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초유로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은 공화당 참모들의 어이없는 의사결정 과정에 그 원인이 숨어 있었다. 그 결정에 깊숙히 개입해 있었던 매그루더는 워터게이트 사무실에 침입했던 사람이 체포되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어찌하여 우리가 그토록 어리석었던가?’ 한탄하였다.
워터게이트 사무실 도청 아이디어는 대통령 재선위원회 정보수집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던 리디의 것이었다. 그는 백악관의 고급 참모들 사이에서 약간 경박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그의 의사결정 능력에 의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며, 그의 제안은 엄청난 예산을 필요로 했다. 그는 추적이 불가능한 현금으로 25만달러를 청구하였다. 1972년 3월 하순경, 여러 정황에서 닉슨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던 반면, 민주당 전국구위원회 사무실을 침입한다는 계획은 매우 위험하고 실패하면 엄청난 재난의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음에도 대통령 재선위원회 위원장인 미첼과 그의 참모인 매구루더와 라루의 회의에서 리디의 ‘매우 ’ 어리석은 제안이 어떻게 승인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리디의 25만 달러짜리 제안이 그의 최초의 제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최종안이 승인되기 두달 전, 리디는 워터게이트 사무실 도청을 비롯하여 특수장치를 내장한 정보추적 비행선 이용, 강도로 위장한 습격단 조직, 민주당 정치인들을 유혹하기 위한 고급 창녀와의 요트 파티 등을 포함한 100만 달러 규모의 계획을 재선위원회 회의에서 최초로 제안하였다.
그리고 1주일 후 그는 최초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 많은 부분을 삭제하여 50만 달러 규모로 축소된 두번째 제안을 내놓았다. 두번째 제안마저 거절 당하자 그는 최소한도의 규모라면서 25만 달러의 제안을 제시하였고, 마침내 위원회의 승인을 얻게 되었다.
워터게이트 청문회에서 매구루더의 증언은 리디의 제안이 승인된 당시 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애당초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계획에 전혀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계획이 100만 달러 규모에서 25만 달러 규모로 축소되어 제시되자, 그 정도의 규모는 아마도 적절하지 않을까 점차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를 빈손으로 내보내기는 어려웠다. 미첼도 리디에게 무엇인가는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좋아, 25만 달러를 주고 그가 어떤 일을 해내는 지 두고 보자’란 마음에 그 제안을 승인하였다."
최초의 리디의 엄청난 요구에 비추어 보았을 때, 25만 달러라는 액수는 ‘그저 그런’ 정도의 작은 것으로 둔갑되어 양보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어야 매구루더는 리디의 작전이 일보후퇴, 이보전진 전략이란 사실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만일 그가 처음부터 ‘워터게이트 사무실을 침입하여 도청합시다’라고 제안했다면 우리는 즉시 그 제안을 묵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급창녀, 유괴, 습격, 도청 등의 다양한 계획들로 시작하였다… 그는 그 중의 사분의 일만이라도 얻어내면 만족한다는 생각에서 온갖 종류의 책략들을 동원하였던 것이다.”
그 최종안이 승인된 회의에서 상사들의 의사결정에 승복하고 말았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 득보다 실이 많은 위험한 계획에 왜 상사들이 찬성하는 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증언한 라루가 다른 두사람 보다 바른 시각의 소유자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그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 중 오직 라루만이 이전의 두차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치알리니는 어느날 연구실로 가는 길에 어린 보이스카웃 소년단원을 만나 기부금 모금을 위한 서커스 행사티켓을 구매를 요청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소년은 대신에 1달러짜리 초콜릿을 몇 개 사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이마저 거절할 수 없어 초콜릿 2개를 사들고 연구실로 가면서 저자는 심리적 ‘상호성의 법칙’의 중요한 파생 원리를 깨닫는다. 상호성의 법칙은 다른 사람이 베푼 대로 그에게 되갚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같은 논리로 상대방이 양보하면 나도 양보해야 한다는 심리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한 심리전략을 ‘일보후퇴 이보전진’ 전략이라고 부른다.
상점 매장의 판매원들은 거의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제품을 사러 온 고객들에게 먼저 비싸고 좋은 모델을 권하고 이를 구입하지 않으면 적당한 가격의 모델로 하향 조정해 가며 구매 결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S그룹 근무 시절 내게 상당한 재산상 피해를 입히고 사라진 직원이 있었다. 당시 그룹 계열사 신용카드로 즉시 2천만원까지 현금 대출이 되었는데, 급한 일로 자금을 융통해야 하니 이틀 간만 신용카드 대출 좀 빌리자는 것이었다. 이를 거절하니 다시 1000만원 융통을 부탁하고, 이것도 거절하니 500만원이라도 빌리자는 것이다. 이것마저 거절할 수 없어 속으로는 찜찜하지만 융통해 주지 않을 없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나를 포함하여 팀원들과 전 부서 직원들에게 돈 빌리거나 보증을 서 달라고 하여 수억원을 챙겼다. 유명 TC에서 매매했던 파생 친구 주변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는 등 비슷한 사건이 간혹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이 심리 법칙은 사기꾼 세계에서는 상당히 고전적인 수법으로 사용되어 온 것 같다.
일보후퇴 이보전진 전략은 증시의 메이저들에게 애호 되는 전략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주가지수 선물시장이 개장된 이후 주가지수가 한 단계 올라 가기 시작하기 직전에 거의 예외 없이 지수가 잠시 급락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해 온 사람이라면 이 전략이 시장의 메이저들에 의해 얼마나 자주 이용되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가지수를 올리기 전에 일시적으로 하락시키는 메이저들의 행태는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한 저들로서는 당연한 전략이다. 개인들이야 최저점에 사서 최고에 파는 것이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메이저들은 이 전략으로 일정량을 최저점 근처에서 사서 원하는 가격대에 팔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인간에게 매우 강력한 법칙으로 작용하는 일관성 심리에 대해 살펴보자.
캐나다의 한 심리학자는 경마장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연구하던 중,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특정 말에 돈을 건 후에는 돈을 걸기 전에 비해 그 말이 우승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자신이 돈을 건 말이 우승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샘솟듯 넘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갑작스런 심리적 변화의 원인에는 중요한 심리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이 법칙은 우리가 지금까지 행동해 온 것과 일관되게 행동하거나, 일관되게 보이려는 거의 맹목적인 욕구에 자리잡고 있다. 일단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러한 선택이나 입장과 일치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갖게 되며, 그 부담감은 우리가 이전에 취한 선택이나 입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환상적 현상은 파생인에게는 두 가지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경마꾼 심리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이고 낙관적 성격의 소유자가 일단 포지션 진입 후에 자신감이 넘치어 더욱 적극적으로 매매에 임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사람이 첫번째 진입에 성공하여 선순환을 타기 시작하면 일관성 있는 매매로 높은 승률을 올리며 많은 수익을 거둔다. 그러나 첫번째 진입에 실패하여 손실을 입으면 두번째 진입부터는 첫번때 손실마저 만회하려는 욕심에 포지션을 무리하게 끌고 가기 일쑤여서 실패 확률이 높아 진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심리 때문에 손실을 입어도 매매에 정당성을 확보하며 일관성 있게 밀어 붙히다가 포지션이 말라 버려도 게임에서 진 것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포지션 진입 후에 대체로 안절부절못하여 심리적으로 위축된 매매를 하기 십상이 된다. 조금 수익이 나면 포지션을 얼른 청산해 버리고, 손실이 발생하면 극도로 위축되어 고민의 늪으로 빠져 들지만 과감한 매매 결단을 하지 못하여, 적은 수익과 큰 손실의 매매가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파생인들도 일관성의 법칙이 보다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관성의 법칙은 다른 자동화된 반응 유형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세상을 쉽게 살아가게 하는 지름길을 부여하기 때문에 자동화된 일관성은 우리에게 훌륭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어 냉엄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요새에서 완고한 일관성으로 꼭꼭 무장하여 이성을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설득의 심리학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어느날 나는 ‘선험명상법’이란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한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사고 작용의 결과로 드러난 진실을 일관성의 벽 속에 꼭꼭 숨기고 있는지를 여실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강연회 강사는 명상 프로그램을 배우게 되면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되는 기초단계부터,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벽을 통과하는 전문단계에 누구나 이를 수 있다며 프로그램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 강연회에 논리학을 전공하는 동료교수와 함께 참석했는데, 그는 강연이 끝나고 질문시간에 그 강의의 모순점을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조목조목 따져 나갔다. 어떤 대목에서 그들의 논리가 모순되는 지를 정확하게 지적해 냈다. 내 친구의 날카로운 질문에 강사는 매우 큰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쩔쩔매며 질문에 답하려고 애쓰더니 결국 어쩔 수 없었던지 유익한 지적에 감사하며 좀 더 연구해 보겠다는 말로 힘 없이 자기방어를 대신하였다. 나는 친구의 질문에 적절한 방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강연회는 분명한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프로그램에 가입하려고 75달러의 가입비를 내려는 수많은 참석자들로 인해 주최측이 곤욕을 치루는 현상이 일어났다. 주최측의 얼굴에는 기쁨과 함께 당혹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강연회의 모든 순서가 끝난 후, 막 프로그램에 가입한 세 사람에게 강연회 참석 이유를 물었다. 연극 배우인 한 사람은 좀 더 자신 있게 무대에 서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른 한사람은 불면증을 고쳐보려고 참석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사람은 잠이 너무 많아 잠을 줄일 수 있을까 하는 목적으로 왔다고 했다. 그들에게 내 친구의 지적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한 몇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들은 친구의 논리를 너무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내 친구의 논리가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에 오히려 즉석에서 가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그 중 한명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지금 가진 돈이 거의 바닥나 있었기 때문에 오늘 당장 프로그램에 가입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네들이 던진 질문을 듣고서는 마음이 변했어요. 오늘 밤 집에 돌아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다시는 프로그램에 가입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당장 가입해 버린 것이지요.’
갑자기 모든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심각한 개인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법을 열심으로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프로그램에서 발견하였다. 그들은 프로그램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진정으로 믿고 싶어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내 친구의 이성의 목소리가 그들이 발견한 해결책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당황하였다. 논리의 인도에 따라 이성이 가동되어 또 다시 희망이 없는 상태로 가기 전에 서둘러 이성을 막을 방벽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명상프로그램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 더구나 나는 이미 프로그램 가입비를 내지 않았는가? 이제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다.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것에 나는 너무 지쳐 버렸다. 나는 이제 이곳에 편안히 머무르련다.’ 그들은 이미 결정을 내렸으므로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게시판을 통해서 짐작컨데 많은 파생인들이 경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생판에 들어와서 크고 작은 규모의 종자 돈을 날린 뒤 거래에 필요한 최소한의 증거금 정도를 가지고 매매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이고 그보다 못한 진도개 계좌로 매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소위 판돈이 부족한 사람들이 매매 수익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실로 매매에 큰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매매하다 몇차례 실패한 뒤에 어렵게 종자 돈을 마련해서 다시 시작할 때는 통상 고수로 지칭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를 추종하는 매매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혼자서 아무리 해보아도 잘 안되었기에 고수를 따르면 최소한 왕창 깨질 가능성은 없으며, 무엇보다도 심리적으로 안정된 매매를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즉 자동화된 일관성에 따라 힘들이지 않고 매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종자인 고수가 항상심(恒常心)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파생 게임에 임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한, 나는 이 방법이 초보자들에게는 일관성 법칙의 장점이 가져다 주는 유익한 지름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동화된 일관성이 사고의 작용에 방패 역할을 한다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가 생각하지 않도록 만든 다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 장난감 회사는 이 자동화된 일관성의 심리를 판매 전략에 이용하여 엄청난 이익을 챙겨 왔다. 그 회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매력적인 특정 장난감 – 예를 들어 양배추 인형 – 을 아동 프로가 방영되는 시간에 TV를 통하여 집중 광고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게 되어 부모들의 약속을 받아 놓게 된다. 그러나 정작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그 장난감을 일부러 적게 유통시켜, 아이들의 부모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가게를 찾을 때는 이미 품절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부모들은 하는 수 없이 비슷한 가격의 다른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게 된다. 물론 장난감 회사는 다양한 대체품을 미리 충분히 유통시켜 놓기 때문에 시즌 중의 판매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면, 장난감 회사는 시즌에 집중적으로 광고했던 특정 장난감을 다시 광고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갖고 싶어서 더욱 안달이 나서 부모를 조르게 된다.("아빠, 저 장난감 사주기로 약속했잖아요.ㅜㅜ") 부모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장난감 가게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 크리스마스 시즌에 엄청나게 광고를 했지만 정작 가게에서는 구입할 수 없었던 양배추 인형은 자녀에게 그 인형을 사주기로 약속했던 부모들로 인해 25달러짜리 인형의 경매가격이 700달러까지 솟구치기도 했고, 이후 양배추 인형의 판매고는 연간 1억5000만 달러를 상회하였다고 한다.
또한 자동차 판매업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용하는 ‘미끼 기법’이라는 일관성 심리 전략이 있다. 한 예로 영업사원이 고객에게 헌 차를 높은 가격에 사들이는 전략을 사용한다. 고객은 자신의 차가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되는 것에 감동하여 그 영업사원에게 새 차를 사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고객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에 중고차 판매를 담당하는 다른 영업사원이 나타나서 고객의 차가 시세보다 수백달러나 높게 책정되었다며 이의 시정을 요구한다. 고객은 중고차 시세에 무지했던 새 차 판매영업사원의 관대함을 이용하여 수백달러라는 부당이익을 취하려 했던 자신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며 자신의 중고차를 시세대로 파는 것이 공평한 처사라고 여겨 개정된 계약서에 서명하게 된다.
나는 데이 트레이딩을 하는 파생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동화된 일관성에 의한 매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긴장 속에 매매에 임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타고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시장의 온갖 휩소에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스템 트레이딩을 보조 도구로 활용하는 까닭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그러나 유익한 일관성이 있는 반면 어리석은 일관성도 있다. 유익한 일관성은 시장(메이저)의 속임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마인드를 견지하는 경우와 트레이더의 정신적 피로와 혼란을 덜어 주는 자동화된 일관성 매매에 관련된 것이고, 어리석은 일관성은 뭔가 잘못 집었다는 표징이 나타나도 마인드를 바꾸지 못하고 계속 밀어 붙이다가 손실을 극대화 시키는 경우(낙천적이고 승부근성이 강한 사람에게 잘 나타남)와 일관성의 심리를 손상시키는 메이저들의 전술에 쉽게 걸려드는 경우(밑에서 언급)이다.
그렇다면 유익한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어리석은 일관성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심리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는 어떤 대상을 지적으로 인식하기 전에 그 대상에 대한 감정을 먼저 느낀다고 한다. 마음의 핵심부에서 전해지는 순수한 감정의 신호가 있다고 한다. 그 신호는 심리적 일관성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의 울타리를 뚫고 전해오는 왜곡되지 않은 신호로서 이를 감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관성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이는 위장 속의 쓰림과 같은 신체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시장의 세력들과 대하는 파생인들은 날마다 마음의 핵심으로부터 들려오는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순수한 느낌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마치 지상에서 지하 수맥의 흐름(시장 에너지의 흐름)을 감지하는 능력과도 같으며, 보이지 않는 물속의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감지하여 대어를 낚는 능력일 수도 있다. 다음의 가상적 상황에서 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단서를 제공 받기 바란다.
『시장을 롱으로 보고 롱 포지션을 구축해 놓았는 데, 다음 날 아침에 시장이 빠진다. 모니터를 떠나 명상에 들어간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핵심 소리를 듣고자 정신을 집중한다. 한층 안정된 마인드로 자리에 돌아 온다. 모니터를 본다. 콜 미결이 준다. 제반 지표가 상승 신호를 예고한다. 장이 오른다. 11시경부터 역전되기 시작한다. 많이 올랐다. 청산의 유혹이 밀려온다. 제반지표를 확인한 후 모니터를 떠나 다시 명상에 들어간다. 마음의 흔들림이 가라앉길 기다린다.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나선다. 부근 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본다. 저 아래 우리집이 보인다. 더 먼 곳, 뿌옇게 하늘과 땅이 맞 닿는 곳을 바라본다. 하산 길에 사우나에 들러 목욕을 한다.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문득문득 장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만 별로 마음의 조급함은 없다. 장 마감시간은 이미 지났다. 술이랑 안주거리 좀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모니터를 켜 보니 장은 커다란 양봉으로 마감되어 있다.』
파생시장의 메이저들은 일관성의 법칙에 근거한 개인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전략을 시장 상황에 따라 적절히 구사하는 뛰어난 전략가들이다. 그와 관련된 대표적인 전략은 옵션 물고기 살 붙여 먹기 전략(옵션 변동성 가감 전략)이다. 급격한 추세장을 제외하고는 옵션 매도를 위주로 트레이딩하는 기관들에게는 옵션에 붙어 있는 프리미엄이 주 먹거리이다. 옵션 물고기는 장이 다이나믹하게 움직일 때(변동성이 높을 때) 살이 붙기 때문에 시장이 변화 없이 밋밋하게 흘러 물고기 살이 빠지면(변동성이 낮아지면) 적당한 시점에 장을 움직여 살이 붙게 한다. 어차피 죽을 놈이라도 만기일에 매운탕을 끓여 뼈까지 발라 먹을 때 까지는 몇 번이고 살을 찌워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좋은 것이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옵션 물고기 매도 사냥에 나서는 개인들이 많아지면서 기관들은 경쟁자인 이들을 죽이기 위해서 적당한 때를 골라 큰 폭의 변동을 일으키는 전략을 함께 구사한다. 한 때 매도로 일관하여 차근차근 벌어 들인 것을 단 한번에 날려버리고 깡통을 차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그 후 겁나서 매도 사냥을 잘 못하게 되었다면 시장 메이저들의 일관성 심리 전략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즉 메이저들 간에 이해 상충이 없다면, 매도 위주 플레이든 매수 위주 플레이든 일관성을 가지고 매매하는 개인들의 포지션을 죽이는 방향으로 변동을 일으켜, 개인들의 일관성 매매 심리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이다. 이는 앞서 상호성의 법칙에서 언급한 메이저들이 주가지수를 올리기 전에 일시적으로 급락시켜 롱 마인드를 가지고 롱 포지션을 구축한 사람이 견디다 못해 포지션을 청산하고 난 후 다시 지수를 끌어 올리면 한번 포지션을 청산한 사람이 손해를 본 상태에서 다시 롱 포지션을 구축하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는 경우에 정확히 해당된다. 이는 바로 이미 손상된 심리적 일관성 때문이다.
일관성이 강한 사람은 추세장에 적합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니 비추세장에서는 쉬거나 아주 작은 수익률을 목표로 하기를 권고한다. 또한 데이 트레이딩 보다는 포지션 트레이딩을 권하고 싶다.
일관성의 법칙이 갖고 있는 매력은 다른 자동화된 반응 유형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세상을 쉽게 살아가게 하는 지름길을 우리에게 부여한다는 점이다. 일단 우리가 어떤 현안에 대해 마음을 결정하면, 그 결정을 고수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우리는 더 이상 의사결정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눈보라 치는 세상을 헤매고 다닐 필요도 없고 대안들의 장단점을 분석하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일관성은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의 심리적 약점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일반적으로 매우 유익하고 건전한 성격으로 규정되고 있다. 불일치는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적 요소로 간주된다. 끊임 없이 마음을 바꾸는 사람은 변덕쟁이, 혹은 머리가 산만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남에게 쉽게 영항을 받아 자주 의견을 바꾸는 사람 역시 우유부단한 사람, 혹은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이중인격자로 여기는 반면 일관성이 있는 사람을 지성적, 인격적 장점을 갖춘 자로 인정하는 것이 건전한 사회 성격의 단면이다.
일관성은 우리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부여 받고 있다. 그래야 마땅하다. 일관성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을 합리적으로 살아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삶이 뒤죽박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건전한 사회에서 인격적으로 인정 받는 일관성 있는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파생시장에 들어오면, 죽을 쑤게 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은 파생의 세계가 그 만큼 혼탁하고 비정상적이라는 반증이다.
정직할수록 다치기 쉬운 곳, 정상인이 손해보기 쉬운 곳, 권모술수가 상식화 되어 있는 곳, 이 파생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우리는 건전한 정신과 정상적 사고를 담보로 해 놓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한 때 이곳에서 뛰어난 문체와 논리정연한 글로 이름을 날리던, 나와 파생 전업을 최초로 함께 한,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파생 친구가 어느 날 'schizo(정신분열증)'이라는 아이디로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이렇듯 비정상적인 세계에서 전투를 해야 한다면, 전투에 임할 때마다 우리는 정직한 세상의 기준과 상식의 옷을 잠시 벗어 놓고, 적(메이저)의 속임전술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촘촘히 짜여진 심리(心理) 갑옷으로 튼튼히 무장해야 할 것이다.
※ 위 글의 상당 부분은 21세기북스에서 발행한 로버트치알리니 저 '설득의 심리학'에서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