야산에서 좌측으로 꺽어 진다.
큰 산으로는 청화산,조항산,대야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고개로는 갓바위재,고모치,밀치,불란치재가 있다.15구간부터 17구간까지 암봉산으로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산행의 속도가 아주 느리다.
3.구간 주변의 인문 및 역사 소개
문경시 농암면
상주군가서면으로 고려시대(년대미상)에 문경군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정리에 의하여 가서, 가남 양면을 병합하여 농암면이 됨.
1963년 1월 1일 삼송리가 충북 청천면에 이관.
1980년 7월 22일 대홍수로 농암 2리에 이주단지가 조성되어 시장이 이전 됨. 면 적 : 103. 38㎢(시의 11.3%) (임야 84%, 농경지 12%, 기타 4%) 행정구역 : 11법정리동, 22행정이동, 92반, 59자연마을.
가구 및 인구
- 가 구 : 1,374호(농가 976, 비농가 398)
- 인 구 : 3,448명(남자 1,643, 여자 1,805)
주요특산물 : 장석, 엽연초, 배추, 오이등
기업체 현황
- 고모치 광산 : 건축용 장석 생산 업체
- 두 메 식 품 : 청국장 및 오이지 생산 업체
1995년 1월 1일 문경시 농암면으로 개칭.
문경시 가은읍
신라시대는 가해(加害), 가은현(加恩縣),고려시대는 상주에 예속, 조선시대 는 문경에 이간 1909년 5개면이 3개면으로 통합.
1914년 3개면을 통합 가은면으로 호칭되고,1973년 가은읍으로 승격(상주군 이안면 저음리 편입)
신라전기에는 가해현이라 호칭되어 오다가 통일신라 경덕왕(7 50년경)때에는 고령군(현 함창)에 예속되었고, 고려 현종(1020년경)때에는 가은현 이라 개칭하여 상주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34대 공양왕 2년(1390년)에 문경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909년에는 가동,가북,가현,가남,가서등 5개면이 가동,가북,가현으로 폐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정리시 위의 3개면을 통합하여 가은면이라 호칭하고 소재지는 왕릉리에 두었다. 1973년 7월 1일 가은읍으로 승격되면서 상주군 이안면 저음리를 편입시켜 관할 이동수는 29개리 135개 반이다.
전형적인 미곡중심의 농업에서 일제시대때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광업소를 인수 1960년대 경제개발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전성기시 22천여명에 이르던 인구가 석탄산업합리와 정책에 따라 은성광업소가 1994년도 폐광 하면서 5천6백여명으로 감소하였다.
현재 은성광업소 부지에 석탄박물관을 건립 석탄산업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관광객이 연 32만여명에 이른다.
괴산군 청천면
청천면은 군의 남부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경북 문경군 가은읍과 보은군 산 외면이 남쪽에 접해 있으며 동남간에 상주군 화북면이 서쪽으로는 청원군 미원면과 괴산군 청안면이 북쪽으로는 문광면과 칠성면이 인접된 괴산군 전체면적의 1/5이 넘게 차지하고 있는 큰 면임. 전작물 생산이 많은 산간 농업면으로 인삼과 양질의 고추 엽연초등 경제작물의 소득이 총수입액의 약 65%를 차지하는 지세가 험준하고 산이 많은 면임. 본래 청주목 청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괴산군 청천면으로 됨. 청천면의 면적은 19,979ha이다. 청천면의 인구는 총 6,203명이다.
4.산행기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컴퓨터를 작동시켜 기상청 홈페이지에 연결하여 오늘 우리가 산행할 경북 북부 지방의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 비올 확률 60%,오후 40%다. 아뭍은 광양 보다 비가 내릴 확률이 낮아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비가 내리도 백두대간은 비를 맞고 해야 한다.
이런 사명감이 없으면 대간을 하지 못한다.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백운 아트홀로 출발한다. 백운아트홀 도착하여 조금 있으니 최영출 대원 부부가 도착한다. 그리고 몇 분후 버스가 도착하고 대원들이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여 버스는 출발한다.
백운 아트홀 출발 : 05시 14분
버스는 옥곡 인터 체인지를 통하여 남해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김총무 인사말과 정점덕 등반 대장의 오늘 산행에 대한 소개가 있고 난후 모두들 잠에 든다.버스는 서진주 인터체인지에서 대진 고속도로로 진입후 무주 방향으로 달리고 무주 덕유산 휴게소 에서 잠시 휴식후 출발한다. 무주 인터체인지를 나온 후 무주읍을 거쳐 영동으로 달린다.영동을 거쳐 보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 진행 후 상주 방향으로 간후 갈령을 걸쳐 늘재에 도착한다.
늘재 도착 : 09시 00분
늘재(GPS 좌표 N36 35 33.3 E127 54 17.0 410m)를 조금지난 청화산 농장앞에서 버스는 정차하여 대원들 하차한다. 산행을 준비후 산행 코스로 가는 중에 산딸기 밭을 만난다.산딸기를 한웅큼 따먹고 등산로로 출발한다.등산로 입구에는 음나무 320년생이 있고 그 옆에는 보호수라 화강암으로 작게 표석이 서있다.
산행 출발 : 09시 11분
산행에 들어가니 상주 시청에서 등산로를 아주 잘 정비하여 놓아 대간 산행을 만끽하게 한다. 산행후 15분 정도 경과하니 갈림길(GPS 좌표 N36 35 38.0 E127 54 44.3 535.8m)이 나타나고 한차례 땀을 흘리니 첫번재 밧줄 통과 구역이 나오며 밧줄을 타고 올라서니 전망이 좋은 바위가 나와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전망 좋은 바위 통과 : 09시 35분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에 명순 대원이 가지고 온 막걸리를 대원들에게 권하여 나 역시 한잔을 마시고 출발한다.
여기부터 청화산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명순 대원이 준 막걸리를 빈 속에 먹으니 그 역효과가 나타난다. 땀이 장마비 되어 내리고 힘이 달린다. 이를 악물고 계속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 통과 : 10시 23분
헬기장에서 30여초 가니 청화산 정상 표지석(GPS 좌표 N36 36 03.3 E127 55 21.4)이 있고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의 최고봉 청화산(GPS 좌표 N36 36 03.1 E127 55 21.3 994.4m)에 도착하여 조금 있으니 박석용 대원의 휴대폰이 울린다.
회사 연성주씨 한테 전화가 온것이다.
여기(광양)는 비가 오는데 산행하는곳은 어떻고 부인은 괜찮냐고 온 것이다.연성주씨는 근무 관계로 오늘 산행은 참석 못하고 부인만 참석 하였다.박석용 대원이 걱정 말라고 대답을 한다.간식과 식수를 보충하고 청화산 기념 사진을 촬영한다.
청화산(984m)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문경시 농암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등 3개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청화산을 오 르기 위해서는 의상저수지를 거쳐야 하는데 청화산과 주변의 산 그림자가 저수지 수면위에 아름답게 펼쳐져 산을 오르기 전에 산과 어우러진 자연 의 경관에 감탄하고 깊은 산속에서 흘러나와 모여진 물은 맑고 깨끗하여 여름철에도 발을 담그지 못할 정도로 차가와 등산에 지친 산악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준다.
이곳 저수지는 마을 주민들이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깨끗하며 빙어등 각종 어류가 풍부하여 저수지에서 강태공들 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화산에는 산죽군락 지역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철에도 푸르게 보이는 산으로 아마도 청화산의 유래가 여기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청화산 동쪽 시루봉은 그 남쪽 도장산을 아늑하게 감싸안고 분지형을 이루고 있다.바로 이곳을 세상에 둘도 없다는 명당 우복동(牛腹洞)이라 한다.
우복동은 지리산의 청학동과 경기도 가평군 어디에 있다는 유교사회의 이상향인 판미동(板尾洞)과 함께 전설적인 이상향이다.
이 우복동은 평생을 선비가 살 만한 땅을 찾아다녔다는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에서 '청화산은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다. 앞 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이 험준한 곳은 없다. 흙봉우리에 돌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삼기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빼어나 기운이 흩어지지 않아 자못 복지(福地)다'라고 적고 있다.
시루봉 밑에는 말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딸린 전설이 아주 유명하여 여기에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말바위는 말바우 마을(연천 2리) 앞에 있는 넓이 50여m, 높이 약 20여m 가량 되는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이다.
후백제를 건설한 견훤이 어렸을 때 바위 밑 굴에 야생마가 살고 있었는데 성질이 워낙 난폭하여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 할 수 없는 데다가 농작물에도 피해를 주어 마을 사람들은 백마를 잡으려고 하 였으나 좀처럼 죽일 수가 없었다. 야생백마 때문에 어른들의 고민을 본 소년 견훤이 나서서 ″내가 그 놈을 잡아 보이겠습니다.″하고 장담하고 허수아비 하나를 만들어서 백마가 살고 있는 굴 앞에 세워 놓았다. 그러자 백마가 허수아비를 경계하여 공격하여 쓰러뜨렸다. 견훤은 이러한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백마가 허수아비를 경계하지 않게 되자 견훤이 하수아비로 변장하여 백마가 오기를 기다려 백마갈기를 잡아채 백마 등에 올라타고 미친 듯이 날뛰는 백마와 떨어지지 않고 싸워 마침내 길들여져 견훤의 용맹과 지략에 백마가 지고 백마와 함께 무예연습을 하여 견훤이 최고의 명사수가 되었다.
활쏘기 명수가 된 견훤이 하루는 자기의 활쏘기 실력과 백마의 달리기 실력을 견주어 보기로 하고 말바위에서 아차동으로 활을 쏘기로 하였다.
실제로 말바위
- 연천 상땀 동네 북쪽 원고개
- 성저리
- 아차동은 일직선상에 있다. ″백마야, 만일에 화살보다 늦게 달리면 네 목을 베겠다.″ 하고 말한 뒤 활을 쏘고, 백마에게 채찍을 내리쳤다. 백마는 날다시피 달려서 잠깐 사이에 그 산꼭대기에 도착 하였으나 소나무에 어느새 화살이 박혀있었다. 견훤은 분노하여 사정없이 백마의 목을 내리쳤다. 그때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하나가 날아와 소나무에 박히는 것이다. 견훤이 이것을 보고 ″아차″했을 때는 이미 백마의 목이 땅에 뒹굴고 있을 때였다. 소나무에 박힌 화살은 견훤이 전날 연습 할 때 쏘았던 화살인 것이다. - 이로 인해 백마가 살던 굴 바위를 말바위라 하고 견훤이 말의 목을 베고 나서 ″아차″했다 하여 그 산을 아차산 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늘 안개로 인하여 우측 문경쪽으로 청화산 정상 밑에는 원적사 있는데 볼 수가 없다.원적사는 신라 무열왕7년에 원효대사가 초장을 했다고 전하고 있으나 사적기가 없어 그후의 일은 알길이 없다. 고종40년에 석교대사가 중창을 했다. 그 후 1987년에 서암대사가 중창을 하여 거대한 암석으로 축대를 쌓고 부지를 넓혀 큰 방채,요사,조실채 등 3동을 신축하여 면모를 쇄신했다. 단청불사도 화려하게 했으며 지형과 어울려 도인의 거처지로 장엄한 정취를 풍긴다. 또한 동사에는 해동 초조 원효조사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2~3백년전부터 추측되며 이목구비가 고격이며 복식은 조선조 풍이다. 원효대사의 영정은 전혀 전하는 것이 없었는데 유일하게도 당사에만 소장되 어 그 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화산리에는 원적사로 오르는 노변에 부도1기가 봉안되어 있으나 입자가 굵은 화강암이나 풍화가 심하여 각자를 판독할 수가 없다. 비학승천 혈의 기상을 타고 돈오할 수있는 수도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청화산 출발 : 10시 40분
청화산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출발하니 내리막길이다.여기서 얼마쯤 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시루봉 삼거리 통과 : 10시 48분
시루봉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급경사 길로 들어서면 대간 능선이다. 여기서부터는 높지 않은 오르막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갓바위재까지 간다. 옆으로 비켜갈 길이 없으며 오직 한길이다.
좌우로는 안개로 인하여 조망 할 수 없으며 계속 걸을 뿐이다.
여기서 산행을 하다보면 대원들의 습성을 파악 할 수 있다.
바로 필자 앞에 문창식 대원이 계속 걷고 있었는데 길 중앙으로 원추리꽃이 쓰러져 있으니까 문창식 대원이 스틱으로 대원들이 길을 걷다 원추리꽃을 밟을까 봐 산쪽으로 돌려 놓는다.참으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것 같지만 이런 하나 하나가 쌓여 우리의 자연이 보호 되는 것이다.이렇게 글을 쓰기까지는 마음에 감동이 있어야 저절로 글이 나온다. 어느 정도 가니 암릉 지대가 나온다.
858봉 통과 : 11시 16분
858봉(GPS 좌표 N36 36 41.6 E127 55 34.6 862.2m)을 통과하니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다.저 산아래에 의상 저수지가 보인다.
801봉 통과 : 11시 51분
801봉(GPS 좌표 N36 37 01.8 E127 56 08.2 807.4m)을 바위를 통과하니 안개는 걷혀 있고 의상 저수지는 선명하게 보이고 선두에서 등반대장이 넘어져 구급약을 준비해간 김총무를 비상 호출한다.김총무 앰블런스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려간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가 보다.801봉에서 조금 가니 갓 바위재가 나온다.
갓바위재 도착 : 12시 07분
갓바위재(GPS 좌표 N36 37 21.0 E127 56 02.7 766.3m)는 의상 저수지와 문경시 농암면을 이어주는 고개이다.나무에는 목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표언복씨가 걸어둔 이정표가 보인다.시간과 거리가 코팅되어 있어 대간을 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고 있다.
백암봉에서 신풍령구간에서 본 이름을 다시 보니 반갑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조정출 팀장께서 밥을 먹기전에 항상 고시래를 한다.지금까지 산에 다니면서 덩달아 고시래를 했지만 그 어원이 궁금했다.
여기에 그 어원을 백과 사전을 인용하여 기록하여 놓으니 참조 하였으면 한다. 들놀이·산놀이·뱃놀이 갔을 때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먹기 전에 자리 밖으로 “고수레” 하고 음식을 던지는 일. 고시래·고시례·고시네·고시내·고씨네 등으로도 불렀다. 이것은 근방을 다스리는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무사히 행사를 치르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이 들어 있는 동시에, 근처의 잡귀들에게 너희들도 먹고 물러가라는, 잡귀 추방의 주술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옛날 고씨(高氏) 성을 가진 지주가 있었는데, 마음이 후덕하여 소작인의 가정 사정을 참작하여 소작료를 감하여 주거나 면제해주었으므로, 그 지방의 농민들은 그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는 그 지방의 농민들은 물론 다른 지방의 사람들까지, 언제 어디서든 음식물이 생기면 먼저 고마운 고씨에게 감사의 뜻으로 “고씨례(高氏禮)” 하고 음식을 조금씩 던졌다고 전한다. 이 고씨례가 고수레로 변했다고 하는 전승과 첫숟가락의 음식을 신에게 바치는 제의(祭儀)습속으로 본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한다.
갓바위재 출발 : 12시 35분
조금 올라가니 헬기장이 나온다.헬기장을 지나 올라가니 계속 오르막 길이다.오르막을 어느 정도 오르니 이제는 암릉 구간이 이어진다.
암릉 구간을 벗어나니 조항산이 거기에 서 있다.
조항산 도착 : 13시 06분
조항산(GPS 좌표 N36 37 50.7 E127 56 19.8 955.3m)에 도착하니 논산 금호 산악회에서 오신 분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이제 환갑을 넘기신 분들이 자연과 벗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조항산에 올라서는 순간 천지를 굉음하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백두대간을 무너 뜨리는 채석장 소리가 앞쪽으로 펼쳐지고 있다.
몇일전 읽은 동아일보의 칼럼의 백두대간 파괴의 한부분이다.
지금까지 백두 대간을 하면서 파괴 현장을 세번 목격 하였다.
첫번째는 육십령을 올라서면 서상쪽으로 큰 산이 없어지고 있고, 두번째는 추풍령의 금산이다.얼마 있으면 금산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리라 생각되고 조항산 맞은편 기암괴석이 파괴되는 것이 세번째다.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여 당장의 몇푼의 돈을 보지말고 후대에 물려줄 자연을 생각하시라.
조항산(鳥項山 951m) :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와 경북 문경군 농암면 궁기리 사이에 솟아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주능선상의 대야산과 청화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조항산을 오르기 전 삼송리에는 일명 용송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우뚝 서있는데 이 소나무는 밑둥둘레가 약 5미터나 되는데 높이 15미터에 가지를 드리운 폭이 20미터가 넘는다. 줄기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 보인다 하여 용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주변에 아름드리 노송 20여주를 부하처럼 거느리고 있어 왕소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천연기념물 제 290호로 지정된 이 노거수의 수령은 약 600여년쯤으로 추정된다.
갓바윗재에서 왼쪽 능선길로 40여분 정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정상까지는 약 1km정도에 불과하지만 정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상에 마치 낙타등처럼 보이는 암릉지대가 이어지기 때문에 1시간 이상 소요된다.
조항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마치 하늘 위에 오른 기분이다. 정선 북쪽으로는 대야산과 둔덕산 줄기너머로 군자산, 장성봉, 희양산이 보이고 장성봉, 희양산 너머로는 월악산과 주흘산이 겹겹이 시야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정상에서 동으로는 문경시 농암면의 높고 낮은 산과 골짜기가 어우러져 주름치마를 보는 듯 하다. 남으로의 조망도 기경이다. 청화산과 시루봉의 능선 너머로 속리산 주능선이 마치 톱날인 듯 바라보이고 서쪽으로는 백악산 줄기가 한폭의 그림인 듯 아름답게 시야에 들어온다.
조항산 정상에서 잠사 휴식과 기념 촬영을 하고 출발한다.
좌측으로 난 길을 나서니 완전히 급경사다.급경사를 나무를 붙잡고 브레이크 역확을 하고 내려가다 보니 좌측으로 큰 쓰레기더미가 보인다.진정 산을 찿았다면 이렇게 두고 갈 수 는 없을 턴데 하며 아쉼을 새기며 내려가니 고모치가 나온다.
고모치 도착 : 13시 41분
고모치(GPS 좌표 N36 38 27.3 E127 56 18.3 715.2m)에서 우측으로 10m아래에는 문경시청에서 고모치 샘을 만들어 놓아 지나가는 나그내에게 시원함을 주고 있다.석간수에서 나오는 물은 목을 축이기에 충분하다.그 옆으로는 조항산에서 본 채석장이 을씨년스럽게 굉음을 내며 있다.고모치 즉 고모령은 가요 “비내리는 고모령”발원지라는 소문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여기서 비내리는 고모령을 서승만 대원에게 불러 보도록 권유를 했으나 분위기가 맞지 않아 속으로나마 불러 본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 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고모치 샘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후 출발한다.
고모치 출발 : 13시 54분
고모치를 출발하니 다시 오르막길이다. 혼신에 힘을 다해 오르니 889봉 정상이다.우측으로는 손녀 마귀통시 바위가 있다.
881봉 통과 : 14시 18분
881봉정상(GPS 좌표 N36 38 49.6 E127 56 29.4 892.4m)을 오르니 다시 내리막길이다. 정상에서 좌측으로 난 길이 대간 길이다.
조금 내려가니 좌측으로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어 바위에 올라 주위를 감상하고 다시 대간 길에 나선다. 선두를 쫓아가니 앞봉의 중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잠시 휴식과 간식을 섭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845봉(GPS 좌표 N36 39 00.3 E127 56 18.9 854.6m) 850봉GPS 좌표 (N36 39 03.0 E127 56 00.5 865.2m)
집채 바위 통과 : 14시 51분
큰 바위가 두개가 서 있다.이 바위를 집채 바위라 한다.집채 바위를 돌아 조금 가니 급경사 내리막길 이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이정표가 보인다.
밀치 도착 : 15시 06분
밀치(GPS 좌표 N36 39 29.2 E127 56 01.6 712.3m)에 도착하여 휴식과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후미가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한다.
밀치 출발 : 15시 15분
대야산까지 오르막 길이다.대야산은 빼어난 경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찿는다.대야산을 주위로 이름난 많은 골짜기가 있어 여름철은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다.있는 힘을 발휘하여 오르니 큰 바위가 보인다 그 앞의 나무에는 나무로 예쁘게 글을 새기고 니스 칠을 하여 바위 이름을 적어 놓았다.
코기리 바위(GPS 좌표 N36 39 41.2 E127 56 02.0 813m),대문 바위라 적혀 있고 그 옆을 돌아 바위에 올라 조망을 하니 대야산이 바위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오르막에 힘들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대야산이 저 앞에서 오라 손짓하니 발길을 재촉한다.
큰바위를 지나니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여기서 대원들 경치가 좋으니 기념 촬영을 하고 대야산을 다시 오른다.
정상 가까이에는 로프를 의지하며 올라가야 한다.
대야산 정상 도착 : 16시 00분
대야산 정상(GPS 좌표 N36 39 58.7 E127 55 53.5 938.9m)에 도착하여 둘레를 둘러보니 온통 바위 산이다.저 멀리 희양산이 속살을 드러낸채 보이고 주위의 울창한 숲이 여름의 정취를 더해준다.
대야산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주위를 감상한다.
이렇게 감상하고 있는데 김종우 총무 정상 중앙에서 일장 연설이 펼쳐진다.
백두대간을 완주한 남희우 대원을 행가래를 치자고 한다. 주위 대원들 모여 들어 백두 대간 완주한 남희우 대원 행가래를 치고 박수로 환영을 한다.
남희우 대원은 4년여간에 걸쳐 주위 동료 2명과 함께 사비를 들여 강원도 산골 백두 대간을 완주하고 천왕봉에서 속리산 구간은 남겨두었다가 이번 백두 D팀 대간 종주시 함께 맞쳤다.지금부터는 2차 종주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진정한 산꾼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야산(大耶山 931m)대야산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가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산을 중심으로 괴산군과 문경쪽에 각각 선유동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 대야산은 계곡에 반석 소등이 이어져 있어 납량 산행코스로 인기만점이다.특히, 충북쪽에서의 산행시 충북의 끄트머리인 30가구의 조그만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전국적으로 소문난 장수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마을이다. 한때 모 유업회사에서 TV상품 광고의 배경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는 소백산맥의 분수령인 밀재를 동으로, 남으로는 속리산 자락, 서쪽으로는 화양계곡, 북으로는 쌍곡계곡을 이웃하고 있어 형세를 보더라도 예사마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을의 형상은 소가 누워있는 듯한 우복형을 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장수마을답게 80,90대의 촌로들이 집집마다 있을 정도이다.
대야산은 아직 개발이 안된 상태로 교통편마져 불편해 오히려 태고적 자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산행의 시작은 이평리 부락에서 동쪽으로 삼송초등학교를 지나 약 3km쯤 도로를 따라 들어가게 되면 농바위라는 마을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농바위 마을에서 처음 만나는 다리를 건너 농로를 걷다보면 마을 끝부분에 커다란 느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마을의 역사를 지켜 본 듯한 고목이다. 이 고목나무를 지나 약 10분정도 농로를 따라 들어가 첫 계류를 만나게 되며 이곳에서부터가 산행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계류건너 산길을 약 30분정도 걷게 되면 갈림길에 닿게 된다. 이곳까지는 평탄한 길로 산행에 어려운 코스가 없으며 계류가 등산로 옆으로 흐르고 있고 이름 모를 꽃과 시원한 물소리 그리고 산새소리가 등산객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는 조왕골을 경유 정상으로 가는 코스로 계속되는 바위지대와 급경사 지역이 많으며 군데군데 길이 보이지 않는 코스도 있어 초행자에게는 이 코스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고 오른쪽 밀재방향으로 접어드는 것이 좋다. 밀재로 오르기 전 이곳에서 수통에 물을 채워 두는 것이 좋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계곡의 물은 한 여름에도 손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차다. 밀재 방향으로 약 5분정도 오르며 좌우측으로 산죽군락이 펼쳐지면서 등산객ㅡ이 마음을 푸르게 해 주며 시야를 돌려 왼쪽을 보면 중대산이 우뚝 솟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죽군락과 잡목 그리고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길을 40분정도 가면 밀재에 닿는다. 이곳이 예전에 가은과 괴산을 이어주는 고갯길로 지금은 등산로로 사용되고 있으며 등산로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쉽게 밀재임을 알 수 있다. 밀재에서 북쪽으로는 대야산, 남쪽은 조항산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재 아래로 내려가면 가은으로 향하는 하산길로 떡바위, 월영대, 용추, 가마소, 무당소등 아름다운 경치와 산죽군락, 시원한 계류등 문경의 선유동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대야산으로 가는 길은 밀재에서 북쪽코스를 따라 약 50분정도 가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 바위로 이루어진 대야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탁 트인 전망은 힘들게 오른 등산객의 심신을 시원하게 해주며 사방으로 둘러싸인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선 북쪽으로는 군자산, 장성봉, 희양산으로 이어지는소백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벌바위 마을, 용추골, 피아골, 다래골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둔덕산, 조항산 등을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정상에서 서쪽방향인 조왕골을 통해 농바위로 내려오거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피아골을 경유 월영대, 벌바위로 하산할 수 있다. 그러나 피아골을 경유할 경우 경사가 심할 뿐 아니라 세미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코스도 많아 비가 오거나 기후가 좋지 않을 경우 이 코스를 피하고 밀재를 경유해 월영대 또는 희양골로 내려오는 것이 안전하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난 등산길을 따라 조왕골로 접어들면서 하산은 시작된다. 중간중간 잡목과 바위지대가 나타나지만 별 어려운 코스는 없으며 약 40분정도 내려오면 밀재로 향하는 갈림길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부터는 처음 등산길과 같은 코스로 큰 어려움 없이 하산할 수 있다.
대야산 출발 : 16시 15분
대야산 정상에서 바로 앞의 바위를 넘으면 대간 길이 있다.즉 올라온 길에서 반대 방향의 바위로 가면 된다.바위 밑에는 길이 나 있는데 피아골로 가는 길이다.바위를 넘으면 바로 밑으로 급경사가 나타나고 급경사를 내려가다 보면 바위가 나오는데 이 바위(GPS 좌표 N36 40 02.3 E127 55 56.0 875.6m) 아래로는 약 20-30m 절벽에 가까운 바위가 연 이어진 급경사 구간이 100m가 넘는다.
로프를 의지하며 군에서 배운 유격 훈련이 여기에서 매우 요긴하게 사용된다.여성 대원들 유격 훈련도 받지 않을 텐데 밧줄을 타고 절벽을 잘도 타고 내려 간다.위에서 보면 아찔하다.밧줄을 타고 내려 갈때 밑을 보면 무섭기 때문에 밧줄 바로 앞 바위를 보며 발을 바위와 구십도 유지하며 내려가야 쉽게 내려 간다.
이런 구간이 나타나면 줄을 서야 하기 때문에 산행 속도가 매우 느리다.절벽을 내려 오면 다시 급경사가 나타나 나무를 의지하며 내려 오는데 어느 정도 내려 오니 후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후미가 길을 잘 못든 것 같다.선두를 놓쳐 대야산 정상에서 피아골로 빠지는 길로 들어선 것 같다. 선두 그룹은 거의 촛대재 가까이에서 그 사실을 알고 김 총무 휴대폰을 울려 보지만 휴대폰이 불통이다.
지도를 보니 피아골에서 촛대재로 올라오는 길이 있다.
후미 그룹이 11명이 되니까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어미 소가 송아지를 찾는 기분이다.
촛대재 통과 : 16시 55분
촛대재는 피아골,용추골과 상관평으로 가는 사거리이다.
촛대재에 백두 통과 했다는 글을 땅바닦에 남기고 촛대봉을 향해 출발한다.
촛대봉 도착 : 17시 10분
걱정 어린 마음으로 후미 그룹이 부디 안전하게 도착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촛대봉 정상에서 기다리니 김명순 대원 황급하게 달려 온다.역시 공수부대 중사 출신답게 날렵하게 뒤돌아 온것이다.명순 대원에게 자초 지종을 들으니 아무 생각 없이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을 가다 보니 선두 그룹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길을 잘못들어 가던길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 왔다고 한다.피아골 중턱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 온 것이다.
후미 그룹이 촛대봉에 올라와서 쉬는 것을 보고 출발한다.
촛대봉 출발 : 17시 24분
촛대봉(GPS 좌표 N36 40 12.9 E127 56 30.9 680.2m)을 출발하니 다시 급경사 내리 막길이다 .다시 평탄한 길을 가다 보면 불란치재가 나온다.
불란치재 통과 : 17시 35분
불란치재(GPS 좌표 N36 40 30.3 E127 56 33.2 559.4m)를 통과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연속으로 이어진다.이제는 최악의 상황에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완주 할 수 있다.
흔히 군대에서 훈련을 극한에서 훈련을 받는다고 하지만 여름철의 백두대간 산행은 군대 훈련보다 더하면 했지 못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올라가다 보니 허벅지의 근육이 뭉쳐 걸음이 걸어지지 않는다.
잠시 경치 좋은 바위에서 근육을 마사지 하고 출발한다.
헬기장 통과 : 17시 41분 (GPS 좌표 N36 40 39.8 E127 56 37.7 588.0m)
미륵 바위 통과 : 17시 54분
어느 조각가가 조각 해놓은 것 같이 산 중턱에 있다.미륵 바위(GPS 좌표 N36 40 45.1 E127 56 39.4)를 뒤에 두고 가니 721봉을 통과 한다.
721봉 통과 : 18시 12분
721봉을 통과하니 다시 내리막길이 펼쳐지고 평탄한 길이 조금 있다 다시 오르막이 펼쳐진다.
곰넘이봉(733M) 통과 : 18시 19분
곰넘이봉(N36 40 53.2 E127 56 56.5)을 통과하니 급경사가 펼쳐지고 여기를 내려가니 마지막 암릉(GPS 좌표 N36 40 57.5 E127 57 05.5)이 나타난다.암릉을 밧줄을 이용하여 오르니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헬기장 통과 : 18시 41분
헬기장(GPS 좌표 N36 41 07.1 E127 57 15.4)을 내려와서 조금 걸으니 나무아래서 선두 그룹 하산주를 하고 있다.
버리기미재 도착 : 18시 46분(GPS 좌표 N36 41 13.6 E127 57 14.7)
베낭을 차에 두고 차가운 막걸리를 연거푸 몇잔하니 취기가 올라온다.
취기로 인하여 하산주를 멀리하고 저녀 식사지로 출발한다.
버리기미재 출발 : 19시 11분
벌바위에서 버스를 주차시켜 놓고 용추골 청주 가든 봉고 버스를 이용하여 용추골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봉고를 이용하여 벌바위로 나온다.청주 가든에서 된장찌개의 맛은 일품이었다.
벌바위 출발 : 20시 15분
여름의 해는 길지만 우리의 하루가 길었던 탓으로 어둠이 몰려 온다.
버스는 광양으로 출발하여 덕유산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후 백운 아트홀에 도착하니 자정을 훌쩍 넘었다.
백운 아트홀 도착 : 00시 45분
청주 가든에서 준 냉동된 감을 팀장께서 하나씩 준다.
한 여름에 감을 먹어보니 가을의 기분을 느끼며 하루를 수고 했다는 말로 다음에 다시 볼 것을 약속하며 헤어 진다.
5.산행 소감
백두대간을 4년여에 걸쳐 1차 종주하고 2차 종주에 나선 남희우 대원의
소감 입니다.
6.참여 대원
조정출(팀장),정점덕(등반대장),김종우(총무),강성호(부회장),양동하,김명순,김영창,문창식,박만복,백승구,서승만,심우섭,박석용,유인찬,소재술,이영화,김정석,장일태,최영출,황인영,남희우,성관제,염복균,최영출+@,이영환,김용희,연성주+@,윤주열,주영환,전영선(기록)(이상30명)
7.후기
이번 산행은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를 몇 개 넘어야 하고 암릉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힘든 구간 이었다.더욱이 장마철 날씨라 무더위속에서 산행하기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완주 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그래서 한걸음 한걸음은 삶을 더욱 공고이 하고로 주제를 잡아보았다.그리고 대간 인원이 시작이래 최저 인원이 참가 하였다.모든 대원이 홍보를 하여 더 이상의 인원 감축은 없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