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이준용 . 한용섭의 기념비
이준용
1860(철종 11)∼1945. 독립운동가, 호는 호암(湖岩)·용서(用瑞), 춘천 서면 방동리출신으로 3·1운동 당시 춘천 천도교 교구장이었다.
1907년 9월 의병장 지용기(池龍起)의병진에 가담하여 자기 집에 대장소를 설치하고 물심양면으로 의병진에 적극 지원하였다.
1910년 항일병탄을 전후하여 천도교 춘천지역 대표로서 독립자금 모금운동에 사유전답을 헌납하는 등 솔선수범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윤도순·박순교와 같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계획하였다.
이때 윤도순이 각지를 돌면서 선전계몽하다가 체포되자, 이준용은 허기준 등과 다시 협의하여 3월 28일 춘천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날(28일) 이준용·박순교·허기준 등이 태극기를 감추어 장터로 들어가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를 외치자 수십명의 군중이 호응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의 진압에 나선 일본군 수비대에 의하여 현장에서 모두 체포되었다. 이에 이준용은 동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6월형을 선고받고, 6월 경성복심원과 7월 경성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0년 출옥 후 강원도 전역을 순회하면서 청장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5년 4월 타계할 매까지 독립투사로서 오로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정부에서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강원 춘천 서면 애니고등학교