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 속의 전달자
모든 이야기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 자신이 본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 또는 자신이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문학 작품 속에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을 한자어로 화자(話者)라고 한다. 이야기라고 하니까 소설에서만 화자(서술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에서도 시의 내용과 정서를 전달해 주는 화자(시적 화자)가 있다.
먼저 소설 속의 서술자에 대해서 알아보자.
옛날이야기나 고전 소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이야기 밖에 있다. “옛날에 순이와 돌이가 살았다는데.” 하는 식이다. 그러나 현대 소설의 서술자는 늘 이야기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주요섭의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 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이고요.”라고 시작하듯 이야기를 전달하는 ‘나’라는 사람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다.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 즉 서술자가 어디에 있느냐를 따져 우리는 시점(視點:이야기를 보는 지점)이라는 말을 쓴다. 이야기꾼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느냐, 이야기 밖에 있느냐, 밖에 있다면 이야기를 다 아는 듯이 쓰느냐 아니면 관찰하듯이 쓰느냐에 따라 시점이 나뉜다. 또, 이야기꾼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경우도 주인공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시점이 나뉜다.
옛날이야기 한 편을 읽고 시점의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자.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의미를 알아보자.
소설에서 ‘서술자’의 역할을 정리하며 읽어 보자.
‘시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옛날에 큰 쥐가 작은 당나귀를 보고 조롱하며
“네가 나보다 작다.”
하고 말하는 게야. 이 말을 들은 당나귀가 어찌 분하지 않겠어. 쥐에게 ‘어떻게 네가 나보다 크냐?’, ‘나는 당나귀인데 쥐가 당나귀보다 크다는 말은 들어 보지를 못했다.’는 등 쥐에게 따져 물었지만, 쥐는 콧방귀를 뀌며① 자기가 당나귀보다 크다고 우기는 거야. 당나귀는 너무 분하기도 하고, 쥐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에 재판소를 찾아가기로 하였지.
자초지종②을 들은 재판관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공개 재판을 하기로 하였어.
공개 재판이 열리고 재판관이 여러 사람에게 물으니 사람마다 하는 말이,
“아! 이 쥐 크기가 당나귀만 하구나.”
하고 말하였어. 또 사람마다 당나귀를 보고 하는 말이,
“애걔! 당나귀가 쥐만큼 작네.”
하고 말하는 것이었지. 이에 재판관은,
“당나귀가 작다.”
하고 판결하였어.
당나귀가 아무리 작은들 어찌 쥐만 못하겠는가마는 여러 사람의 말이 무서운 것이라 ‘중구난방(衆口難防)③’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게지.
이 이야기의 서술자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의 시점을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한다. 이것은 서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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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콧방귀를 뀌며 아니꼽거나 못마땅하여 남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말대꾸를 아니하며.
② 자초지종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
③ 중구난방(衆口難防) 뭇사람의 말을 막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
이 이야기에서 풍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전지적 작가 시점’의 특징은 무엇인가?
가 마치 신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옛날이야기는 대부분 이와 같은 전지적 시점에서 전개된다. 만일 이 옛날이야기를 소설로 바꾸어 본다면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른 시점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어떤 쥐가 내 앞에 나타나더니
“네가 나보다 작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쥐가 와서 당나귀인 나에게 자기가 더 크다고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인 당나귀가 이야기를 끌어 나가도록 한다면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 된다. 이 경우 당나귀의 생각과 마음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이야기 속의 ‘나’인 당나귀가 글쓴이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꾼이 곧 작가는 아니라는 뜻이다.
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의 입장에서 당나귀와 쥐의 시비 과정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듯이 쓸 수도 있다.
재판이 시작되자 재판장에 모인 사람들은 재판관의 입을 바라보았다. 재판관은 여러 사람에게 자유로이 의견을 말하게 하였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쥐의 크기가 당나귀만 하네.”
“당나귀의 크기가 쥐만큼 작네.”
나는 당황한 당나귀의 표정과 갈수록 득의양양④해지는 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윽고 재판장은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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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득의양양 뜻한 바를 이루어 우쭐거리며 뽐냄.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특징은 무엇인가?
“당나귀가 작다.”
하고 판결하였다. 재판장에 모인 사람들은 흡족한⑤ 표정이었지만, 당나귀만은 이 판결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에서는 주변 인물인 ‘나’가 재판의 모습과 인물들을 관찰하며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 속의 주변 인물인 ‘나’가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관찰하며 본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한다. 이때 서술자인 ‘나’는 사건과 깊은 관련은 없지만, 주인공을 지켜보고 사건을 전달해 줌으로써 사건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시점은 서술자가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여러 방법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시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글의 주제와 내용, 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시점은 작가의 사상이나 주제 의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는 어떨까? 시에도 시의 내용과 정서를 전달해 주는 전달자가 있다. 이를 ‘시적 화자’라고 하는데, 시 속에서 말하고 노래하는 주체이다. 시인은 시 속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어린아이가 되어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사물을 대할 수도 있고, 어른이 되어 삶의 아름다움과 깨달음을 노래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이 전하고 싶은 생각이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시의 화자를 내세운다. 그러므로 시의 화자를 어떤 인물로 설정하느냐, 어떤 성격을 부여하고, 어떤 표정과 태도를 갖게 하느냐는 것은 시인이 어떤 정서와 분위기, 내용,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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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흡족한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넉넉하여 만족한.
‘일인칭 관찰자 시점’의 특징은 무엇인가?
‘시적 화자’의 특징과 역할을 정리하며 읽어 보자.
다음 함형수의 ‘그애’라는 시를 살펴보도록 하자.
내만 집 안에 있으면 그애는 배재밖 전신대에 기댄 채 종시 들어오질 못하였다. 바삐 바삐 쌔하얀 운동복을 갈아입고 내가 웃방문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야 그애는 우리 집에 들어갔다.
인제는 그애가 갔을 쯤 할 때 내가 가만히 집으로 들어가 얼굴을 붉히고 어머니에게 물으면 그애는 어머니가 권하는 고기도 안 넣은 시라기 장물에 풋콩 조밥을 말어 맛있게 먹고 갔다고 한다.
오랜만에 한 번씩 저의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우리 집에 오든 그애는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좋았나? 나뻤나?
퉁퉁한 얼굴에 말이 없든 애 ― 그애의 이름은 무에라고 불렀더라?
이 시의 화자는 ‘그애’를 생각하고 있는 어른인 ‘나’이다. 지금은 이름도 잊어 ‘그애’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며 그 시절의 가슴 두근거리던 감정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시의 화자가 어른인 ‘나’가 아닌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어떻게 될까? ‘그애’와 기억이 나지 않는 추억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묻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시적 화자를 어른인 ‘나’로 설정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그리움, 아련함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을 시적 화자로 내세운다. 그렇다면 시적 화자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을까?
다음 김종삼의 ‘묵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누구인가?
시인이 이 시의 ‘시적 화자’를 어른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질 뿐이다. 이런 시선은 고요한 마음으로 할머니와 소를 바라보는 관조적⑥인 성격을 드러내 준다. 시적 화자는 저물녘 할머니와 소를 보면서 외로운 처지에 대한 연민과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는 정서 등을 조금은 쓸쓸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시의 화자가 할머니라면 어떻게 될까? 시적 화자가 할머니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짧고 군더더기 없이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시에서 할머니를 묘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장치가 필요한지를……. 시인은 자신이 바라본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제시하면서 그 속에 시인의 감정과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소설과 시를 중심으로 문학 작품의 세계가 누구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문학 작품은 같은 소재나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눈을 통하여 전달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나 정서, 표현 방법 등이 달라진다. 그것은 어떤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문학적 장치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문학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이 누구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지를 파악한다면 작품을 더 깊고 넓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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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관조적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또는 그런 것.
시에서 ‘시적 화자’가 드러나지 않을 때의 특징은 무엇인가?
문학 작품이 누구의 눈을 통해서 전달되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읽어 보자.
비상2학년 교과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