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때 불탄 달성
청일전쟁 때 일본군 주둔
신사 건립, 대구 정기 훼손
항일지사 둘러싼 왜향나무
달성토성복원, 지속하라
달성(현 달성공원)은 대구의 모태다. 그러나 2천년 역사를 지닌 이 모태는 일본의 한반도침략과 오랜 악연을 가지고 있다.
1596년, 선조는 임진왜란 중 달성에 경상감영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듬해 정유재란 때 왜군은 대구를 짓밟고 달성감영을 불태워버렸다. 그로부터 297년 뒤 일제는 또 다른 왜란인 ‘갑오왜란(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일제는 동학난을 진압한다는 명분 아래 헌병대와 병참부대를 달성에 무단으로 진주시켰다. 일본군대는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 이후 일제는 달성에 일왕의 생일을 맞아 황조요배전과 신사를 만들고 공원화했다.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옛 중앙청) 건물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구의 정체성과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서였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황제와 함께 달성에 들렀다. 일설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이때 이토 히로부미를 대구에서 격살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순종황제 앞에서 거사를 하는 건 임금에 대한 예가 아니라고 생각해 이를 철회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신궁 앞에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일명 왜향나무)를 심었다. 순종황제도 함께 식수했으나 강요에 의한 것임은 자명하다. 이때 심은 두 그루의 향나무가 아직 있다. 이후 왜향나무는 달성토성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식재됐고, 지금도 달성공원엔 수백 그루가 남아있다.
광복이 된 후 달성에 덧입혀진 일제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달성공원에 지역출신 독립지사의 비석이 잇따라 들어섰다. 민족시인 이상화시비(1948), 독립지사 왕산 허위 선생 순국기념비(1962),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구국기념비(1963), 동학 창도주 수운 최제우 선생 동상(1964)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신사 건물은 66년에야 없어졌다.
70년 달성토성에 동물원이 개장했다. 영친왕의 아들 이구가 설계한 공원은 도쿄의 우에노공원 신사 입구와 흡사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대구시민의 명소가 됐다. 하지만 요즘같이 애완견 펜션, 장례식장까지 있는 시대엔 세계문화유산급 토성에 동물원을 지을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왜향나무도 이때 대량으로 심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구미에 있는 독립지사 박희광 선생 동상 옆에 심은 왜향나무가 일본산이란 이유로 이식됐다. 또 5월엔 국립현충원이 현충원 안에 심은 가이즈카 향나무 수백 그루를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올여름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스님이 달성에 들러 “이토가 심은 나무를 반드시 없애버리겠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나무가 무슨 죄인가 하지만 사택 정원에 있는 것과 공공장소에 심은 것은 구별해야 한다. 달성은 대구의 자궁이나 다름없다.
달성에 일본군대가 진주한 지 120년, 공원에 신사가 들어선 지 100주년이 되는 올해도 역시 달성공원엔 왜향나무 수백 그루가 독립지사의 동상과 순국·구국기념비를 빙 둘러싸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최제우 선생 순도 150주기다. 10월엔 중구 종로에 선생의 순도비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대구시가 달성토성복원사업을 연기한다는 발표를 했다. 비판여론이 드세자 대구시는 권영진 시장의 공약에 없었던 일이고, 민간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아서라고 해명했다. 동물원 이전이 결정이 나지 않으면 총 92억원의 국비도 올해 안으로 반납해야 한다. 20년간 진행된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사업은 일관성 없는 행정정책 때문에 무산된 것이다. 대구의 자궁을 왜향나무 천지로 버려둬선 안 된다. 국비 반납보다 더 수치스러운 건 대구의 정기와 정체성을 반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박진관 주말섹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