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에서 내려 구시가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문 다리..저 다리를 지나 우측에 있는 성안쪽으로 들어간다.
동문 다리 위에서
견고한 요새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3개의 문 가운데 하나인 동문
동문 아래쪽에 있는 요트 선착장
문을 통과하면 구시가의 플라차 대로로 들어선다.
플라차 대로
이곳 루자광장에서 필레문까지 뻗어있는 300m 대로. 우리 기준에 대로라고 하기에는 어색하지만 성 안에서 보면 가장 넓은 중앙로다. 성채를 쌓기 전에는 바닷물이 흐르는 운하였으나 성채도시가 된 후 바다를 메워 길을 만들었다. 17세기 두 번째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플라차 대로 주변은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들은 두 번째 지진 후 복원사업과정에서 새로 지은 건물들이다. 두 번의 지진을 겪은 두브로브니크는 화재를 막기 위해 건축물을 모두 석재와 대리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플라차 대로는 기념품점·카페·서점·상점 등이 모여 있는 구시가 최고의 번화가다.
플라차 대로에서
오노프리오스 소분수
동문쪽으로 들어오면 종탑앞에 대지진에도 끄떡하지 않은 오노프리오스 소분수가 있다. 오노프리오스가 설계했으며 일직선으로 난 플라차 대로 반대편에도 오노프리오스 분수가 있다.
시청사
시청사 좌측에 있는 종탑은 1444년에 세워진 높이 35m로 1929년에 재건되었다. 시청사 우측에는 크로아티아의 극작가인 마린 드르지치 동상이 있다.
시청사 앞에서
스폰자 궁전과 국립기록보관소
스폰자 궁전은 두브로브니크 경제의 중심지로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은 국가경제의 중추 구실을 했다. 건축 당시에는 전세계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물건을 거래하는 무역센터 기능과 도시민 상인들의 모임장소로 사용되었고, 조폐국도 운영되었다. 16세기에는 지식인들이 과학·문학·예술을 논하는 문화센터로 이용되었다. 1516년에 착공해 1520년에 완성된 건물은 르네상스 양식과 후기 고딕 양식이다. 현재 내부는 고문서와 역사를 기록한 문서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렉터 궁전
스폰자 궁전이 두브로브니크의 경제 중심지였다면 이곳은 정치 중심지였다. 도시에 총령과 행정기관이 생긴 1238년 50세 이상의 귀족중에서 한 명을 선출해 1개월간 총령직을 맡겼는데 재임기간 중에는 렉터궁전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행정기관의 탁월한 외교술은 강대국의 침략과 위협에도 꿋꿋하게 독립과 자치를 수호할 수 있었고,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선진적인 행정·복지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외관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특징인 7개의 기둥과 아치로 이뤄져있으며, 건물 안과 밖은 15세기의 정교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대성당
렉터 궁전에서 바라보이는 대성당은 7세기 비잔틴 양식의 건축물로 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었으나, 17세기 두 번째 지진이 일어난 뒤 1672~1713년에 이탈리아 건축가가 로마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그러나 지금의 건물도 내전 당시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1986년에 복원된 형태이다. 성당안 보물실에는 성 브라이세의 유품과 두브로브니크의 금 세공사가 만든 138개의 귀중한 금 세공품이 보관되어 있다. 그밖에 라파엘로의 「마돈나」와 제단 앞에 그려진 티치아노의 「성모승천」 그림이 있다.
성 브라이세 성당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브라이세를 모시는 성당. 루자광장의 오를란도브 게양대 뒤에 서있다. 1368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나 1369년 화재와 1667년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후 1717년 약 11년에 걸친 공사를 끝내고 지금의 바로크 양식 건물로 완성되었다. 성당의 보물은 입구 위에 있는 두브로브니크 시가의 모형을 들고 있는 성 브라이세 조각상이다. 화재와 지진에서 기적적으로 피해를 입지않은 유일한 유물이어서 두브로브니크의 귀중한 보물이기도 하다. 성 브라이세는 아르메니아에서 온 순교자이자 성인이다. 10세기 도시를 공략하려는 베네치아의 선박이 밤에 위장 침투하려는 계략을 품고 물 공급을 핑계삼아 항구에 정박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성 브라이세가 도시 지도자에게 알려줘 도시를 구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도시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조각의 모습은 지도자의 목격담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오를란도브 게양대
성 브라이세 성당 앞, 루자 광장에 세운 국기게양대. 게양대에는 프랑스 서사시에 나오는 중세의 영웅 롤랑 기사가 조각되어 있다. 롤랑(오를란도브)은 요정들이 만들었다는 명검 뒤랑달(Durendal)을 쥐고 있다. 카를 대제의 조카 롤랑은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과 맞선 당대 최고의 기사로 이슬람 교도로부터 기독교세계를 지켜낸 그의 공로는 유럽 각지에서 크게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의 팔꿈치로 불리는 롤랑의 오른쪽 팔꿈치는 51.1cm로 공화국 시절의 길이 단위인 1엘(ell)에 해당한다.
오를란도브 게양대 받침석 윗면을 자세히 보면 일직선의 선이 그어져 있다. 이 직선의 길이가 51.1cm로 길이 단위인 1엘(ell)이다. 당시 상인들은 여기에 물건을 갖다대고 길이를 확인했다고 한다. 일종의 부정행위 방지용이 목적이었을 듯.
성 브라이세 성당 앞 루자 광장
가게입구에 있는 입간판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적힌 상품 안내판이 있다. 동양 3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길래 이렇게 적어 놨을까...
오노프리오스 분수
성 사비오르 성당 앞에 있는 분수. 척박한 땅에 자리잡은 두브로브니크는 늘 식량과 물 부족으로 고민했다. 오노프리오스 분수는 1438년 20km 떨어져 있는 스르지 산에서 물을 끌어들여 만든 거창한 수도시설이다. 명칭은 설계를 담당한 나폴리 건축가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돔 모양의 지붕 아래 16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각기 다른 사람의 얼굴 모양과 여러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분수대 앞에 있는 성 사비오르 성당
1520년 첫번째 지진 당시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남자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1667년 두 번째 지진이 발생했을때도 교회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아 더욱 성스럽게 여겨졌다. 르네상스 양식의 간결한 외관으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 성당 좌측 옆에는 성벽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필레 문(서) 쪽으로 나가는 출구
성벽 투어는 성 사비오르 성당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시작되며, 올라가자마자 바로 아래로 그림같은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사진은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플라차 대로). 우측 아래에 있는 돔은 오노프리오스 분수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막고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지은 성벽은 오늘날 두브로브니크의 존재를 지켜준 보호막이었다. 사진은 성벽위에서 본 바깥쪽 전경이다.
뒤에 보이는 성은 로 브리예나츠 요새다. 필레 문(서문) 으로 나가면 바로 있다.
10세기에 축성한 성벽은 13·14세기 중에 보완하였고 15세기 오스만투르크의 위협이 있자 방어를 위해 더욱 견고하고 두껍게 증축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곳은 필레 문(서쪽 문) 바깥쪽 풍경이다. 필레 문은 다리를 들어 올려 외부의 침입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짙푸른 바다옆으로 높이 25m, 길이 2km에 달하는 성벽을 걸어서 한바퀴 돈다.
깍아지른 암벽위에 만든 철옹성 두브로브니크 성벽
성벽 안쪽에는 폐허가 된 채 방치되고 있는 곳이 보인다. 유고 내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아직 복구가 덜 된 상태다.
성벽위에서 본 로크룸 섬
로크룸 섬은 국립공원으로 중세 베네딕트 수도원과 식물원이 있다. 섬 한쪽에는 나체해변도 있다고 하는데....
밀감나무가 있는 집
스르지 산 자락 아래 길게 시가지를 둘러 싸고 있는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성벽처럼 중세시대의 도시성벽이 완벽하게 여전히 보존 된 도시가 거의 없기에 일찌감치 197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학교 건물인데 유리창 안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인다.
'꽃보다 누나'에서 배우 이미연이 우연찮게 발견하여 모두들 레몬맥주를 한잔씩 마시던 곳 부자(Buza)카페다. Buza는 크로아티아 말로 '구멍'을 뜻한다. 즉 성벽 구멍에 자리잡은 카페라는 뜻이다.
성벽 전체를 천천히 산책하듯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면 족하다.
부자 카페에 이은 또 다른 절벽에 있는 카페
종 3개가 아직 남아있는 오래된 성당 종탑
성벽위의 마지막 휴게소 및 무료화장실 앞에서. 크로아티아의 공중화장실은 거의 모두 유료화장실이다.
휴게소에서 팔고 있는 기념품들
성벽 투어를 끝내고 유람선을 타기 위해 부둣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