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1코스(선자령 풍차길)
일시 : 2015. 04. 29(수)
코스 : 신재생에너지전시관(대관령) - 선자령 (원점회귀 구간 12km/약 4시간)
바우길의 시작은 대관령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까지 한 바퀴 순환하는 코스이다. 모든 자연은 아름답다. 웅장하다. 매력있다. 이런 묘사는 자연의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다. 자연의 개성은 다른 자연과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아름다운의 차이, 웅장함의 차이, 매력의 차이가 그 자연의 실질적인 모습이다.
바우길의 인상은 정돈하지 않은 깔끔함이다. 지난번에 갔던 북한산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그 자체의 웅장함과 사람들의 손을 거친 질서와의 조화였다. 길을 걸으면서 편안하게 자연을 수용하도록 모든 일정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그 길을 정해준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때 받은 인상이 ‘정돈된 깔끔함’이었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을 걷는 길은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이어졌다. 하늘이 열려있으면서도 길은 평지와도 같은 느긋함을 전해주었고 멀리 운무와 함께 숨겨진 지상의 풍경은 이곳의 높이를 짐작하게 해준다.
숲속을 걸으면 온몸을 감싸는 풍취의 향기에 취하는 즐거움을 맛본다. 새소리와 물소리의 싱그러운 조화가 숲의 매력이다. 이때 곤혹스러운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의 날벌레의 환영이다. 최근에는 숲 속뿐 아니라 논길을 걸을 때도 벌레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걷는 경우가 많다. 자연으로의 동화이지만 고통스러운 동행이다. 여기서는 벌레의 환영을 받지 않았다. 대관령의 신선한 공기가 벌레의 입장을 막았는지 모른다. 공기도 바람도 거기에 방해받지 않는 그 자체의 걸음이 즐거웠다.
대관령의 상징은 풍차이다. 거대한 풍차가 바람을 가르며 돌고 있다. 하늘과 풍차가 돈다. 그 사이를 걷는 모습은 이국적인 풍경이다. 다만 가까이에서 듣는 풍차의 소리는 친근하지 않다. 풍차의 소음이 새로운 공해로 등장했다는 뉴스 보도처럼 풍차의 소리는 섬뜩함을 동반한다. 멀리서 바라보던 모습과 가까이 만난 인상은 동일하지 않다. 길을 마무리하면서 ‘대관령국사당’에 들렀다. 대관령 산신은 김유신 장군이라 한다. 종교가 영혼의 구원이라면 가까이에서 친근하게 사람들의 심성을 위로해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양양 강현면 중복리 *
이곳은 이번 답사의 원래 목적지였다. 대학교 친구였던 양수의 졸업앨범에 기록된 주소이다. 양수는 1987년 여름야영 인솔교사로 참석했다 사고로 숨졌다. 젊은 시절 우리는 자기의 삶에 찌들려 과거를 잊고 살았다. 어느 순간 사라져간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려 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술에 취해 수많은 밤을 보냈지만 학교도 고향도 가족도 알지 못했다. 우리의 삶은 현재만을 대상으로 했다. 현재가 사라졌을 때, 현재의 기억이 남지 않았을 때, 과거도 같이 사라졌다. 답답함이 이곳으로 오게 했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농촌이 그러듯이 여기도 적막함만 남아있다. 마을회관은 굳게 문이 닫쳐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현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올해는 대학졸업 30주년 행사가 진행 중이다. 5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홈커밍데이는 행사의 성격상 졸업 후 성취에 대한 드러냄이 강하다. 교대와 같은 특수학교는 대부분 같은 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여기에서도 분명한 차이와 차별이 존재한다.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위한 연대를 목적으로 하지만 중심은 현재의 직위와 사회적 성취이다. 교수와 동기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목적으로, 특별한 준비 없이 진행되는 만남은 결국 현재의 위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남의 목적이 과거와 현재에서 끝나지 않고 미래를 향한다면 소외되고 사라진 사람들의 기억도 복원해야 한다. 30년의 시간은 대학시절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을 잃게 했다. 이제 같이 하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하루의 시간이 현재의 떠들썩함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힘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가치와 공허, 모두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첫댓글 정돈하지 않은 깔끔한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부터 연휴, 목적지도 없이 그냥 떠나련다. 홈커밍? 정으로 모이는 것이 아닌 형식적 의무라는 색깔에서 별로 달갑지 않다. 의미없는 만남에 끼고 싶지도 않고, 점점 더 조직 문화가 싫어진다. 동기의 죽음에서는 나몰라라했던 마음들이 어떻게 조직적인 위치 자랑에서 그렇게 앞장설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과거를 잊은 현재는 가치가 없고, 미래 또한 허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