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보다 더 긴 여행기
이종권
1989. 10. 14. 土 나는 지금 반도의 동쪽, 동해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그냥 가고 싶어서. 내 옆엔 아무도 없이 혼자서 갑니다. 얼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행 -- 의당 즐거워야 하리라. 그걸 찾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열차 안을 휘이 둘러봐도 분명히 그렇습니다. 함께 고스톱 치고, 함께 사과를 깎아먹고, 함께 맥주 잔을 비우고 함께 우스갯소리를 나누면서, 즐겁게 갑니다.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왜 저들처럼 엉키고 부대끼는 속에서 즐겁지 못할까요? 나는 왜 지금 열차의 음습한 구퉁이에 쳐박혀 글을 쓰고 있을까요? 고작 이런 모습이 내 모습입니다. 함께 함에 겉돌고, 홀로 감에 적막한, 그래서 그 적막함을 턱도 없는 글로써 메꾸려는, 나는 그런 놈이올시다.
요즘 기차는 칙칙폭폭도 아니고 철커덕 철커덕도 아닙니다. 스무드하게 마구 달립니다. 그러다가 기차는 슬로우 슬로우. 작동을 멈춥니다. 덜커덩. 한차례 가벼운 요동을 칩니다. 섭니다. 갑자기 고요합니다. 사람들의 말소리만 고스란히 남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어느덧, 이번 정차할 곳은 동해, 동해 역입니다. 내리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십시오. 객실 내 마이크를 통해서 메마른 친절의 확성음이 들여옵니다. 1989. 10. 15. 日 아침 일곱 시. 꼬박 여덟 시간을 달렸습니다. 꼬박 선 채로 떨면서 졸면서 어렵사리 보낸 시간입니다. 아무튼 왔습니다. 동해의 아침은 희망찹니다. 여행객의 눈에는. 여기라면 바다가 가까울 텐데. 일단 바다로 가자! 보고 싶다, 바다여! 널푸른 자연이여!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논두렁길을 마주 오는 경운기를 피해 걸으며, 염소똥 질겅질겅 밟으며, 그럴수록 바닷물에 발 담그는 희망을 부풀리며, 간신히 도착한 바다. 아뿔사. 이데올로기는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것으로 성이 안차 사람과 자연 사이를 가로막는 건가? 시뻘건 글씨의 「접근금지」팻말이, 바다를 뺑 둘러싼 그물조망 위에서 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서만 바다를 구경하라는 겁니다. 정 하고 싶다면. 바다는 동물원의 맹수처럼 이데올로기의 철조망 안에 갇힌 채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해변의 고운 모래, 정말 고운 모래입니다. 그리고 이 가을의 그 모래밭 위엔, 지난 여름 놀다간 사람들의 발자국만 무성합니다. 발자국만 남기고 간 사람들. 공연히 부아가 치밉니다. 한 조각 사연이라도 남기고 갈 것이지. 그러면 내가 이리 적적하지 않으련만. 그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 새 발자국을 찍습니다. 맨발로. 한껏 허기진 배에 아침식사는 간단히. 라면을 끓입니다. '맛이라면 이라면'을. 바다와 라면을 눈으로 입으로 함께 마십니다. 라면―언제나 아쉬운 젓가락질. 아쉬운데, 그냥 갈 순 없습니다. 한 잔 해야지. 드라이진 병나발, 크으! 삼척 후진해수욕장의 바다와 작별주를 나눈 후 다음을 기약합니다. 언젠가 네게 다시 돌아오리라. 바다를 뒤에 두고 이제 산으로 갑니다. 계곡으로 갑니다. 두타산의 무릉계곡. 지금 시간은 오전 열시 육분 전. 잊기 전에 해결할 일―퇴로를 확보하라. 어차피 두타산은 동해 역을 거쳐야 하므로 내일 가게될 경주행 티켓을 끊어놓습니다. 퇴로확보 이상무. 운수 좋은 아침입니다. 두타산으로 향하는 버스의 연변에는 하늘거리는 우주가 한껏 펼쳐져 있습니다. 빨강과 하양과 분홍의 천의무봉의 조화. 그래서 사람들은 코스모스를 코스모스라고 부르나 봅니다. 그 다음엔 미루나무 가로수. 그것 없는 사람마저 고향길을 떠올립니다. 으앙! 아저씨 이놈해, 뚝! 버스간에서 흔히 있는 아기와 엄마의 대화입니다. 이 버스는 그런 흔한 버스입니다. 운전사 아저씨는 점잖게 목 늘이며 이노옴. 아기는 거짓말처럼 뚝 그칩니다. 옆에 서 있는 나는 속으로 킥킥거리며 웃습니다. 나두 어렸을 적 꼭 저렇게 당했지, 낄낄낄. 거대한 폭포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폭포는 폭포로되, 바위폭포입니다. 마치 땅으로 메 꽂히는 듯한. 그리고, 올망졸망 이어져오던 산 가운데 그 폭포를 품에 안은 산이 두타산이랍니다. 자, 여기서 내리세요. 투박스러우나 메마르지는 않은 시골운전사의 친절입니다. 두리번두리번. 도마뱀처럼 두리번거리며 산을 둘러봅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산입니다. 심하게 가을을 앓고 있습니다. 벌겋게. 가을 앨러지. 저러다 곧 죽겠지요. 하얗게. 그러나 봄이 오면 다시 살아납니다. 푸릇푸릇. 계곡엔 물이 흐릅니다. 맥없는 줄줄줄이 아니라, 힘없는 졸졸졸이 아니라, 우렁찬 펑펑평의 연속음으로 투명한 물이 흐릅니다. 물아! 물아! 넌 왜 이리 맑니, 자기 속까지 다 들여다보이면서. 피래미 한 마리 키우지 못하게끔. 이왕 맑으려면 파아랗게 맑으렴. 바로 그때입니다. 나는 심해처럼 의뭉스럽진 않잖아요. 물이 말합니다. 나는 물에게 한 방 얻어맞은 겁니다. 비실비실 땀흘리며 산을 올라갑니다. 정상은 싫다, 정상은 싫다. 거긴 너무 혼잡해. 그러면서 나는 산을 올라갑니다. 올라가기 위한 산이므로. 그러나 나는 압니다. 후들후들 휘청대며 산을 내려올 것을. 내려오기 위한 산이므로. 한적한 골짜기, 아무도 없는. 무릉의 개울은 저 꼭대기 어딘가부터 미끄럼질 치듯이 바위를 타고 흐르더니 바위의 끄트머리에 와서는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폭포. 그 모습이 너무나 맘에 들어 거기에 자리를 잡습니다. 시간은 두 시 십분 전. 점심을 먹어야지. 아, 먹기 전에 씻어야지. 나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얼굴을 닦고 머리를 감습니다. 말이 물이지, 얼음입니다. 물기가 날아가면서, 내 온도들 다 앗아갑니다. 마치 알코올처럼. 으슬으슬 덜덜덜. 밥은 기가 막힌 성공작입니다. 누룽지 하나 없이. 저녁밥은 안 하려고 2인분을 지었으니 두 끼니는 거저 먹는 셈입니다. 메뉴는 카레라이스, 김, 미나리 김치, 총각김치, 라면, 짜장과 함께 이번 여행길 식사메뉴의 전부입니다. 아침은 맛보다 허기로 먹었는데, 점심은 허기보다 맛으로 먹습니다. 저녁은 폭포 물에 말아먹을 작정입니다. 먹었으니 피워야지. 담배 물고 바위에 드러누우니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여긴 무릉이지요. 금상첨화의 맥주 한 깡. 서늘한 개울물에 담가두었더니 손이 다 시립니다. 최고의 맥주안주는 김과 오징어.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산 좋고 물 좋고 배부른데, 금준에 미주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내가 어제까지 어디서 뭐하던 놈인지 까맣게 잊어버릴 지경입니다. 나는 어느틈 입에 침 튀기며 가수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네 시 반. 저녁 아홉 시 반 차를 놓치면 낭패이므로 일찌감치 저녁을 해결하고 하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있을수록 있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야돼, 가야돼, 가야돼. 안돼, 안돼, 안돼. 두 명의 내가 치고 박고 싸웁니다. 타협합니다. 한 삼십분만 더 있다 가자. 앗! 땅거미. 산은 금방 어두워지는데.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등산객이 눈에 뵈지 않습니다. 앗차 싶은 생각에 저녁밥은 허겁지겁 마셔버립니다. 개울물과 함께. 귀한 밥을 버릴 순 없으므로. 동반자도 반찬도 없이 밥을 물말아 먹으려니 공연히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서글플 시간이 없습니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지면. 덜컥 겁이 납니다. 뜁니다. 내리막길.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아직 해는 있으니 절망하긴 이릅니다. 산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니 낙관 역시 금물입니다. 희망과 절망의 뒤범벅. 새까만 절망보다 겁이 납니다. 그러기를 한 시간 남짓. 먼발치로 등산객이 보입니다. 저 사람만 따라 내려가면 안전합니다. 휴우. 저녁 아홉 시 반. 잠 한숨 못 잔 채 산으로 바다로 쏘다닌 나는이윽고 파김치가 되어 열차에 오르자마자 혼수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그 달콤함이란. 1989. 10. 16.月 밤 열두 시, 영주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타고 새벽 네 시 경주역 도착. 이게 몇 년만의 입성인가. 여길 떠났다가 여기로 돌아오는데 칠 년이 걸렸습니다. 오늘 볼 경주는 그때의 경주보다 칠 년이란 세월의 더께가 더 앉아 있으리라. 어린 시절에 본 고색의 경주보다 칠 년만큼 더 창연하리라. 그게 아니라면, 칠 년 만치 성숙해진 눈으로 신라를 느끼리라. 아침은 역광장의 어둠 속에서. 식빵과 잼을 먹습니다. 싸늘한 새벽공기에 오들오들 떨면서. 새벽 다섯 시. 이제나저제나, 불국사행 버스를 기다립니다. 아줌마, 불국사 가는 버스는 몇 시쯤 다닙니까? 한 여섯 시나 돼야 다녀요. 그럴 때 두 아가씨가 가게로 들어옵니다. 각각 목에 건 니콘 카메라가 돋보입니다. 석굴암 가시죠? 예, 그런데요. 거침없이 물어오는 기세에 눌린 듯이 대답합니다. 저희하고 삼분의 일씩 부담해서 택시 타고 안 갈래요? 엉겁결에 그들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여행에 이골이 난 듯, 매사에 익숙하고 용감합니다. 일출전의 경주 역은 택시로 붐빕니다. 아저씨, 불국사로 가주세요. 여명의 경주는 산뜻합니다. 관광의 도시답게, 뻥 뚫린 큰길은 휴지조각 하나 없이 말끔합니다. 확실히 경주는 다르구나. 중앙분리대를 타고서 정이품송처럼 생긴 소나무들이 양쪽 도로 위로 그윽하게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은은한 솔 냄새가 눈에 보입니다. 불국사 입구 다 왔어요. 택시로 석굴암까지 가려면 요금이 여기까지보다 두 배나 더 나오므로 일단은 내립니다. 그 아저씨두 참. 우릴 잘 꼬셔보지. 융통성 없는 택시 운전사를 탓하면서 그들은 다음 조치를 취하기로 합니다. 마침 하얀 승용차 한 대가 달려옵니다. 한 아가씨가 찻길로 나가 손을 흔듭니다. 승용차가 저만치 가다가 멈춥니다. 됐다. 뛰어요. 셋은 승용차를 향하여 냅다 뜁니다. 아저씨, 석굴암 가는데 좀 태워주세요. 일출 보러 왔거든요. 남자가 운전하는 젊은 부부입니다. 그래요. 싱글싱글 웃으면서 승낙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들의 수완에 내심 놀라면서 바깥경치를 구경합니다. 일출 직전의 암청색 풍경. 그 쏴한 공기. 해가 뜨면 거기서 새로운 오늘이 펼쳐질 것입니다.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승용차의 안락한 진동을 느끼며 토함산을 오릅니다. 왼편은 산등성이, 오른편은 계곡입니다.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관광안내역까지 도맡습니다. 불국사 입구에서 석굴암까지의 도로는 백 팔 구비를 거슬러 올라가는 관광도로랍니다. 부처님을 보기 위한 번뇌의 숫자일까? 백구도 백 칠도 아닌 백 팔을 채우기 위하여 아저씨는 치열한 손놀림으로 핸들을 이리저리 꺾습니다. 승용차는 급경사의 오르막 구비를 곡예사처럼 타오릅니다. 아저씬 어디서 오셨어요? 지금 대구에서 오는 길이에요. 대구엔 볼만한 곳이 있나요? 있지요. 어딘데요? 우리 집 화장실. 하하하. 그 와중에 아저씨는 농담도 잘합니다. 나와 동행한 아가씨는 한술 더 뜹니다. 거 참 절경이겠네요. 한번 가봐야겠어요. 호호호. 너스레를 떱니다. 석굴암 입구. 덕분에 편안히 왔어요, 아저씨. 원, 별말씀. 잘 가요. 맞춘 듯한 일출시간. 석굴암에 갔다 와요.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우린 일출만 찍으면 되요. 내게 말합니다. 나는 표를 끊고 그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잔뜩 심술을 피워 해는 구름의 터진 틈새로 몇 가닥 가냘픈 햇살을 간신히 삐죽삐죽 내밀 뿐입니다. 카메라가 가장 싫어하는 날씨입니다. 그럼 갔다 올께요. 석굴암 진입로를 들어섭니다. 큰 부처님. 예술적인, 아니 예술 그 자체인. 설레는 마음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 탓인지, 길은 장판을 깔아놓은 듯이 매끄럽습니다. 길 위로 떨어진 낙엽은 어수선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그냥 있기만 할뿐입니다. 발길은 한결 조심스럽습니다. 노오란 한복을 입은 아낙이 벌써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 길인 모양입니다. 진입로의 거리는 오 백 미터. 그다지 먼 길이 아닙니다. 길지 않은 이 길이 구비 구비 토함산 중턱을 휘감고 있습니다. 다음 번 구비에는 석굴암이 나오겠지, 나오겠지, 나오겠지. 한 구비 한 구비를 돌아설 때마다 조바심은 한층 한층 높아 갑니다. 길은 굽이칩니다. 그러더니 이윽고, 사원건물과 함께 널찍한 마당이 나옵니다. 왔구나. 햇빛은 구름에 배어 저 멀리 동해바다의 하늘은 오렌지 빛 아침노을이 물들여져 있습니다. 마당 한 귀퉁이에 감로수가 흐릅니다. 한 바가지 남김없이 마십니다. 아, 달다. 감로수는 안 달아도 답니다. 석굴암에 오르는 계단 앞. 나는 망설입니다. 그냥 불쑥 들어갈 순 없다. 마음을 가다듬자. 나는 저절로 숙연해지고 있습니다. 위대성 앞에서 진심으로 생기는 마음입니다. 천천히 계단을 오릅니다. 하나 하나. 두 손을 모으고. 석굴암. 부처님은 여러 여래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리벽 속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누구나 가까이 하고픈 부처님. 훼손되지 말아야 할 문화재. 이런 줄 몰랐던 건 아니지만, 막상 보고 나니 잠시 어리둥절합니다. 유리벽 앞의 향로. 꺼진 채 놓여 있습니다. 아니, 켜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원래 향이란, 부처님의 은덕과 같아서 은은한 것이므로. 가만히 숨죽이고 부처님을 뜯어봅니다. 지긋이 감은 두 눈은 안 봐도 볼 수 있는 혜안 탓일까? 미소인 듯 아닌 듯, 가볍게 다문 입술. 살진 턱. 보드라운 곡선을 타고 흐르는 몸매. 큼직큼직한 수족. 부처님은 그렇게 가부좌를 틀고 천년을 앉아 있습니다. 머리 뒤의 후광을 제외하면 그저 사람의 모습입니다. 부처님은 사람입니다. 사람이어서 사람이 아닙니다. 부처님입니다. 그건 부처님이, 진정한 사람이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중생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닙니다. 부처님 앞에서 거짓 사람입니다. 신자가 아닌 나는 이 큰 부처님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어정쩡하게 선 채로. 뭔가를 표시해야 할텐데. 바로 그때입니다. 거기 향로에 향을 세 번 넣고 부처님께 삼배하세요. 곱디고운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옵니다. 석굴암 안에서 참배객을 맞는 여인입니다. 앉아서 나를 죽 지켜보고 있었나봅니다. 삼배를 어떻게 하는 거죠? 그녀는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으며 참배하는 방법을 몸짓으로 일러줍니다. 이렇게 세 번하세요. 나는 부처님 앞에서 가장 공손하게, 오래오래 허리를 숙입니다. 부처님의 인연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실은 불교에 대해 알고 싶었거든요. 내가 묻습니다. 우선은 진심으로 믿어야지요. 불법을 알려고 하기 전에 마음으로 믿어야 돼요. 불법은요,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거든요. 우리가 불상에 절을 하고 에불을 드리는 것은요, 우상숭배가 아니라 불법에 대한 믿음의 표시랍니다. 매우 잔잔한 그러나 뜨거운 목소리입니다. 저는요, 불법이 좋아서 여기로 들어왔어요. 불법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두 눈은 어느덧 내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로 몰입하고 있습니다. 불법은 너무 오묘해요. 젊은 사람들은 불교를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러나, 불교만큼 실천적인 종교도 없어요. 불법을 익히고 공부해서 그 시대의 정치·사회에 적용시켜야지요. 기독교에서는 왜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라는 말이 있잖아요. 용서를 뜻하는 말이겠지요. 불교에서는요, 오른 뺨을 맞으면, 그 맞은 사실조차 잊어버리라고 가르칩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건 이미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불교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더욱 철저하지요. 그녀의 설법을 들으며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마음속으론 아미 그녀의 신심에 깊이 고개 숙이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백합니다. 솔직히 저는 단순히 지식적인 측면에서 불교에 접근하려고 했거든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큰 죄악을 지을 뻔했던 것 같아요. 죄의식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그녀는 안타까운 듯 말합니다. 다만, 몸을 맡기고 흠뻑 믿어보도록 하세요. 이야기 도중 스님 한 분이 들어옵니다. 그녀와 스님은 합장을 하고 서로에게 허리를 숙입니다. 아침 예불을 드리러 온 스님이랍니다. 스님은 유리벽의 문을 열고 들어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소리 없이 절을 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흡사 바람 같은 절입니다. 분명 서두르는 몸짓은 아니건만 무릎 꿇고 엎드려 고개 조아리는 과정이 한 동작으로 보입니다. 친구하면 되겠네요. 속명은 배 영희. 법명은 배 명인성(明印性). 이름을 교환한 우리는 친구입니다. 오늘 못다 채운 만남은 내일 다시 만남입니다. 경주 가끔씩 오세요. 작별인사를 나누고 암자를 나섭니다. 기다림의 올바른 짝은 서두름입니다. 종종종종 걸음을 다그칩니다. 그새 누가 낙엽을 쓸었나봅니다. 우린 일출만 찍으면 되요. 사진보다 선명한 목적 하나로 밤새워 이곳에 온 그들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구도를 마음에 그리면서 구름 낀 하늘마저도 사각의 틀 안에 끼워 맞춥니다. 잘 보고 왔어요? 하면서도 끊임없이 셔터를 누릅니다. 이제 막 심미안 기르기 훈련을 시작했다는 사진 초보자. 마음은 결코 프로 못지 않습니다. 하등 사진에 도움 안 되는 햇볕 없는 날씨가 그들은 안타깝습니다. 속상해 죽겠네. 스산한 날씨를 투정부립니다. 불국사도 갈 거죠? 불국사를 향하여 토함산의 산길을 내려갑니다. 산길 치곤 굉장히 편안한 길입니다. 석굴암에서 뭘 느꼈어요? 내게 묻습니다. 글쎄요, 내가 정말 그렇게 느낀 건지 아니면 내 선입관을 석굴암의 부처님에게 끼워 맞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처님은 사람의 이데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가장 사람다운 사람, 그것이 부처님이 아닐까요? 정말이지 극성이 따로 없습니다. 그들은 눈에 띄는 모든 아름다움을 죄다 담아가려는 듯 나무건 돌이건 마구 눌러댑니다. 아낌없이 찍습니다. 보다 나은 장면을 위해선 길바닥에 기꺼이 주저앉습니다. 보기 싫지 않은 극성입니다. 부러운 정열입니다. 불국사. 천왕문을 들어섭니다. 곧 연못이 나옵니다. 연못 건너 다람쥐 한 마리. 뭐가 그리 바쁜지 바위틈을 쏘삭이며 재빨리 뛰어다닙니다. 찰칵. 사진기에 여지없이 잡힙니다. 땅으로 뻗친 솔가지. 고목의 썩은 틈새. 새빨갛게 하늘거리는 단풍 한 잎. 빛 바랜 기와지붕. 처마 끝에 달린 풍경. 단청. 모두가 그들의 작품을 위해 있는 듯합니다. 사진을 찍는 건 그들뿐이 아닙니다. 불국사의 객이라면 누구나 한 대씩 걸고 다니는 사진기. 관광객들은 청운교 백운교를 그냥 지나질 않습니다. 대웅전 앞뜰의 동·서로 나란히 선 다보탑과 석가탑. 나는 석가탑이 좋습니다. 지금은 비록 천년의 풍파 탓에 군데군데 삭은 자국이 역력하지만, 정교하게 쪼은 석공의 솜씨가 좋습니다. 예술가의 솜씨는 예술가의 마음. 번듯번듯 세련스런 그의 마음이 좋습니다. 안 꾸민 듯 화려한 극치를 달립니다. 아저씨,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관광객들은 향내나는 신라의 냄새를 즐기도록 나를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예, 그러시죠. 나도 사진을 찍습니다. 누구네 집 앨범을 들춰봐도 한 장씩은 꼭 꽂혀 있을 그 사진을. 앨범 속 추억의 한 장으로 고이고이 남기도록 정성껏 담아줍니다. 탑이 다 나오게 다리는 짤랐어요. 예, 잘 하셨어요. 고맙습니다. 경주하면 불국사. 불국사 하면 다보탑과 석가탑. 딱 떠오르는 이미지. 고교시절 한번쯤은 의례껏 들르는 곳. 그래서 오히려 외면 받는 곳. 누가 그 넋을 제대로 느꼈을까. 텅 빈 유명세. 피상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김대성의 신심은 한낱 스쳐 지나는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일까. 관광도시 경주는 그것이 슬픕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덩치만 컸지 어린 티가 줄줄 흐르는 한 무리의 일본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재잘재잘 지껄이며 사원을 누빕니다. 저 아이들은 과연 무얼 느끼고 갈까? 슬슬 내려가 볼까요. 못다 느낀 신라를 공허하게 되새기며 천천히 산을 내려갑니다. 정오를 지나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찌푸린 하늘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부슬부슬 비를 뿌립니다. 뿌리 없는 족속들은 이런 경우 가장 난감합니다. 그들도 사진 찍기는 엄두조차 못 냅니다. 일단 타고 봅시다. 이미 임의의 일행이 된 우리는 경주 시내행 버스를 탑니다. 단지 비를 피하려고. 다행히도 견딜만한 가랑비입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잠에 떨어집니다. 나와는 상관없이 버스는 내달립니다. 시원스레 뚫린 경주의 말끔한 도로를. 여기서 내려요. 나를 흔들어 깨웁니다. 음음. 여기가 어디예요? 비는 가늘지만 여전합니다. 배가 고픕니다. 시내는 밥지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어디 가서 점심을 지어먹어야 할텐데. 다시 버스를 탑니다. 밥지을 곳을 찾아서. 버스는 보문단지를 훨씬 지나 지도에도 없는 촌으로 촌으로 달려갑니다. 한 군데 맘에 드는 장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커다란 호수를 낀 농촌마을. 호수는 경주시의 상수원이라는 안내판의 설명입니다. 암곡동. 모르긴 몰라도 처음 듣는 마을입니다. 경주에 이런 데도 있었나? 버스는 떠나고 끝없이 이어진 일차선 아스팔트 포도 위로는 어쩌다 띄엄띄엄 오토바이나 승용차가 휙 하니 지나갈 뿐 그림처럼 조용한 정적소리만 들립니다. 호수로 흘러드는 시냇물. 냇가 위로 조그만 다리 하나. 고개 숙인 황금벌판. 농사를 마친 노적가리. 빈터마다 꽉꽉 들어찬 억새풀, 강아지풀, 잡초들. 올망졸망한 기와지붕들. 호수와 마을을 감싸는 산, 산, 산. 풍경화 같은 마을입니다. 세우(細雨) 중에 다리를 건너는 할머니는 차리리 한 폭의 동양화입니다. 불국사·석굴암만 떠오르는 경주 아닌 경주입니다. 저기 저 건물로 들어갈까요. 폐허가 된 우뭇가사리 공장이라는 할머니의 설명입니다. 지붕은 숭숭 구멍이 뚫려있고, 담쟁이덩굴이 새파랗게 공장 벽을 타오르고 있지만, 그런 대로 아늑한 공간입니다. 식사준비는 셋이 함께. 아무래도 맞드는 백짓장이 가볍긴 가볍습니다. 점심식사의 특별메뉴는 라면김치찌개. 김치를 듬뿍 넣고 물을 끓인 후 라면을 풀어 익힌 임기응변의 음식입니다. 허기는 가셨는데 몸이 으스스합니다. 으스스한 날씨 탓입니다. 모닥불 피우죠, 우리. 쓸만한 장작 감이 여기저기 무심하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지푸라기와 나무쪼가리를 주워 모읍니다. 나무를 들추면 그 밑에서 지네, 돈 벌레, 쥐며느리 등속이 쏟아져 나옵니다. 찔끔. 예쁘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곧 온기를 전합니다. 우중충한 폐허의 공장 안을 온기는 따뜻하게 감돕니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단, 여행자는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여행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고해스런 인생의 머나먼 여행길을. 나의 인생 나의 문학. 그들의 인생 그들의 사진. 어느덧 하나로 어울어집니다. 새벽에 처음 만나 한솥밥을 지어먹고 가장 솔직한 자기를 보이며 서로에게 감탄하는 것은 신기루처럼 감미로운 여행의 오아시스입니다. 그러나 오아시스는 한정 없이 머무르는 곳이 아닙니다. 또다른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곳입니다. 슬슬 일어설 시간입니다. 여행의 마지막날 그들은 매우 흡족한 표정입니다. 짐을 꾸리고 버스에서 내렸던 그 길에 다시 섭니다. 하늘이 신기하게 개어 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지나다니는 버스길. 버스는 방금 전에 떠나고, 길은 한적하기만 합니다. 이 길. 마냥 걷고 싶습니다. 이 정적. 마냥 노래부르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다림을 한껏 즐기고 있습니다. 세월아, 네월아. 나는 가노라. 승용차 한 대가 유유히 달려옵니다. 손을 흔듭니다. 요술처럼 멈춥니다. 탑니다. 고맙습니다. 자기 것을 베푸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경주 역 다시 도착.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잘 가요. 나는 부산으로. 그들은 서울로. 만남은 가는 선과 오는 선의 교차입니다. 부산행 무궁화호. 두터운 심야의 어둠을 달리던 통일호보다 한결 경쾌하게 초저녁의 땅거미를 뚫고 갑니다. 어제를 먹으며 오늘을 사는 신라의 옛 도읍, 관광도시 경주여! 내일은 제 2기 서라벌 시대를 보고싶구나. 나는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자갈치시장의 풍속도를 잊지 못합니다. 아줌마. 멍게 얼마예요? 좀 많이 주세요. 구매자의 알량한 욕심입니다. 많이 드린 거요. 판매자의 상투적인 맞장구입니다. 부산대학 앞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합니다. 밥을 지어먹은 후 한잔의 맥주에 멍게를 씹습니다. 음, 이 감칠맛! 1989. 10월 17일 火 자정이 막 지나서 잠자리에 듭니다. 푹 자둬야겠다. 내일 또 밤차니까. 눈을 뜨니 아침 아홉 시.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이불 밑에 엎드려 편지를 씁니다. 서울의 친구와 석굴암의 여인에게. 간단한 라면으로 아침 겸 점심을. 총각 결혼하면 집사람이 아주 편하겠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내게 주인아줌마가 불쑥 건네는 말입니다. 나는 쑥스러워서 얼른, 집에선 이런 거 안 해요. 얼굴을 붉힙니다. 아줌마는 여전히, 아이고, 저 깔끔하게 닦는 것 좀 보소. 오전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후다닥 지나갔습니다. 부산의 진국은 역시 태종대. 태종 왕의 행차 이후 그렇게 불리우는 바닷가 절벽. 지금은 하아얀 등대가 저 머언 바다의 뱃사람들에게 오 백년전 왕의 행차를 알리고 있습니다. 태종대 입구를 들어서자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옵니다. 소나무가 빽빽이 찬 구릉을 사이에 낀 오두막과 내리막. 무작정 윗길로 오릅니다. 한 무리의 꼬마들이 줄맞춰 내려옵니다. 유치원 소풍날. 선생님은 병아리. 학생은 삐약 삐약. 병아리! 삐약 삐약! 그들은 병아리의 재잘거림을 끝없이 외우며 내려갑니다. 소나무 틈새로 저 아래 바다가 보입니다. 보일락 말락 점처럼 작은 배들이 수평선 밑으로 떨어질세라 위험스레 항해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청푸른 하늘 아래서 노오란 햇살을 받아 금빛 물 비늘을 번뜩이며 한 꺼풀씩 한 꺼풀씩 육지로 달려듭니다. 하아얀 피를 머금으며 갈갈이 찢어집니다. 장렬하게 죽습니다. 다시 쳐들어옵니다. 다시 죽습니다. 바다는 태고 적부터 그렇게 죽어가면서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저 앞에 세 남자가 걸어갑니다. 다가섭니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어디가 나오죠? 이 길은 순환도로거든예. 그러니까 계속 가면 태종대 입구가 도로 나옵니더. 아. 그렇습니까. 근데 어디서 오셨습니꺼? 서울서 왔습니다. 동해로 해서 경주로 해서 여기 온 거거든요. 내일은 또 목포로 가요. 그래예? 와! 진짜 멋있네예. 우리랑 오늘 같이 다닙시더. 그들은 뱃사람입니다. 스페인의 앞 바다 대서양에서 고기를 잡던. 곧 등대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닷가입니다. 바다의 병사들이 기암괴석으로 솟은 갯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산화하는 바닷가입니다. 그리 가길 잠시 미루고 전망대 쪽으로 내려갑니다. 아래로 곧장 까마득히 파도치는 갯바위가 내려다보입니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낍니다. 뛰어내리고픈 충동과 함께. 잠깐!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오. 자중을 요구하는 빨간 글씨의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자살바위. 그 앞 바다로 유람선 한 척이 유유자적, 웅웅거리며 오륙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승객들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듭니다. 밝은 표정들이 멀리서도 느껴집니다. 작은 쾌속정이 잔잔한 바다에 날카로운 스크루 자국을 내며 유람선을 순식간에 따라잡습니다. 바다는 얼마나 아플까. 잠시 눈살을 찡그립니다. 쾌속정은 벌써 멀리 도망쳐버렸습니다. 한잔 해야지예. 바닷가로 내려갑니다. 계단이 굉장히 가파릅니다. 바닷가에선 갯바위 위에 장판을 깔고 술을 팝니다. 뱃사람들과 술을 마십니다. 서울은 진로, 대구는 금복주, 마산은 무학, 광주는 보해, 강릉은 경월, 목포는 삼학, 이리는 보배, 제주는 한일, 군산은 백화, 그리고 부산은 선 소주입니다. 나는 선이 최고라예. 역시 부산 사람답습니다. 산낙지, 해삼, 멍게, 소라 모듬회 한 접시 놓고 파도방울 맞으며 선 소주를 한잔씩 꺾습니다. 반갑심더. 이래 만나니 진짜 좋네예. 술자리는 늘 반갑습니다. 집을 떠나봐야 집 그리운 줄 안다고예, 남의 나라 바다 위에서 일년 넘게 지내보니까 진짜 그렇대예. 정치하는 놈들이 여기서 제아무리 개판을 쳤어도, 역시 와보니까 내 나라가 좋고 내 집이 좋심더. 내 집의 귀함을 몸으로 아는 사람들. 애국자는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그놈의 해양대학을 떨어지는 바람에… 지금은 비록 한 번씩 좌절하여 자칭 말단 뱃놈으로 고생고생을 다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 고생을 딛고서, 멋들어진 파이프를 입에 물고 집채만한 파도를 유유히 헤쳐나가는 큰 뱃사람이 되어 있을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정말 반가웠어요. 서울 한번 오세요. 태종대 입구에서 주소와 악수를 교환하고 국제신문사로 공중전화 숫자판을 누릅니다. 예. 형이세요? 전데요, 지금 태종대 앞에 있어요. 그래? 세월 좋구나. 그렇죠, 뭐. 여기까지 왔는데 형을 안 뵙고 갈 수 있습니까? 그래. 퇴근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이리 와서 구내다방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예. 있다가 뵙겠습니다. 법일동과 부산진역 사이에 자리잡은 국제신분 사옥을 물어 물어 도착해서 일층 구내다방의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마침 손님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서 오이소. 다방 아줌마가 반갑게 맞습니다. 검은 드레스에 단발 스트레이트 파마머리의 세련스런 아줌마입니다. 누구 찾아왔소? 구내다방은 나 같은 손님이 많은가봅니다. 예, 경제부 편기자님이 제 대학 선뱁니다. 그래예? 그분 참 신사지예. 근데 무슨 학교 다닙니꺼? 외국어대학교요. 학교 영자신문사 선배시죠. 그럼 임수경이랑 같은 학교네예? 네? 네. 같은 학교니까 잘 알겠네예. 하나 묻겠는데, 임수경이를 학생들은 어찌 생각해예? 글쎄요. 잠시 망설입니다. 가령 한 마리의 새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새를 쥐라고 이름 붙였다 가정합니다. 그럼에도 그 쥐는 여전히 날아다닙니다. 그 이름에 구애받음 없이. 사람들은 바보처럼 그 새를 계속 쥐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별로 바보 같은 일도 아닙니다. 사람 역시 새의 날아다님에 구애받음 없이 쥐라고 부를 테니까. 다시 한 마리의 새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를 몹시 좋아합니다. 그들은 새를 보호하러 다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를 몹시 싫어합니다. 그들은 새를 잡으러 다닙니다. 한 마리의 새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새는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슬픈 일이건만,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싸웁니다. 사물에 대한 가치관은 행동을 자아내고, 행동은 행동끼리 서로 부딪칩니다. 갈등의 우리 사회. 어떤 시대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새가 번성합니다. 어떤 시대는 새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새가 죽어갑니다.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는 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욕을 먹고 심지어는 얻어맞기까지 합니다. 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는 그 반대입니다. 핍박받는 자유. 자칫 손가락질 당할지도 모르는데 구태여 내 색깔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새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옳은 길은 하나리라. 진리는 하나다. 나의 색깔이 옳은지 그른지 당장은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을 속이지 않은 솔직함은 언제나 떳떳한 것. 그것으로 나는 한 번을 살고 한 번을 죽으리라. 결심이 섭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머리를 뽑고 나선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제가 임수경이와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 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없구요, 또 다른 학생들이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역시 잘 모르거든요. 어디까지나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저 또한 통일을 원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임수경의 북한방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예? 어찌 그리 생각합니꺼? 아줌마의 눈초리가 자못 흥미진진합니다. 남북을 막론하고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 통일 아닙니까. 임수경의 북한 방문이 실질적으로 남북통일에 어떤 도움을 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통일의 꽃이니 이적행위니, 가타부타 말도 많습니다. 한동안 온 나라가 그 문제로 들끓었지 않습니까. 저는 그 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행위의 시비를 떠나서 통일의 당위성을 다시금 일깨웠다는 그 점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렇게 통일을 갈망하는 한편에는 국민들의 그러한 관심을 못마땅히 생각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가진 자들. 돈과 권력을 양손에 움켜진 계층. 그들은 생리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니까요.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죠. 그들의 가혹한 탄압을 무릅쓰고 북으로 들어가 그쪽 젊은이들과 함께 통일을 노래했던 사람이 임수경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자나깨나 부르는 그 노래가 공허한 구호로 퇴색하여가는 민족분단 45년의 이 시점에, 이 땅의 통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보게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 바로 임수경의 북한방문이라는 생각이지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예. 그러면서도 아줌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그런데, 신문 사설을 보니까 학생 이야기처럼 안돼 있고 맨 비난조로 쓰여 있던데, 그건 또 왜 그래예? 신문은요, 하나의 제도잖아요. 원래 어느 사회의 공식적인 제도라는 건 시대의 영향을 받고 계층을 대변하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신문은 특정 시대의 의견을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에 맞춰서 말하는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이지, 진리를 이야기하는 매체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일제 때만 해도 그래요. 독립운동가를 가장 심하게 매도했던 것이 뭐였나요? 신문 아닙니까? 친일주의자의 손아귀 안에서 만들어지던 신문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제게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신문은 다 틀리고 제가 다 옳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임 수경의 문제는 먼 훗날 시비가 가려지겠지요. 신문의 논조가 옳게 판명될 수도 있어요.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고요. 오늘을 사니까 내일을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요, 신문을 읽되, 그것을 성경책처럼 받아들일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죠. 학생이 말도 잘 하네예. 저녁 아직 안 먹었지요? 이거 한잔 드이소. 아줌마는 시키지도 않은 율무차를 진하게 한잔 타서 내가 앉은 탁자에 올려놓습니다. 어이구, 형! 오랜만입니다. 별일 없죠? 그래, 왔구나. 네 형수가 집에서 밥 해놨을 거니까 어서 가자. 택시로 가면 금방이야. 다방 문을 나서서 큰길로 나갑니다. 곧 택시가 우리 앞에 멈춥니다. 그게 벌써 10년이 지났구나. 부마사태 말이야. 그땐 여기가 정말 굉장했다. 그러고 보니 꼭 이맘때군요. 피끓는 대학 초년생으로 부마사태 - 대통령 유고 - 계엄령으로 이어졌던 깜깜한 역사의 질곡을 맞이했던 형. 역사의 불똥을 피하여 면학의 서울에서 급거 귀향, 그 시절 가장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형. 함성과 총성과 신음소리의 현대사. 그리고 목격자. 함께 호흡할진대 누가 이 시대의 목격자가 아니던가. 밀실에서조차 창호지 문에 침 묻혀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조금씩은 느꼈으리라. 그 어둠을. 저는 그때 중학교 이 학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학교에 갔더니 같은 반 녀석이 막 울상이더라구요. 박대통령이 돌아가셔서 우리 나란 이제 망했다나요. 그래? 우린 좋아라고 데모하고 다녔는데. 중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했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얘기지만 그럴 수밖에 없죠, 뭐.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배우니까요. 택시는 땅거미 진 부산의 이름 모를 옛 함성의 거리를 가거니 섰거니 슬그머니 지나쳐 보수동 형의 집 앞에 닿습니다. 어서 와요. 처음 뵙는 형수님이 마치 구면 같습니다. 여보, 서둘러야 되겠는데. 얘가 차시간이 임박해서. 그러지 말고 여기서 하루 자고 내일 가지. 그렇게 해요. 난 그럴 술 알고 시장 봐오느라 밥도 아직 안 했는데. 미리 끊어놓은 표가 안타깝습니다. 형수님의 손길이 갑자기 바빠집니다. 뭐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그러면 시간 없으니까 여기 이 마늘 좀 까줘요. 형은 통화중인 부산 역에 계속 전화를 겁니다. 이 시간에 고속버스는 없을 테고, 열차가 그것밖에 없나? 다음 차 타고 가면 좋을 텐데. 부산역의 전화통은 불이 난 듯 끊임없이 뚜뚜뚜 통화중입니다. 형, 그만 두세요. 그냥 아홉 시 차 타고 갈게요. 아냐. 오기가 있지. 형은 짜증스런 전화통을 끈기 있게 붙들고 있고 형수님은 부지런히 식사준비를 합니다. 이럴라구 온 게 아닌데... 여보세요. 부산역이죠. 간신히 연결된 짤막한 통화입니다. 예? 하루에 한 번 밖에 열차가 없다고요? 부산 발 목포행. 하루에 한 번 밖에 안갑니다. 그나마 밤차로. 경상도와 전라도는 이만큼 뜸합니다. 형도 이젠 포기했나 봅니다. 밥상이 들어옵니다. 공연히 제가 와서 수선만 피우는 것 같네요. 잠깐 얼굴이나 뵙고 가려고 했는데. 서둘러 저녁상을 차리느라 수고하신 형수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니, 저녁 안 먹는 집 있어요? 맘씨 좋은 형수님. 많이 들어요. 음식솜씨도 일품입니다. 맛깔스런 해물들이 진수성찬입니다. 입맛에 꼭 맞습니다. 밥아, 너 본지 오래로다. 춘양전의 굶주린 이도령처럼 두 그릇을 단숨에 비웁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들어옵니다. 오셨어요, 어머니. 애기 이리 주세요. 큰집 작은 집이 앞뒷집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화 같은 형네 가족. 김치가 떨어졌을 땐 뒷문을 열고, 형님, 김치 좀 있어요? 몇 분 후에 김치 한 냄비 들고 코흘리개 조카가 조르르 달려온답니다. 아기가 참 예쁘네요. 그래? 웃짜, 우리 아기. 까꿍까꿍. 후배들 앞에서 항상 근엄하고 자상한 우리 선배님. 아가 앞에선 마냥 아기 같습니다. 새 생명의 무구함을 아빠가 닮은 걸까? 갓난아기 있는 집은 조심조심 생기가 돕니다. 아빠는 담배도 나가서 피웁니다. 기차 떠나기 이십 분 전. 이러다 늦겠어요. 눌러앉고픈 마음에 옮겨야 할 발걸음. 시간이 야속합니다. 밑반찬이나 좀 싸줄까요? 형수님은 냉장고를 열고 오징어 졸임을 봉투에 정성껏 담습니다. 정성이 새지 않도록 봉투를 꽁꽁 묶습니다. 늦었으니까 택시 타고 가라. 또 오고. 찻길까지 나와서 두 손에 꼬옥 쥐어준 지폐 한 장이 마치 백지수표 같습니다. 동그라미 하나에 훈훈한 사랑을 열 배씩 지불 받습니다. 선배의 후배 사랑은 뭉클하도록 넉넉합니다. 선배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만 들어가세요, 형. 또 오겠습니다. 악수는 생소한 몸짓입니다. 친한 시늉입니다. 진짜 친한 사이는 악수를 하지 않습니다. 잘 가라! 외마디 인사로 모든 걸 말합니다. 차시간 십 오 분전. 택시 한 대가 손짓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초조한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차 놓치면 어떻게 하나. 간신히 택시를 잡습니다. 아저씨. 아홉 시 분 차를 타야되는데요, 갈 수 있죠? 글쎄요. 차만 안 막히면… 말꼬리를 흐리는 게 심상치 않습니다.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가슴을 밟는 것처럼 갑갑합니다. 삼 분전. 역 광장 앞 대로에서부터 뛰기 시작합니다. 일 분전. 휴우. 일분이 스물 네 시간을 구했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진땀이 다 납니다. 나의 안착을 기다리기나 했던 듯이 자리를 잡자마자 기차는 출발을 서두릅니다. 기다려라, 목포여! 내가 간다. 1989년 10월 18일 水 웬일인지 객실 안에 점점 냉기가 돕니다. 손발이 몹시 시렵습니다. 호호 부는 입김으로는 도무지 턱도 없을 만큼 움츠러듭니다. 왜 이렇게 춥지? 당열차의 스팀시설이 고장이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다소 추우시더라도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거듭 사과말씀 드립니다. 사과의 안내방송이 오히려 화를 돋굽니다. 어쩌면 이렇게 무성의할까?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추위를 감당할 뿐 도리가 없습니다. 많지 않은 승객들도 띠엄 띠엄 객차에 앉아 잠 못 이루는 부시시한 눈으로 추위에 몸을 뒤척일 뿐입니다. 어, 춥다. 말까지 꽁꽁 얼어붙습니다. 목포역 공 오시 이십 오 분. 깜깜한 새벽의 허공에 덩그라니 떠 있는 <목포역> 코발트색 네온사인 글자를 바라보며, 역 광장엔 네온사인만큼이나 요염한 밤의 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아저씨, 연애하고 가쇼이. 아가씨들이 아주 이뻐라. 소매를 끌면서 나를 유혹합니다. 꽃들을 헤치고 묵묵히 빠져 나옵니다. 밤새도록 추위에 떨며 꽁꽁 언 채 맞이하는 목포의 새벽공기이기에 우선은 몸을 녹일 생각이 간절합니다. 말씀 좀 묻겠는데요, 근처에 목욕탕이 어디 있습니까? 솜이불보다 보드라운 욕탕의 따뜻한 물을 이불 삼아 팔다리 쭉 뻗고 드러눕습니다. 얼었던 피로가 녹아 내립니다. 천장에 서린 물방울이 몽롱합니다. 퐁. 수면으로 떨어집니다. 퐁. 퐁. 자장가처럼 평온한 물 듣는 소리에 깜빡 잠이 듭니다. 응, 벌써 여덟 시가 다 돼가네. 노곤한 몸으로 목욕탕을 나섭니다. 햇살이 눈부십니다. 유달산은 여기서 지척거리입니다. 유달산은 마치 턱수염을 기른 대머리 아저씨의 얼굴로 목포를 정답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산기슭을 따라서 나지막이 돋아난 관목 숲. 동그랗게 올라앉은 바위 산봉우리. 중턱으로 뚫려 있는 까만 아스팔트 도로가 흡사 일자 눈썹의 형국입니다. 옛 선비들이 올라가 술잔과 함께 시 한 수씩 돌렸음직한 전망 좋은 정자들이 산등성이 군데군데 서 있습니다. 산정 아래쪽엔 절도 있습니다. 산봉우리 아래로 양지바른 바위가 경치가 좋을 듯합니다. 옳지, 아침은 저기서 먹자. 계곡 없는 바위산 유달산엔 밥지을 물이 없으므로 산동네 민가로 들어가 쌀을 씻습니다. 처음 보는 객에게 밥물까지 맞춰주는 후한 인심입니다. 국 끓이기 귀찮을 텐디, 우리 집 우거지국 좀 줄까라? 덕분에 아침은 된장국보다 구수한 목포의 인심까지 덤으로 마십니다. 다리 틀고 바위에 앉아 목포의 경치를 눈요기하며 따뜻하고 구수한 인심에 밥을 말아 배불리 아침을 먹습니다. 작은 산·작은 바다·작은 도시. 한눈에 어우러져 커다란 조감도를 이룹니다. 작은 풍요에 큰 포만감. 아, 좋다! 행복은 이런 걸까? 큰 대자로 풀밭에 눕습니다. 빨려들 것같이 파란 하늘입니다. 떠오르는 햇살이 곧장 눈으로 쏟아집니다.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똑 똑 똑 똑… 암자에서 목탁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고음에서 저음으로 서서히 잦아듭니다. 때로는 소리만큼 고요한 것도 없습니다. 목탁소리가 세상의 온갖 잡음들을 삼키는 듯합니다. 소리는 나를 휘감더니 저 높이 올라갑니다.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서서히 내려옵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목탁은 나를 데리고 깊디깊은 심해로 빠져듭니다. 슬며시 나를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칠흑 같은 까망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앗, 뜨거! 별안간 손을 뿌리치고 일어납니다. 잔디 위엔 필터까지 타버린 꽁초가 연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네가 날 깨웠구나. 손가락 사이가 따끔거립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다시 나를 눕힙니다. 독경 소리가 호수 위의 파문처럼 잔잔히 퍼집니다. 마음을 풀어주는 소리의 고요함. 나와 독경 소리 밖에는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나를 흠뻑 맡깁니다. 독경소리는 나를 극락까지 데려갑니다. 무지개가 보입니다. 은은한 빛깔의 무지개가 잡힐 듯이 선명합니다. 무지개를 쫓습니다. 내가 뛰면 무지개도 뛰고, 내가 걸으면 무지개도 걷습니다. 그러나 지치는 건, 나뿐입니다. 휴, 못 잡겠다. 선녀가 빙그레 미소짓습니다. 여러분, 이게 노적봉이예요. 따라해 보세요. 노·적·봉. 노·적·봉. 한창 유치원 가을 소풍철인가봅니다. 꼬마들의 합창소리에 다시 눈을 뜹니다. 이젠 하루종일 조용해지긴 틀렸군! 여장을 꾸리고 어슬렁어슬렁 산을 내려옵니다. 이제 해남으로 가볼까. 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를 꼬리처럼 달고 있는 해남군. 반도의 남쪽 끝은 어떻게 생겼을까. 금강산의 꼭대기가 편편한 바위이듯이 그렇고 그런 바다 마을일까? 아니면, 최남단임을 아우성치는 거창한 깃발이 나부끼는 기념비적 마을일까? 가보면 알겠지. 무목적한 여행의 작은 명분입니다. 버스는 느긋한 도로를 거침없이 달립니다. 아쉬운 풍경들은 버스의 속도만큼 빠르게 뒤로 도망칩니다. 해남. 어서 오십시오. 해남의 경계를 알리는 푯말이 무덤덤하게 객을 맞습니다. 푯말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똑같은 모습으로 오는 사람은 오도록, 어서 오십시오. 가는 사람은 가도록, 안녕히 가십시오. 도통 군소리를 안 합니다. 푯말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고, 그렇게 초연히 서있을 뿐입니다. 푯말의 무뚝뚝함에 지나가는 나그네가 안쓰러워 보이는지 푯말이 선 작은 언덕에 빼곡이 들어찬 억새풀들이 바람에 살랑대며 손인사를 보냅니다. 해남읍. 일단 송호리로 가자. 해수욕장이 있어 숙소가 많을 테니까. 버스를 갈아탑니다. 시골길을 털털거리는 낡은 완행버스의 남자차장이 이채롭습니다. 오후 네 시 반 송호리 도착. 우선 방부터 잡아야지. 한 마을이 온통 민박집인데, 철이 지나 아예 손님을 기대조차 않는지 빈집들이 많습니다. 여름 한철 말고는 손님이 가뭄에 콩 나듯 뜸하답니다. 그래선지 주인 아줌마가 몹시 반깁니다. 워째 이리 혼자 왔소이! 심심하지 않소이? 식사는 워찌 하실라요이? 구수한 전라도 토박이 사투리로 별별 걱정을 다해줍니다. 집집마다 한 두 마리씩 묶여 있는 이 동네 개들은 도무지 짖을 줄을 모릅니다. 덩치는 큰놈들이 다가서면 살레살레 꼬리를 치다가 목덜미를 쓰다듬어주면 다리를 벌리고 아예 벌렁 누워버립니다. 저녁일랑 같이 먹읍시다. 밥은 많으니깨.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했더니 과연 저녁상에는 전어구이가 올라 있습니다. 손으로 집어서 통째로 뜯어먹는 한 뼘 길이의 전어 맛이 그만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날도 어둡고 날씨도 쌀쌀하고. 따땃한 방바닥에서 뒹굴고자픈 생각만 굴뚝같습니다. 이불도 안 깔고 엎드려 편지를 쓰다가 볼펜을 쥔 채로 스르르 잠이 듭니다. 1989년 10월 19일 木 눈을 뜨니까 또다시 아침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잠잔 것밖에는 한 일이 없는데 다시 아침이 밝은 것입니다. 응, 내가 언제 잤지? 자고 일어나면 매일매일 느끼는 아침의 허망함. 그럼에도 아침은 매일매일 나를 속이고 새로운 하루를기대하게 만듭니다. 아홉 시가 되어서야 느지막한 아침을 지어먹습니다. 간단하게. 그러고 보면 식사는 항상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지어먹었습니다. 사는 게 뭔지. 식사는 간단하지만 인생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원죄처럼 태고 적부터 전해 내려온 그 간단한 물음에 누구하나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먹기만 하는 게 인생입니다. 오늘 아침은 수프를 끓여서 김치랑 놓고 밥을 말아먹습니다. 슬슬 움직여 볼까. 가까운 해변을 거닙니다. 진녹빛 바닷가에 펼쳐진 흙빛 모래사장. 청푸름만이 맑음을 독차지하는 건 아닙니다. 진한 녹푸름의 송호리 앞 바다도 비취처럼 맑습니다. 흰색만이 깨끗함을 독차지하는 건 더욱 아닙니다. 칙칙한 빛깔의 송호리 모래사장은 탐욕에 찌든 백옥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요컨대 색은, 사람의 눈을 현혹시켜 본질을 흐리기 일쑤입니다. 비단결처럼 고운 모래를 한 움큼 쥐어봅니다. 칙칙한 빛깔의 이 고운 깨끗함이여! 모래사장 위에는 바다가 지나다닌 발자국인 듯 구불구불한 물결 무늬가 현란하게 찍혀 있습니다. 남해바다는 동해바다처럼 육지로 저돌적으로 돌진하지 않습니다. 살금살금 소리 없이 기어들어 모래밭을 야금야금 점령합니다. 밀물. 맨발에 바지자락을 걷어올리고 조심조심 물가를 걷습니다. 모래밭은 해변을 따라 길게 펼쳐지더니 돌밭과 이어집니다. 바닷물에 매끄럽게 다듬어진 수박 만한 돌 위엔 파래가 푸릇푸릇 돋아 있습니다. 한 줌 뜯어 입에 넣어 봅니다. 파릿한 맛. 익지 않은 날것의 맛이 코로 물씬 풍깁니다. 이 맛에 파래는 익혀 먹질 않습니다. 파래 밭을 지나자 석화 밭입니다. 바닷가 거친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 할머니 둘이서 굴을 캐고 있습니다. 이거 맛있겠네요. 소쿠리의 굴 한 점을 집어먹습니다. 맛있으면 더 잡수소이. 애써 따놓은 걸, 한 번이면 됐지... 나의 미안함을 눈치챈 듯 옆에 있던 할머니가 굴 캐던 연장을 내게 건네줍니다. 한번 캐먹어 보소이. 손쉬워 보이던 일인데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옆에서 보기 답답했던지 할머니는 손수 굴을 캐서 내 손에 올려줍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손바닥에 올려진 생굴을 홀짝홀짝 받아먹습니다. 껍떽은 잘 뿌소이. 이건 또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나는, 예? 뭐라고요? 아, 껍떽은 입으로 잘 뿌라니깨. 뿌는 게 뭔데요? 서너 번을 거듭해서 묻고 나서야 겨우 알아낸 그 말은, 굴에 딱딱한 굴 껍질 조각이 묻어 있으니 먹으면서 입으로 잘 발라 뱉어내라는 뜻입니다. 한 나라 말을 알아먹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갯벌의 작은 웅덩이에 피라미 만한 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다가서자 다람쥐처럼 재빨리 도망쳐 돌 밑으로 숨습니다. 돌멩이를 들춥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걸! 고기는 간데 없고 게 서너 마리가 훔쳐먹다 들킨 애들처럼 옆걸음질 치며 흩어져 후다닥 줄행랑을 놓습니다. 뒤뚱뒤뚱 도망가는 모습이 우습기만 합니다. 몇 걸음 못 가서 내 손에 번쩍 들립니다. 손바닥 안에서 발버둥치며 앙탈을 부립니다. 왕발로 깨뭅니다. 어림없지. 윗도리를 걷어올려 거기다 집어넣습니다. 다른 돌을 들춥니다. 손톱 만한 게. 동전 만한 게. 어떤 돌을 들춰도 그 밑에서 게가 살고 있습니다. 안 보이는 곳에서도 생명은 치열하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 무거운 돌 밑에서조차. 큼지막한 돌멩이를 엎습니다. 게 한가족이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깜짝 놀란 아빠 게는, 튀어! 순식간에 온 가족이 산산이 흩어집니다. 덩치 좋은 아빠 게를 추적합니다. 어쭈, 빠른데! 잽싸게 다른 돌 밑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들춥니다. 추격전. 여러 번의 헛손질 끝에 결국은 잡힙니다. 네가 뛰어봤자 게지. 돌 밑은 또한 다슬기의 집입니다.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돌을 뒤집으면 고스란히 붙은 채 숨도 안 쉬는 듯 가만히 움츠리고 있습니다. 손으로 쓰윽 문지르면 낱알처럼 우수수 떨어집니다. 톡 치면 뾰로통해져 입을 꼭 다물 뿐 도무지 반항할 줄을 모릅니다. 잡는 대로 잡힙니다. 도망치는 게보다 잡는 재미가 훨씬 덜합니다. 에이, 시시해. 사람을 시시하게 만드는 다슬기의 무반항. 이것도 어쩌면 반항의 형태가 아닐까. 다슬기만이 가질 수 있는.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리고 재너머 땅끝으로 향합니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토말(土末)리. 그냥 땅끝이라고도 불립니다. 반도의 남쪽 끝 토말리는 일단 들어서면 더 이상 오갈 데가 없다 해서 예전에는 갈두라고 불렸답니다. 송호리에서 바로 재 하나 너머. 포장공사가 한창인 황토 길을 따라서 재를 넘습니다. 발걸음은 밀가루를 밟는 것처럼 푹푹 빠져들어 발 밑에선 작은 흙보라를 일으킵니다. 매순간이 아득한 과거로 희미해지는 가운데 아득한 과거는 순간으로 내 앞에서 성큼성큼 다가서는 시간의 혼돈을 경험하며 반시간 남짓이나 걸었을까.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는 산을 비집고 올라가 바다로, 바다로 곧장 내리달립니다. 급한 내리막. 바다로 난 길인가? 그러더니 길은 바다의 코앞에서 산허리를 휘감으며 우측으로 급커브를 틉니다. 산기슭의 바닷가. 여기가 땅끝입니다. 땅끝이라고 별다를 건 없습니다. 흔한 어촌마을입니다. 선착장이 있고, 고깃배가 드나들고, 섬이 보이고, 그리고 사람이 살고. 다만, 가게 이름이 유별납니다. 최남단 횟집. 땅끝 상회. 원래 극점이란 좁고 붐비는 곳입니다. 송호리 해변처럼 널찍한 갯벌도 없이 방파제와 연결된 겨우 집채만한 바위를 물새들이 집처럼 드나들고, 광주에서 소풍 나온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물새와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런 데서 오래 머물기는 개밥의 도토리처럼 머쓱합니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되돌아 나옵니다. 바닷물에 손 한번 담가보고 발길을 돌립니다. 땅의 남쪽 끝. 바다로 가지 않는 한 어딜 가나 북향입니다. 오르막을 타고서 북으로 북으로 올라갑니다. 산비탈을 넘어서, 헐떡거리며 내려오는 낡은 시골버스를 잡아타고 고담에 도착. 다시 남창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함께 차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한 분이 얘기를 걸어옵니다. 농사일 때문인지 햇볕에 그을러 검게 탄 얼굴에 포마드를 바르고 곤색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시골 할아버지입니다. 학생은 어디로 가나? 예, 완도로 갑니다. 할아버진 어디로 가세요? 응, 저기 땅끝 지나서 넓골 가는디. 그러세요? 저는 땅끝에서 나오는 길이에요. 여행 다니나? 예. 혼자서 다니나? 예. 혼자 다니면 적적할 텐디. 그렇지도 않아요. 잠은 어디서 자? 밤차도 타고, 민박도 하고 그렇습니다. 돈두 많이 들겠는데. 요즘은 철이 지나서 민박도 싸거든요. 오늘 나랑 같이 가서 잘까? 예? 깜짝 놀라 다시 묻습니다. 돈두 안들구 심심하지두 않구 좋잖여. 할아버지는 자꾸자꾸 권합니다. 아이구, 됐어요, 할아버지. 저 오늘 완도에 가야 돼요. 같이 자구 가면 좋을 껀디. 호의는 고맙지는 바람 따라 떠도는 나그네에게도 가야할 길은 있습니다. 천리타향. 길에서 처음 만나 그 자리에서 담합하여 잠자리를 함께 하기엔 내 가슴은 아직 새가슴입니다. 잠시 후 버스가 옵니다. 남창. 완도의 길목이랍니다. 완도까진 얼마나 멀까? 가게로 들어가 묻기로 합니다. 아줌마, 완도까지 걸어가려는데요... 그럼 가쇼. 채 묻기도 전에 약올리는 것처럼 쉽게 나오는 대답에 왼고개를 칩니다. 멀지 않나요? 옛날엔 거기 걸어 다녔는디. 아하! 사거리도 없으니까 큰길을 곧장 따라가면 곧 완도랍니다. 길 양편으론 다방·횟집·여관·농약가게·식품점 등이 주욱 늘어서 있습니다. 금방 바다가 나오고, 그 위로 초라한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남창교. 길이가 약 삼 사십 미터 가량 되는 작은 다리입니다. 완도는 남창교 건너 달도를 지나 완도대교를 건너서 있습니다. 남창교를 건너며 잔뜩 기대를 부풀립니다. 완도대교는 금문교처럼 웅장하겠지. 그 위를 걸어서 완도에 입성하는 거야. 개선장군처럼.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작은 섬 달도를 가로질러 드디어 완도대교 앞에 이르렀을 때, 아니, 이게 뭐야. 완도대교는 금문교처럼 힘차게 우뚝 서 있는 게 아니라 나지막이 누워있습니다. 기껏 작은 어선 정도나 지나다닐까. 넘실대는 바다는 바로 발 밑에 있습니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까마득히 내려다 뵈는 시퍼런 바다. 물 속 깊이 뿌리내린 교각을 삼킬 듯이 덤비는 서슬 퍼런 바다. 산더미 같은 파도 사이의 물길을 따라 먹힐세라 살금살금 기어가는 덩치만 커다란 상선, 나는 그 위를 걷고 싶었는데... 바다야, 파도야! 나를 삼켜보아라. 혀 내밀어 날 잡아채 네 아가리에 처넣어 보려무나. 이렇게 외치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다리는 너무나 낮습니다. 파도의 사정권 안입니다. 실망을 씹으며 묵묵히 걷습니다. 자동차들이 쌩쌩 바람을 뿌리며 지나갑니다. 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걷습니다. 바로 그때, 나그네야! 소리가 나는 서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그러므로 실망은 부질없는 기대의 대가. 아무런 생각 없이 놓여있는 그 다리를 두고 네 멋대로 기대를 부풀려 놓고선 너는 지금 제 풀에 실망하는 게 아니더냐. 너희들 인간은 매사가 그 모양. 세상엔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느니, 다만 보는 것으로 족하거라. 느끼는 것으로 족하거라. 하물며 아무런 애욕 없이 하루종일 너희들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녹초가 되어 떨어지는데... 온종일의 불사름으로 지친 듯이 버얼겋게 상기된 태양이 타이르듯 나를 내려다보고는 지구의 중력을 견디지 못하여 짙푸른 소나무 숲 우거진 서산 너머로 늬엿 늬엿 기울고 있습니다. 낙조. 명심할게요, 햇님. 누그러진 마음으로 난간 위에 팔을 얹어 턱 받치고 낙조를 감상하노라니 산과 바다와 해가 어우러진 이 풍경을 다리 위에 버려둔 채 그냥 가기가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습니다. 두 눈으로. 꿈속에서 현상해서 두고두고 봐야지. 완도. 저녁나절의 도착입니다. 바다에 뜬 거대한 산 덩어리. 이게 완도란 말인가. 다리를 건넌 완도의 관문은 원동입니다. 원동은 육지와 이어진 유일한 통로입니다. 완도는 거기로 들어가서 거기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원동은 완도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시작과 끝이 보이면 완성을 꿈꿉니다. 과정의 험난함은 끝에 대한 집념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이 저녁, 완성을 계획합니다. 여기서 출발하여 여기로 도착하자. 탈것의 도움 없이, 두 다리로. 완도의 해안선 순환도로는 뺑돌리 43 킬로미터. 완주하리라. 밤새도록 걸으리라. 여행의 마지막 밤을 양초처럼 끝내 태워서 없애리라. 완도의 중심지 읍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원동의 버스 터미널을 용감하게 나섭니다. 사람들은 서 있고 나는 나아갑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가방을 둘러메고. 나의 밥줄들. 밥은 짐입니다. 큰짐입니다. 발길을 늦춥니다. 그러나 밥은, 존재를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이것 없는 여행은 무너집니다. 무겁지만 반드시 짊어져야 할 나의 몫입니다. 묵직한 각오로 나를 채찍질합니다. 걷고 걷고 걷고 걷고, 또 걷습니다. 해진 후 달뜨기 전. 깔려 있던 땅거미가 점점 진해집니다. 어정쩡한 어둠. 어슴푸레. 맞춤한 저녁시간. 어김없이 찾아드는 허기입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의 불빛. 손을 벌릴 때입니다. 실례합니다. 여행 다니면서 완도에 처음 왔는데요, 밥 지어먹게 물 좀 써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젊은 아낙 혼자서 집을 지키던 중입니다. 밥을 다 지을 즈음 대문 앞에서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더니 소리가 멎고 잠시 후, 어이구, 내 마누라. 하루 종일 심심했지? 바깥양반입니다. 실례가 많습니다. 아, 아니여, 아니여. 반찬도 없을 텐디 우리랑 같이 먹자고. 남동생이 둘이 있는 바깥양반의 큰 동생은 광주에서 식당을 차렸고 막내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느라 두 식구가 단촐하게 시골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랍니다. 섬에 사시니까 고기 잡으시겠네요. 아녀. 농사만 져. 그런디 우리두 도회지로 나갈까 생각중이여. 시골서 농사나 지을라니까 영 살맛이 나야지. 아, 열심히 일하면 뭐라도 모이는 게 있어야 하는디 이건 겨우겨우 목구멍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니 말이여. 오죽하면 얼마 전에 제대한 우리 막내 대학교 등록은 시켜놓고 전세 값이 없어서 휴학을 시켰겄어. 서울 방 값이 워낙 비싸야지. 농사져 가지곤 턱도 없어. 다음 학기엔 꼭 복학시켜 주마고 약속은 해놨는디, 지두 맘이 안 놓이는지 서울서 돈을 번다나. 아무튼 걱정이여. 그래서 집사람이 도회지 물 좀 먹어봤다고 자꾸 나가자구 하는디, 아, 대대로 땅 붙여먹던 고향이 어디 함부로 떠나지나? 바깥양반은 걸죽한 목소리로 열을 올립니다. 농사 짓는 놈들만 죽어나는 기여. 그놈의 정책이 잘못돼서 말이여. 나뿐 아니라 다들 난리라니깨, 정말.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단 농사짓는 놈 하나두 없어질 거여. 그럼 진짜 난리 나는 거지. 식량은 전부 미국서 수입해다 먹구. 누구와도 허물없는 사람들. 가장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는 웅변가보다 웅변적입니다. 수치와 미사여구는 느낌을 흐립니다. 그것으론 아는 데서 그치기가 십상입니다. 농사꾼의 질그릇 같은 농촌 이야기는 몇 권의 책보다 피부적입니다. 정말로 큰일이구나. 안타까운 농촌 현실. 그러나 이러쿵저러쿵 떠들 자격이 내겐 없습니다. 하등 도움 안 되는 입방아일 테니까. 그저 혀만 차며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덕분에 저녁 잘 먹었습니다. 아니여. 그러나 저러나 밤중에 걸으려면 힘들 텐디 웬만하면 우리 집서 자구 내일 가지 그려. 괜찮아요. 말만 들어도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럼, 조심해 가게. 다시 걷습니다. 걷는 일도 힘이 듭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까만 어둠을 비집고 달이 나기 시작합니다. 아스팔트 위의 달밤. 아직은 차가 제법 다닙니다. 등뒤에서 찌를 듯이 달려드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사뭇 위협적입니다. 트럭. 버스. 자가용. 택시. 자동차들은 야속하게도 바람만 날리곤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내가 내딛는 한 발짝 한 발짝의 걸음걸이에 온 정신을 기울이느라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하나의 몸뚱아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치열한 걸음걸이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렇게 살으리라. 휘영청. 네온사인 불빛으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어둠에선 반달도 밝습니다. 어디쯤 왔을까. 어디쯤 왔을까. 완도읍 18 Km. 푯말이 보입니다. 완도읍은 내 목표거리의 절반이 넘어서 있으니까 적어도 반의반은 걸은 셈입니다. 그리고 한참을 걷고 있는데 등뒤에서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몹시 눈부시게 내게 다가옵니다. 또 트럭이겠지. 길을 비킵니다. 타이탄 트럭이 지나갑니다. 쌩하니 바람을 날립니다. 이미 익숙해진 바람입니다. 그러려니... 그런데 저 앞에서 차가 갑자기 멈춥니다. 오, 왜 그러지? 차는 온 길로 그대로 뒷걸음질치더니 내 앞에서 멈춥니다. 내게 타라고 손짓합니다. 이 밤중에 혼자 걸어가세요? 운전사의 고마운 친절이 약간은 당혹스럽습니다. 걸어야 하는데. 타세요! 문까지 열어주는 그의 친절을 거부하기가 몹시 난처합니다. 그러자면 운전사의 고개가 갸우뚱할 긴 설명이 필요할 테니까. 별 이상한 녀석 다 보겠네. 친절을 사양 당한 운전사의 혼잣말이 두려워 트럭에 오릅니다. 고맙습니다. 아무튼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자동차가 확실히 빠르긴 빠릅니다. 걸어서 왔더라면 얼마나 걸렸을지 모르는 거리를 몇 분 달린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운전사는, 요 앞이 완도 읍내거든요. 숙박시설이 아주 잘 돼있어요. 그럼 구경 잘하세요. 속 모르는 운전사는 완도읍에 조금 못 미쳐 나를 내려줍니다. 예,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여행자는 세상에 신세지는 사람이므로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디 여행자 뿐 일까마는... 완도읍은 과연 읍이라는 명칭에 걸맞을 정도로 수수하게 번화합니다. 특히 읍내는 온통 여관들의 네온 빛으로 휘황합니다. 무슨 여관이 이렇게 많지? 이 외진 섬 한가운데. 알고 보니 완도는 제주도로 가는 뱃길의 최단 코스랍니다. 부산에서 페리호로 꼬박 열 세시간 거리가 여기선 다섯 시간의 뱃길이랍니다. 취흥에 신이 난 듯 알맞게 취한 완도 토박이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관이 많군요. 그렇죠. 배타고 제주도 가는 사람들은 필시 완도를 거쳐야 한 테니까요. 앞으로 완도두 무지하게 발전할 꺼요. 그럼 구경 잘 하고 가쇼. 다시 혼자가 됩니다. 원래대로. 발걸음에 집중하여 다시 걷습니다. 온 몸에서 땀이 흐릅니다. 후우! 걷다가 중간 중간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또 걷고, 걷고. 내일 아침엔 기필코 원동에 도착하리라. 앞으로 출발한 그 자리에 뒤로 도착한다! 그러고 보면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합니다. 비록 돌아서 갈지언정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하기 마련입니다. 1989년 10월 20일 金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으슥한 이 밤중에 초라한 형광등 밝혀놓고 아직도 문을 닫지 않은 가게가 눈에 띕니다. 저, 실례합니다. 원동까진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 밤중에 원동은 뭐 하려고? 의아스럽게 나를 쳐다보던 주인 아저씨는 내 여정을 대충 듣더니 휘둥그레한 눈으로 지도를 펼칩니다. 지금 여기가 요기니깨 한 십 육 키로는 남았네. 그래도 그게 사십 리 길인디. 그럼 뭐, 거의 다 왔네요. 의기양양합니다, 아직은. 진열된 어항 속의 낙지가 맛스럽게 헤엄쳐 다닙니다. 아저씨, 낙지 큰 걸로 한 마리 주세요. 조각조각 잘렸어도 여전히 꿈틀대는 낙지의 다리를 목안까지 느끼며 가지고 다니던 오가피주를 한잔 쭈욱 들이킵니다. 아저씨도 한 잔 하시죠. 혼자 마시는 것처럼 어색한 게 없는 것이 술입니다. 그래서인지 술만큼 후한 인심이 없습니다. 나두 옛날엔 여행 많이 다녔는디. 주인 아저씨도 마침 심심하던 참이었는지 슬슬 얘기보따리를 풉니다. 하기사 왕년에 한번쯤 날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겠지만 이 아저씨는 운동으로 날렸답니다.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육상선수로 활약한 것을 비롯하여 축구·복싱 등 운동이란 운동은 닥치는 대로 다 했답니다. 그러다가 몸 관리를 소홀히 한 탓으로 그만 관절염에 걸리고 말았답니다. 그때만 해도 전라도 내에서 관절염을 고칠만한 의술이 없어서 운동을 포기해야 했답니다. 자기가 가르치던 운동부 선배들은 속속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심하게 좌절했답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몇 번인가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거 참, 죽기 정말 힘들데. 사람의 목숨은 때대로 사람의 손아귀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손아귀 안에 ― 자살. 자살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자살은 하늘에 대한 이유 있는 반항입니다. 결국은 죽지 못하고 서울 가면 고칠 수 있다는 풍문만으로 집을 나섰답니다. 맨 손으로, 걸어서. 완도에서 서울까지. 하루종일 백 리를 걷고 밤이 되면 남의 집 마루 밑에서 꼬박 지새웠답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면 관절염 걸린 다리가 오므라든 채 펴지질 않아서 여간 고생한 게 아니었답니다. 천신과 만고 끝에 가까스로 도착한 서울. 그땐 나도 참 어리석었지. 서울 가면 누가 병 고쳐주나? 어떻게든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겠기에 충무로 어디에서 걸식도 하고 짐꾼노릇도 하면서 몇 개월을 그렇게 보냈답니다. 그러면서, 전 같진 않았지만 관절염은 차차 누그러졌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이마에 주름살을 채곡채곡 그어가며 가겟방에 눌러앉은 이 아저씨. 온 인생을 걸었던 일에 죽고싶을 만큼 좌절한 채 긴 방황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사십 줄을 넘어선 이 아저씨. 이제는 그 시절의 아픔을 씁쓸한 미소로 삭혀버리고 있습니다. 다 지난 일이지 뭐. 이제 어쩔 도리 있간디?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완도의 명물은 정도리 구계등. 해안선을 따라서 팔백 미터나 이어진 자갈밭입니다. 여기서 해안선 쪽으로 오 백 미터만 걸어가면 그곳이랍니다. 후라시 빌려줄 테니까 여기다 가방 놓고 갔다 오게. 새벽 두 시의 찬 공기를 마시며 바닷가로 달려갑니다. 방풍의 나무 벽을 지나 보이지 않는 바다 소리가 들릴 즈음 발을 디딜 때마다 발 밑에서 바시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손전등을 비춰봅니다. 주먹만한 자갈. 참외만한 자갈. 다시 손전등을 들어 사방을 비춰봅니다. 반짝거리는 자갈들이 바다의 짠물을 머금으며 해변을 온통 까맣게 뒤덮고 있습니다. 광활한 자갈밭. 깨애끗한 검정입니다. 하나같이 까만 돌들이 하나같이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고요한 달빛을 호흡하며 이 밤을 새록새록 잠자고 있습니다. 이 신비! 이 황홀감! 자연이 위대하다지만 지금 보는 위대함은 보는 이의 감탄사마저 막아버립니다. 가만히 숨죽이고 감탄의 부호만 찍을 뿐입니다. 자갈처럼 무수하게! 자갈처럼 고요하게! 그리고 나선 온 길을 조용히 뒷걸음칩니다. 자갈이 깨지 않도록. 아저씨는 그새 코를 골며 잠들어 있습니다. 짐을 메고 조용히 가게를 나섭니다. 이 밤. 아무도 깨우지 않도록. 쉬었던 걸음은 전과 같지 않습니다. 후들거립니다. 잠자던 피로가 깨어납니다. 나를 재우려고. 졸음이 눈으로 마구 쏟아집니다. 두 눈을 비벼도 졸음은 막무가내입니다. 졸면서 걷습니다. 비틀비틀. 갈지자로 걷습니다. 땀이 식으면서 바닷바람이 몹시 차게 느껴집니다. 나는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무모하게 시리. 안락한 잠자리. 오직 그것만이 간절히 떠오릅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걷습니다. 엇! 발을 헛디딥니다. 길을 따라 패어 있는 도랑 가에서 순간 삐끗합니다. 휴우, 빠질 뻔했네. 눈 깜짝할 새만큼 눈을 빨리 뜨지 않았더라면 저 밑에서 기어올라와야 했을 것입니다. 짐은 왜 이리 무거운지. 짐과 몸이 땅으로 꺼질 것만 같습니다. 이대론 도저히 안되겠다. 조금 앉았다 가야지. 졸음이라도 달래게. 옳지.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닐하우스 세 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저 안은 따뜻하겠지. 찬바람이 들세라 입을 꼭 다문 비닐하우스의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비닐을 뚫고 달빛은 신비롭게 비칩니다. 갓 싹을 틔운 채소가 그 빛을 숨쉬며 새록새록 잠들어 있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습니다. 세상은 모두 잠들어 나만 홀로 깨어 있습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구렁이처럼 나를 휘감습니다. 오싹. 진저리를 칩니다. 새삼 밤이 두려워집니다. 소름이 끼치도록 고요한 달빛 아래서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이 길을 싸늘한 바닷바람 맞으며 게슴츠레 졸린 눈으로 휘청거리며 나는 혼자서 어딘지 모르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얼마를 더 가야할지 가늠조차 못합니다. 누구라도 내 곁에 있다면... 사람의 손길이 코가 찡하도록 그립습니다. 다시 눈을 비빕니다. 졸음 겨운 눈이 아니라 눈물겨운 두 눈을. 몽롱한 상태로 얼마간을 앉아 있다 머리를 흔들고 일어섭니다. 그래도 가야지. 외로움에 쫓기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 아! 신음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러나 인가를 지날 적마다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할 뿐 손뻗칠 곳이라곤 아무 데도 없습니다. 되돌아가기엔 온 길이 너무 멀고 차를 기다리기엔 밤이 너무 깊고 길에서 잠들기엔 날이 너무 춥습니다. 더욱이 여기부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군데군데 고여 있는 흙탕물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조바심치는 내 마음은 오직 새로 밝아올 태양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별 수 없지, 뭐. 진퇴양난의 고행 속에 이 시간의 안락에 관한 모든 것을 포기하니 마음은 오히려 편안합니다. 느슨해진 배낭을 고쳐 메고 털레털레 걷습니다. 아침을 향하여. 목적지는 이제 원동이 아닙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사람들이 활보하는 아침을 향해 걷습니다. 가다보면 나오겠지. 원동이든, 아침이든. 이 긴긴 밤. 간단하게 요약하면 춥고 두렵고 졸립고 힘들고, 한마디로 요약하면 괴롭고, 모든 감각이 밤새도록 거기서 거기로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몸뚱아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두 다리를 타고서. 멈출래야 멈출 수도, 뛸래야 뛸 수도 없이 두 다리는 마치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놀려지고 있습니다. 새벽이 다가옴과 함께 나의 두 다리는 이렇게 쉼 없이 곤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는 조짐일까. 더도 덜도 없이 정직하게 꼭 걸은 만큼, 아침은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그만큼 걸었으면 새벽이 올만도 하지. 새벽 다섯 시 반. 이만한 시간이면 사람이 다닐 만도 한데. 그런데 저게 뭐지? 약 삼십미터 전방에서 뭔가가 스물 거립니다. 시커먼 것이. 기어가는지 걸어가는지 분간은 안가지만 분명 움직이고 있습니다. 잘못 봤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봅니다. 여전히 꿈틀댑니다. 동트기 전의 인적없는 새벽. 산기슭의 돌길. 귀신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테고, 산짐승인가? 혹시 늑대는 아닐까? 짧은 순간동안 공포는 한껏 커집니다. 공포가 지금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다리는 그러나 멈춰지질 않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한번 부딪쳐 보는 거야. 독한 마음으로 이를 악뭅니다. 뭘까? 잔뜩 고조된 긴장 탓으로 목 졸린 듯 숨막힌 채 물체에 다가갑니다. 가까워질수록 물체의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이상한데. 이윽고 물체의 앞에 이르렀을 때, 이런 제길헐! 도로공사를 위해서 갖다놓은 드럼통입니다. 환각. 헛것을 보다니. 내가 겨우 이 정도인가.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의 상태는 한계에 왔다는 뚜렷한 증거. 환각을 보고서야 실상을 깨닫다니. 그것이 제길헐입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마을이 나옵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펑퍼짐한 몸빼를 입은 아낙들이 새벽 마실을 나와 있습니다. 돌담에 옹기종기 기대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줌마. 원동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여기서 꼭 십리요. 발길을 재촉하여 마을을 빠져 나옵니다. 아침 안개로 흐릿한 여명과 함께 발 밑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낭떠러지로 이어진 해안선입니다. 아침 여섯 시 반. 살살 배도 고프고 온 몸이 부시시합니다. 여기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자. 가게에서 막걸리 병에 담아온 물을 코펠에 붓고 라면을 끓입니다. 이 생활 오늘로 육 일째. 못 먹어 배곯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공연히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입술이 슬며시 한쪽으로 쏠리면서 코웃음을 날립니다. 훗훗. 짜식. 어디 가서 굶어죽진 않겠어. 백원 짜리 라면이 아주 꿀맛입니다. 마치 이 맛을 위해서 밤새도록 걸었던 것처럼. 커다란 고생 끝의 작은 보상. 그나마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부여한. 그 맛을 바라며 사람은 사는 걸까? 고생에 속고 자기에게 속고. 따지고 보면 허망한 게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라면의 꿀맛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돌아온 아침. 돌아온 원동. 끝내는 돌아왔습니다. 그토록 바라더니. 그런데도 나는 무덤덤합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사람들을 보게되면 길바닥에서 떼굴떼굴 구를 만큼 기쁠 줄 알았는데 가라앉은 마음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갈 길이 남았으니까. 원동에서 출발하여 간신히 한바퀴 돌아 원동으로 돌아왔지만 길은 원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도착은 새로운 출발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여행자는 언제나 가는 사람이기에, 아니, 산다는 건 어디로든 간다는 것이기에, 성취의 기쁨은 멈춘 자의 몫입니다. 차라리 죽은 후의 일입니다. 이제 거기를 가야지. 광주.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 아니 새로운 출발지. 광주행 시외버스에 피로를 잔뜩 싣고 그곳으로 달립니다. 망월동 광주시민공원묘지 제 3묘역.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역사의 상징. 이곳에선 죽은 자가 말을 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침묵으로 외칩니다. 이곳에선 산 자가 말이 없습니다. 고개를 떨군 채 흐느낌으로 입을 가립니다. 그들 앞에선 살아 있다는 것이 죄악입니다. 함께 죽지 못한 것이 죄악입니다. 예수의 동시대인들처럼 십자가를 매게 한 산 자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쏟아진 물. 돌이킬 순 없는 일. 늦었으면 늦은 대로, 죽은 자는 죽은 자리에서, 산 자는 사는 자리에서, 죄지은 자 사함을 얻을 수 있도록, 그날이 오도록 해야 합니다. 되든 안되든 역사는 가야 할 것은 가도록, 그리고 와야 할 것은 오도록 외쳐야 하는 것이므로. 백 한 구의 시체들. 고등학생·대학생·가정주부·연탄배달부..... 저들이 대관절 무슨 죄길래, 학교 가다 집에 가다 차 기다리다.... 죽어서 함성 치는 사람들. 분향소 앞의 빈 소주병. 그 옆에 새로 사온 소주 한 병을 올려놓습니다. 한 잔 마시시요이. 눈감고 허리를 꺽습니다. 방명록을 펼쳐들고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그들에 대한 다짐과 기원과 약속으로 묵직한 노트 한 권. 형. 흔들리는 나를 붙잡으러 왔습니다. 형을 보고 다시 일어섭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여기선 형제지간입니다. 동포애일까. 동병상련일까. 가슴을 쑤시는 한 마디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저 눈물만 흘리다 갑니다. 죽음보다 더 슬픈 글. 나까지 찔끔 눈물을 흘립니다. 나의 시 한 조각. 천길 낭떠러지. 돌멩이도 한참동안 떨어졌다. 부서진 실개울은 수정 빛 핏방울을 뿌리더니 쏘는 듯한 햇살에 맞서 무지개를 만들었다. 태양이 죽기 전에 무지개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리고 몇 마디. 당신은 무지개입니다. 햇살이 강할수록 진하게 나타나는 당신은 무지개입니다.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꿋꿋이 살아 있습니다. 방명록에 적습니다. 아직도 강한 햇살. 그러므로 무지개는 죽을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 타서 꺼지게 될 태양. 무지개는 기필코 그것을 무지개가 죽기 전에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편안히 눈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망월산에 솟아 있는 101개의 무지개를 이렇게 달래며 서울로 향합니다. |
첫댓글 다 읽지 못하고 남겨두고 갑니다. 담에 보려구 아껴야지^^ 좋은날 되세요 ()
이런 보물도 저축이 되어있는 행복한 삶이군요. 덕분에 저도 여행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